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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이우는 즈음에

한국문인협회 로고 정택영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가을호 2026년 9월 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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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지? 죽기 전에 조카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전화한 겨.” 
아침 출근길에 항암 치료 중인 막내고모가 나를 불러 세웠다. 소설(小雪) 추위에 손돌바람이 분다. 목도리를 여미고 휴대전화를 귀에 붙이고 걸음을 옮긴다. 고모의 목소리는 쓸쓸한 늦가을에 떨어진 낙엽처럼 버석거렸다. 자식들에게 신세 지기 싫다고, 겨우 두 다리만 뻗을 정도로 작은 모퉁이 집에서 홀로 버티며, 힘겹게 약으로 연명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고모는 배 아파 낳은 자식들보다도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남달리 애틋하다. 어머니와 동갑인 고모는 내가 귀빠진 날 산파 역할을 해 주셨다는데, 그때 스물셋 꽃다운 처녀였다. 신생아 머리가 울퉁불퉁한 게 못생겼었는데 고모가 조금씩 매만져 동그랗게 빚었다는 이야기를 예전에 들려주셨다.
노가, 김가, 박가, 장가에게 시집간 네 분 고모가 낳은 자식들은 무려 스무 명이 넘는다. 덕분에 내가 꼬마였을 때, 할머니를 따라 시골 고모 댁을 다니면서 고종사촌 형제들과 놀며 서정적인 추억을 쌓았다. 방앗간집 장남과 결혼한 큰고모는 팔 남매를 두셨다. 어느 설날 아침, 아버지를 따라 큰고모 댁에 세배하러 갔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팔 남매가 결혼해서 낳은 자식들이 모두 모인 방앗간집에는 사십여 명이 북적거렸다. 아버지는 큰고모네 온 가족을 마당으로 불러내어 대형 카메라로 단체사진을 찍어 주셨다.
시골로 출가한 세 분 고모와는 달리, 체육교사와 결혼한 예쁜 막내고모는 고향인 청주를 벗어나지 않고, 우암산 아래 작은 호수 명암지 근처에 살았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봄소풍 간 곳이 마침 고모네 근처였다. 들꽃이 만발한 산모롱이 오솔길을 따라 집으로 오는 길에 친구와 들렀더니, 고모는 두 팔 벌려 반겨주고는 금세 툇마루에 밥상을 차렸다. 그러고는 주머니를 뒤져 용돈을 내 손에 꼭 쥐여 주셨다.
송아지만큼 덩치가 큰 개를 앞세우고 산으로 운동하러 다니던 고모부는 과묵한 편이었다. 그러나 술을 마시면 포악스러워지는 모양이다. 의처증까지 심한 남편의 손찌검에 얼굴이 시퍼렇게 멍든 채, 친정으로 도망쳐 나온 고모가 이삼일씩 머물다 돌아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막내사위를 책망하면서도, 딸을 달래고 돌려세워 보내고는 돌아앉아 눈물을 훔치셨다.
고모는 내리 아들 셋을 낳고 막내로 딸을 두었다. 그들이 모두 성장한 뒤 고모가 환갑이 가까울 무렵, 막내고모는 둥지를 떠나 홀연히 서울로 발길을 옮겼다. 술 마셔대고 구박하는 남편을 벗어나 자유를 찾고자 했다. 우리 신혼집에 머물며 근처 여성회관에서 교육을 받고 전문간병인이 되었다. 그 뒤로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며 아홉 해를 보냈다. 힘들게 돈을 벌어 자식들이 자립하는 데 보태는 듯했다.
남편이 늙어 종이호랑이가 되었을 즈음, 거동이 불편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모질지 못한 고모는 고향에 내려가서 중풍과 간암으로 힘겹게 견디던 고모부가 돌아가시기까지 십오 년을 돌보았다. 사랑한다는 말은커녕, 미안하고 고마웠다는 말 한마디 없이 떠날 때까지도 변하지 않았던 남편이다.
이제야 겨우 삶의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지내려던 고모에게 85세가 된 작년, 불쑥 몹쓸 병이 찾아들었다. 누구보다 암 환자가 겪는 고통을 잘 알기에 절대로 수술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닥쳐온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오히려 씩씩하고 밝은 표정으로 문병객을 맞았다. 가까이 사는 아들들이 들러보기도 한다지만, 멀리 가평에서 단숨에 달려와 어머니를 살뜰히 챙기는 착한 딸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고모는 힘겹게 통화를 이어가며 이야기보따리를 마저 풀어헤친다. 
“스르르 눈이 감겨. 마취제인지 마약인지 먹기만 하면 잠이 와. 집에 초보 요양보호사가 오긴 하는데 영 어설프더라고. 엊그제는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조금 더 심해지면 요양원으로 모셔야 할 겁니다’라고 딸에게 하는 말이 귀에 다 들리는 겨. 거기 가면 죽어야 나오는 겨. 자다가 깨어 보니 잠든 나를 침대에 들어 올린 자세가 엉성한데 아무 말 안 했어. 내가 그런 일에 전문가라고 말하려다 그만뒀지.”
초겨울 아침, 떨어진 기온만큼이나 마음도 무겁게 내려앉는다. 재깍재깍 운명의 시곗바늘이 돌아갈수록 이별을 예고하는 막내고모의 증세가 심해지고 있다. 생명의 불꽃이 시나브로 꺼져 가는데, 고모는 한평생을 어떻게 느끼셨을까. 들꽃처럼 피었다 지는 인생이지만, 자식이 있어서 그래도 한때는 행복한 시절이 있었노라고 고백할까. 아니면 고생 고생하며 지나온 시간의 골짜기에 슬픔을 파묻었다고 말할까. 거친 세상의 모퉁이를 억척같이 지켜냈던 들장미 같던 나의 막내고모.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모든 책무를 끝내고 이제 영원한 휴식의 품인 하늘로 힘겹게 오르려 하신다.
고모는 투병 중에 지나온 세월을 회상하고 삶을 정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황혼에 더는 죄짓지 않고 마음 편하게 떠나고 싶다며,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작별인사를 하려나 보다. 고마운 사람에게 감사인사를, 얽히고설킨 관계는 풀려는 듯이 보였다. 삼십 년 전 우리 신혼집에서 한동안 지냈던 날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질부(姪婦)가 그때 나한테 잘해 준 걸 잊지 못해…. 참 고마웠다고 전해 줘.”
걷기도 힘든 몸이라, 딸이 부축해서 나가던 동네 교회에 더는 다니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나는 고모가 마음 편하게 지내기를 바라며 한마디 거들었다.
“고모, 모든 시련과 고통을 하느님은 알고 계십니다. 고된 삶의 여정에서 흘린 눈물과 피땀을 잊지 않고 꼭 안아주실 겁니다. 돌아보면 길고도 짧은 세월, 허락해주신 시간에 열심히 살았잖아요. 살아도, 죽어도 우리 생명은 하늘에 달렸으니 모든 걸 맡기고, 두 손 모아 기도해요. 저도 고모를 위해 기도할게요.”
온새미로 나를 사랑하는 여인이 울음을 삼키며 병석에 누워 계신다. 꽃은 피고 지고, 해는 동쪽에 떠서 서쪽으로 진다. 밤톨이 익어 땅으로 떨어지듯, 태어나고 명멸하는 자연의 신비 속에 한 여인이 한 떨기 들꽃으로 이울고 있다. 내게도 또한, 그런 날이 어김없이 찾아오리라. 내 발걸음이 바빠졌다. 머나먼 길 떠나보내기 전, 밀려오는 아쉬움과 슬픔을 끌어안고 당장 고모에게 달려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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