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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한국문인협회 로고 이계홍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8월 6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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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서는 월말 특집 마감을 하고 홀가분하게 부원들과 함께 몇 군데 주점을 돌다가 자정이 다 되어서 귀가 지하철을 탔다. 밤이 깊어서인지 승객들은 많지 않았다.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빈자리를 찾아 앉아 조는 듯 마는 듯 가는데,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눈을 떴다. 그런데 바로 건너편 자리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아, 평생 머리에서 지울 수 없는 여자, 생각할 적마다 회한만이 가득한 여자, 바로 신태숙이다. 살이 빠진 듯했으나 옛 얼굴 그대로인 신태숙. 그녀 앞에는 대학생인 듯한 청년이 서 있고, 청년이 어깨 높이의 손잡이를 잡고 지하철의 진동에 따라 좌우로 몸을 움직일 때마다 가려졌던 신태숙의 모습이 보였다. 아, 이런 인연도 있다니….
머릿속으로 헤어보니 어언 이십오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말고 주저앉았다. 어떤 죄책감으로 저 깊은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찌르르한 통증 같은 것이 전해오고 있었다. 자리를 피해야 하나, 어쩌나, 잠깐 망설였다. 그러나 기왕에 발견한 이상 그녀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강렬한 집착이 뇌리에 박혔다.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는 그녀를 어찌 놓칠 것인가. 이충서는 조는 척하며 청년과 대화를 나누는 그녀 모습을 실눈으로 지켜보며 혹시 저 청년이 자신의 아들? 하는 상념에 젖었다. 그러자 그의 가슴은 콩콩 찧었다.
신태숙이 청량리역에서 내렸다. 거리낌 없이 내리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자신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다른 사람들에 뒤섞여 내리는데 그도 뒤따라 내렸다. 그녀가 큰길을 건너자 청년이 그녀에게 인사하고 다른 쪽 방향으로 길을 잡아 사라졌다. 신태숙은 큰길 옆 이차선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녀가 이윽고 한 아파트 입구에 들어섰을 때 이충서는 그녀 앞에 불쑥 나타나 섰다.
“나 알아차리겠소? 이충서요.”
신태숙이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싱거운 반응이었다. 순간 그는 전철에서 그녀가 그를 알아보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왜 아는 체를 하지 않았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 차 한잔 합시다.”
청량리역 주변에 대형백화점이 있고, 24시간 운영하는 카페가 있었다. 그녀는 순순히 그가 이끄는 대로 따랐다. 창켠에 자리를 잡자 비로소 그는 그녀를 제대로 살펴보았다. 바바리 코트를 입은 자태는 가냘픈 듯했으니 큰 키에 생머리를 한 모습이 우아하였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좀 전에 헤어진 대학생인 듯한 청년은 누구지요?”
그녀는 침묵을 지켰다. 그 침묵이 어떤 영원처럼 느껴졌다. 정말 그녀의 자식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인가. 그럼 그의 아들도 된다는 얘긴가? 세월을 더듬어보니 그럴 개연성이 높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충서는 ROTC 소위로 임관해 경북 영덕군 병곡면에 소재한 부대의 소대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바닷가에 막사를 짓고 소대 병력을 거느리고 해안 경계근무를 하고 있었다. 한참 시국이 혼란한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의 일이다. 북한군이 무장게릴라를 침투시킨 만행으로 동해안의 산악지대는 거의 상시적으로 부대 비상이 걸렸다. 그의 부대는 바다를 초계하는 임무를 띠어서 상대적으로 고생이 덜한 편이었으나 준전시 상황인지라 여전히 긴장된 나날을 보냈다.
이충서 소위는 부대 옆 마을에 방을 얻어 영외 근무를 하고 있었다. 식사는 내무반에서 소대원들과 함께했다. 분위기가 긴장된 가운데서도 바닷가 모래밭에서 소대원들을 데리고 축구 시합을 하고, 야구 경기도 하였다. 다른 부대와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그런데도 못 견디고 탈영하는 병사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탈영병을 그의 고향에서 데리고 부대로 돌아왔다. 병사는 모친상을 당해 휴가를 갔다가 아예 탈영해버린 것이었다. 그런 얼마 후 그는 생면부지의 소포를 하나 받았다. 시사 월간지였다. 책 안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적혀 있었다.

