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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카페

한국문인협회 로고 정소영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가을호 2026년 9월 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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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이는 상추에 오리고기를 싸서 볼 가득 넣었다. 선생님이 바삐 밥을 먹으며 말했다.
“빨리 먹어라. 흡연 예방 캠페인이 있으니.”
서연이는 흡연 예방 캠페인이라는 말에 목이 콱 막혔다. 아빠가 생각나서였다.

 

아빠는 어제 몰래 세탁실에서 담배를 피웠다. 관리실에서 또 연락이 왔다. 윗집에서 담배 냄새가 난다고 민원이 들어왔단다. 엄마가 아빠에게 말했다.
“담배를 제발 끊어요. 우리 학교 시설 주무관님이 담배를 못 끊고 늘 학교 뒤쪽에 가서 담배를 피우더니 건강검진에서 폐암 말기라고 알려졌대요.”
“웬 재수 없는 소리. 이 집 밥 안 먹고 말지, 담배는 못 끊어.”
지금도 아빠 말소리가 귀에 생생하다.
서연이는 금연 캠페인을 하는 현관 복도로 나갔다.
이 학교는 초등학교, 중학교 통합학교다.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8명밖에 되지 않는다. 읍에서 이 시골 학교에 통학버스를 타고 다닌다. 서연이는 4학년이다. 지금 금연 캠페인 행사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하는 행사다. 금연 실천 다짐 코너, 금연 실천 서약 코너, 금연 카페 세 코너를 8명 아이들이 모두 역할을 나누어 맡았다. 금연 실천 서약 코너에는 서약 문구가 적힌 배너 현수막이 우뚝 서 있다.
-나는 담배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흡연 권유를 당당히 거절하며 나와 주변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는 책임감 있는 청소년이 되겠습니다.
다음 코너는 금연 카페다.
“여기서 음료를 마시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으로 변신해요. 그렇지만 만약 거짓말로 서약을 하면 엉뚱하게 변신할 수 있어요. 여긴 마술 카페입니다.”
보건선생님이 금연 캠페인을 하기 전에 하신 말씀이다. 그래서 실천 다짐 코너를 맡은 6학년 소은이 언니는 그 말을 계속 되풀이했다.
“거짓말 다짐을 하고 금연 카페에 가면 안 됩니다. 엉뚱하게 변신을 합니다.”
서연이는 금연 카페를 담당했다. 6학년 언니 2명과 함께 했다. 선생님들이 먼저 오셨다. 서연이는 아빠 생각이 자꾸 났다. 옆에서 캠페인 지도를 하고 계시는 보건선생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아빠 오시라 해도 돼요?”
“그럼요, 아빠가 담배 피우시니?”
“네, 오늘도 피웠어요.”
서연이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는 오늘 할머니 댁 논에서 모내기를 한다고 했다. 서연이는 학교에서 아빠가 모내기하는 곳이 멀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아빠, 학교 잠깐만 왔다 가셔요. 꼭요.”
“무슨 일인데 그래?”
“그러니까 꼭 오셔요. 선생님이 오시라고 했어요.”
“참, 바쁜 사람을 오라고 하네. 알았다.”
아빠가 나타났다. 작업복 바지에 흙탕물이 튀긴 검정색 점퍼 차림이다. 챙이 긴 밀짚모자를 쓰고 있다.
“아빠!”
서연이가 달려가 아빠 손을 잡았다. 아빠는 담임선생님을 보고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를 했다. 옆에 있던 보건선생님이 반갑게 맞이하며 말했다.
“오늘 흡연 예방 캠페인을 하는데 서연이가 꼭 아빠가 오셔야 한다고 해서요.”
아빠는 갑자기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다시 돌아서서 도망가고 싶은 얼굴로 서연이를 힐끗 바라보았다. 서연이는 아빠가 다시 가버릴 것 같아 손을 꼭 잡았다. 아빠 손을 잡고 금연 다짐 코너로 갔다.
“아빠, 금연 다짐 문구를 이 종이 팔찌에 쓰세요.”
