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가을호 2026년 9월 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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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님! 승진 축하드립니다.”
듬직한 정 팀장이 손에 핏줄이 생기도록 세게 악수를 했다. 정 팀장은 이번에 과장에서 팀장으로 승진했고, 난 팀장에서 부장으로 승진했다.
그때였다. 김 양이 차를 갖고 들어왔다. 그녀가 찻잔을 놓으면서 말했다.
“부장님! 이번 봉사활동을 어디로 가죠?”
“그래, 이번 달에는 봉사활동 가는 달이지. 그래 갈 만한 곳을 정 팀장이 물색해 보지?”
“네, 부장님. 이번에는 양로원보다 어디 다른 곳으로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김 양이 나가면서 오후 1시에는 배론 성지에 갈 차편이 본관 앞에서 대기한다고 했다. 배론 성지는 회사와 자매결연으로 이번에 답방하게 되어 있었다.
3월 중순이 지난다. 겨우내 쌓인 눈이 녹아 새싹이 되는 계절. 매서운 바람이 부드러운 봄바람으로 변하는 계절. 이맘때가 사계절 중에서 싱그럽고 좋다. 눈이 녹아 봄으로 된다. 얼마나 시적이며 감동적인가. 추운 겨울에서 계절의 변화를 갈망하던 때, 그 시점이 3월 중순이 아닌가. 4월이 되면 메마른 바람이 어지럽게 불 것이다. 4월 바람은 방향의 결도 없다. 돌개바람처럼 그렇게 무질서하고 카오스적이다. 그래서 4월은 더 잔인한 계절인지 모른다.
아침나절에 왠지 아득한 고독을 느꼈다. 허전하고 시린 가슴은 아스라이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했다. 그 고독은 내가 3학년 때, 열나고 머리가 아플 때 먹던 금계랍보다 더 쓴맛으로 다가왔다. 초등학교 3학년 3월이었다.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밭둑을 헤집고 때 이르게 노랑나비 한 마리가 장독대 위에 팔랑거리던 봄날이었다. 봄 햇살을 받으며 마당에서 아버지는 새끼를 꼰다. 메마른 손에 간혹 퉤! 하고 내뱉는 침에 봄빛이 불꽃처럼 튀다가 힉스 입자처럼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맘때면 또 동네에 모습을 보일 때가 되었다. 아침나절에 엄마가 쌀을 씻으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다.
‘너무 추워서 할망구 혼자서 얼어 죽지나 않았나’ 하면서 부엌으로 향하던 모습에 예감할 수 있었다. 반갑지도 않은 손님이면서 겨울 한복판에서 용케도 이겨내고 다시 나타나면 마을 아낙들은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민숭한 눈썹에 굴곡진 얼굴. 나는 달걀귀신을 본 적은 없지만, 왠지 문둥이는 달걀귀신과도 비슷한 느낌이다. 마을에서 십여 분 지나면 부구네 밭이 있는 점치골이 나오고 점치골서 한참 더 들어가면 싸리골이다. 싸리골 자락에 쓰러져 가는 닭장집 하나가 허름하게 있다. 그곳 외딴곳에서 문둥할매가 홀로 산다. 학처럼 고고하게 외롭게 홀로 산다. 물론 친구를 사귀고 싶지만 다가오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친구 하자고 비굴하게 굴어 본 적도 없다.
문둥할매의 나이를 아무도 몰랐다. 몇 해를 살았는지 언제부터 나타났는지 잘 몰랐다. 다만 난 태어나면서부터 아니, 철들기 시작하고 기억이 있는 나이부터 늘 보아 왔다. 동구 밖에서 요란하게 아이들이 욕하며 왁자지껄하면 영락없이 문둥할매가 나타난다. 조그만 동네에 국회의원이나 서커스 배우들보다 더 소란스럽게 나타난다. 문둥할매의 민숭하게 없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 눈썹 하나라도 마을 길에 떨어지면 온 마을이 문둥이로 변할까 봐 겁을 내어 아이들이 소리친다. 하다못해 더러운 쇠똥에 옷의 깃털 하나 떨어져도 무섭고 더러운 것이 떨어진 것처럼 호들갑이다.