 

저는 경북 영양군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 신태숙이랍니다. 안동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버스에서 장교님이 병사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탈영병을 달래며 버스 정류소에서 우유와 카스테라를 사 먹이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너무나 정겨웠어요. 병사가 눈물을 흘리자 등을 도닥여 주며 위로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어린이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저에게도 많은 가르침이 되었어요.
그럼 제가 장교님을 어떻게 알았냐고요? 장교님이 궁금해서 지나는 길에 부대 초소병에게 안경 쓴 젊은 장교가 누구냐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부대에 장교가 네 명인데 안경 쓴 사람은 이충서 소위뿐이라고 하더군요. 근무 틈틈이 보시도록 시사 월간 『신동아』를 보냅니다. 허락하신다면 매월 보내 드릴게요. 자랑스런 대한민국 육군 소위에게 경례! 신태숙.

 

편지를 다 읽고 나서 그는 그곳 출신 병사를 불러 물었다.
“영양군의 ○○학교는 어디쯤 있지?”
“25km쯤 떨어져 있습니다. 대략 육십리 길이죠.”
그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직접 학교로 찾아갈까 하다가 겸연쩍은 일이라 여기고 대신 답장을 썼다. 그리고 한두 번 편지가 오간 뒤 어느 날 여성 둘이 부대로 찾아왔다. 검은색 코트와 붉은색 코트를 입은 여성이었다. 그중 한 여성이 제안했다.
“우리 두 사람 중 누가 책을 보낸 신태숙 선생님인지 알아맞혀 보세요. 맞히면 주인공이 식사 대접을 하고, 못 맞히면 장교님이 식사 대접을 해야 해요, 호호호.”
생글 웃는 붉은 코트의 모습이 귀여웠다. 이충서는 잠시 섞갈렸으나 금방 알아차렸다. 검은 코트의 여성이 자기를 찍으라는 눈빛을 보내는 것이었다. 이충서가 “검은 코트의 선생님이 주인공이네요” 하자 환호하듯 그녀가 폴짝 뛰었다. 그러나 이충서는 실망하였다. 미모로는 붉은 코트가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검은 코트의 신태숙은 큰 키에 어딘가 우수 깊은 얼굴이면서 말상이었다. 얼굴이 길고 콧날이 선명하여 인상적이었으나, 여성다운 면모는 붉은 코트가 훨씬 나았다.
“실망했나요?”
신태숙이 물었다. 그는 펄쩍 뛰었다.
“아니요. 그럴 리가 있습니까. 너무나 영광입니다.”
그러자 신태숙이 위로하듯 말했다.
“장교님이 저 선생님을 찍었다면 허당이었어요.”
“왜요?”
“저 선생님은 결혼했거든예.”
“아, 내가 선견지명이 있었군요. 왠지 끌리더라니.”
그는 거짓말을 했지만, 군복을 입고 벽촌에서 세련된 여성을 만났으니 인물 됨됨이를 가릴 처지가 못되었다. 치마만 두르면 가슴 설레며 덤벼드는 시절 아닌가.

 

영덕 해안의 긴 모래밭은 낭만과 추억을 한껏 선물하는 아름다운 데이트 코스였다. 바람이 드셌지만, 그런 억센 바람조차 젊은이에겐 싱싱한 환희로 다가왔다. 그는 신태숙과 자주 데이트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부대원들이 그의 데이트를 더 즐거워했다. 신태숙과 거니는 모래밭에 산에서 꺾어 온 진달래를 한 무더기씩 꽂아 놓았다.
“군대란 엄격한 줄 알았는데 꼭 소풍 온 것 같네예.”
“부하들이 아름다운 여성에게 바치는 선물입니다.”
“정말요? 감사해요.”
그녀는 꿈꾸는 듯했다. 다음 해 2월 중위로 진급한 이충서는 안동사령부 연대본부로 전역이 되었다. 안동부대로 부임하고부터 신태숙은 주말이면 빠짐없이 안동으로 면회를 왔다. 공원을 산책하고 거리를 거닐고, 영화를 보고, 탁구를 치고, 카페에 들어가 맥주를 마셨다. 그녀는 술이 약해서인지 맥주 한두 잔이면 얼굴이 빨개지고 흐느적거렸다. 어느 날 술기운을 업고 그녀가 당돌하게 물었다.
“충서 씨, 키스 안 해 줄 거예요?”
그때까지 그는 그녀를 깊게 받아들이진 않았다. 이성에 관한 한 서툰 데다 단지 외로운 처지에 만나는 사람으로 여기는 정도였다. 그는 그녀에게로 자리를 옮겨 키스를 했다.
