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가을호 2026년 9월 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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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쇄박물관을 나서자 둥글둥글 솔방울 모형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주먹만 한 솜방망이에 줄줄이 꽂혔던 막대사탕처럼 가지 끝에 앙증맞게 매달린 밀랍 가지에 가슴이 설렜다. 새롭고 신기했다.
가지는 나무나 풀의 원줄기에서 뻗어 나온 줄기이며, 근본에서 갈라져 나온 것을 말하기도 한다. 팸플릿의 밀랍 가지라는 말이 생소하여 이 말을 인터넷에서 찾았더니, 고려시대 금속활자 만드는 밀랍주조법을 재현해서 놀랐다. 방망이를 뚝딱, 두드리면 원하는 것이 튀어나오는 요술 방망이처럼 세상은 도무지 요지경 속 같다.
주사위만 한 밀랍 조각에 양각으로 새긴 한자(漢字) 낱자를 막대 손잡이 맞추어 동글 갸름한 밀랍 봉에 돌려가며 끼운 밀랍 가지다. 가지 끝에 매달린 글자를 어미자라 하고, 오밀조밀 꽂힌 100여 개의 어미자는 지압봉 같았다. 이것이 꽃송이, 밤송이, 포도송이처럼 아기자기해서 ‘송이송이 활자 송이’를 흥얼거리며 두 손으로 폭, 감싸고 싶었다. 확립된 개념어를 어쩌겠다는 것 아니라 조형물이 정다워서 이름 붙이며 희희낙락했다.
활자 장인(匠人)이 밀랍 봉을 질자배기나 나무통에 넣고 황토와 모래를 섞어 거푸집을 만들고 반그늘에서 건조시켰다. 거푸집이 형성되면 구멍에 뜨거운 청동물을 붓고, 빨간 쇳물이 식으면 붓으로 흙을 털어냈다. 어미자(母字)가 있으면 당연히 아들자도 있을 터. 모름지기 깔밋하고 섬세한, 도도하고 의젓한 아들자가 쏘는 듯 반짝였다. 금속활자의 탄생은 황홀했다.
어려서 살던 우리 집 옆에 도장포가 있었다. 박씨 아저씨는 얇은 고무판에 예리한 조각도로 이름을 새겼다. 이름자를 남기고 고무를 조심조심 파낸 후 손가락 길이의 갸름한 나무토막에 붙였다. 인주를 묻혀 종이에 찍자, 이름이 불도장처럼 선명하고 꽃처럼 화사했다. 글씨를 바르게 쓴 것 같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이렇게 정확하고 또렷한지 놀라워서 요술 같았다. 도장을 찍으면 좌, 우가 바뀌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은 청주 흥덕사지(사적 제315호)에 세워진 우리나라 유일의 고인쇄 전문박물관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가 있다. 고려 공민왕 21년(1372년)에 승려 백운화상이 깨달음을 주는 부처님 말씀을 모아서 금속활자로 찍었다.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고, 「불조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요절」 보통 「직지」로 부른다. 직지는 1972년 유네스코 <세계 도서의 해>에 출품되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공인됐으며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다. 2001년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지정되고, 독일 구텐베르크의 「42행성서」보다 78년 앞섰다.
인간은 기거하는 동굴 벽이나 주변 바위에 동, 식물의 형상이나 기호를 새겼다. 생존의 흔적이며 존재의 기록이다. 터를 잡아 한곳에 머물며 공동체를 이루면서 글자를 만들고 구하기 쉬운 나무에 새겨서 먹물로 찍어냈다. 목판 활자는 습기에 약하고 벌레가 쏠아 활자가 마모되거나 쉽게 부식됐다. 서책을 만들어도 선명하지 않았으니 궁리 끝에 금속활자를 창안했을 것이다.
‘지(紙) 천 년, 견(絹) 오백 년’이라는 말이 있다. 선조들은 들솟는 상념과 지혜를 휘발하기 전에 적바림했을까. 가려 뽑은 부처님 말씀을 한지에 정리한 직지는 한민족의 정신이며 과학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한지의 질긴 특성과 금속활자의 견고성도 한몫하여 훼손되지 않고 온전했을 것이다.
활자를 만든 사람은 떠났어도 섬세한 기예와 올곧은 성품은 서책 안팎에 스며들어 역사를 증언한다. 우여곡절 끝에 남의 나라 박물관에 있을지언정 오롯한 존재만으로 민족의 자긍심을 대변한다. 당장 아니라 해도 전후 사정 네가 알고, 내가 알고, 세상이 알기에 언젠가 조국으로 돌아올 것이다.
봄이면 나뭇가지에 물이 올라 싹이 돋고 꽃이 피어나듯이 활자 가지에도 상서로운 기운이 날개를 파닥일 것이다. 조상들은 밀랍 끝 낱자마다 인간의 품성과 세상 이치를 꽃봉오리처럼 매달고 영혼이 풍요롭도록 지평을 확보하고, 인류 구성원으로서 깔축없이 드높아지기를 바랐을 것이다.
활자는 본디 학문 탐구와 성찰의 의미로서 민족성을 포괄한다. 모처럼 찾아온 정서와 사유를 갈무리하기에는 두루 쓰기 편한 한글이 포용력이 있어 마침맞다. 한문은 배우기 어렵다며 젊은이들이 외면했어도, 세상사 해독하고 깨닫기에 더없이 고마운 것을 알고 있는 세대들은 여전히 즐겨 쓴다.
세상의 하고많은 일 가운데 활자와 노니는 삶은 기꺼웠다. 장다리 밭에서 팔랑거리는 나비처럼, 밤나무 숲에서 분주한 꿀벌처럼, 여름 아침 조율하는 나팔꽃처럼 활자 속에서 오붓하고 싱그러웠다. 시원찮은 글에 매달려 허둥거리며 의기소침한 날 있었으나 활자는 언제나 지지대 세워 영차영차 나를 부추겼으니 미더운 스승 같았다.
무위도식하기에는 세상은 눈부시고 진취적이니 열정을 쏟으면 무엇인가 이룩할 수 있다. 어느 것과 어울려도 조합이 가능한 한글의 자음, 모음과 좌충우돌하였어도 언제나 우표의 스탬프처럼 존재가 명징했다. 젊은 날부터 지금까지 궁리하고 토설하여서 봄날 주택가 골목길에 꽃잎 쌓이듯 글줄이나 모였다면 오로지 활자의 공(功)이므로 생광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