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가을호 2026년 9월 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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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을 시작으로 재량휴업일과 연계하여 며칠간의 짧은 방학이 주어졌다. 이 기간을 백분 활용해서 손녀를 돌봐줄 계획을 세웠다. 뜻밖의 휴가를 보내게 된 딸아이는 환호성을 질렀다. 약 한 시간 반 이상 걸리는 지역에 떨어져 사는 이유로 딸아이의 육아를 돕지 못하는 미안함이 늘 있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주말에는 사위가 적극적이고 성실하게 도와주고 있기는 해도 몸이 아파 병원에 가는 일이나 그 밖에 잠깐씩 다른 사람의 손에 아이를 맡겨야 하는 일은 언제나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 딸아이에게 단 며칠이라도 시간을 주고 싶고 아직은 너무 어려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손녀와 하루 내내 눈빛을 주고받으며 아주 긴밀한 시간을 가져봄으로써 촘촘하고 끈끈한 관계를 만들어 보고자 하는, 다분히 의도가 담긴 일정이기도 했다.
딸아이를 키워본 것이 수십 년 전인데 혼자서 생후 4개월 된 아이를 꼬박 4박 5일 동안 잘 돌볼 수 있을지 긴장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더구나 나는 10여 년 전 목디스크와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아서 일상생활에서도 몸놀림이 다소 불편한 편이었다. ‘백일을 지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기를 안거나 업는 동작이 수월하지 않을 텐데 어쩌려고 그러느냐’고 극구 말리는 남편의 걱정은 최근 매일 식탁에서 반복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손녀를 위한 예쁜 꽃무늬 낮잠 이불과 간단하게 업고 다닐 수 있는 가벼운 포대기를 인터넷에 주문했다. 햇빛이 좋았던 주말에 손으로 조물조물 빨아 널고 그걸 덮고 낮잠을 자는 손녀 모습을 상상하고는 혼자 즐거워했다. 포대기가 배송되어 온 날은 베개를 등에 업고 끈을 졸라맨 채 거실에 있는 전신 거울에 내 모습을 비춰보기도 했다. 자세를 만들기 위한 연습이라 생각하고 저녁을 준비하는 내내 포대기를 두르고 주방을 왔다 갔다 했다. 베란다 건조대에 포대기를 빨아서 걸어놓은 뒤 손녀를 업고 다닐 상상을 하며 그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벌써부터 신바람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들뜬 기분이 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기도 하다. 삶의 또 다른 장이 손녀로 인해 새롭게 열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곧 결혼 37주년을 맞이하는 나와 남편이 다소 지루하고 밋밋한 생의 한 주기를 지나는 중에 손녀라는 샛별 하나가 반짝하고 파고들어 와 불을 밝혔다. 매일 그 불빛이 커졌나 작아졌나, 오늘은 어디를 향해 무슨 색과 빛을 발하고 있는지를 살피느라 갑자기 몸과 마음이 분주해졌다. 남편과 나는 매일 저녁 6시 무렵 딸이 올리는 밴드에 담긴 손녀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서 서로 다른 각자의 해석을 내놓기에 바빴다. 대화 없이 건조하기만 했던 저녁 식탁 자리가 수다 아닌 수다로 풍성하게 채워지는 요즈음이다.
돌이켜보면 살아온 지난날이 그다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무덤 속에서처럼 어둡고 막막하기만 날도, 단 몇 초의 달콤한 행복감에 젖어 지낸 날도 있었다. 하지만 비탈진 언덕에서 혼자서 비바람을 맞는 듯한 신산했던 날들이 훨씬 더 많았다. 그 시절들을 잘 버티며 견뎌낼 방법을 명쾌하게 가르쳐 준 누군가가 있었을 리 없지만 매 순간 인내하며 자신의 존재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런데도 씨실과 날실로 기를 쓰며 엮어 온 인생이라는 거대한 테피스트리 안에는 완성하지 못한 형상들과 여기저기 허술하게 메워진 공간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기억을 떠올리기만 해도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일도 있고,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분해서 분노가 치미는 크고 작은 일들이 용해되지 못한 응어리로 남아 있기도 하다. 그때 조금만 판단을 다르게 했었더라면, 결정을 유보하고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고민을 했었더라면 오류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후회도 하면서 수많은 날들이 지나갔다.
하지만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이쪽으로 가는 것이 저 길로 가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고, 아니면 더 고달프고 험난하다는 것을 미리 가보지 않고서야…. 존재하는 동안 완벽하게 해결되거나 완성되는 삶이란 결코 없다.
요즈음 나의 고민은 가난이다. 가난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을 정도로 나는 늘 풍요롭게 살았다. 경제적인 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친구나 지인들에게 언제든 밥을 사줄 수 있을 만큼의 마음의 여유는 갖고 살았고 생활고로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다음 달 나의 생활비를 선뜻 내주고도 굶지 않았다. 1년 만기 적금을 받아 드는 흐뭇함을 맛보거나 알뜰살뜰 절약해서 차곡차곡 통장에 저축한 돈으로 번듯한 상가 하나를 계약하는 기쁨 같은 것을 누려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돈을 써야 한다고 판단되는 곳에는 과감히 썼고 없으면 일단 꾸어서라도 쓰고 열심히 갚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몹시 가난하다.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오직 손녀 때문이다. 손녀에게 해주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이 생겼다. 길어진 노년을 대비한 노후 자금은 한정되어 있는데 젊었을 때처럼 쓰며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현재 내 옷장에는 변변한 명품 가방도 백화점에서 산 옷 한 벌도 걸려 있지 않다. 자랑은 아니지만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다. 근검과 절약이 죽을 때까지 미덕이라는 것은 내 생활 철학이고 지금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람이 사는 데는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뿐더러 더구나 그것이 외모를 꾸미거나 몸에 지니는 것일 때는 더욱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오픈런이나 지위재 따위를 경멸하며 자발적 가난을 칭송하던 내가 돈이 없다고 투덜거리고 있다니….
이 모든 혼돈의 원인에 손녀가 있다. 고집스럽게 일관해 온 내 삶의 철학이 느닷없는 변수를 만나 형편없이 무너지고 있다. 이렇게 대책 없이 깨지고야 마는 무력함조차도 기쁘게 만드는 존재가 세상에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내게 아무것도 요구한 적이 없는 손녀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결국 살아가는 일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끊임없는 정신적 진화의 과정이 아닐까.
기나긴 여정의 한 구간을 손녀와 같이하게 된 것이 무척 설레고 기쁘다. 나의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인 그녀가 내 삶에 나타나 주었고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사계절 여행을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 삶이 충분하다고 느끼는 이유이다.
아직 손녀는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 이틀 남았다. 로또 복권이 당첨되기 이틀 전처럼 나는 천천히 오래 걸려서 느릿느릿 내일모레 그 시간에 도착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