동네 아이들의 놀림에 처음에는 문둥할매도 슬픈 눈으로 허허하고 웃어재낀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간혹 날아드는 작은 돌멩이며 나뭇가지들이 정강이와 어깨에 맞으면 화들짝하고 아파한다. 그 아픔이 심해지면 추위보다 무섭고 배고픔보다 서러운 것을 뒤로하고 종종걸음으로 마을을 빠져나간다. 그날 나는 집 옆 대추나무에 걸려 펄럭이는 방패연을 향해 돌팔매질하고 있었다. 겁이 많고 온순한 성격의 나는 아이들과 함께 문둥할매에게 돌을 던진 기억이 없다.
불쌍한 문둥할매는 아지랑이 속삭이는 만개한 봄날에 진달래꽃 오방지게 핀 곳에서 숨어 있다가 꽃 따러 오는 아이 붙잡아서 간을 빼먹는단다. 그러면 민숭한 눈썹은 하현달처럼 가느다란 눈썹으로 새로 나고 양귀비의 속눈썹보다 예쁜 속눈썹이 환한 달밤에 난초처럼 송송 나온다. 가슴 서늘하게 하는 하얀 피부는 가을 햇살 머금은 홍시와 같이 반투명 옥처럼 예뻐진단다. 숨 가쁘게 동구 밖에서 쫓겨나는 문둥할매 걸음걸이가 아이들 간을 빼먹게 생긴 것 같기도 했다. 아이들은 곧 산천을 불태워 버릴 듯이 필 참꽃(진달래꽃)을 따먹기 위해서라도 문둥할매한테 돌을 던졌다. 참꽃 귀신이 있으면 겁나서 먹고 싶은 참꽃을 못 따먹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봄바람이 불어왔다. 보리밭의 보리가 얄랑이며 봄바람을 보여줬다. 문둥할매의 기억은 아마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그날은 봄방학을 하던 날이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가려고 산 지름길로 들어섰다. 산길 중간쯤에는 쌍묘가 있었다. 묘가 있는 그곳은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그 쌍묘를 지나는 찰나였다. 봉분 사이에서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적으로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피부에 닭살이 돋았다. 여우가 할망구로 변하기 위해 주문을 외우고 있는 게 아닐까? 갑자기 봄날은 현기증을 몰고 나를 에워쌌다.
“아이고 그 추운 동지섣달의 추위도 안 무섭다. 하나도 안 춥다. 얼어 죽기밖에 더하겠나. 호랑이도 늑대도 겁 안 난다. 썩을 놈들! 벌써 십 년이 넘었다. 어째 그리도 무정하게 집에 한 번도 안 와 보나. 어마이가 굶어 죽었는지 얼어 죽었는지도 궁금치도 않나. 나는 태어날 때 문둥이가 아니었다. 너거 외할미가 문둥이다. 나는 문둥이가 아니다.”
가만 여우도 아니고 문둥할매다. 문둥할매는 혼잣말로 주문을 외듯 중얼거렸다. 어쩌면 귀신과도 얘기했는지 모른다. 어린 나이에 난 잡히면 간을 빼먹히고 꼼짝없이 죽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 하필이면 무덤이 있는 곳에서 이렇게 마주칠 줄이야. 그래, 저 산꼭대기만 가면 애들이 있을 거야. 그곳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 있었기에 봄부터 가을까지 아이들은 나무를 타면서 놀았다. 나는 책보를 다시 단단히 홀쳐매고 무작정 달렸다. 급하게 달리다 그만 고무신이 벗겨져 버렸다. 어느새 고무신과의 거리는 다섯 발자국은 족히 되었다. 봉분 사이에 문둥할매가 기다렸다는 듯 노려봤다. 난 꼼짝하지도 못하고 사지가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문둥할매는 허리를 굽혀 고무신을 줍기라도 할 것인 양 멈칫했다. 하지만 무슨 생각에선지 천천히 일어나서 길도 없는 아카시아가 빽빽하게 들어선 산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며칠 뒤에 성하를 만났다. 난 혼자서 문둥할매한테 잡아먹힐 뻔한 무용담을 들려줬다. 그러자 성하도 그날 문둥할매를 봤다고 했다. 무슨 영문인지 아카시아숲에서 문둥할매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얼굴에 피를 흘리면서 상처까지 생겼더라. 개도 잘 다니지도 못하는 아카시아숲을 헤매는 것을 보니 아마 아이들 간을 빼먹으려고 아카시아숲에 똥 누는 애들 기다리고 있었겠지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 서정주 시인의 문둥이란 시를 읽으면 늘 문둥할매가 생각났다. 딱히 다른 문둥이도 잘 몰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서정주, 「문둥이」
이 시를 읊으면서 늘 문둥할매 그 눈빛이 생각난다. 쌍묘에서 만난 날, 아카시아 숲속으로 사라지던 그 눈빛!