“키스가 서투네요. 이렇게 해요.”
그러면서 입술을 다정하게 포개고, 어느새 그녀 혀가 그의 입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키스는 로맨틱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는 키스가 짝짓기의 절차로만 알았는데 이처럼 달콤한 키스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둘은 혀를 교환하며 한동안 서로를 응시했다.
“꾼이세요?”
키스가 끝나고 그가 물었을 때 그녀가 대답했다.
“그렇게 묻는 게 아니에요. 규칙은 없어요. 긴장을 풀고 따뜻하게 파트너에게 집중하면 돼요.”
그러면서 그녀가 한 말은 의외였다.
“나 이충서 씨 모교를 찾아가봤어요. 석조관에 학적과가 있더군요. 거기서 열람해보니 대학 공부는 형편없더군요. 왜 그랬어요?”
“1학년 때부터 데모 주동자였으니까요. 정외과 과대표였거든요. 한데 어떻게 그런 생각까지 가졌지요?”
“난 이충서 씨의 모든 것을 소유해야 하거든?”
그녀는 존댓말 대신 이젠 반말로 대답했다. 이미 인생을 결정하고 있다는 태도였다.
“그럼 나도 신 선생에 대해 알아야지. 안 그래?”
그도 반말로 물었다.
“그럼 여태 몰랐던 거야? 관심 두지 않았나 봐?”
실망했다는 투로 말하는 그녀를 위해 그가 더 깊게 그녀를 안았다. 
“신 선생을 사랑할 것 같아.”
“나 이 중위보다 다섯 살 연상일 걸?” 
그녀가 뚱딴지같이 말했다.
“다섯 살 연상? 그럼 서른하나네?”
“실망했어?”
실망을 했지만,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나폴레옹은 조세핀이라는 여자와 결혼했는데 여섯 살인가, 일곱 살 연상이더만. 조세핀은 재혼이구.”
“멀리 갈 것도 없지 뭐. 우리 조상들은 조혼 풍습에 따라 여자가 보통 서너 살 많았어. 어떤 경우는 너댓 살 많은 경우도 있고…. 노동력 때문일까?”
그러나 그들이 사는 지금은 남자가 대개 서너 살 많은 것이 대세였다. 한데 다섯 살이나 연상이다? 그는 은연중 거부감이 생겼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무렵 여성 나이 서른한 살이면 노처녀 대열에 낀다. 이 나이 되도록 결혼하지 않은 이유는? 보수적인 경상도 시골에서 이 나이까지 결혼하지 않은 이유는? 혹 결혼에 실패한 여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두서없이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혔으나 마음씨 착한 그녀는 벌써 그의 내부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사실 그녀와 사귀다 보니 연령 차를 잊었다. 모든 것을 그녀가 리드하였고, 데이트 비용도 대부분 그녀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모든 것이 편했다. 연상녀라는 것이 이렇게 마음 따뜻하게 하는 것도 있는가. 그러면서도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뭔가 자신이 손해 보는 기분이었다. 남자의 삿된 이기심 때문이야, 라고 자신을 질책하기도 했으나 숨길 수 없는 감정이기도 했다.

 

만나는 횟수가 쌓여 가는 사이 자연스럽게 양가의 허락을 받아 결혼하자는 약속까지 받아냈다. 어느 날 신태숙의 집에서 그를 초대했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저녁상이 차려져 나왔다. 체면 불구하고 신태숙은 그의 곁에 앉아 갈비찜이며 안동간고등어조림이며, 동해안에서 가져온 싱싱한 생선회를 젓가락으로 집어서 먹여주었다. 그런 행동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녀 부모도 이런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잠자리에 들었다. 따뜻한 온돌방에 깨끗한 이불과 풀을 잘 먹인 베개가 나란히 두 개 놓여 있었다. 그녀 집에서는 딸의 나이가 많으니 어서 시집을 보내고 싶어서 서두르는 인상이 짙었다. 경상도 지방이라면 보수적인데 결혼 전의 합방도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이후 둘은 마음 놓고 사귀었다. 걷다가도 여관이 보이면 들어가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그런 어느 날 이충서는 고향의 부모님을 안동으로 초청했다. 신태숙을 보고는 어머니가 먼저 반색을 했다.
“어찌 그리 복스럽게 생겼냐. 좋은 직장에 다니고, 복스런 얼굴에, 우리 아들이 호강하겄다. 마음 씀씀이가 맏며느리감이다.”
