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가을호 2026년 9월 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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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머물던 자리에 봄햇살이 내려오면 꽁꽁 얼었던 대지는 긴장을 풀고 포실포실한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햇살이 미처 닿지 않는 깊은 골짜기에 설령 겨울의 미련이 잔설로 남아 있더라도 머잖아 앙증맞은 새싹이 돋아날 것이다. 사계 중 유독 겨울을 좋아하건만 봄이 오는 초입에 햇살의 부드럽고 따스한 감촉이 온몸을 휘감을 때 형언할 수 없는 감동으로 전율한다. 대지에 연초록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하면 금세 황무지 위에 생명의 카펫을 펼치는 하늘과 땅의 경이로운 합작품에 매혹당한다.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 봄이 오면 유년 시절 고향 집 마루 끝에 놓여 있던 한 줌 까치무릇꽃이 떠오르고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으로 울컥해진다. 지금처럼 4월 중순이었을까.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오후 서너 시쯤이었을 것이다. 마당에 들어섰을 때 태양이 저만치 물러나 있어서 처마의 그림자가 마당을 반 이상 차지하고 있었다. 그때 학교에서 집에 오면 마루에 책가방을 두고 친구들과 노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날도 마루에 책가방을 두고 뛰쳐나가려다 마루 끝에 놓여 있는 까치무릇꽃에 발목이 붙잡혔다. 꽃은 약간 시들어서 축 늘어져 있었다. 난초처럼 가는 잎과 가느다란 꽃대에는 종 모양의 꽃이 있었다. 꽃은 흰색 바탕에 자줏빛 줄무늬가 있고 안에는 샛노란 꽃술이 있었다. 나는 밖에 나가는 것을 멈추고 꽃을 들어 향기를 맡아보고는 엄마가 꽃을 꺾어다 놓았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밭에서 일하다가 점심식사 하러 오면서 산비탈에 핀 까치무릇꽃을 한 줌 꺾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나는 꽃이 시들어 가는 것을 그저 지나칠 수 없어서 수돗가에 있던 병에 물을 담아서 꽃을 꽂아 두고 놀러 나갔다.
저녁에 밭에서 온 엄마는 평소와 다르게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인희야, 마루에 놓아둔 무릇꽃을 봤어? 봄이 오니 꽃이 예쁘게 피었더라. 너 보여주려고 꺾어 왔단다.”
“응, 학교에서 돌아와서 봤어. 꽃이 시들어서 축 늘어진 것을 보고 병에 꽂았더니 저렇게 다시 생생하게 피었어.”
나는 박카스 병에 꽂혀 있는 꽃을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는 웃으면서 부엌으로 들어갔고 나는 저녁밥을 짓는 소리와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를 맡으면서 마루에 앉아 발을 흔들면서 ‘나비야’ 노래를 불렀다.
엄마는 꽃을 좋아했다. 산비탈 밭에 앉아 콩밭을 매고 고추밭을 매는 농부의 아내로 살면서 고된 일을 하면서도 계절마다 피는 꽃을 대할 때면 환하게 웃었다. 엄마는 여름 장마철에 연일 비가 내려서 밭에 일하러 가지 못할 때면 장독대를 둘러싸며 봉숭아꽃과 과꽃을 모종했다. 엄마는 내가 묻지 않았는데 선홍색 과꽃이 제일 예쁘다고 했다.
부엌에서 뒤꼍으로 난 문을 열면 예닐곱 개의 계단 위에 장독대가 있었다. 엄마는 장독대를 정갈하게 닦고 매만지고 주변에 꽃을 심으면서 나르시시스트를 자처했다. 장을 새로 담글 때는 고운 한복을 입고 온 정성을 들이고 마지막에는 ‘장맛이 꿀맛 같읍소서’라는 문구를 버선 모양으로 오린 창호지에 써서 배가 불룩한 항아리에 붙임으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장독대 뒤로 세 그루의 배나무가 있었고 배나무 사이에 두 그루의 보리수나무가 있었다. 장독대 앞에는 양쪽에 철쭉나무가 있었고 봄마다 분홍색 꽃을 활짝 피웠다. 오빠가 산에서 옮겨 심은 키가 큰 철쭉나무 빼곡한 가지에 꽃이 피면 엄마의 장독대는 분홍색 불꽃놀이가 한창이었다. 순백의 배꽃과 크림색의 보리수꽃이 연분홍 철쭉꽃과 어우러져 꽃동산을 이루었다. 엄마는 부엌에서 일할 때 뒷문을 활짝 열고 콧노래를 불렀다. 엄마가 도마 위에 칼질할 때 규칙적인 박자와 설거지할 때 나는 불협화음은 엄마의 콧노래와 썩 어울렸다.
엄마는 가을을 무척 좋아했다. 가을이 깊어지면 가을걷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논으로 밭으로 달리다시피 일했다. 고추밭에서 새빨간 고추를 딸 때 엄마는 구름 한 점 없는 에메랄드빛 하늘을 보면서 얼마나 예쁘냐! 하며 감탄했다. 땅거미가 내려와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산자락에 핀 구절초꽃을 보면 한 줌 꺾어왔다. 엄마가 꺾어온 구절초꽃을 물병에 꽂는 일도 어김없이 내 차지였다.
유년 시절 엄마가 쪽빛이 좋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 커서 돈을 벌면 비취반지를 선물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내가 성장하여 직장 생활할 때였다. 엄마 회갑 날에 나는 엄마에게 비취반지를 선물하고 싶어서 보석상을 여러 군데 다니면서 알아봤으나 비취반지를 구할 수 없었다. 그때 울며 겨자 먹기로 보석상에서 추천한 보랏빛 보석 반지를 선물한 일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엄마가 별나라로 떠난 지 어언 26년이 지났다. 지금까지 생애 행복하고 기쁜 순간마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힘들고 슬픈 순간마다 부지불식간 내 입에서 튀어나온 외마디는 엄마였다. 엄마가 지금 내 곁에 있다면 내가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엄마와 함께 방방곡곡으로 꽃구경 다닐 수 있을 텐데…. 예쁜 딸과 늠름한 아들을 자랑하면서 한맺힌 공부를 실컷 하게 되어 매우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다.
봄햇살이 손짓하며 유혹하는 오후, 나도 엄마처럼 티 없이 맑고 고운 딸에게 까치무릇꽃 한 줌 꺾어 주고 싶다. 바늘 꽂을 자리 없이 촘촘한 일상을 핑계하지 않고 산비탈에 핀 들꽃 한 떨기 꺾어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는 딸의 손에 살포시 전해주고 싶다. 예쁜 꽃을 딸에게 주고 싶어서 꺾어왔다고 속삭일 때 딸의 환하게 웃는 얼굴에 번지는 해맑은 표정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