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9월 6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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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걸었다. 집에서 고덕천 지나 한강을 따라서 하남시까지. 이번 봄에는 미사리 벚꽃의 생사마저 모른다. 한참 늦었으나 기어코 가서 봐야 할 것만 같다. 꽃구경도 의미가 있지만, 긴 시간 걸어보는 재미도 느끼고 싶었으니까.
뒷동산 걸을 때와 다르게 준비물이 많았다. 챙이 큰 모자, 선글라스, 작은 배낭까지. 오랜만에 도보꾼으로 변신한 모습이라니. 순간, 늘 남편과 함께 힘있게 걷던 때로 시간을 돌려놓았다. 남편은 안면 마스크와 스틱을 찾아 건네며 오늘의 도보를 응원했다. 그는 걸음 속도 차이 때문에 함께 걷기를 마다하고 실내 자전거를 타곤 한다. 어쨌든 난 제대로 준비했으니, 걸음이 빨라지며 몸과 마음이 벌써 풍선이라도 된 듯한데.
고덕천에 낮게 엎드려 핀 민들레는 청춘이다. 그 곁에 할머니의 힘없는 머리카락처럼 홀씨 되어 껑충 서 있는 하얀 민들레와 대비된다. 센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미련 없이 떠날 태세이니까.
민들레 홀씨를 후우 불어서 날려 보낼 첫 경험을 하던 손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들숨과 날숨의 개념이 없어, 미동 없는 홀씨를 삼킬 듯 들숨까지 동원하던 녀석. 결국 아빠의 시범으로 날아갔지만. 그런 영상을 본 후 며느리에게 물었다. 행여 초등 교과서에 그런 시도를 권하는 게 나오느냐고. 나는 해보지도 못했던 경험이라 신선함으로 다가왔기에.
강변에 들어서니 애기똥풀이 지천이다. 일부러 씨앗을 비행기로 뿌리기라도 한 것처럼. 작년엔 개망초가 사열하듯 길 양쪽에 무리를 지어 피었었는데. 들꽃이 주는 자유로움으로 풍성함을 맘껏 누려본다.
걷다가 벤치에 앉아 커피와 간식을 꺼냈다. 명징한 햇살 아래 대낮인데, 조용하고 여유로운 자연의 품속이랄까. 사회적 동물로서 사람과 어울려 살면서도 사람을 피해 조용해서 좋다는 모순이다. 마치 나만의 호사스럽고 행복한 타령처럼.
에너지 충전 후 걷기 시작이다. 야구장에서는 늘 어느 쪽으로 갈 건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지금도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다. 강변 가까운 우레탄 길과 그늘 쪽 흙길 중에서 아무래도 그늘을 택했다. 메타쉐콰이어가 양쪽으로 늘어선 곳, 그 가운데 바닥에 매트를 깔아서 도보코스를 자연스럽게 안내했다. 귀하고 보기 드문 정취를 맘껏 누리도록 배려한 시의 행정력을 실감했다. 선택을 잘한 운수 좋은 날이라고 자찬하면서.
쑥, 토끼풀, 노랑과 흰머리의 민들레가 떼를 지어 동네를 이루는 모습이다. 쑥 캐는 재미야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부드러운 토끼풀은 유년 시절 토끼에게 먹여주었던 기억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진다. 그 오물거리던 자그마한 토끼 입이 무척 사랑스러웠는데. 드디어 미사대교 밑. 흙길 양옆으로 개꽃마리와 죽단화가 무리로 피었다. 나처럼 꽃의 이름을 잘 모를 때, 네이버에서 즉각 찾을 수 있으니 다행이 아닌가. 그때마다 예쁜 꽃에게 새 이름을 붙여준 것 같아서 즐겁다.
파란 모자로 통일해서 쓴 어린이들이 숲 체험을 왔는지, 저 아래 동그랗게 서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모습이라니. 처음이 많은 존재, 너희들이 꽃인 것을.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 새싹이요 미래의 꽃이다’고 했던 많은 표현이 실감났다.
벚꽃나무는 환호하던 인파도 깡그리 잊은 듯하다. 다만 자신의 삶을 살아내려는 듯, 초록 잎사귀를 더 진하게 새침때기처럼 묵묵히 서 있다. 예초기의 소음만이 진동하면서. 행여, 떨어진 벚꽃잎이라도 남았을까. 하지만, 그 나무 아래 곳곳에서 풀을 깎는 인부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바쁘다. 마치 지난 봄날의 환영을 잊게 할 지우개를 든 손처럼.
그러거나 말거나, 강둑에는 풍성하고 싱싱한 철쭉이 여전하다. 간혹 볼품없이 사그라진 철쭉과 대비되면서. 어느 흰 철쭉 무리는 신부의 순결한 웨딩드레스가 넓게 펼쳐진 것으로 착각할 만큼 화려했다. 세상사 보기에 따라 다르듯.
건장한 이팝나무는 제철을 맞아 왕성하다. 눈이 쌓인 듯 풍성하게. 옥잠화의 싱싱함도 청년 같다. 간간이 입간판의 글에도 시선이 머문다. 잡초를 사랑할 때라는 시에서, 인간 시선으로 판단해 버린 잡초라는 존재가 가엾단다. 그렇지. 나름 귀한 존재인 것을.
이 만보 이상 걸었던 한강변의 풍경이다. 호젓하게 누린 해방감과 성취감이다. 저마다 생동하는 계절답게 꽃길을 연출해 준 자연의 이치에 경건해서 고개를 숙였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저마다의 꽃. 지천에 별처럼 깔린 애기똥풀의 당당함을 보니, 걷는 내 모습도 아름답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나도 자그마한 꽃이 되고 싶다. 나만의 향기와 색깔로 살아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