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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로고 구추영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가을호 2026년 9월 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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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전염된다.’
옆에 있기만 해도 편안한 사람이 있다. 긍정적인 말투로 공감을 잘 해주는 사람, 표정이 밝은 사람, 남을 배려하고 존중해 주는 사람. 내게도 이런 사람들이 가까이 있다.
그중에서도 한날한시 같은 직장에 발령받은 36년지기 친구들이다. 이 셋 친구들과 의기투합하여 경북 소백산 줄기에 있는 영주로 1박 2일 여행을 갔다. 대구, 여수, 강릉에 이어 네 번째 함께하는 여행이다.
여행사 관광버스에 오른 우리는 맨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K가 건강식품 엑기스 한 봉을 건네준다. B도 질세라 배가 불룩한 간식 봉지를 건넨다. 나만 빈손이다. 서로를 챙겨주는 온기에 출발부터 포근하다.
여행의 맨 처음 도착지는 부석사이다. 특히 부석사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 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 불상을 모시고 있다. 나는 병환 중인 아버지를 위해 기도를 드렸다. 이번 여행도 아버지의 병환으로 무거운 마음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싶어 내가 제안하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무량수전의 빼어난 건축미는 책에서 배웠던 주심포 양식으로 보면 볼수록 배흘림기둥의 곡선미가 감탄스럽다.
잠시 후에 선비마을 한복촌으로 발길을 옮겨 본다. 한복전시관에서 장원급제한 선비가 입는 관복과 어사화를 걸쳐 보았다.
평소에도 유머가 많은 B가 갑자기,
“게 섰거라!”
하고 일갈을 날리는 불호령에 한바탕 웃다가 똑같이 흉내를 내본다. 괴짜 아줌씨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한복촌을 나오니, 아이스크림을 파는 작은 가게가 나타났다. 8월의 중순인데도 햇살은 식을 줄 모르고 얄궂다. 각자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집어 들었다. 평소 입에 대지도 않는 아이스크림이지만 한 입 베어 물며 서로 배시시 웃는다. 입속에서 감도는 부드럽고 달콤한 부라보콘 맛이 어릴 적 향수를 불러온다.
그리고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유명한 소수서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직업상 옛날 교육기관의 모습에 관심과 친근감이 더해졌다. 그 시절 아이들이 공부하고 휴식하며 뛰어노는 것을 상상하며 여기저기를 기웃거려 본다.
한참 돌아다니다 보니, 이게 웬일인가? 돌발상황이 일어났다. B가 신고 온 운동화 밑창이 떨어져 악어 입처럼 쩍 벌어져 있다. 여유 신발도 없는데, 여행길에 무슨 날벼락인가! 우리는 난감하여 어쩔 줄을 모르는데 B는 머리를 묶었던 고무줄을 풀더니 밑창을 감싸쥐고 묶는다. 당황하지 않고 대처하는 기지가 놀라웠다.
숙소에 도착하여 신발 밑창을 붙일 본드를 구하러 마트에 갔더니, 지역경제의 불황으로 판매대 곳곳이 텅텅 비어 휑하고 썰렁하다.
‘야호!’
다행히도 듬성듬성 놓여 있는 물건들 틈에 본드를 찾을 수 있어 마음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보물찾기 놀이에서 보물을 찾았을 때 기분이다.
오랜만의 여행이라 밤새 이야기에 빠진 우리는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이튿날을 맞이하였다. 아침을 든든히 챙겨 먹고 여행을 시작한다. 희방폭포를 거쳐 희방사까지 가는 산행길이다. 산길에서 만난 대벌레, 두꺼비와의 조우는 신비롭기도 하고 행운의 메신저 같기도 했다. 신록이 우거진 숲길에 들어서니, 새소리와 물소리는 우리들 재잘대는 소리와 하모니를 이루니 이런 화음이 또 있을까? 무더운 한여름에 숲속 골바람은 자연이 덤으로 주는 위대한 선물이었다.
아까부터 계속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K를 따라 본격적으로 계곡 물소리 반주에 맞춰 <긴 머리 소녀> 노래를 목청껏 부른다. 노래를 끝내고 부끄러움에 주위를 살피는 괴짜 아줌씨들의 얼굴이 볼그레한 복숭아 같다.
희방사 사찰로 오르는 길에 있는 희방폭포는 소백산 연화봉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28m 절벽을 따라 떨어진다고 한다.
쏴! 쏴! 산속에 오면 자연이 주는 선물로 등줄기에 흐르는 땀조차 자랑스럽다. 우리는 차례차례 두 손바닥으로 쏟아지는 폭포수를 받는 장면을 연출하며 인생 컷을 찍는다. 누구 하나 주저 없이 함께 웃고 같이 행동한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 통(通)한다.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혼자 있는 것보다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함께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가끔은 우리 집에 사람들을 초대하여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며 정겨운 시간을 가진다. 이런 점도 이 친구들과도 잘 맞다. 요리하는 것을 즐기고 맛난 음식도 잘 만들며 사람을 불러들이는 인간미가 넘치는 친구들이다.
여행을 끝내고 이제 좋은 친구들과 헤어질 시간이 다가온다. 중년이 넘은 우리들의 최고 관심사는 늘 그렇듯이 건강 문제로 이어진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지내요.”
지하철 승강장에서 서로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의 아쉬움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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