십여 년이 지난 어느 봄날에 냉이를 캐러 엄마와 텃밭에 갔었다. 어쩌다 문둥할매가 요즘은 나타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얼어 죽었는지 굶어 죽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 그때 쌍묘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막내아들 같은 내가 놀랄까 봐 황급하게 아카시아숲으로 들어가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다가왔다. 문득 문둥할매는 왜 그 힘든 핍박을 받으면서도 마을로 내려왔는지 궁금했다. 먹을 게 없어서일까? 그럴 수도 있다. 엄마는 먼 산을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애들이 그렇게 못살게 굴고 돌팔매질을 당하는데 왜 마을에 자꾸 내려오냐고 물으니, 문둥할매가 그러더라. 아들 둘이 있었는데 문둥이 될까 봐 시집에서 부산으로 데리고 이사 갔다더라. 그 아이들이 그리워 마을에 내려오면 돌멩이에 맞아도 아들 보는 재미로 발이 가벼웠다 그러더라. 그래 얼어 죽으나 굶어 죽으나 죽는 거는 한 번이제. 하지만 자식 그립고 사랑이 고픈 귀신은 불쌍한 사람이다. 천하에 불쌍한 사람인 기라.”
모처럼 엄마 곁에서 잠을 청한다. 어디선가 고양이 한 마리가 운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밤공기를 연주했다. 공기가 파르르 떨었다. 문둥할매를 쌍묘에서 봤을 때처럼! 야옹∼, 가야금 줄처럼 팽팽한 듯 때로는 애절하게 공기 속 현을 튕기는 울음이다. 문둥할매가 동구 밖에 나타났는지 문풍지가 파르르 떨렸다. 파르르 떨리는 문풍지 소리는 유년의 기억을 흔들어 깨운다.
‘문둥할매는 사계절 절망에 찬 고독과 독백으로 살았으리라.’
나의 삶도 문둥할매처럼 그런 봄날이 있을까? 봄밤의 꿈처럼 인생은 짧다. 하지만 절망스러운 고독의 나날은 얼마나 지루하고 길까. 사랑할 시간마저 길지도 않은 인생 아닌가. 3월 중순이면 늘 새로운 봄을 맞는다. 민들레 홀씨처럼 하늘을 날고픈 꿈을 꾼다.
문둥할매가 문둥이가 되기 전에 찔레꽃보다 향기롭고 자태 또한 고왔다. 매화가 온 마을에 가득 피어나고 진달래가 산천을 붉게 물들여도 젊은 날의 그녀는 그보다 더 아름답고 싱그러웠다. 총각들은 그녀가 지나면 몸살 나도록 앓아누웠다. 고고한 자태는 청초한 난이었다.
남편과의 로맨스를 시작하던 나이는 스무 살이 채 안 되었다. 볼에 통통한 젖살이 아직 허물도 벗지 않은 규수라고 대변해 주고 있었다. 그녀가 박꽃처럼 하얀 피부를 자랑할 새색시였을 때였다. 봄기운이 미미할 때 첫아이를 낳았다. 사내아이였다. 시집에서는 모두가 좋아했다. 아니, 마을 전체가 들떠 있었다. 시집 동네는 삼태기처럼 소백산 자락이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듯이 이어져 있었고 그 가운데 샘이 있어 이른바 샘마을로 불렸다. 샘마을은 대부분이 의성 김씨의 집성촌이었다. 그러니 일가 대소가로 이뤄진 마을의 경사였다.
