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8월 6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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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이미 어두컴컴해진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본다. 노상 모니터에 처박느라 길게 늘어진 모가지가 뻐근하다. 찌뿌둥한 허리를 뒤틀어 양껏 괴롭히고 나서 거리를 찬찬히 둘러보니, 어느새 흥청망청 쑥덕쑥덕 난리통인 번화가를 걷고 있다.
“누구는 일하고 누구는 노는구나.”
짧게 볼멘소리를 해본다.
이 시절을 살아내는 여느 청년들과 같이 나 또한 나랏일이 걱정이고, 경제가 고민스럽고, 흉흉한 세상이 어지럽다. 이역만리 홍해와 호르무즈 일대에서, 태평양 어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나비마냥 나풀나풀 날아들더니 내 지갑을 옭아매고, 또 한쪽에서는 유사 이래 최대치의 경제지표가 드러나며, 서민 투자자들이 평균 3배의 부를 축적했단다. 다른 어디서는 주체 못하게 늘어난 기업 성과를 내게도 달라며 목청을 돋운다.
저쪽에서는 독설과 미사일을 빵빵 쏴대고, 저 너머에서는 살려달라 아우성이며, 한켠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전쟁통에 소리지르고, 아파서 비명하고, 부가 늘어 환호하는 소리들이 한꺼번에 밀려든다. 혼란하고 어지러운 세상이 지나치게 선명한 화질로 내게 펼쳐진다.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밤이 늦긴 했어도, 세상이 좋아져서 내 한몸에 쏟아 넣을 영양소들이 도처에 차고 넘친다.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 뭐라도 욱여넣을 생각으로 메뉴판을 올려다본다. 주방장이 어디 출신인지, 얼마나 수련을 했는지 알 길은 없으나, 굉장한 내공이 전해져 온다.
벽을 가득 메운 갖가지 요리들의 제목을 다 외우기나 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너무 다양하다. 그리고 나는 가리는 것이 없다. 저것은 매콤함이 일품이요, 이것은 달콤함이 으뜸이다. 뜨끈하거나 차가운 것도 마음에 든다.
나는 김치찌개도 좋고 된장국도 사랑하며 냉면과 짬뽕을 모두 좋아하는데, 고기도 추앙하는 한편 채소 샐러드도 숭앙한다. 한참 입맛을 다시며 메뉴판을 응시하고 상상해 본다. 단맛, 짠맛, 식감, 온기…. 이렇게까지 진중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나 싶다.
다기망양(多岐亡羊)이랬던가? 길이 너무 많아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걱정거리가 너무 많아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먹거리가 다양하니 고르는 것도 일이다.
이쯤 되니, 양만 잃겠는가? 번다한 마음을 다잡고 무언가를 진중하게 하고 싶다고 소리는 지르되, 나는 그중 어느 하나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지 않은 상태로 그저 방관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먹을까 말까, 이것일까 저것일까 망설이고 메뉴의 숲에서 헤매는 것보다, 뭐라도 퍼뜩 뜨끈한 국물 한 숟가락 떠 넣는 것이 진짜 살아냄이다.
그런 와중에, 내 한 입에 넣을 수 있는 숟가락은 단 하나뿐이다. 이 숟가락, 저 젓가락, 이 접시, 저 대접이 고루 보인다면, 그 순간 나는 ‘먹는 사람’이 아니고 그저 ‘보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만다.
결정했다.
“여기, 김치찌개 하나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