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9월 6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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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던가, 생각을 자꾸 바꾸었다. 신념이라고 해도 좋고 계획을 바꾸고 있었다.
오래전 얘기이지만 10년마다 바꾸자고 했다. 목표라고 해도 좋고 좌우명처럼 책상머리에 써 붙여 놓지는 않더라도 지향하는 바 이루고자 하는 것을 새로 정하는 것이다. 추가하는 것이라고 할까,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평생 목표를 정하여 추진하던 것을 10년 주기로 다시 정한 것이다.
그것이 실천이 안 되어서 그랬던가. 그 얼마 후부터는 5년마다 계획을 세웠었고 또 1년 단위로 뭘 하겠다고 하였었다. 오래전 이야기이다. 그것이 무엇이었던지 얼마나 대단하고 거창하였던 것인지 그리고 그런 것들이 이루어졌는지 어쨌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닌지 모른다. 목표가 됐든 계획이 됐든 그 기억에도 없는 것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지금 무엇을 하려고 하고 있으며 계획을 세웠으면 그것을 실천할 의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이 문제이다.
민하에게 지금 그런 것은 없다. 거창한 계획도 없고 바꿀 목표도 없다. 없다기보다 그렇게 설정을 하지 않고 있다. 닥치는 대로 되는 대로 살겠다는 것은 아니고 뭐 특별히 이거다 하고 정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 것 같다.
앞으로 이렇게 삶을 바꾸겠다, 이런 것을 실현하겠다, 이루겠다, 특별히 그런 것은 없는 것 같다는 것이다. 더 바라는 것이 없고 더 할 것이 없고 여한이 없다, 뭐 그런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지 모른다. 그동안 살아온 대로 지향했던 대로 살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하던 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었고 잘못한 것이 너무도 많았다. 죄를 받을 일도 참 많이 하였다. 잘한 것보다 잘못한 것이 많고 택할 것보다 버릴 것이 더 많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렇지만 전철을 밟지 않고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며 해야 될 일인지 하지 말아야 될 일인지 분별해서 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되는 것이지 일일이 뭐라고 정하고 써 붙이고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아니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 아니고 다시 말하자면 그 어느 시점부터, 그것이 문제지만, 모든 시계가 멈춰 서고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일기를 쓴다면 자기 전이나 새벽에 몇 줄이든지 몇 장이든지 쓰면 되는 것이지만, 대개 그러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런 것을 쓰지 않은 지 오래되었고, 수기(隨記)라고 제목을 붙여 일기 쓰듯이 가끔 쓰다가 그것도 안 쓰고 있다. 언제까지 썼던지, 까만 비닐 커버의 노트인데 어디에 두었는지도 기억에 없다.
요즘은 이면지 같은 데다가 뭘 쓸 때가 많다. 몇 월 며칠 무슨 요일 플랜이라고 쓰고 1 2 3 4 개조식으로 적어나간다. 요일은 한자로 서예를 하듯이 정성 들여 쓰고 플랜은 영어로 쓴다. 무슨 멋인가 모르겠다. 매일은 아니고 일이 있을 때마다 생각날 때마다 뭘 쓴다기보다 메모를 하는 것이다. 대개 무슨 일이나 행사를 앞두고 그에 대비하기 위하여 그러기도 하고 그렇게 하다 보면 준비해야 될 일 챙겨야 할 것들이 생각나고 좋은 안이 떠오르기도 한다. 기록이란 그런 것인지 모른다.
일상적인 것 자잘구레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오늘 또는 내일 무엇을 해야 하고 누구를 만나고 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을 사고 어디를 들르고 가령 콩나물이나 면도날 무슨 모종을 산다든지 무슨 약을 산다든지, 전날 빠뜨린 것 실천이 안 된 것을 반복해서 다시 메모할 때도 있고. 기억력을 보충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렇게 하므로 해서 생각이 떠오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적어놓지 않으면 자꾸 잊어버리고 그것이 습관이 되기도 한다. 치매는 아닌 것 같은데 기억력이 형편없이 떨어져 있다. 어떻거나 말하자면 그날그날 플랜은 있고 멀리 내다보는 계획은 없다는 것이고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그때부터인가.
눈만 뜨면 책상에 앉는다. 읽지 않으면 쓰는 것이다. 메모가 됐든 노트가 됐든 작품이 됐든. 뭐가 됐든 말이다.