어머니의 말을 들으니 더욱 정이 깊어졌다. 주말마다 신태숙과 보내는 사이 어느덧 전역 날짜가 다가왔다. 군대 생활을 끝내기 전 1주일 동안 주어진 휴가 시간에 신태숙도 휴가를 내어 함께 여행을 떠났다. 떠나기 전 그녀는 그를 금은방으로 안내했다.
“우리 사랑 변치 말고 묵직해야 해. 황금같이 빛나야 하구.”
신태숙은 정말 묵직하고 빛나는 5돈짜리 황금 반지를 맞춰 주었다. 하지만 그는 보답하지 못했다. 받기만 하였다. 돈도 없었지만, 그럴 마음도 없었다. 곧 결혼하면 잡은 물고기 아닌가. 잡은 물고기에 밥 주는 것 보았나? 그녀는 또 연상녀 아닌가. 그는 이기적이었지만, 그런 태도를 그녀가 키운 측면도 있었다. 배려가 의무가 돼 버렸다. 받는 쪽에선 당연히 권리가 되었다. 그들은 인근 온천을 가고, 경주에 다녀오고, 영해와 영덕의 바닷가를 거닐었다. 은빛 모래밭에서 손을 잡고 맨발로 돌며 영화의 주인공처럼 올드 팝인 <Tennessee Waltz> <Take Me Home> <Country Roads> <Hey Jude>를 흥얼거렸다. 하늘을 나는 갈매기, 아스라한 수평선, 푸른 파도, 싱싱한 바닷바람, 이 모든 것이 그들을 위해 준비된 것 같았다.
“집안에 교육청에 나가는 분이 있어. 전근 신청할 거야. 당신 올라가면 나도 따라 서울로 올라갈게.”
그렇게 굳게 약속하고 그는 전역을 하여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 생활은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임무부터 주어졌다. 여기저기 입사 원서를 내고, 입사시험에 응시했지만 싸그리 낙방하였다. 몸도 마음도 지쳐갈 무렵, 어머니가 고향에서 그의 자취집으로 찾아왔다. 그런데 어머니가 꺼낸 말은 의외였다.
“얘야, 사주쟁이를 만나 신수를 보았더니 태숙이와 결혼하면 니가 일찍 죽는다는구나. 팔자가 드센 여자래. 고게 믿어지지가 않아서 무당한테도 가봤더니라. 무당은 더 방방 뜨더구나. 신붓감의 나이를 물어 너댓 살 많다고 했더니 아들 죽일 일 있느냐면서 당장 그만두라는 거야. 한두 살 연상도 고개를 갸웃할 판인데 너댓 살 연상이라니, 이게 부모가 할 짓이냐구 난리더라니까. 니가 살려면 포기해라.”
그때 그는 여러모로 심약해져 있었다. 취직은 안 되고, 시국은 불안하고, 영구집권이 확책되면서 선후배들이 잡혀 가고, 어떤 무엇도 희망을 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말을 따를 것인가, 묵살할 것인가. 마음이 착잡하였으나 미래로 보아 지금 당장 결혼하기는 이르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방학이 되자 마침내 신태숙이 서울로 올라왔다. 역으로 마중 나간 그의 앞에서 그녀는 온 세상을 얻은 듯이 가슴 부풀어 있었다. 그녀는 새처럼 포릉포릉 나는 기분을 서울 하늘 아래서 한껏 만끽하고 있었다.
“만날 날만 손꼽아 기다렸어.”
들뜬 마음으로 그녀가 말했을 때, 그는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그래, 그랬군.”
“왜 그렇게 말이 시시하누?”
“너무 보고 싶으면 모든 관형사와 형용사들이 부질없지.”
“과연 묵직한 남자답구로. 서울에 전셋방 얻을 돈도 마련해 왔어. 당신이 전셋방 찾아봐. 서울 전근도 잘될 거야.”
신태숙은 아이처럼 재잘거렸다. 그는 창덕궁 앞 고급 여관 운정에 들었다.
“밥 먹을 시간인데, 욕구부터 채우는 거야?”
