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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태 이야기

한국문인협회 로고 권현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가을호 2026년 9월 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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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태가 집을 나간 지 사흘째 됐는데 연락이 안 돼요.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겠어요. 기자님이 좀 찾아주세요.”
경찰서 근처의 커피숍. 경태 모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노랗게 물들인 머리와 붉고 푸른색으로 반들거리는 긴 손톱, 가슴골이 보일락 말락 드러나는 꽃무늬 원피스 등 단정하지 못한 차림새는 여전했지만, 표정은 간절했다. 경태 모가 서 기자의 손이라도 잡을 듯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자, 서 기자가 몸을 뒤로 빼면서 말했다.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시죠.”
경태 모가 엉덩이를 들썩거려 자리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경찰이 경태를 얼마나 미워하는지 잘 아시잖아요. 거기다 대고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믿을 사람은 서 기자님뿐이에요.”
“지금은 제가 저를 못 믿고 있어요. 기자도 그만둘까, 생각 중이에요. 능력이 모자라는 것 같아서요.”
경태 모가 깜짝 놀라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서 기자님보다 더 훌륭한 기자가 어디 있다고요.”
커피숍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경태 모와 서 기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경태 모는 자기 목소리에 놀라서 손으로 입을 가렸고, 서 기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 경태도 능력 부족을 자책하면서 기삿거리를 찾아 헤맬 때 처음 만났었다. 경태에 관한 기사는 그런 심리적 불안이 빚어낸 무리수였다.


신문사에 입사해서 6개월간의 수습을 거쳐서 사회부에 배치된 것은 2월 초. 그리고 석 달이 지나도록 사회면 톱을 한 건도 쓰지 못했다. 같이 사회부에 배치된 입사 동기는 2번이나 사회면 톱을 썼고, 선배 기자들은 한 달에 3∼4번은 톱을 쓰는데 서 기자는 좀처럼 톱기사를 쓰지 못했다. 사회부 기자가 처음으로 사회면 톱을 쓰면 ‘머리를 올렸다’라고 하면서 의미를 부여하고 선배들이 축하주를 사주는 전통이 있었는데 서 기자에게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너는 언제 톱을 쓸거냐?”라는 선배들의 농담 같은 채근도 어느덧 사라져 버렸고 서 기자는 날이 갈수록 초조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기삿거리를 건지려고 경찰서 이곳저곳을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쑤시고 다닐 때였다. 중학교 2학년생인 경태는 형사계에서 성질 급하고 우락부락하기로 소문난 남 형사에게 조사를 받고 있었는데 책상 위에는 여러 장의 신용카드와 지폐, 지갑 등이 펼쳐져 있었다. 남 형사는 얼른 조사를 끝내려 했지만, 경태는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시간을 질질 끄는 모습이었다. 남 형사의 얼굴에 짜증이 잔뜩 묻어나왔다. 경태는 밉다고 남 형사가 전화를 받는 사이 책상 위의 우유를 냉큼 마셨다.
“이 자식, 여기 와서도 도둑질이야. 그거 인마, 너 먹으라고 갖다 놓은 거야?”
남 형사가 경태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며 벌컥 화를 냈다. 경태는 눈곱만큼도 기가 죽지 않고 대들듯이 말했다.
“점심을 안 먹어서 배고파요.”
“야 인마, 너만 배고프냐? 조사 끝나면 밥 사줄 테니 어서 말해. 집 주소?”
경태는 다시 입을 닫고 눈알만 굴렸다. 남 형사가 몇 번 더 경태를 윽박지르다가 화를 내면서 책상 위에 놓인 서류뭉치로 경태의 머리를 때렸다.
“정말 말 안 할 거야? 엉?”
근처에서 지켜보던 서 기자가 다가가면서 말했다.
“어린애한테 너무한 거 아닙니까?”
남 형사의 눈꼬리가 쭉 올라갔다.
“뭐야?”
“점심이나 먹이고 하세요.”
남 형사가 서 기자의 멱살이라도 잡을 듯이 노려보다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업무 방해하지 말고, 가.”
서 기자와 남 형사를 곁눈질로 번갈아 보던 경태가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남 형사가 어이없어하면서 경태에게 주먹으로 꿀밤을 먹였다.
