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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속 비밀방

한국문인협회 로고 조계향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8월 6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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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숲은 늘 바빴어요.
매미들은 아침 햇살이 나뭇잎에 닿기 바쁘게 맴맴맴 목청을 높였어요. 나비들은 꽃밭 위를 팔랑팔랑 날아다니고, 잠자리들은 연못 위를 쌩 지나며 비행 솜씨를 뽐냈어요. 숲은 온통 움직이고, 소리 지르고, 춤추는 것들로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참나무 가지 위에는, 제자리에 묵묵히 멈춰 서 있는 조용한 벌레가 있었어요. 유난히 길고 단단한 주둥이를 가진 엄마 도토리거위벌레였어요.
걸을 때마다 엄마 도토리거위벌레는 고개가 아래로 툭 꺾이곤 했어요. 제 몸통만큼 긴 주둥이가 무거워 몸을 가누기가 힘겨웠기 때문이에요. 숲속 친구들은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지나갈 때마다 한마디씩 했어요.
“야, 도토리거위벌레야! 혼자 나뭇가지에서 뭐 하냐?”
사슴벌레가 커다란 턱을 뽐내며 말했어요.
“날씨도 좋은데 밑으로 내려와서 같이 놀자!”
무당벌레도 둥근 날개를 반짝이며 한마디 거들었어요.
그러나 엄마 도토리거위벌레는 머리를 까딱 숙여 정중하게 인사를 할 뿐, 가지에 매달린 도토리 앞으로 걸음을 옮겼어요. 아직 익지 않아 떫지만 수분이 가득하고, 껍질이 단단한 초록색 작은 도토리였어요.
‘이게 제일 적당하고 좋은걸.’
엄마 도토리거위벌레는 도토리를 먼저 찜해 놓은 다음, 나뭇가지 쪽으로 다시 발길을 옮겼어요. 그리고는 길고 단단한 입으로 나뭇가지를 사각사각 자르기 시작했어요.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그 단단하고 두꺼운 참나무 가지가 조금씩 조금씩 베어지기 시작했어요.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일하던 엄마 도토리거위벌레는 나뭇가지가 절반쯤 베어지자 갑자기 멈췄어요. 그리고 조금 전에 봐두었던 도토리 열매가 있는 쪽으로 다시 갔어요. 엄마 도토리거위벌레는 가늘고 긴 주둥이를 이번엔 초록 도토리에 갖다 대었어요. 그리고 천천히 구멍을 뚫기 시작했어요.
드르르르. 덜덜덜덜. 드르르르. 덜덜덜덜. 도토리거위벌레의 주둥이는 단순한 입이 아니라, 마치 단단한 표면을 뚫고 들어가는 강한 드릴과 같았어요.
숲속의 열기가 가장 뜨거워지는 한낮, 태양은 이글거리며 숲을 바짝 달구었어요.
시끄럽던 매미들도 노래를 멈추고 그늘로 숨어들고, 더위에 지쳐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하지만 오직 엄마 도토리거위벌레만이 온 힘을 주둥이 끝에 모으고 몸을 팽이처럼 돌리며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었어요.
점차 시간이 흐르자 엄마 도토리거위벌레의 작은 다리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어요. 배가 고프고, 목도 말랐어요. 얇고 투명한 날개판 위로 작은 땀방울들이 송골송골 맺혔지요. 엄마 도토리거위벌레는 온 힘을 다해 1밀리미터, 다시 또 1밀리미터를 파고들었답니다.
그늘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난 사슴벌레가 그 모습을 보고는 혀를 쯧쯧 찼어요.
“에구, 저 넓고 부드러운 느릅나무 잎사귀에다 알을 슥 낳으면 일 분도 안 걸릴 텐데, 왜 저러나 몰라.”
엄마 도토리거위벌레는 사슴벌레의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일에만 집중했어요. 주둥이가 도토리 한가운데, 가장 안전하고 깊숙한 곳에 닿았을 때에 비로소 잠깐 숨을 몰아쉬고 말했어요.
“편한 곳에서는… 살아남기 힘드니까.”