남자란 도둑놈이란 말이 맞다고 여기면서 그는 그동안 풀지 못한 욕구를 채우고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사를 하는 중에도 태숙은 새처럼 재잘거렸다. 세상의 모든 기쁨이 그녀 가슴에 가득 들어차 있는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그들은 다시 운정 여관으로 돌아왔다. 깨끗한 온돌방에 욕실이 별도로 있고, 4인용 탁자가 놓여 있고, 커피와 녹차 등이 준비돼 있고, 일회용 치약과 칫솔, 콘돔, 깨끗한 수건이 몇 장 포개어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충서는 처음 들어왔을 때 발견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고 여관이 주는 아늑한 분위기에 젖었다.
“나 옷 벗을까?”
그가 물었을 때, 그녀가 쉽게 동의했다.
“금방 되살아나? 당신이 들어오면 나는 금방 자지러져. 왜 그러지?”
한번 푼 욕정 때문인지 두 번째는 실제로 낑낑댔다. 어머니의 말씀이 귓전에 어른거렸다. 그 때문인지도 몰랐다.
“당신 갑자기 이상해졌어. 왜 그래?”
그제서야 낌새를 알아차리고 신태숙이 정색을 하였다. 두 사람은 탁자에 마주 앉았다.
“신 선생,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신 선생이라니, 뭐야? 무섭구로.”
그녀의 말을 묵살하고 이충서는 이런저런 얘기 끝에 헤어지자는 말을 꺼냈다.
“왜 그래?”
놀라서 그녀가 물었다. 그는 제대한 뒤 계속 취직 자리를 알아보았지만 모두 낙방했다는 점과, 시국이 이러니 앞이 캄캄하다는 점과, 아직은 나이도 있으니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설명했다.
“그럼 내가 월급 받는 것으로 살자구로. 전셋방 얻을 돈도 가져왔구, 서울 전근도 잘 된다카이. 근데 갑자기 왜 그래?”
“나는 시간을 벌어야 하니까 방법이 없어. 대신 신 선생은 나이도 꽉 찼으니 나를 기다릴 처지가 못되잖아. 기다리지 않는 게 좋겠어. 좋은 사람 만날 거야.”
“다른 여자 생겼니?”
그녀도 천상 여자였다. 그녀 눈에 질투심이 가득 찬 얼굴로 그를 쏘아 보았다. 이충서는 아껴 둔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사실은 어머니가 점을 보고 무당을 찾았던 모양이야. 내가 신 선생과 결혼하면 내가 일찍 죽는다고 해. 신 선생도 안 좋다고 하고, 신 선생에게도 피치 못할 운명의 덫이 끼어든다는 거지. 미신이라고 보지만 듣고 보니 끔찍해.”
“그런 법이 어디 있니? 또 사랑하다가 죽는 게 무슨 죄가 돼?”
그녀가 와크르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절규하듯 한마디를 더 보탰다.
“이럴 수는 없는 기다. 뱃속엔 당신 아가 자라고 있다. 어떻게 할 낀데?”
그는 머리를 둔기로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으나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지워요.”
그리고 그길로 여관방을 뛰쳐나왔다. 밤이 깊었지만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어서 서울역으로 가서 완행열차를 타고 정처없이 서울을 떠났다. 무책임하다고 자신을 책망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달래며 남해안의 절에서 한동안을 보냈다.

 

그리고 이십오 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 그의 앞에 그녀가 앉아 있다. 살이 풍부했던 모습이 핼쓱하고 눈의 초점도 잃은 듯했다. 사사로운 것에 모두 체념하는 눈빛이었다. 커피가 식을 때까지 손대지 않고 그녀는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그는 그녀와 헤어진 후 단 한 번도 그녀를 잊은 적이 없었다. 결혼을 하였으나 그녀를 생각하면 어떤 죄책감으로 견딜 수 없어 머리를 쥐어뜯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드라마에서나 영화에서 모든 어려움과 반대와 장애물을 딛고 결혼에 성공하여 행복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을 볼 때마다 차마 나머지를 보지 못하고 자리를 피했다. 자신의 비겁함과 나약함과 이기심에 마구 욕을 퍼부었다. 결혼생활이 순탄치 못하면 그것은 더욱 그를 동아줄로 옭아맸다.
“나도 사실은 전철에서 당신이란 걸 알았어. 하지만 나서고 싶지 않았어.”
그녀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럴 것이라고 여기며 그는 궁금한 것을 물었다.
“신 선생, 혹시 젊은 청년은 누군가?”
쉽게 답이 나왔다.
“조카야.”
그러자 어떤 안도감이랄까, 섭섭함이랄까 이상한 감정에 그는 사로잡혔다.