“뭘 잘했다고 울어.”
“아야.”
경태가 머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애가 배가 고프다고 하면 밥을 줘야지 때리며 어떻게 해요.”
경태가 히잉히잉 소리를 내며 서럽게 울었다.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남 형사가 들고 있던 볼펜을 책상 위로 던지면서 벌떡 일어섰다.
“가자, 가. 밥 먹으러 가자고.”
남 형사가 서 기자에게 눈을 부라리면서 경태를 데리고 나갔다. 서 기자는 형사계 밖으로 나가는 남 형사와 경태를 보면서 시장기를 느꼈다. 서 기자도 점심을 먹지 않았던 것이다.
서 기자가 경찰서 근처의 콩나물국밥집에서 식사하고 길로 나섰을 때 남 형사와 경태도 근처의 중국집에서 나왔다. 남 형사는 서 기자를 향해 인상을 한번 쓰고 까불거리는 경태를 데리고 건널목 쪽으로 걸어가 보행신호를 기다렸다. 대로가 아닌 이면도로라 비교적 한산한 도로였다. 서 기자는 휴대전화로 확인하지 않은 문자를 찾아 읽으면서 천천히 걸었다.
남 형사가 좌우로 깡충거리는 경태를 자기 앞쪽에 가만히 서 있도록 잡도리를 한 후에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고개를 숙였다. 남 형사를 곁눈질로 살펴보던 경태가 갑자기 도로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달아났다. 놀란 남 형사는 불이 반쯤 붙은 담배를 내던지고 경태를 뒤쫓았다.
“야, 서! 서!”
서란다고 설 경태가 아니었다. 경태는 더욱 속력을 내서 필사적으로 달렸다. 지나가던 택시가 경태를 피하려고 끼익 소리를 내며 급정거했다. 경태의 옷깃에 택시 앞범퍼가 닿을락 말락 한 순간, 경태가 픽 쓰러졌다. 남 형사가 고함을 지르며 경태에게 엎어지듯이 달려갔고, 서 기자도 전속력으로 경태에게로 뛰어갔다. 택시에서 내린 젊은 기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경태를 살펴보았다.
“다쳤어?”
남 형사가 경태를 부축하려고 할 때 경태가 꿈틀거리다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었다. 택시기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서 기자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 사실 경태가 넘어졌을 때 순간적으로 어쩌면 특종을 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경태를 향해 뛰어갈 땐 큰일났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경태가 멀쩡한 모습을 보니 병이 도지듯이 특종에 대한 강박증이 다시 생겼다. 서 기자가 실망과 자책 사이를 남몰래 오가고 있을 때 남 형사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너 이 자식, 죽고 싶어?”
남 형사가 손바닥으로 경태의 머리를 가볍게 때렸다. 서 기자가 남 형사에게 비난조로 말했다.
“다친 애한테 무슨 짓이에요.”
“다치긴 뭘 다쳐, 멀쩡한데…. 쓸데없는 참견 하지 마.”
“그래도 일단 병원부터 데리고 가야죠.”
서 기자와 남 형사가 옥신각신하고 있는 사이에 택시기사는 슬금슬금 차로 돌아가서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남 형사가 “어이, 서!” 하면서 택시기사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경태가 그 톰을 타서 다시 달아났고, 남 형사가 몸을 날려 잽싸게 경태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남 형사에게 몸을 부딪친 경태가 다시 픽 쓰러졌다.
“일어나 인마! 쇼하지 말고.”
그러나 축 늘어진 경태의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어?”
남 형사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뭐해요,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죠.”
서 기자가 지나가는 택시를 세웠고, 남 형사가 경태를 부축해서 택시에 태웠다.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서 기자는 앞좌석, 남 형사와 경태는 뒷좌석에 자리를 잡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경태는 몇 가지 검사를 받았지만 별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보고를 받은 서장은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봐 경태를 입원시켜 정밀 검사를 하라고 지시했다. 남 형사는 억울한 표정으로 병원에 머무르다가 경태에게 허튼짓 말고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하라고 으름장을 놓듯이 당부를 한 후에 경찰서로 돌아갔다. 서 기자는 병원 로비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남 형사가 떠나는 것을 보고 경태가 입원해 있는 병실로 찾아갔다.