방 한가운데 넓은 책상이 있다. 의자 두 개를 끌어 사방에서 앉도록 해 놓았다. 볕이 드는 쪽 그늘이 지는 쪽을 따라 앉기도 하고 그때그때 편리한 대로 옮겨 앉아 쓴다. 오른쪽으로 광선이 비치게 하는 것이 눈에 좋다고 하여 그렇게 한다. 스탠드도 이리저리 끌어당겨 오른쪽에서 비칠 수 있게 해 놓았다. 필통에는 볼펜 싸인펜 연필이 잔뜩 꽂혀 있다. 필통도 여러 개이고 책상 탁자마다 놓여 있다. 필통 중에는 만년필도 꽂혀 있는데 잉크를 넣어서 쓰는 펜은 언젠가부터 쓰지 않는다. 또 왜 그런지 연필을 쓸 때가 많고 연필깎이도 있어 심심찮게 연필밥을 비워 내곤 한다. 펜으로는 메모 정도만 하고 거의 워드프로세서로 쓴다. 다른 방에도 책상이 있고 거기에도 쓰던 PC가 있고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항상 배낭 속에 노트북을 둘러메고 다니며 어디고 앉기만 하면 쓴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도 쓰고 운전을 할 때는 녹음을 했다가 풀어서 쓰기도 했다. 차를 없애고부터는 주로 기차를 타고 다니는데 차에 따라 출입문 쪽 좌석에만 붙어 있는 콘센트 근처에 앉아 내릴 때까지 쓴다.
전에 주로 펜으로 쓸 때는 또 차에 흔들리면서도 썼다. 기차나 버스의 좌석에 앉아서나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도 뭘 썼던 것이다. 물론 청서는 돌아와 책상에 앉아서 다시 하기도 하지만 장거리 여행 때나 마감 시간이 쫓길 때 그렇게 하곤 하였다. 그것이 뭐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닌지 모르지만 가까운 지인들은 그의 그러한 특기를 인정하였던 것이다.
“참 놀라운데!”
지금은 요양원에 들어가 있는 흘러간 전설 백형도 늘 감탄을 하였다.
“그러면 눈 버려요. 뭐가 그리 급해요?”
늘 그를 염려하여 말리는 후배도 있었다.
여기저기 참으로 쓰는 것이 많았다. 쓰다 둔 것도 있고 새로 고쳐 쓰는 것도 있고, 이것을 쓰다가 저것을 쓰다가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짧은 것이라도 완성이 되려면 밤을 새우고 몸살을 앓는다. 끝이 나면 발표를 하고 또 책을 낸다. 아직 책으로 묶어 내지 않은 것도 있다. 그 많은 시간 동안 거기에다 무엇을 썼는지 모르겠다. 언제쯤이던가 발문에, 나의 작품은 나의 신이라고 쓴 적이 있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만큼을 훨씬 더 쓰고 난 뒤 생각하니 허풍이었던 것이다.
자기 키만큼은 써야 한다고 했다. 「보물섬」의 작가인 스티븐슨의 얘기라고 하였다. 강의를 하던 선생님은 그는 키가 작았다고 했다. 우스갯소리로 한 말인가. 그때는 200자 원고지에다 썼었는데 쓴 원고를 모두 쌓았을 때의 높이를 말하는 것이다. 한 가마니를 써야 문리가 튼다는 말도 하였다. 그냥 해본 말인 것 같았다. 참 끔찍한 양이며 부피가 아닐 수 없다. 말할 수 없는 노력과 수련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원고지가 아니고 A4용지로 말한다. 계량 단위가 달라졌다. 좌우간 그걸로 쌓아도 그의 키를 훨씬 넘는 분량을 쓴 것 같다. 거기에다 대체 무엇을 쓴 것인가. 무슨 애길 한 것인가.
사는 얘기,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등의 얘기를 쓴 것 같은데 아직도 쓸 것이 많이 있다. 쓰지 않은 것이 많이 있다. 접근하지 않았거나 못한 것도 있고 잘못 접근한 것도 있고. 많은 것을 기대하며 썼지만 그것이 이루어졌는지 어쨌는지는 모른다. 가끔 이런 생각도 한다. 언젠가는 한 번 뜰 것이다. 계속 쓰고 계속 발표하고 책을 내다보면 하나쯤은 히트를 치고 불티나게 팔릴 것이다. 또 무슨 큰 상을 받거나 기금을 받고 명성도 누리리라. 그런 것도 다 신소리다. 그런 것을 바라고 쓰지는 않는다. 그런 헛바람이 다 빠져나갈 때 왜 쓰는가 하는 진정한 답이 나올지 모른다.
한 가지 자위를 하는 것은 노숙을 하지 않고 푹신한 요를 깔고 잠을 실컷 잘 수 있는 것이지만 가끔 잠도 자지 않고 쓰려고 한다. 죽을 때까지 눈을 뜨고 일어나 앉을 기운만 있으면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낙일 것 같다.
좌우간 눈만 뜨면 책상에 앉는다. 그리고 무엇을 쓸까 무엇을 할까 생각한다. 식탁에서는 일상적인 것을 메모하고 예의 플랜 같은 것을 적곤 하지만 책상에 앉아서는 뭔가 쓰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삶에 대한 먼 미래에 대한 사유라고 할까, 말하자면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꼭 어떤 것을 해야겠다 무엇을 써야겠다 정한 것 없이, 다시 말해서 별 계획이 없이 시도하는 것이 없이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 녀석을 다시 만나는 것이다. 너무 일찍 헤어졌다. 아무 준비도 없는 채 불시에 작별하였다. 순서야 어찌 되었든 너무나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만나서 용서를 빌고 싶은 것이다. 용서도 빌고 사죄를 하여야 했다. 무슨 얘기든 해야 했다.