“조카는 왜 데리고 다녀?”
“그럴 일이 있어.”
그렇게 말해 놓고 그녀가 쓸쓸하게 웃었다. 무언가 비밀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럼 그때 신 선생 뱃속의 아인 어쨌어?”
“당신이 잔인하게 살인을 유도했잖아. 그때 그 길로 난 산부인과에 가서 임신중절수술했어. 그리고 죽으려고 한강에 나갔어. 나가 보니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돌아왔어. 잘못은 당신이 저질렀는데 내가 왜 원통하게 죽느냐는 생각이 들었어.”
아차, 나는 그렇게 잔인했구나. 그는 그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싶었다.
“용서해줄 수 있을까?”
“용서해봐야 무슨 소용?”
“미안해, 무엇으로 위로를 해줄까.”
“위로도 무슨 소용?”
그녀는 모든 걸 넘어선 것 같았다. 밤이 깊어서 집으로 돌아갈 시간도 늦었다. 그는 그녀와 밀린 얘기를 더 나누고 싶어서 제안했다.
“우리 호텔로 갈까?”
그녀가 처녀 시절의 방식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인근 호텔로 자리를 옮겼다. 방에 투숙하고 그가 물었다.
“결혼했어?”
“결혼한 사람이 따라오니?”
그녀는 지금껏 혼자 살아온 것이었다. 처녀의 몸으로 50대까지 지내왔다니, 찌르르 아픈 감정들이 폐부를 찔렀다. 그런데 그녀는 옷을 벗지 않았다.
“왜 신태숙답지 않게 옷을 안 벗어? 예전엔 나보다 먼저 벗고 몸을 돌며 각선미 자랑을 했잖아.”
“그랬나? 내 몸 보면 실망할 걸?”
그녀는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
“유부녀 몸이 다 그런 것 아닌가? 왜, 하기 싫어?”
그녀 눈을 보는데 그녀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조금만 건드리면 눈물방울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왜 그래?”
“정말 날 원해?”
“무슨 소리야? 우리가 한두 번 몸을 섞었나? 왜 새삼스럽게.”
“실망하지 마.”
“실망이라니?”
“나 유방암 환자야. 한쪽 떼어냈어.”
그러면서 그녀가 허물 벗듯 윗옷을 벗었다. 그녀가 브래지어 후크를 풀려다 말고 주춤했다. 그가 그녀 뒤로 돌아가 후크를 풀었다. 앞가슴에서 스폰지 같은 덮개가 툭 떨어져나가고, 그리고 한쪽 가슴이 무너진 것을 그는 발견하였다. 그가 진정하며 그녀 몸을 돌려세우자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흉하지?”
아아, 가슴이 함몰되어 있는 것을 어찌 흉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지금도 아파.”
남의 말하듯 말하는 그녀 앞에서 그가 절푸덕 무릎을 꿇고 그녀 다리를 부여안고 소리 내어 울었다. 격한 회한의 감정들이 가슴을 마구 후벼 파고 있었다. 아, 이 여인의 고통은 내가 준 거야. 모든 것이 내가 저지른 과오 때문이야. 죄책감이 그의 가슴을 송곳처럼 찌르고 있었다. 그녀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실은 조카를 데리고 필동에 있는 부인과 전문병원을 갔다 오는 길이었어. 재진을 받는데 좀 심각하다고 하네. 한참 누워 있다가 나왔어.”
아아, 그랬구나. 그녀와의 사랑이 무너지자 풍성했던 유방도 무너진 것인가. 긴 세월을 견뎌오다 끝내는 몹쓸 병에 걸렸다는 것인가.
“시한부라지만 담담해.”
“아냐, 아냐. 회복할 거야. 내가 살려낼 거야.”
그가 부정하며 더 소리 내어 울었다.
“나 학교에 장기 휴가를 내고 입원하기로 했어.”
그녀는 서울로 전근해 온 뒤 지금은 혜화동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녀는 며칠 후 입원하였다. 이충서는 필동의 어느 대학 언론정보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그가 매일 문병을 가자 신태숙은 반기면서도 걱정하였다.
“신문사 데스크에 대학원까지 다니면 바쁠 건데, 이렇게 매일 찾아오면 어찌 되나?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말은 이렇게 해도 찾으면 몹시 반기었다. 그는 매일 찾아야만 할 것 같았다. 애틋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것만이 그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같았다.