하지만 유씨는 어쩐지 봄이 오는 저 강 아래서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아주 오래된 시절, 유씨가 갓난아기 때부터 늘 그리워하던 어머니를 꿈에 보았다. 얼마나 그리워하던 얼굴이던가. 제발 꿈이어도 오래도록 어머니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어머니의 얼굴은 물기에 젖은 소금 기둥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과 두려움에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심정이 억장을 짓눌렀다. 잠에서 깨어나자 이마엔 끈적끈적한 땀이 유씨의 기운을 함께 뱉어낸 듯이 서늘하였다.
철이 들 무렵에 어머니는 갑자기 사라지셨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유씨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밤마다 잠 못 이뤄야 하는 아버지의 긴 한숨 소리가 지금도 또렷이 들리는 듯하다. 천형일까. 왜 그토록 모질게 대물림되어야 하나. 어느 봄날에 학교를 갔다 와 잠깐 낮잠에 들었을 때 아버지와 할머니의 두런거리는 이야기를 잠결에 들었다.
“에미는 이제 얼굴에까지 꽃이 피어 진물이 흐른단다. 세상에 그 착한 것이 무슨 죄가 있다고 삼신할매가 그런 병을 주셨을꼬.”
“ 다 팔자여유, 팔자.”
아버지가 긴 한숨을 토해냈다.
어쩌면 어머니의 소식을 아버지께 물어보지도 않았다. 왠지 불길하고 묻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다. 유씨는 또다시 속이 거북했다. 몸 안에서 장기를 조금씩 파먹는 벌레가 스멀거리는 듯 기분 나쁜 느낌이었다. 며칠 사이에 얼굴도 하얗게 변했다. 손마디와 팔의 관절, 다리와 무릎까지 녹아내리는 듯 아프고 몸속 남은 힘이 끝없는 나락으로 빠져나가는 듯했다.
“아니, 임자. 안색이 영 안 좋네. 어여 방에 들어가 쉬어. 이깟 부엌일이 뭐 대수라고.”
그때까지 유씨의 봄은 찬란했다. 산천에 기운차게 넘실거리는 봄기운은 별반 다르게 느낄 수 없었다. 달덩이 같은 두 아들과 꽃보다 예쁜 막내딸의 재롱에 시집살이 고된 줄 몰랐다. 진달래가 산천에 숨이 막힐 듯 붉게 타오르던 봄날 유씨는 읍내 병원을 찾았다. 먹고살기도 빠듯한 형편에 애들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병원을 찾았다. 중년의 의사는 이마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이렇게 될 때까지 정말 모르고 있었습니까?”
그는 참으로 안타깝다는 듯이 반문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무엇을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불길한 예감에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예, 지가 뭔 큰 병이라도 걸렸습니까?”
그는 참담한 눈빛과 아울러 그녀를 동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길게만 느껴졌다. 소백산 비로봉의 쌓인 겨울눈이 다 녹아 버린 시간 정도로 느껴졌다.
“아주머니, 아주머니께서는 한센병에 걸렸습니다.”
“한센요! 한센은 무슨 병인교.”
“예, 한센병이라는 것은….”
“얘기해 보소. 선생님!”
그녀는 빨리 얘기하라고 독촉했다. 한센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었다. 얄궂은 병명이다.
의사는 또다시 번들거리는 이마를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결심이 선 듯이 이야기를 했다.
“아주머니, 한센병은 죽는 것은 아니고 요즈음 약이 좋아서 거의 백 프로 완치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치료 시간이 길고 가족과도 떨어져 생활해야 합니다.”
“가족과 떨어져서 생활해야 된다꼬요. 그라면 내 병이 다른 사람들한테 옮긴다 이 말이네요.”
“네, 한센병은 우리가 말하는 문둥병입니다.”