미안했다, 잘못했다, 용서해 다오, 다시 시작해보자, 아니 그럴 수는 없다 할지라도 좌우간 뭐가 됐든 한 번만이라고 잠깐만이라도 다시 만나고 싶은 것이다. 어떻게든 만나야 하는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어떻게 다시 만나는가. 그럴 수가 있는가.
그런데 그럴 수가 있다는 것이다. 10년이고 20년이고 아니 50년이고 100년이고 때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 아니고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나는 노력을 하고 공을 쌓고 정성을 들이고 그런 것이 아니고 믿음을 가져야 되는 것이다. 믿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택이 되고 허락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심판을 받는 것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을 한다. 그보다 어려울지 모른다. 그런데 된다는 것이다.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로 그럴 수가 있을까요?”
“아직도 그것이 의심스러우십니까?”
“의심스럽다기보다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그 말이 그 말 아닙니까?”
최목사는 녀석의 입관 예배를 집전하면서도 말하였다. 다시 만날 때까지 뭐라고 뭐라고 하였었다. 주례도 섰고 그의 집에 일이 있을 때마다 와서 기도를 하며 희망을 주었었다.
몇 번이고 물어보고 또 물어본 말이다. 다시 만날 수 있는가. 그렇다는 것이다.
교회에 나간 지 오래 되었다. 아이들 연로한 어머니까지 같이 다 나갔다. 아내와 결혼을 하면서부터이다. 그의 종교 난은 빈칸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 후부터 기독교라고 적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를 신앙인으로 바꿔놓지는 않았다. 장인이 장로로 있는 교회 목사가 후배를 중매한 것이고, 나가 보고 좋으면 나가겠다고 한 것인데 그냥 두 아이들을 안고 유아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엉거주춤한 상태로 있었던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대로 교회 문지방만 밟고 다닌 것이었다. 약속을 지키는 거지요? 아내가 물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었던 것이다. 그랬다기보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웃을 때도 있었다. 아내는 등산 갔다 오다가 절에 들렀을 때 부처나 사천왕 앞에서 합장을 하거나 고개를 숙이는 것을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이었다. 그의 스터디의 하나인 굿이나 무당에 대하여도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제사였다. 명절 제사는 그냥 넘어가는데 기제사는 그렇지 못하였다. 절을 안 하고 기도로 대신한다는 것인데, 모두들 절을 할 때 뻣뻣하게 서서 고개만 숙이는 것이고 아이들도 그렇게 따라 했다.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경전에 그렇게 써 있다는 것인데 가끔 그가 따지었다. 어떻게 아버지 할아버지가 우상이냐고, 우상에 대한 말 뜻을 잘못 알고 있다고 설명하였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경전이 법이었다. 문법도 소용없었다.
형이 둘 있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게 되었는데 어느 날 느닷없이 어머니를 모시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미국 이민을 가자고 하는 것을 어머니가 살아 있는 동안은 안 된다고 하여 아이들만 데리고 갔다가 혼자 돌아온 아내는 그에게 세례를 받으라고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었다. 주일마다 아내와 함께 교회에 가긴 하였지만 믿지는 않았었다. 정확히 말하면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기도도 하지 않았다. 기도가 되지 않았다. 그런 그를 바꾸어 놓겠다는 것이었다.
“선택을 하세요.”
“그러지 뭐. 알았어요.”
그는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게 쉽지가 않았다.
최 목사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그에게 학습은 생략하고 세례문답을 하였다. 사도신경을 외어보라고 하였다. 그가 떠듬떠듬 주어섬기고 있는데, 그것을 믿습니까, 물었고 예 예 하고 대답하였다. 목사는 확실히 믿습니까, 다시 물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노력하겠다는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분명히 말하세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믿습니까? 예 믿습니다.
늘 예배를 볼 때 통성으로 하던 기도 내용이었다. 그는 여러 교인들과 한 목소리로 어물어물 따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분명하게 말하라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세례를 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시키는 대로 하여야 했다. 그렇게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그가 말한 대로 믿어지지는 않았고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언약은 실천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뒤였던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부터는 교회를 나가지 않으려고 하였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약속한 지가 얼마 안 되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목사에게 한 약속이 아니고 신에게 한 것이다. 하느님 하나님 어떻든 신과의 약속이었던 것이다. 다른 누구와의 약속도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고 말하지 않는가. 그래서도 아니고 그 나름대로의 생각에서였다.
