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가을호 2026년 9월 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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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넉넉한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인색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가.
요즘 날씨는 봄이 왔다고 하는데도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것이 아니라 조금은 춥다고 할 만하다. 외출하기가 예전처럼 쉽지는 않아도 웬만해서는 걸어 다니려고 하는데, 보름 전에 빌려왔던 책자의 반납 통지가 카톡으로 날아왔다. ‘내일은 빌려 가신 도서 반납일입니다’라고.
빌려 온 책은 다 읽었으니 반납해야지 하고 집을 나선 길이었다. 늘 다니는 길가에는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 옆에 새싹이 나온 것이나 꽃들이, 아름답게 제 자랑을 하느라고 한껏 색깔을 뽐내고 있다. 책을 빌려 온 도서관까지는 걸어서 15분 내외인데, 이 길을 걸어 다닌 지도 거의 이십 년이 넘었나 보다.
처음에는 그냥 빌려다 보았는데 빌려 온 책을 읽다 보면 얼마 전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쿠, 또 읽었던 걸 빌려왔네요. 그래서 빌려온 책 이름과 저자를 적어 메모하기 시작하면서 읽은 것을 또 빌리는 일은 줄어들었다.
사계절의 변화는 가로수와 인도 사이의 공간에 자라는 꽃나무와 잡초가 말해주는데 그런대로 산책 삼아 다니는 이 길이 심심하지는 않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가에 여자중학교가 있고, 야트막한 언덕길 위에 도서관이 있어서 학교 운동장에서 체육시간이면 운동하는 학생들의 생기발랄한 소리가 들린다.
나는 속으로 기도를 하며 걷는다. 그냥 걸어가는 것보다 무엇에건 기도하면서 가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서다. 학교 운동장에는 마침 체육시간이라 여학생들이 이리저리 뛰면서 달리기도 하고, 멈춰 서서 웃기도 하는데 담 너머에서, “안녕하세요?” 하는 통통 튀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가는 길에는 앞뒤로 아무도 없고 나만 가고 있는데 누구에게 인사하는가고 울타리 너머로 바라보니 바로 나를 보고 인사하는 것이었다.
“그래? 너희들 몇 학년이니?” 하고 물으니 저희들끼리 웃으며 눈길을 돌린다. 나는 좀 어리둥절하다. 그 인사하는 아이들 중에 내가 아는 학생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인사를 하는 것은 무엇일꼬.
나의 기억은 40∼50년 전 예비군 훈련장의 한 토막이 떠오른다. 우리에게 교육하는 예비군 교관이 하는 말이, “전쟁이 한창일 때라도 적을 향해 안녕하십니까! 하고 크게 인사하면 적군도 잠시 전쟁을 멈출 게 아닙니까?” 하며 인사성에 대해 하던 말이 생각나서다. 그 말을 듣고 훈련받던 예비군들이 한바탕 크게 웃었던 기억.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지금 안녕하신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난날, 교직에 있을 때 아침에 출근하면서 교무실에 앉아 있는 교감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면 고개도 들지 않고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신문이나 결재서류를 뒤적이는 모습이 보여서, 어느 기회에 한 말씀 드렸더니 “내가 그랬나요?” 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나보다 나이가 젊은 선생님도 아침이면 서로 인사가 없어서 먼저 인사를 하던 생각도 난다. 윗사람이 인사를 잘 받지 않으시고 안 하면 아랫사람도 인사를 잘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봄바람이 산들거리며 꽃잎을 흔든다. 안녕하시냐고. 하늘에는 구름이 파란 물 위로 흐르면서 인사한다.
하루하루가 살기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서로 따뜻한 마음으로 인사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의 너그러움을 당신에게도 주고 또 주면서 그런 여유가 넘치는 생활이라면 얼마나 멋진 인생일 될 것인가.
그런데 그대와 나는 오늘도 안녕하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