이충서는 어린이신문 편집부장이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는 그럭저럭 어린이 신문이 잘 나갔다. 지면엔 학습 문제지와 만화와 퀴즈, 어린이 문예, 세계의 명작 연재 등 읽을거리가 풍성하여 구독자가 많았다. 그중 큰 매력을 준 것은 학습 문제지에서 대부분 월말고사, 중간고사, 기말고사의 문제들이 출제되었기 때문에 신문을 보아야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되어 학부모들이 더 좋아했다. 그런데 출판계의 끝물인 1990년대 초부터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그렇더라도 신문의 전통이 있는지라 발행은 계속되고 있었다.
“내가 진작에 알았으면 신문 구독을 늘려주었을 건데….”
“그런 걱정은 말고 꼭 일어서요.”
신태숙은 나머지 유방 절제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잘 되었다고 했으나 다만 항암 치료받을 걱정을 하고 있었다. 지난날 왼쪽 유방을 떼어냈을 때의 고통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당신 잘 버틸 거야. 환부를 깨끗이 제거했으니 이제 치료만 잘하면 괜찮아질 거야.”
“이제 나한테 스스럼없이 당신이라고 하네? 꼭 부부 같네.”
핏기 없는 얼굴로 웃는 모습이 그는 오히려 슬펐다. 그런 그녀가 꼭 백합꽃 같다고 생각하였다. 꼭대기층 일인실로 병상을 옮겼다. 그녀가 비용을 감수하고 그렇게 옮긴 것이었다. 방문할 때마다 그녀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운 채 이충서를 맞았다.
“냉장고 한번 열어봐.”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생선회 접시와 양주 한 병이 들어 있었다.
“환자가 뭘 이런 것까지 신경 쓰누? 당신 몸만 생각해. 그러면 우리 잘 살 수 있어.”
“그럼 두 집 살림하는 거야?”
그러면서 쓸쓸하게 웃었지만 행복한 표정이었다. 어느 때는 생선 모둠회, 회초밥, 중국 요리, 통닭, 참치회를 배달시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넉넉하게 먹으라는 배려였다. 그때마다 그는 그녀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아 화장실로 가서 울었다. 소변 보는 사람들이 그런 그를 보고 “삼가 망자의 명복을 빕니다” 하고 위로하고 돌아갔다.
그는 병실에 들어가면 세면대에서 먼저 손을 씻고 그녀의 함몰된 유방을 어루만지며 깊게 키스했다. 처음에는 싫어하더니 언젠가부터 “찌르르 감전이 와요. 사랑해요” 하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느 날 그녀가 물었다.
“당신 부인은 착한가?”
“착하긴 한데 아둔하고, 악착스럽다고 봐야지.”
“욕같이 들리는데? 욕하지 말아요.”
“욕한 건 아니고, 정직하게 말한 것뿐이야.”
“아이들은?”
“남자아이 셋을 두었는데 둘째가 지적장애자야. 벌써 청년기인데 지능은 서너 살 먹은 어린아이 수준이야.”
“착한가?”
“착하지만 한번 둑을 내면 통제 불능이야. 마구 때려부수고, 며칠씩 집에서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고. 어느 날은 수원에서 찾아온 경우도 있었지. 시내버스, 지하철을 탈 줄도 모르니 거기까지 걸어서 갔던 모양이야. 운동화를 보았더니 너덜너덜 닳았더군.”
신태숙이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내가 그 아이를 데려다 키우면 안 될까?”
“그 아이를?”
그녀가 여러 가지 계획을 말했다. 충남 공주에 팔백 평짜리 나대지 투자를 했으며, 처분해도 되지만 아이를 데리고 가서 살고, 그럴 때 이충서도 가끔씩 내려오면 되지 않느냐는 제안이다. 그런 그녀는 다시 꿈꾸는 듯했다.
그는 이 제안을 아내에게 넌지시 전했다. 당장 불똥이 떨어졌다.
“더 아픈 손가락을 남에게 맡긴다고요? 꿈에도 생각할 수 없어요. 데려다 키우더라도 열흘을 못 견딜 거예요. 누구 제안인지 모르지만 내 몸 편하자고 아이를 버린다고요? 당신 참 이기적이네요. 쓸데없는 생각일랑 말고, 지금 당장 아이 운동이나 시켜요.”