어떻든 그러긴 했지만 뭐가 달라진 것은 없었다. 생각이 바뀐 것도 없었고 자세가 달라진 것도 없었다. 결국 약속을 못 지킨 것인지 안 지킨 것인지 모르지만 일요일-주일-11시면 어김없이 교회에 나가 아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예배 순서대로 일어서서 기도를 하였다. 모두 한 목소리로 통성기도를 하고 난 다음 혼자 속으로 기도를 하였다. 한 주간의 일 최근의 일을 반성하고 가끔 녀석에 대한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그런 것이었지만,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고 하였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인데 그는 자신과의 대화를 할 뿐이었다. 통성기도도 또렷하게 뭐라고 뭐라고 말하지 못하고 계속 어물어물 분명치 못한 소리를 하며 입만 덜썩이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는 것이 안 되었고 그것을 누가 따지지도 않았다. 세례라는 통과의례를 거친 후 그는 세례교인이 되었던 것이다. 이사를 갈 때마다 그랬고 귀향을 하여 나가는 집 앞의 교회에서도 그랬다. 좌우간 그랬다.
유학을 보내놓고 여러 번 녀석을 만나러 갔었다. 혼자 떨어뜨려 놓았던 것이다. 갈 때마다 그의 볼일을 만들고 그의 일정에 맞추어 다녀왔고 여타 시간에 공항 같은 데서 만났다. 햄버거를 들고 커피를 마시며 별일 없느냐고 잘 하고 있겠지? 하고 묻고, 물론이지요 하는 대답을 들었다. 그러면 어깨를 툭툭 치며 잘 해야 돼, 잘 할 줄 믿는다, 몇 마디 던지었다. 한 번은 거처하고 있는 방에 갔을 때 책을 꽂아둔 책장의 책 뒤로 여러 병의 술이 숨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도 따끔하게 나무라지 못하고, 심각하게 우려를 표하는 대신, 이게 다 뭐야? 웃어 넘겼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자랑을 하듯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하였던 것이다.
“아 글쎄 녀석이 누굴 닮아서 책장 속에 술을 잔뜩 감춰 놓았더라고.”
공부가 문제가 아니었다. 일이 문제가 아니었다. 도대체 정신 상태가 얼마나 황폐해 있었는지 따져볼 생각은 않고 대수롭지 않은 듯이 웃으면서 말하곤 하였던 것이다.
얌전한 규수감을 봐두기도 했었는데 정말 어떻게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기대를 저버리고 키가 늘씬한 스튜어디스 출신의 아가씨를 인사를 시키며 결혼을 하겠다고 해서 서둘러서 결혼을 하고 딸 둘을 낳고서의 일이었지만, 먹어서는 안 되는 약을 먹고 있은 지가 오래 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다. 그것을 해결하는 시설이 있었고 기관이 있었다. 거기 들어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고 교육을 받아야 했다. 물론 일상과 격리가 되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당사자의 노력이 있어야 하지만 이미 그것을 기대하지 못할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무슨 조치를 취하지 못하였다. 그냥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고 노력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엉거주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냥 잘되길 바랐다.
우선 학업을 포기하여야 했고 모두가 거기에 매달려야 했다. 그러나 그냥 그대로 현상 유지를 하면서 해결해보려 한 것이다. 녀석의 학업은 학업대로 그의 직은 직대로 유지하면서 그것도 방학 때에 휴가 때에 해결하려 하였던 것이다. 학업에 지장을 주지 않고 다시 말하면 학력에 영향을 주지 않고 또 생활에 영향을 주지도 않고 근무나 근태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면서 해결을 하려 하였던 것이다. 그 학업이나 학력이 그렇게 대단하였으며 직이 그렇게 대단하였던가. 그것을 다 버릴 각오를 하고 그 사태에 달려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때 말이다. 너무 안이하게 대처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 것이 지금에 와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후회하면 무엇하고 뉘우치면 뭘 하며 무슨 소용이 있는가.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망상이 아닌가. 그러면서도 가끔 생각하고 되뇌이는 것이었다.
좌우간 그러기 위하여서는 옆에 같이 있어야 했고, 국내에 들어와서 치료를 받든 무슨 조치를 하면 되는데 그렇게 되진 않았고(녀석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면 그가 가면 되는 것인데 그러지를 못한 것이다. 그러지 않은 것이다. 직에 얽매어 있었던 것이다. 직에 변동 없이 해결하려 한 것이다. 월급이 얼마였던가. 남은 연한이 얼마였던가. 그것을 계산하고 있었던가 몰랐다.
얼마나 바보 같은 멍청한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휴직이고 퇴직이고 하면서 대처를 해야 하지 않았던가. 뭐가 중한 것인지 몰랐던 것이다. 한 존재의 있고 없음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그것을 지금 와서 다 늦게 모든 것이 끝나는 시점에 와서 왜 자꾸 매달리며 후회를 하고 생각은 뭣 때문에 하는가 말이다.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고 생각이 되는 것이지만.