마침내 도토리의 가장 깊은 중심까지 이르는 작은 구멍, 그러니까 아기를 위한 방이 만들어졌어요. 엄마 도토리거위벌레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희고 작은 알 하나를 그곳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어요. 그리고 파내었던 부드러운 도토리 가루들을 모아 자신의 침과 섞어 반죽을 만들었어요. 그 반죽으로 알을 내려놓은 구멍의 입구를 토닥토닥 메웠어요. 새나 다람쥐 같은 무서운 천적들이 알을 찾아내지 못하도록 문을 닫아버린 거지요.
구멍을 완벽하게 메우고 난 엄마 도토리거위벌레는 그곳에 자신의 이마를 갖다 대었어요. 도토리 속 작은 방에서 숨 쉬고 있는 작은 생명의 숨소리가 전해지는 것 같았어요.
‘아가야, 건강하게 잘 자라렴.’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것은 엄마 도토리거위벌레가 아기에게 건네는 세상에서 가장 깊은 마지막 인사였어요. 바로 그때였어요.
촤르르! 갑자기 참나무가 거칠게 흔들렸어요. 커다란 꼬리를 휘저으며 뚱뚱한 다람쥐 한 마리가 가지 위로 뛰어오른 것이었어요. 다람쥐는 먹을 만한 잘 익은 열매가 있나 눈을 두리번거렸어요. 다람쥐가 발을 딛고 후드득 뛰어오를 때마다 엄마 도토리거위벌레가 매달려 있는 가느다란 가지가 무섭게 흔들렸어요.
“아아악!”
중심을 잃은 엄마 도토리거위벌레는 비명을 지르며 나뭇잎 밑으로 툭 미끄러졌어요. 여섯 개의 다리 중 겨우 두 개로 잎사귀 끝을 붙잡은 채, 허공에 대롱거렸어요. 엄마 도토리거위벌레는 까마득한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다리에 필사적으로 힘을 주었어요.
“뭐야. 죄다 덜 익은 것들이네.”
다행히 다람쥐는 ‘쳇’ 혀를 차며 가버렸어요. 다람쥐가 사라지자, 엄마 도토리거위벌레는 온 힘을 다해 다시 나뭇가지 위로 기어올랐어요.
“우리 아가를 안전하게 땅으로 빨리 내려 보내야 해.”
다리가 풀려 덜덜 떨렸지만, 엄마 도토리거위벌레에게는 마지막으로 할 일이 남아 있었어요.
사각, 사각, 사각. 절반쯤 자르다 만 나뭇가지로 간 엄마 도토리거위벌레는 마저 자르기 시작했어요. 제 몸집보다 몇십 배는 더 굵고 아주 질긴 나뭇가지였어요.
그 모습을 본 숲속 친구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수군거렸어요. 
“힘들게 왜 도토리에 구멍을 내?”
“단단한 참나무 가지를 저렇게 작은 녀석이 자른다고?”
“한 달 걸려도 못할 걸?”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 도토리거위벌레는 묵묵히 입으로 톱질을 계속했어요.
쉬지 않고 갉아내자 나뭇가지는 금방이라도 툭 부러질 것 같았어요. 엄마 도토리거위벌레의 턱은 마비라도 된 것처럼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헉헉, 이제 거의 다 됐어. 조금만 더….”
그 순간,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거센 바람이 불었어요.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대로 엄마 도토리거위벌레의 작은 몸도 이리저리 휘청거렸어요.
그러나 엄마 도토리거위벌레는 마치 온 숲의 무게를 홀로 붙들고 있는 것처럼, 마지막 남은 힘을 내어 움직였어요.
사각, 사아각. 마침내 투둑 하는 소리와 함께 초록 도토리가 달려 있는 나뭇가지는 마치 낙하산처럼 통째로 떨어졌어요. 덕분에 도토리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땅바닥에 깔린 폭신한 낙엽 위에 내려앉았어요.
엄마 도토리거위벌레는 그 모습을 오래도록 내려다보았어요.
방을 만들 딱 알맞은 도토리를 선택하고 구멍을 내고, 알을 낳은 다음, 가지를 잘라 땅에 떨어뜨리기까지 꼬박 세 시간이 걸렸어요.
배고픔과 목마름을 참고 온 힘을 다 쏟아부은 엄마 도토리거위벌레는 이제 몸이 껍질만 남은 것처럼 느껴졌어요. 하지만 마음속에는 다음 계절을 위해 할 일을 다 마쳤다는 생각에 후련하고 뿌듯했어요.

 

이듬해 숲속에는 따스한 봄이 찾아왔어요.
어느 날 촉촉하게 젖은 흙 사이로, 작은 도토리거위벌레 한 마리가 기지개를 켰어요. 아직은 햇빛이 낯설어 눈이 부신, 여리고 작은 몸이었어요.
그 작은 벌레는 천천히 참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어요.
바람이 새로 입은 도토리나무의 초록 잎들을 천천히 흔들며 지나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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