지적장애 1급인 아이를 생각하면 그도 질렸다. 툭하면 간질로 나자빠져 입에서 거품을 물고 바둥대었다. 어느 날은 배가 아프다고 나뒹굴었다.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 보니 손톱깎이가 장기에 들어 있었다. 어느 때는 바늘도 집어삼켜서 항문에서 꺼내느라 의사들이 곤욕을 치렀다. 성질을 부릴 때는 안방의 장롱을 때려부수고, 칼을 들고 막냇동생을 죽인다고 위협하였다. 이럴 때의 힘은 어떤 장사보다 강했다. 이런 아이를 데려다 기른다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살레살레 저었다.
이충서의 간절한 염원 때문인지 신태숙은 조금씩 차도가 있었다. 그런데 암이란 병은 깊으면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치명적 불예측성의 고비가 있었다. 어느 날 신태숙이 지친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 숨을 할딱이고 있었다. 이충서가 담당 의사를 찾았다. 의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시다시피 유방암은 미혼이나 홀로된 여성에게서 상대적으로 많이 발병합니다. 수십 년간 외로이 사는 여성들이 그런 병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이충서 자신을 책망하는 말인 것 같았다.
“꼭 좀 살려주세요.”
그가 두 손 모아 절박하게 간청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됐어요. 유방암은 유관(乳管)과 소엽(小葉)의 상피 세포에서 기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악성은 잘 수습되다가도 어느 한순간에 치명적인 병변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유두에서 피가 섞인 분비물이 나온 것을 본 적 있나요?”
“네,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신태숙의 유두에서 나오는 핏물을 빨아 뱉어내곤 했었다. 짭짤한 그것이 바로 자신의 눈물 같다고 여기면서 빨았다.
“절제술, 항암화학요법, 방사선치료, 항호르몬요법 등을 조합하여 진행했으나 워낙 병이 깊습니다. 언제 어느 때 고비가 올지 모르니 가족들은 대비해야 할 것 같아요.”
그 말은 마지막을 준비하라는 조언이었다. 의사를 만나고 온 것을 신태숙이 무슨 불길한 예감이라도 한 듯 물었다.
“절망적이라고 하지 않던가?”
“아니야. 희망이 보인다고 했어.”
그는 거짓말을 했다. 그녀는 그걸 그대로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가 정색을 하였다.
“이제 내 말 잘 들어요.”
신태숙은 공주의 땅을 이충서에게 넘기겠다고 했다. 여동생이 있고, 여동생 남편은 은행 지점장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탐욕이 끝이 없어서 자신이 죽으면 여동생이 부동산을 가로챌 것이라며, 이충서에게 명의 이전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가 펄쩍 뛰었다.
“그런 얘기 입 밖에 내지 말아요. 나는 그러면 당신 두 번 다시 찾지 않을 거요. 그 돈으로 원 없이 치료할 생각이나 해요. 반드시 일어날 거니까. 그 후를 대비해요.”
그런 위로 때문인지 신태숙은 열흘 후 퇴원하여 통원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보름 후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었다. 괴로워하며 숟가락 들기도 괴로워했다.
“중국에 갔다 올까 봐.”
“중국엔 왜?”
“침과 약으로 암을 치료하는 저명한 의사가 있대.”
“그러면 어서 빨리 다녀와야지.”
원 없이 치료비를 쓰라고 했으니 백방으로 알아본 모양이었다. 최후의 수단이란 걸 알고 그도 환영하였다.
“당신이 수속 밟아줘.”
그 길로 수속을 밟고, 마침내 떠나는 날이 되었다. 공항으로 승용차를 몰고 가자 그녀는 내내 운전대를 잡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이런 행복은 처음이야. 수속 비용을 당신이 다 댔대?”
“그게 얼마나 된다고…. 어쨌거나 잘 치료받고 와요.”
“그래. 그러니까 안녕이란 말도 하지 않을래.”
그런데 중국으로 간 그녀는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그는 잘 치료받고 있으려니 하고 기다렸으나 소식이 없어 내내 답답하여 부원들이 모두 퇴근한 뒤 그녀가 근무하는 학교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한 분은 누구시죠?”
당직 남자 교사의 목소리였다. 이충서는 잠시 얼버무리다 낮게 응답했다.
“집안 친척입니다. 하도 소식이 없어서 걱정이 되어서 전화드린 것입니다.”
“신태숙 선생님은 한 달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네?”
“유골은 현지에서 화장하여 고인의 유언대로 영덕의 바다에 뿌렸습니다.”
아, 영덕의 바다….
그는 전화를 끊고 빈 사무실 창가에 기대어 소리 죽여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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