“뭐야, 나보고 담배를 끊으라고?”
아빠가 서연이만 들으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서연이 담임선생님이 다가왔다.
“서연이 아버님, 다짐 문구를 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쁜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며 아빠에게 사인펜을 내밀었다. 긴 머리를 내려뜨린 보건선생님이 아빠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지켜보았다. 아빠는 떨리는 손으로 또박또박 썼다.
-담배를 피우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서연이 담임선생님이 힘주어 말했다.
“아니, 서연이 아버님, 무슨 말씀이세요? 담배를 절대 피우지 않겠다고 쓰셔야지요.”
“아빠, 다시 쓰세요. 그래야 금연 카페에서 아빠가 좋아하는 카페라 떼를 먹을 수 있어요.”
아빠는 마지못해 다시 종이 팔찌에 다짐 문구를 썼다. 손이 떨리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담배를 절대로 피우지 않겠습니다.
서연이는 아빠 팔에 다짐 팔찌를 채워주었다. 실천 서약 코너로 갔다. 아빠는 빨간 손도장을 다짐 문구가 적힌 캠페인 판에 찍었다. 6학년 미라 언니가 카페 음료 티켓을 주었다. 금연 카페에 있던 6학년 정아 언니가 아빠를 반겼다. 메뉴판을 아빠에게 내밀었다.
“무엇을 드시겠어요?”
“아, 카페라떼. 너희들이 이런 것도 하네.”
서연이가 초록색 앞치마를 두르고 꼬마 바리스타를 했다. 컵에 얼음을 가득 채우고 우유를 부은 다음 에스프레소 커피를 부었다. 옆에서 언니들이 가르쳐 주었다.
“아빠, 카페라떼. 이거 마시면 진짜 담배 안 피우는 사람이 되는 마술을 부려요.”
아빠는 긴장이 풀어졌는지 카페라떼 컵에 꽂은 빨대를 담배 피우듯이 쪽쪽 빨았다.
“우리 서연이가 만들어 줘서 더 맛있다.”
아빠가 서연에 귀에 대고 귓속말을 했다.
“그래도 서연아, 아빠는 담배를 피워야만 할 것 같다.”
서연이는 누가 들을까 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빠, 그러면 엉뚱한 모습으로 변신한대.”
아빠는 갑자기 재미있는 생각이 떠오른 아이처럼 킥킥 웃었다.
“크흐, 아빠가 담배 도깨비로 변신할지도 몰라.”
순간 서연이는 가슴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아빠 옆에 또 다른 아빠가 서 있었다. 그 아빠 머리에는 담배처럼 생긴 뿔이 나 있었다. 담배 도깨비였다. 담배 도깨비는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 현관 로비에 담배 연기가 가득 찼다. 아이들과 몰려든 중학생들이 코를 막고 기침을 했다.
“우와, 담배 연기, 숨이 막혀. 켁켁켁….”
담배 도깨비는 담배를 연신 피우면서 카페라떼를 마시는 아빠를 보고 히죽히죽 웃었다.
“아빠, 아빠가 둘 생겼어요. 아빠 아바타 담배 도깨비가 생겼어요. 어떡해요.”
“아니, 이거 농담으로 말했는데. 진짜 이런 일이 일어났네. 너 누구야? 아이들이 있는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다니.”
아빠는 담배 도깨비한테서 사정없이 담배를 빼앗았다. 담배 도깨비가 다시 담배를 꺼내서 피웠다. 아빠가 또 담배를 빼앗았다. 서연이는 얼른 가서 담배 도깨비한테 ‘절대로 담배를 피우지 않겠습니다’라고 쓴 금연 팔찌를 채웠다. 재빨리 금연 카페에서 금연 카페라떼를 가져다주었다.
“이거 마셔요.”
담배 도깨비는 담배 대신 카페라떼 빨대를 입에 물었다. 서연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담배 도깨비가 카페라떼를 마시는 아빠와 겹쳐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빠!”
서연이가 아빠를 불렀다.
“내가, 거짓말로 서약을 했더니 이런 일이 일어났네.”
아빠는 혼이 나간 얼굴로 서연이와 모여든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서연이는 달려가서 아빠 품에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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