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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된 아버지

한국문인협회 로고 신선자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9월 6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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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이 뚝 떨어졌다. 창밖을 내다보니 밤새 내린 눈이 얼어붙어 도로는 마치 얼음판처럼 변해 있었다. 아침부터 여행 생각에 마음은 한껏 들떠 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선다. 친구와 삼목항에서 배를 타고 섬으로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꼭 가보고 싶은 곳이라 결국 망설임 없이 출발했다.
두꺼운 옷을 껴입어도 칼바람에 한기가 느껴질 정도다. 막상 항구에 도착하니 바람은 생각보다 훨씬 더 차가웠다. 배를 타고 목적지로 가고픈 마음은 간절했지만, 온몸에 스며드는 냉기에 아쉬움을 삼키며 발길을 돌렸다. 어느 길이든 갈 수 있을 때 가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면서.
머리와 가슴으로만 건널 수 없는 그곳을 상상하며 항구 옆 식당으로 들어갔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따스한 공기가 우리를 반겼다. 추위 때문에 바다는 건너지 못했지만, 친구를 만난 기쁨과 함께 나누는 식사의 따뜻함은 그 어떤 아쉬움도 잊게 했다. 회를 시켰더니 한 상 가득 푸짐하게 차려져 나왔다. 그 넉넉함에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포기한 여정이지만, 덕분에 작은 선물을 얻은 기분이랄까. 덤으로 좋아하는 산낙지가 나왔다. 그것을 보는 순간, 그칠 줄 모르던 생각의 행렬이 아버지와의 추억을 불러냈다. 여행지는 낯선 걸음을 뗄 때마다 새로운 사람과 풍경을 만나게 한다. 그중에서도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남해에서 아버지와 마주 앉아 산낙지에 소주 한 잔을 나누던 그 모습이다. 산낙지를 입에 넣었다가 목에 걸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순간 크게 당황했다. 겨우 삼키고 나니, 아주 잠깐이지만 죽음의 문턱을 스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는 술을 못하시니 “제발 그만 좀 먹어라” 하며 옆에서 화를 내시던 모습도 떠오른다.
짭조름한 바다 냄새를 맡으며 아버지와 나누던 수많은, 인생 이야기들. 그 순간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의 나는 어설픈 어른이 아니었을까. 아버지는 인생의 선배이자 경험자로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중에서 “힘들어도 사람 탓하지 말고, 항상 고마움을 먼저 생각하라”는 말씀이 오래 남는다.
이제 내 나이가 아버지의 그 시절에 가까워지니, 그 말의 무게가 더욱 깊이 와닿고 고마움으로 다가온다. 가끔 아버지와 술잔을 기울이며 많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현실을 버티는 법과 미래를 바라보는 법을 배운 것 같다. 그래서 나름대로 언제나 그 자리에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이제는 내 얼굴에도 깊은 주름이 더해지고, 머리카락에는 흰 눈이 내려앉는다. 모든 변화를 가져온 세월 앞에, 나는 그저 조용히 순응할 뿐이다. 유리창 너머로 철썩대는 파도를 바라보며, 인간은 외로움에 사무치면 자신의 그림자라도 부둥켜안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득 병석에서 고생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기억해야 할 의미 있는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다 보니, 어느새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리움은 아프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아버지가 남겨주신 뿌리 같은 사랑이 담겨 있다. 늘 건강하시던 분이 어느 날 머리가 아프다 하셔서 병원에 가셨고, 진찰 결과 뇌에 혹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수술만 하면 나아질 줄 알았다. 그래서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셨다.
동생이 지인께 부탁해 비교적 빠르게 수술 날짜를 잡았다. 수술 후 하루쯤은 괜찮아 보였지만, 이후부터는 뇌에 부작용이 계속 나타났다. 의료 상식이 부족했던 나조차도 수술이 잘못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와는 한마디 말도 나누지 못한 채, 종이에 글을 써 눈으로 소통해야 했다.
호흡을 위해 목에 관을 삽입하고, 코로 연결된 호스를 통해 영양을 공급해야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삶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길이 곧 나의 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느꼈다. 누구도 고통과 슬픔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리도 건강하시던 모습이 수술로 인해 무너지듯 변해갔다. 그날을 아직도 마음 깊은 곳에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는 병원 입원하기 전 우리 집에 머무르셨다. 열흘 동안 함께하며 내가 몰랐던 친정집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수술 후 깨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있으셨던 걸까. 그럼에도 우리는 아버지가 다시 예전처럼 일어나실 거라 믿었다. 가족들은 뇌 수술만 받으면 완쾌되는 줄 알았는데. 하지만 수술 이후 아버지는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중환자가 되었다.
자녀들은 매일같이 병실을 지키며 기적을 기다렸지만, 그것은 끝내 오지 않았다. 깊은 잠에 빠진 듯, 아버지는 말도 미소도 손짓 하나 하지 못하셨다. 그저 깜빡이는 눈으로만 마음을 전하셨다. 쉽게만 여겼던 뇌 수술이 얼마나 위험하고 후유증이 큰지 그때 알게 되었다. 결국 회복하지 못한 채 병원에서 오랜 시간을 버텨오신 끝에 우리 곁을 떠나셨다.
아버지와 함께한 지난날들이, 삼목항의 바람과 함께 다시 나의 곁으로 찾아온 것일까. 그칠 줄 모르는 생각의 흐름이 그리운 기억들을 불러낸다.
그럴수록 아버지가 더욱더 보고 싶어지는 이유는 뭘까. 어쩌면, 생각할수록 내겐 마치 작은 형벌 같은 시간으로 이어진다.
수술을 서둘렀던 그때, 그것이 최선으로 옳은 선택이라 믿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그 순간을 떠올리면 여전히 죄송한 마음이 남는다.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삶의 방향은 지금도 내 길을 밝히고 있다. 그 가르침은 여전히 내 삶의 길잡이가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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