잘못 들은 게 아닌가! 그녀는 하늘이 노랗고 갑자기 사지가 떨리며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는 쓰러졌다.
눈을 떴을 때 애들 아빠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별다른 말도 없었다. 그녀는 남편을 바라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종일 울었다. 몸 안에 모든 수분이 눈물이 되어 흘러나왔다. 차라리 암이나 걸려 약도 없이 죽어가는 게 더 나은 것 같았다. 진정 그랬다.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 먼저 죽는 게 그리 대순가. 하지만 문둥이라니. 내가 문둥이가 된다니. 난, 문둥이가 아니야. 문둥이가 아니다. 나는….
그날 비로소 엄마의 얼굴에 꽃이 피었다는 뜻을 그녀는 알게 되었다.
“에미야! 얼굴에 꽃 피기 전에 떠나거라. 쟈들(아들) 잘 키우려면 어쩔 수 없다. 내가 잘 키울 거다.”
시어머니는 붉게 타는 앞산을 보면서 메마른 눈물을 훔쳤다. 잔인한 4월은 아지랑이만 아롱거렸다.
‘그래, 저 잘생기고 예쁜 애들이 문둥이 자식이라고 놀림받으면서 살게 할 수는 없지, 암.’
그리고 5월이 오기 전에 시댁 식구들은 전답을 모두 팔고 부산으로 이사 갔다. 차를 탄다고 들떠 있던 막내딸 미영이가 마당을 뛰어다녔고 제법 눈치가 생긴 맏아들 녀석은 왠지 불안한 모습이었다. 떠나가는 용달차를 보내면서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며칠 뒤에 엄마가 따라간다고 하니 아이들은 그렇게 믿었다. 그날이 마지막으로 본 날이었다. 유씨가 자신보다 더 아끼는 아들들을 보내고서 가슴에 그 휑한 느낌이란 말로서 형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이별을 하고 살면서 가장 힘든 것은 아들과 딸을 보고 싶은 그리움이었다. 자식을 향한 그리움은 배고픔보다 더 질기고 모질게 그녀를 괴롭혔다.
어느 해 봄날에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며 나는 아이들과 냇가에서 가재며 송사리를 잡고 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살금살금 찔레꽃 넝쿨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앙증맞은 아이들의 손놀림을 지켜보며 흐뭇해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논둑에 쥐구멍을 막던 동네 어른이 찔레 넝쿨 속에 숨어 있는 유씨를 보았다. 저 문둥이가 애들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숨어 있는 게 틀림없었다. 아니, 이년이 문둥병을 낫게 하려고 애들 간 빼먹으려고 기회를 노리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어림없다. 그는 들고 있던 지게 작대기로 유씨를 향해 마구 내리쳤다. 난데없이 날아든 몽둥이세례에 화들짝 놀라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 후유증으로 보름을 꼬박 앓았다. 소문은 빨랐다. 문둥이가 아이들 간을 빼먹으려 하는 순간에 다행히 남씨가 이를 보고 저지했다고 했다. 같은 반 친구인 영숙이가 송아지처럼 큰 눈에 두려움과 호기심을 담고 내게 물었다. 문둥이가 어떻게 덤볐어? 그리고 어떻게 도망쳐서 살았어? 영숙이의 말에 난 뭔가 그 아이가 놀랄 만한 대답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우쭐대며 얘기했다. 황소같이 힘이 센 문둥할매가 나를 넘어뜨리고 눕혔어. 그리고 윗옷을 벗겼어. 그때 나는 재빨리 흙을 한 줌 집어서 눈을 향해 버렸어. 그 틈에 난 도망갔어. 아이들은 좀 더 강렬하고 구체적인 스토리를 원하고 있었다.
이튿날에는 심지어 창근이는 문둥할매 이빨 자국이 가슴에 선명하게 찍혔다며 구체적인 증거까지 나돌았다. 의외로 이빨 자국을 봤다는 아이들은 엄청나게 불어났다. 그녀는 이제 문둥이가 아닌 아이들 간을 빼먹는 무시무시한 구미호였고 참꽃 귀신이 되었다.
