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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리랑은 눈물이었다

한국문인협회 로고 문수봉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8월 6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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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불러보았을 노래, 아리랑,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입에 붙고, 어느 순간 저절로 흘러나오는 노래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이 짧은 가사 속에는 한 민족의 정서와 한, 그리고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아리랑을 들을 때마다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어떤 기억과 마주하게 된다.
내게 아리랑은 노래가 아니라 ‘눈물’이었다. 젊은 시절, 나는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 그곳의 하늘은 늘 낯설었고,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했다.
총소리와 폭음이 일상이 된 사람들은 점점 감정을 잃어 갔다. 두려움조차 무뎌지는 시간이었다. 그런 우리에게 고국의 위문단이 찾아오는 날은 마치 꿈과도 같았다.
두 달에 한 번, 바다 건너 먼길을 건너온 그들의 노래와 웃음은 전쟁터의 거친 공기를 부드럽게 바꾸어 주었다. 간이로 만든 작은 무대였지만, 그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은 그 어떤 가수들보다 빛나 보였다. 그들은 노래를 불렀다. 유행가를 부르고, 밝은 노래로 우리를 웃게 했다. 그 순간만큼은 군인이 아니라 고향의 청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공연의 마지막은 언제나 같았다.
아리랑. 누군가가 선창하면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따라 불렀다. 처음에는 조용히 시작되던 노래가 이내 커졌고 어느 순간 노래는 더 노래가 아니라 울음이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그 한 구절을 부르는 순간, 머릿속에는 고향의 풍경이 펼쳐졌다. 논두렁을 따라 불어오던 바람, 저녁이면 초가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던 연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모님의 얼굴, 형제들과 함께 웃던 추억, 친구들과 뛰어놀던 어린 시절의 모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그때 알았다. 사람이 울지 않으려고 버티다가도 단 하나의 노래 앞에서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그 가사는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원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국을 떠나온 자신에 대한 이야기였고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슬픔이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버려진 존재처럼 느껴졌고 동시에 우리가 떠나온 모든 것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그 구절을 부를 때면, 이상하게도 원망보다는 애틋함이 먼저 올라왔다. 붙잡고 싶은 마음과 놓아야 할 현실, 그리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한꺼번에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그 고개는 단순한 산길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과 사의 경계였고, 이별과 기다림의 상징이었다. 우리는 그 고개를 넘고 또 넘으며, 각자의 시간을 버텨냈다. 누군가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고, 누군가는 돌아왔지만 예전의 자신이 아니었다.
노래가 끝나면, 한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는 사람, 멀리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 말없이 눈물을 훔치는 손길들, 그러나 그곳에서는 아무도 눈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 눈물은 우리가 아직 사람이라는,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나는 고국으로 돌아왔다. 전쟁은 끝났고, 삶은 다시 이어졌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은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아리랑은 여전히 내 가슴 한편에 깊이 남아 있다.
지금도 어디선가 아리랑이 들려오면,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총성이 울리던 낯선 땅, 그리고 그 속에서 울려 퍼지던 목소리, 우리는 두려웠고, 외로웠으며, 지쳐 있었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버텨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아리랑이 있었다.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역사이며, 아픔이고, 희망이다. 기쁠 때보다 슬플 때 더 크게 울려 퍼지는 노래, 그래서 더 오래 남는 노래, 나에게 아리랑은 여전히 눈물이다. 하지만 그 눈물은 슬픔만이 아니다. 살아 돌아왔다는 안도, 함께했던 전우들에 대한 기억, 그리고 끝내 잊지 못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눈물이다.
오늘도 나는 마음속으로 그 노래를 다시 한번 불러본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나는 아직도, 그 고개를 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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