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가을호 2026년 9월 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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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친회에서 보낸 회보에 문중 선조 한 분이 “자손들에게는 반드시 소학을 읽혀라”라는 말씀을 하셨다는 대목이 있다.
효종 임금을 가르쳤고 「오우가」 「어부사시사」 등의 시를 쓰신 고산 선조께서 왜 소학만을, 하며 의아해했다. 그런데 요즘 세태를 보면서 선조의 그 말씀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정부가 바뀌거나 새해가 되면 중요한 자리들이 비어, 새로운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된다. 우리 사회는 그들의 업무 능력을 평가하는 청문에 앞서 각종 언론, 유튜버들이 대상자의 면모를 속속 밝혀낸다. 떳떳하지 못한 점이 드러나면 부족한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이는 것이 규범처럼 된 우리 사회 윤리였다. 그런데 부정과 비리 등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행위가 드러났음에도,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갖은 이유와 구차한 변명으로 일관하는 사람이 있다. 이 경우,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부정적인 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자신은 물론, 자녀와 가족에게까지 치욕스러운 상처를 남기는 경우를 가끔 본다.
‘소학(小學)’은 청소년이 몸과 마음을 닦고 시야를 가정에서 사회로 넓혀 건전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지식과 품성을 갖출 덕목을 담은 책이다. 가정교육이나 사회교육을 통해 잠재적으로 바른 태도와 가치관이 어릴 때부터 몸에 배도록 하는 것이다.
교육을 백년대계라 하면서도, 지금도 학부모가 수업 중인 교사를 폭행하는 우리 사회는, 당면한 문제마저도 풀 길이 없어 보인다. 이런 사태를 보고 자란 청소년에게 부모, 스승, 이웃에 대한 올바른 태도와 정서가 내면화되기를 바라는 것은 억지 아닌가.
해방을 맞은 우리에게는 오직 하나, 자식들의 출세만이 꿈이었다. 아무리 힘든 노동에 시달려도 대학에 다니는 자식을 떠올리면 그것은 고난이 아니라 어깨가 솟구치는 보람이요, 자랑이었다.
조선 사회의 학문은 성리학이고 그 중심이 사서삼경(四書三經)이었다. 사서 중에서도 ‘대학(大學)’은 성인에게 사회의 크고 작은 조직을 바르게 이끌고, 나아가 정치를 함에 있어서는 나라를 평화롭게, 국민을 행복하게 하라는 가르침을 주는 책이다. 주된 내용이 수신제가(修身齊家) 이후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로 정치를 하기 전에 먼저 자신과 가정부터 돌보라고 말한다.
때만 되면 팔뚝을 걷어 올리고 목에는 혈관이 튀어나오도록 외친다. 치국평천하는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다고. 안타깝지만 그 앞의 수신제가 넉 자는 본 적조차도 없는 것이 아닌가.
나랏일만을 걱정하던 선각자들의 정치가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는 오직 출세에만 급급하고 자기 진영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자들의 정치로 변해 버린 것 같다.
남 없는 재주 몽땅 부려 제 자랑 내세우고, 엄정해야 할 자녀 문제에는 아빠 찬스, 엄마 찬스 필요하면 할머니 찬스까지 불법 합법 가리지 않는다. 로또보다 더 힘들다는 고가의 아파트를 어쩌면 그렇게 신통방통하게 당첨되며, 또 돈줄은 어떻게 그리도 잘 연결하는지! 목적 달성을 위해 명석한 그 두뇌로 있는 재주 없는 수단 다 드러낸다. 그러나 만만하지 않은 것이 세상이고 사회다. 결국은 속옷까지 훌렁 벗은 상처투성이 맨몸을 다 보이고서야 끝이 난다.
어느 정부 때인가. 모 대학 총장이 국무총리에 지명되었다. 언론과 사회단체들이 그 인사의 부적합함을 들고 나섰다. 그는 끝까지 버티다가 더 이상 명예를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물러선 일이 있었다. 이처럼 욕망은 염치도 체면도 무시하며 늘 과녁을 빗나간다. 자기 안에 함정을 파고 기다리는 것 또한 욕망의 본질이다.
학벌 좋고 똑똑한 엘리트들에 의해 세상이 이끌려가는 것 같지만, 평범한 이들의 노력에 의한 공헌이 더 크다. 구태여 미국의 링컨 대통령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 곁에도 겨우 초등학교를 나와 그 어렵던 시기에 도지사를 지낸 분, 힘든 국세청장 임무를 무사히 마친 분들이 있었음을 기억해 둘 가치가 있다.
노자가 말한다. 말을 잘하려거든 침묵부터 배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