애가 끓어진다. 애가 끓어진다는 뜻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옛날 이야기 속에 원숭이 모자를 서로 떨어지게 했더니 어미가 죽었는데 창자가 모두 끓어져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짐승도 그렇게 애끊고 죽는데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그녀는 밤마다 그리움에 창자가 녹아내리는 아픔을 겪었다. 남씨한테 맞고 난 이후에 삼 년의 세월 동안 외출은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사람을 만난 것이라고는 아랫마을 삼동댁이 옥수수씨를 구하러 봄날 잠시 들른 때뿐이었다. 물론 먼발치에 농사 짓는 사람들을 보긴 했어도 얼굴을 마주 대한 가까운 거리에서 사람을 대하질 않았다. 그래도 시간은 아둔한 사람들의 마음을 여리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녀는 애들 간을 노리는 구미호처럼 여겨지다가 어느 순간에 가엾은 문둥이로 되었다.
난, 오십이 채 안 되어 직장에서 나왔다. 스스로 자립하려고 용기를 갖고 나온 것은 물론 아니다. 대기업 부장으로 탄탄하게 입지를 다지고 있었으나 글로벌 경제의 추락은 제법 잘 나가던 IT회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퇴사하고 느낀 게 있다면 근무하기 전날까지도 회사는 집처럼 아늑하고 위험을 피해 주는 방패 느낌이었다. 하지만 사표 내고 나오던 그날 회사를 보니 위태로운 난파선이었다. 세상 참 몰라도 너무 몰랐다. 세상 보는 시야도 형편없이 좁았다.
거리를 쓸데없이 헤매기보다는 도서관에서 각종 신문과 신간을 읽었다. 지하 식당에서 저렴하게 파는 점심식사도 나름 먹기 괜찮았다. 하루는 점심을 먹고 따사로운 봄볕을 쬐고 있었다. 산수유가 노랗게 꽃을 피웠다. 산수유를 보니 내 고향 산골에 피던 동박꽃이 떠올랐다. 아직 은잔설(殘雪)에 묻혀 있었지만, 그 향긋한 꽃망울을 터트려 봄을 알린다. 정녕 동박꽃은 봄의 정령이었다. 겨울의 끝에서 늘 봄과 같이 자리하는 곳에는 샛노란 동박꽃의 상큼한 향기와 봄기운은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동박꽃을 생각하다 문득 문둥할매가 생각났다. 문둥할매가 허겁지겁 사라지던 날에 어디선가 알싸한 동박꽃 향기를 맡았던 기억 때문이다. 난, 언제부터인가 동박꽃 향기가 무척 그리웠었다. 그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산천에 봄을 알리는 동박꽃은 어쩌면 문둥할매의 고독도 녹아 있는 게 아닐까.
깊은 산속을 헤매고 있었다. 그런데 무엇에 쫓기듯 사람들은 허둥지둥 달아나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안동에서 졸업하고 서울에 상경하여 지하철에서부터 난, 이곳 사람들과 휩쓸리어 쫓기듯 살아왔다. 어리벙벙하게 청량리역에서 내리는데 모두가 마라토너처럼 뛰듯이 걸었다. 일부 사람은 아예 날듯이 뛰었다.
그 이후 난, 온전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 온전하다는 것은 순전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호젓한 시간이다. 지금 난, 청량리에 처음 도착한 고등학생처럼 뭔가에 쫓기고 있다. 내가 다니던 회사 사장도 나를 앞질러 허둥지둥 쫓겨 달아나고 있었다. 함께 일하고 있던 팀장과 팀원도 하나같이 달아나고 있었다. 왠지 불안한 마음에 넥타이를 휘날리며 나도 달렸다.
한참을 달리다 뒤를 돌아봤다. 뒤를 절대로 돌아보지 않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박 양이 나를 보면서 부장님! 돌로 변하면 어떡해요? 하며 안타까운 목소리를 남기며 사라졌다. 이제 곧 돌로 변하나 보다. 무시무시한 무엇이 나를 향해서 쫓아오고 있었다.