녀석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시골에서 버스를 탈 때에는 제일 앞자리에 앉는다. 물론 그 자리가 비어 있을 때의 얘기지만, 시야가 넓은 앞쪽 창으로 휙휙 지나가는 들판의 풍경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배꽃 복숭아꽃이 활짝 핀 들판을 달릴 때도 그랬고 금계국이 언덕을 뒤덮고 눈이 흩날릴 때도 그랬다. 그런 것이 아니라도 들판의 사계를 혼자 앉는 자리에서 감상하는 것이다. 그런 것도 있지만 또 하나의 생각이 있었다. 왼쪽 대각선으로 바라보이는 운전기사에 대한 것이다. 가끔 그 기사가 운전하는 버스를 탈 때 떠오르는 생각이다. 머리를 가끔 뒤로 쓸어넘기며 앞뒤 좌우를 살피고 백미러를 닦고 차창을 닦으며 운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연상되곤 하였다. 녀석은 차를 다룰 때 참으로 신중하였고 철저하였다. 그가 가끔 기어를 완전히 바꾸지 못하고 후진할 때 드르륵 소리를 낼 때마다 그러면 절대로 안 된다고 하며, 기계는 조그만 오차가 큰 사고를 내는 것이라고 그에게 주의를 주곤 하였다.
녀석은 파일럿이 되려는 것이 꿈이었다. 다들 비행학교에 다니고 조종 훈련을 하고 하는 것에 대하여 못마땅하게 생각을 하였고 만류하였다.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다가 스튜어디스 출신이 반대하는 바람에 바꾸긴 했지만. 그리고 문과는 싫고 전자공학과를 가기로 했는데, 그때만 해도 제일 인기학과였다. 가끔 같이 훈련 받던 동급생들은 조종사 부조종사가 되었다고 하면서 그쪽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였고 학점을 따지 못하여서인가 졸업이 안 되었던 것이다. 한 번은 방학 때 학교 구경을 하자고 해서 갔지만 캠퍼스 구경만 하고 성적은 볼 수가 없었다. 본인이 동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래 구내 매점에서 대학 로고가 찍힌 반바지 티셔츠 노트 같은 것만 사고 콜라를 사 마셨을 뿐이다. 콜라는 녀석이 사서 주었다.
결국은 국내에 들어와서 전자공학으로 이름난 대학에 편입하여 졸업을 했다. 그는 늘 제일로 치는 것을 선호하여 권한 것이고 그 덕에 일류 회사에서 실습을 하고 거기 예비사원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녀석은 그 약을 계속 끊지 못해 가정도 파탄이 났고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제서야 병원에 강제로 입원을 시켰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었다. 여러 병원이 있었지만 그가 원장을 아는 ㅂ병원이었다. 그것도 문제였는지 모른다.
1주일에 한 번 면회가 되었다. 원장은 환자와 가족을 한 자리에 앉혀 놓고 세미나를 하였다. 환자들과 관련한 여러 증상 치료 방법 같은 것도 있었지만 사회병리 문제 통일 문제 같은 거창한 주제들을 가지고 세미나를 하였다. 발제는 원장이 했고 고정적으로 참석하는 논객들이 피드백을 했다. 그도 더러 참여를 하였었다. 남북문제 김정일 김대중의 정신분석 등 시국의 문제-당시-들을 등장시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것은 주말 세미나 얘기이고 개인적으로 약물 치료는 치료대로 하였고 환자와 가족들이 함께 하는 대화 시간도 가졌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렸을까,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조금 더 두라는 것을 퇴원을 시켰다.
의사의 말도 중요했지만, 정말 이제 괜찮다는 그리고 정말 이제 잘해보겠다는 약속을 믿었던 것이다. 감옥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그가 융통성을 발휘한 것이다.
“그래. 너를 믿는다.”
“잘해볼게요.”
“그래.”
그랬는데. 좌우간 그랬는데 뭐가 문제였던가.
추석이 되어 같이 성묘를 갔었다. 부모님 조상님께 보고를 하고 싶었다. 차가 막혀 예닐곱 시간이 걸리었다. 서로 교대로 운전을 하였다. 큰 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내려갔기 때문에 해가 져서야 성묘를 했고 고향 마을을 떠날 때는 달이 떠 있었다.
마을 둥구나무 앞을 지날 때 녀석은 차를 세우고 가게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에쎄 뭐라고 하는 물건 사는 소리가 들렸고 한참 후에 차를 탔다. 운전은 그가 하였다. 올 때보다 더 막혔다. 뭐라고 말을 하였지만 대답도 않았고 휴게소에 쉴 때마다 뭘 하는지 또 한참 만에 차에 올랐다.
집에 와서도 말 한마디 없었다.
그리고 새벽이었다. 아침이라고 할까.
그때 모든 것은 끝나 있었다.
인터폰을 받지 않는다며 문을 두드려 나가 15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는 동안 무슨 말을 들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고 실감할 수 없는 일이 화단에 기다리고 있었다. 더 이상은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말할 수가 없다.
사실은 그런 일이 가슴을 밟고 지나간 후 술도 무맛이고 모래알을 씹는 듯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를 바꾸어 놓았다. 모든 일에 있어 백보 천보 양보를 하고 언제나 뒤에 물러서 있었다. 허리가 구부러진 데다가 고개를 숙이었다. 걸을 때도 그랬고 앉아 있을 때도 그랬다. 말도 하지 않았다.
