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가을호 2026년 9월 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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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레미파솔∼ 솔파미레도∼.”
이십여 년 전, 나이 들어 악기 하나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하모니카를 접하게 되었다. 어릴 적 하모니카 만져본 것이 전부였지만, 하모니카만큼 접하기 쉬운 악기가 없을 듯했다. 불면 바로 소리 나고, 가벼워 가지고 다니기 편리하다. 부담스럽지 않는 가격으로 살 수 있고, 폐활량을 넓히는 데 도움되는 등 좋은 면이 많다. 하모니카 구입 후 한동안 혼자 이런저런 교본을 보면서 연습했으나 어떻게 해야 잘 부는지 몰라 난감했다.
이리저리 수소문해 한 동호회에 가입했다. 회원들은 모임 때면 각자 알고 있는 하모니카 부는 법 등을 소개했다. 연말이 되면 식당을 빌려 그동안 익힌 솜씨를 드러낼 발표회를 가졌다. 말이 발표회지 연주라기보다 그냥 멜로디 따라 소리 내는 정도라 해도 틀리지 않았다. 다들 배우려는 욕구는 가득했으나 하모니카를 체계적으로 지도하고 이끄는 사람이 없다 보니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실력은 ‘도토리 키 재기’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어느 날 모임을 같이 하던 동료가 제안했다.
“모 단체가 하모니카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심사에 합격하면 강사 자격증을 준다고 하는데 함께해 보지 않을래?”
무엇보다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자격증 과정을 신청했다.
그즈음 내가 아는 몇 사람이 비싼 수업료에다 교통비까지 부담하면서 서울, 부산으로 하모니카 고수에게 배우러 다닌다는 얘기가 들렸다. 난 ‘성의가 대단하네’ 생각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이들이 바로 이 과정의 강사였으니….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강사가 직접 앞에서 연주법을 설명하고 시범을 보이면 수강생들은 그대로 따라 소리를 낸다. 내가 지금까지 해 왔던 방식과 다른 경우가 많아 고치기가 어려웠다. 습관의 무서움을 새삼 실감했다. 스트레스가 쌓여 그만두어 버릴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었다. 하모니카는 입으로 소리를 내야 하므로 연습을 많이 한 날엔 입술이 근질근질하고 부르트기도 했다.
이 과정을 거쳐 간 사람들이 문화센터, 복지관, 주민센터 등에 강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모니카 자격증은 민간 자격증이었지만, 강사로 일하려는 사람에겐 사실상 필수품으로 여겨졌다.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나도 강사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동기생 대부분은 각자 자리를 찾아 강사로 취업했다. 난 하모니카 불면서 즐기면 되지, 강사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퇴직이 가까워져 오자 오랜 기간 하모니카와 함께해 왔는데, 지금까지 하던 것과 전혀 다른 새로운 일을 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던 차 한 복지관에서 강사로 일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하모니카는 일반 악기와는 달리 숨을 내쉴 때뿐만 아니라 들이마실 때도 소리가 난다. 날숨과 들숨, 어느 한쪽만 가지고는 제대로 연주할 수 없다. 숨을 강하게 불거나 빨아 당기면 음이 거칠어지고, 약하게 하면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다. 때론 여리게, 때론 세게 불면서 이 둘이 조화를 이룰 때 원하는 음이 나온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살아가는 동안 성공과 실패, 즐거움과 슬픔, 희망과 좌절을 무수히 겪는다. 누구나 실패, 슬픔, 좌절보다 성공, 즐거움, 희망을 더 원할 것이다. 성공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와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욕심이 지나치면 판단이나 분별을 흐리게 해 오히려 성공을 멀리 밀쳐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하모니카를 더 잘 불어보겠다는 욕념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호흡에 힘이 들어가게 된다. 이는 소리의 부조화로 이어져 연주를 망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생은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라고 했다. 나의 삶도 무수한 선택과 함께 여기까지 왔고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다. 학교, 직장, 결혼, 집 장만 등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뿐만 아니라 기억 속에서 멀어진 수많은 작은 선택과 함께 살아왔다. 그 선택에는 잘한 일, 못한 일,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일 등이 혼재해 있으며 문득문득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면서 지금도 잘했다고 여겨지는 것 중 하나가 하모니카를 가까이한 점이다. 한때는 모임 같은 데서 한두 곡 불어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핑계를 대면서 꽁무니를 빼기도 했다. 그땐 용기 부족한, 바보 같은 나 자신이 미웠고 스스로에게 화도 났다. 이를 탈피하고자 하모니카 합주단에 들어갔으며, 유튜브 같은 매체를 찾아보면서 실력을 쌓아 갔다.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자 모임이나 회식 때, 부탁하지 않은데 한 곡 연주하겠노라고 자발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요즘 동기회, 전시회, 시 낭송 행사 등에서 식전 행사 격으로 한두 곡 연주해 달라고 부탁받는 경우가 더러 있다. 여전히 남 앞에 설 때의 부담감을 떨쳐버릴 수 없지만, 이젠 그 긴장감을 어느 정도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다. 어릴 적 소꿉친구처럼, 언제라도 편하게 함께할 수 있는 하모니카 선택이 열한 번째쯤 잘한 선택이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