저 멀리서 하얀 옥양목을 휘날리면서 빠른 속도로 누군가 달려왔다. 하지만 아직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선가 알싸한 찔레꽃 향기가 났다. 저 하얀 옷 입은 여자에게서 나는 듯했다. 하지만 왠지 엄청난 두려움이 나를 쫓기게 했다. 그런데도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다. 저 모퉁이만 돌아서면 내가 살 수 있는 곳이었다. 거리는 불과 십여 미터! 사장과 팀원들은 벌써 모퉁이를 돌아가고 있었다. 이제 난 저 얼굴도 모르는 귀신한테 잡혀 희생양이 될 것이다. 이마에 식은땀이 주르르 흘렀다.
어린 시절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찔레순을 많이 먹었다. 가난 때문에 일찍 시집간 누이와 함께 먹던 찔레는 언제나 누이 냄새가 났다. 찔레꽃 향기가 점점 진하게 났다. 난, 찔레꽃 향기를 은연중에 깊게 들이켰다. 그때였다. 민숭한 눈썹에 문둥할매가 나를 향해 팔을 뻗었다. 그 순간 난 참으로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래, 나를 희생하면 문둥할매가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꺼이 내 간을 빼 주리라. 어쩌면 어린 시절 문둥할매에게 잡아먹힐 운명은 오늘 일이 일어날 줄 알고 먼저 얘기한 것처럼 생각되었다. 난, 눈을 감았다. 혹시 내 눈을 보면 문둥할매가 나를 알아보고 잡아먹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이마가 칼날에 베인 것처럼 찢어지는 아픈 바람이었다. 가만히 눈을 떴다. 잔설이 쌓인 산에서 샛노랗게 핀 동박꽃이 환하게 다가왔다.
문둥할매는 요술처럼 사라졌다. 눈은 더 차갑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동박꽃 향기가 산천에 잠자는 봄을 깨웠다. 문둥할매는 나를 잡아먹지 않았다. 왜 문둥할매에게 그토록 진한 찔레꽃 향기가 났을까? 그렇게 깨끗하고 서럽도록 진한 찔레꽃 향기를 흠씬 들이마시자 머리가 상쾌했다. 눈을 뜨고도 한참 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서럽도록 진한 찔레꽃 향기가 베개에 아직 남아 있어 흩어질까 봐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고독은 4월이 오면 사라질 것 같았다. 창문을 열었다. 하얀 옥양목을 펄럭이던 문둥할매가 떠올랐다. 난, 오래도록 찔레꽃 향기에서 헤어나기 싫었다.
창문을 열었다. 희뿌연 도시의 매연이 방 안으로 밀려들었다. 도로에서는 끝없이 이어지는 차들로 주차장을 이루고 있다. 마치 떠밀리어 움직이는 차량처럼 보인다. 문득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핀 고향길이 그리웠다. 내게도 고향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딸아이와 이야기를 나눈 것도 몇 개월이 지났다. 집에 있어도 난, 문둥할매처럼 고독했다. 매일 출근길에 마주치던 사람들은 마치 태곳적부터 뭔가에 쫓기듯 살아온 사람처럼 눈은 휑하니 꿈을 잃었고 기계화된 로봇들 같았다. 생각해 보면 그들 눈빛보다 아카시아숲으로 향하던 문둥할매의 눈빛에서 슬프고 서러운 것과 온갖 욕설마저도 다 포용할 수 있는 눈빛을 느낀다. 남씨에게 막대로 매타작을 받던 날 문둥할매의 눈빛은 어땠을까? 문둥할매의 몸에서 진하게 나던 찔레꽃향은 견고한 정적 속에서 나를 깨운다.
가만히 거울에 비친 눈을 본다. 로봇처럼 무표정하고 회색 빌딩에 아주 잘 어울린다. 그래 찔레꽃 보러 고향 찾아 가야지. 장사익의 노래를 크게 틀고 차의 유리창을 내렸다. 아카시아꽃 향기가 차 안으로 밀려왔다. 먼 산허리에 삼람(山嵐)이 희뿌옇게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