다 내려놓았다. 이것저것 걸터들이고 있던 것들 하고자 했던 일들 다 거둬들이고 중지하였다. 그리고 귀향하였다. 6·25때 불탔던 옛집을 다시 지어 노후에 살려고 했던 것이지만, 두문불출은 아니고 거기 그냥 틀어박혀 있었던 것이고 좌우간 숨은 쉬고 있었던 것이다.
근처 물한계곡을 올라가다가 자그만 절이 있다. 황룡사라고 하였는데 뭐라고 이름을 바꿔 산문에 걸었던가. 절 뒤에 세워 놓은 현판들에 좋은 글귀들이 쓰여 있어 올라가며 내려가며 뜻을 새기곤 한다.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병이 없으면 교만해지기 쉽다.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어려움이 있어야 인내와 지혜가 생긴다. 공부에 마음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되기만을 바라지 말라. 남이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지 말라. 마(魔)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여남은 가지가 되었다. 보왕삼매론이라고 하였던가. 한번은 마당을 쓸고 있는 스님에게 물어보았다. 뜻을 몰라서가 아니고 말을 붙여보고 싶었다. 경은 성인의 말씀이고 론은 그것을 제자가 해설한 것이라고 하였다.
어떻거나 하나하나 동의가 되며 실감하였다. 그의 마에 대해서도 이미 엎질러진 물, 자위도 많이 하였다.
좌우간 녀석을 다시 만나고 싶은 것이다. 만나서 손이라도 잡고 그럴 수 있다면 끌어안고 울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아무것도 해결하는 것이 없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 그것이 소원이었다.
그런데 정말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믿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최목사 말이 믿어지지 않고 누구의 말이든 믿어지지 않는 것이고, 그들 얘기의 근거가 되는 경전에 써 있는 말들이 믿어지지가 않는 것이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라. 여러 가지가 있지만 천 가지 만 가지가 있지만 우선 생각나는 것을 가지고 물어보았다. 어떻게 죽어도 살며 영원히 죽지 않느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냐고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어째서 그럴 수가 있는 거지요. 호칭부터 고치세요, 하느님이 아니고 하나님입니다. 하늘이 아니고 이 세상 천지에 하나밖에 없는 신이라는 것이다. 신은 하나님은 무소불위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없고 능치 못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고 한다. 그가 묻고 싶은 말이다. 아니 그걸 여태 모르고 있었느냐고 한다.
그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사흘도리로 만나는 우 선생에게 물어보았던 것이다. 그걸 모르고 있었다니, 참 답답하다는 투로 말하며 웃는다.
우 선생은 성당에 나가고 있었다. 천주교회이다. 기독교가 개신교라면 천주교는 구교이다. 어떻게 되었든 거기서는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허용되어 제사를 지낸다고 하였다. 그래 그 교본을 빌려다도 보았다. 구교가 더 개방적이었다. 같이 뭘 쓴다고 하는 처지이기도 하지만 내외 같은 직에 있다가 텃밭을 가꾸며 농촌에 사는 처지여서 장날 만나 모종도 사고 씨앗도 사고 낮술을 한잔 같이 하기도 하였다. 그럴 때도 그랬고 가끔 세미나를 같이 갈 때라든가 한 방에 같이 자기도 하고 차창으로 들판을 내다보며 천당이 어떻고 내세가 어떻고 얘기를 주고 받는다. 주로 그가 물어대었다. 얼마 전에 상처를 하여 문상을 갔을 때 거기 교인들과 무슨 경을 읽는 듯한 주문을 밤늦게까지 읊기도 하였다. 어떻든 우선생은 자꾸 웃는 것이었다.
얼마 전 죽음에 관한 묵상이라고 사순절을 맞아 쓴 글을 책자로 만들어 가지고 있기에 좀 보자고 했다. 부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것이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영으로부터 육이 분리되는 것이고 그래서 육신의 죽음은 영혼의 독립된 삶이라고 하였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그것을 논하기에 앞서 사도신경을 옮겨 놓고 있었다. 그것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었다.
늘 통성으로 기도하던 것이다. 다른 사람 목소리 속에 섞여 어물거리던 것이지만. 그것이 교리의 진수이며 핵이라고 하였다. 면면히 2천 년을 넘게 이어오고 있는. 그러기 때문에 의심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고. 뭐가 어떻고 뭐가 어떻고 말이 되는지 모를 소리를 한참 늘어 놓았다. 그는 책자를 덮으며 눈을 감았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을 해 보았다. 죽음에 대하여 내세에 대하여. 며칠을 생각해보고 되물어보고 하였다. 그만 모르고 있는 것인가. 그만 딴 생각을 하고 있는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좌우간 점점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래 성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혼자 사는 고향 후배였다. 딸 셋을 데리고 나와 없이 살면서도 책도 내고 여행도 하며 여유 있게 살고 있었다. 모든 것을 터놓고 지나는 처지이기도 하지만 늘 그에게 전도를 하였다. 독실한 신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 때문에 그런 수식어는 붙일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하였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아니 왜 또 그래요? 이번엔 뭐가 안 되는데요?”
참 답답하고 딱하다고 하였다.
그가 뭘 얘기하는지 다 알고 있었다. 얼마 전 숯가마에서 만났을 때는 하나님 하고 큰소리로 불러보라고 하였다. 미쳤다고 그러지 않겠느냐고 하자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하였다.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였다.
“아무래도 믿어지지가 않아요.”
“제적분이 아니지. 그게 뭐가 어려워요.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돼요.”
“아직 때가 안 된 건가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계시고 도대체 언제 오신다는 거지요? 오시기는 틀림없이 오시는가요?”
“그렇게 깐족깐족 따지기만 하지 말고. 그러니 뭐가 되겠어요.”
“그렇겠지요?”
“그러지 말고 더 매달려 봐요. 더 간절한 마음을 가져봐요.”
그러면 분명 응답이 있을 거라고 하였다.
아닌 것 같았다. 우 선생이나 그녀에게서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닌지 몰랐다. 최 목사에게도 아니고 스스로 찾아야 될 것인지 몰랐다. 여러 경전들에서도 아니고 다른 데서 찾아야 할 것은 아닌가. 그가 답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신은 하나님은 지금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는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누구 말처럼 죽었는가. 아니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인가. 그가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로 올라가… 좌우간 그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다시 오시는 것인가. 우리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고 죽이고 하는 것인가.
그렇게 다 써 있는데 뭘 자꾸 따지느냐는 것이다. 제적분이 아니라고 하였다. 충청도 그의 산골 말이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뜻인가. 그런데 도무지 그것이 믿어지지 않는 것이고 믿지 않으니 부활도 없는 것이고 구원도 없는 것이었다.
좌우간 또 다른 무엇이 있는가.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가 없는가.
삶도 아직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未知生 焉知死). 제자가 죽음에 대하여 묻자 스승이 대답하였다. 현세도 모르는데 내세를 어찌 알겠는가. 안 그러냐고 되묻고 있다.
모른다는 것이다. 성인이 돼 가지고 그것도 모르는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말하는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라고 또 누가 말했던가.
그 죽음 뒤에, 죽은 다음에 말이다, 무엇이 펼쳐질지 잘 모르겠다.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뭐라고 뭐라고 쓰여 있지만 아닌 것 같다. 없는 것 같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캄캄한 칠흑 같은 어둠이 있을 뿐. 그것이 영겁토록 깔려 있을 뿐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말이 없으면 존재도 없는 것이고, 거기 무엇이 있을 수 있는가. 아무것도 없는 공간 허허무무, 나무도 풀도 없는 벌판일 뿐이다. 아니 벌판이고 허공이고 아무것도 없는 어둠일 뿐이다. 캄캄할 뿐이다.
아니 그것도 생각이고 상상이고 그런 아무것도 없이 필름이 뚝 끊긴 상태, 숨이 멎은 순간이 계속 이어지는, 영겁까지,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는 그것을 뭐라고 할까. 그 상태는 펼쳐진 적이 없으므로 이름도 없다. 말도 모른다.
자꾸 부정적인 비극적인 상상만 하여진다. 어두운 그림만 그려진다. 물론 그런 그림만 있는 것은 아니고 잘 아는 대로 낙원이다 극락이다 이상향이다 널널하게 카펫이 깔려진다. 피안이다 열반이다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관념의 세계도 죽음 뒤의 그림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래 뭐가 됐든 좋다. 관념이 됐든 이상이 됐든 얽어보는 것이다. 가상으로 허구로 얽어 세워보는 것이다. 그렇게 설정을 하여보는 것이다. 그렇게 그림을 뒤집어 거꾸로 그려 보고 옳게 그려보는 것이다. 내세를 만들고 천국을 만들고 지옥도 만든다. 「신곡」처럼 말이다. 「실낙원」처럼 말이다. 경전도 그런 것은 아닌가. 말씀도 그런 것은 아닌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하였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말씀, 로고스(logos)를 그렇게 옮기고 있는데 그 말인즉슨 그 안에 생명이 있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하였다.
도통 무슨 말인지 어떤 논리인지 모르겠지만 좌우간 빛과 같은 것이었다. 그림자 같은 것이었다. 어둠 대신 그림자라고 생각해 본다. 얘기해본다.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나은 것 같다. 백번 천번 나은 것 같다.
말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 씨가 되는지 모르지만 그러자 설정된 것이 보이는 것이었다. 연옥과 지옥이 보이고 천국도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 것 같다. 거짓말 같았다.
사후에 무엇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 천국이 있는지 지옥이 있는지 낙원이 있는지 극락이 있는지 모른다. 아무도 가 보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가기만 하고 오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올 수가 없다. 어떻게 올 수가 있는가. 사후 세계를 체험한 얘기를 책으로 낸 것이 있어 더러 읽어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죽다가 살아난 사람들이다. 아주 죽으면 살아날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한 명 살아난 사람--사람이라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이 있긴 하다. 그러나 그는 곧 다시 돌아갔다는 것이고 언젠가 다시 온다는 것이다. 거기로부터. 언젠가.
거기가 어디인가. 하늘인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하늘인가. 전후 좌우 찌푸린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깝치지 말라. 조급할 것이 없다. 이천 년 기다린 것 삼천 년은 못 기다리는가.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이다. 그것이 믿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사는 동안 기대를 갖는 것이다. 희망을 갖는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 그 이상은 모르겠고. 기대를 갖는 것이다. 다시 사는 것을 믿는 것이다. 다시 만나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러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되는 것이다.
부정의 삶이 아니고 긍정의 삶이 되는 것이다. 안이한 사고인지 모른다. 좌우간 한번 바꿔보는 것이다. 일단은 그렇게 한번 해보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해야 될 것 같다. 그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후퇴라고 해도 좋다. 전진을 위해 후퇴도 한다. 작전을 바꿔보는 것이다.
그 뒤는 그가 알 수가 없다. 죽은 다음 뭐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하여는 누구도 알 수가 없다. 이러구 저러구 하는 얘기들이 있지만 다 믿을 수가 없다. 안 맞는다 틀리다는 얘기가 아니라 믿어지지가 않는다.라기보다 확인할 수가 없다. 확인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불손한 얘기인지 모르지만 사실을 사실대로 얘기하는 것뿐이고 이미 몇 번이고 밝힌 것이다. 다시 한 번 더 얘기한다면 사후는 아무도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인데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지 말고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덮어두고 가자는 것이다. 가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있는 것이다. 모른 척하는 것이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이 아니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안다 모른다 그런 말도 할 것 없이 가만히 있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그런 계산도 하지 말고 그냥 있는 것이다.
그동안 고달프게 혹사시켜 온 영육을 좀 쉬게 하자. 그래서 사후에 뭐가 되든 닥치는 대로 맞닥뜨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때까지는 그 시간까지는… 그런 생각도 하지 말자.
그러나 이윽고 시간이 되면 또는 시간을 만들어 그 뒤에 전개되는 세계에 대하여 그려보리라. 그에 앞서 기존의 내세에 대한 얘기들을 새로운 생각으로 되새겨보고 미지 미답의 새로운 사후 세계를 더 섭렵해 본다. 설정도 해 본다. 독자가 아니라 작자가 되는 것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될지 안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그다음 단계의 계획이다.
오랜만에 생각을 바꾼 것이다.
우 선생이 전화를 했다.
“어때요. 별일 없지요?”
“오늘 장날인가.”
“맞아요.”
볼일은 없는데 만나기로 했다. 아니 그보다 큰일이 없었다. 그는 올라가는 것이고 비슷한 시간에 내려오는 버스가 있었다. 상촌장에서 보충을 한다고 고추와 가지 모종을 몇 포기 사들고 있는 우 선생과 늘 가는 집으로 갔다. 부추전에 막걸리를 먼저 시켰다. 잔을 부딪쳤다.
“잘 읽었어요.”
의례적인 얘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아직 고백을 할 생각은 없었다. 좀 더 생각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좌우간 시간을 더 갖자는 것이었다. 그 대신 오늘은 우 선생이 만나자고 한 것이지만 그가 계산을 하였다.
돌아오는 길은 그 기사가 모는 버스였다. 제일 앞자리가 비어 있어 앉았다. 버스는 곧 들판을 달리기 시작했고 그런데 기사는 아까부터 그를 보고 뭐라고 뭐라고 하고 있었다.
“카드를 찍어야지요.”
그런 얘기였다.
“아 그런가요.”
처음으로 하는 대화였다. 기사는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고는 휘파람을 분다. 그는 카드를 대고 앉으며 생각했다.
비행훈련을 하게 내버려 뒀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파일럿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지금 세계 도처의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을지 모르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는 생각을 하다가 또 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버스 기사는 어떨까. 힘겹게 몇 교대를 뛰고 퇴근해서 씻고 코를 골며 꿀잠을 잔다. 새벽까지. 가끔 워드가 고장 나 단골 컴퓨터 가게로 싸 들고 가는데 거기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그 가게 주인이라고 할까 사장의 꺼벙한 모습이 떠오른다. 갈 때마다 프럼펫 연주의 음악을 들으며 발을 구르고 있었다. 컴퓨터 기사는 어떨까. 사장이 아니면 어떤가.
하늘과 땅이다. 땅과 하늘, 그 중간 어디쯤인가, 허공을 반공(半空)을 쳐다보다 대각선으로 기사를 돌아보았다. 계속 휘파람을 불고 있다.
차는 밤꽃이 활짝 핀 산모롱이를 돌아가고 있다. 자극적인 꽃 향기가 눈으로 느껴진다.
눈을 감고 새 계획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