서 기자가 병실 문을 열자 앉아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경태가 재빨리 누워 눈을 감았다. 서 기자는 모른 척하고 병상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괜찮아?”
경태가 실눈을 뜨면서 대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이따가 정밀검사를 해보면 어디가 아픈지 알게 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
“왜 달아나려고 했어? 큰일날 뻔했잖아.”
“달아나려고 했던 게 아녜요.”
“그러면 왜 그랬어?”
“…….”
“말해 봐. 아저씬 기잔데 널 도와주려는 거야.”
“형사 아저씨가 너무 무서워서요.”
“그래서 차가 달리는 도로에 뛰어든 거야?”
“예.”
“왜?”
“…….”
“그러다가 죽을 수도 있어. 차에 치여서.”
“죽고 싶었어요. 흑흑흑.”
경태가 훌쩍거리며 대답했다.
“뭐? 죽고 싶었다고?”
“형사 아저씨가 나빠요. 고함 지르고 막 때려요. 무서워요. 흑흑흑.” 
서 기자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부장이 평소에 강조하던 예리한 기자정신으로 자신을 단근질하면서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하려고 용을 썼다. 그러자 경찰에서 조사를 받던 어린 소년이 과잉조사에 두려움을 느껴서 달리는 차에 뛰어들어 죽으려고 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사회면 톱이 될 수도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생겼다. 그때 휴대전화의 벨이 울렸다. 사회부 데스크 조 부장의 전화였다. 서 기자는 어느 때보다도 자신감이 넘친 목소리로 경태 건을 보고했다.
“경찰의 가혹행위에 시달린 어린 소년이 자살을 기도했다, 이건 사회적으로 울림이 큰 사건이야. 가정형편이나 학교생활을 보충취재해서 이야기될 만한 것들을 건져 봐. 괜찮으면 내일 사회면 톱이야.”
조 부장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기사가 나갈 방향을 정확하게 짚어주었다. 통화를 끝낸 서 기자는 가슴 저 밑바닥에서 기자로서의 사명감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서 기자는 병실로 돌아가서 경태에게 이것저것 물었는데 학교 이야기가 나오자, 눈물을 흘리면서 학교에는 제발 알리지 말아 달라고 사정했다. 학교에서 알면 퇴학당할 수도 있다는 말에 서 기자는 일단 학교 취재를 보류하기로 했다. 학교 취재를 못한 아쉬움은 경태의 가정형편을 듣자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기사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가정형편이었다.
경태의 말을 요약하면, 몇 년 전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가 식당에서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 가고 있는데 최근 집 월세를 마련하지 못해서 걱정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지하철에서 술 취한 승객의 바지 뒷주머니에 지갑이 비어져 나온 것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훔쳤다는 것이다, 월세에 보태려고.
서 기자는 경태가 가르쳐준 경태 모의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여러 번 걸었다. 그러나 경태 모는 기사 마감 시간인 오후 4시가 가까워질 때까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서 기자는 경태에게 들은 가정형편까지 포함해서 전체적인 상황을 조 부장에게 전화로 보고했다. 조 부장이 물었다.
“내용들은 모두 사실이지?”
“경찰서에서 병원까지는 제가 직접 본 것입니다. 가정형편은 경태에게 몇 번이나 확인했구요. 모두 사실입니다.”
서 기자는 보충취재를 하지 않았다는 질책을 피하려고 더욱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른 신문사 기자들이 알기 전에 터뜨려야 가치가 있어. 사회면 톱으로 올릴 거니까 마감시간 잘 지켜서 보내. 기사 나가고 난 뒤에 보충취재 꼭 하고. 알았지?”
서 기자는 경찰서의 기자실에서 기사를 쓰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드디어 사회면 톱기사를 쓴다는 것도 설레는 일이었지만 조 부장의 말처럼 사회에 큰 울림을 줄 수 있는 기사를 쓴다는 것에 기자로서 자부심과 보람을 느꼈다. 드디어 진짜 기자가 된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사회면에는 ‘효심의 절도, 참회의 자살 기도’라는 제목과 ‘방세 마련하려고 돈 훔친 뒤 죄책감’, ‘경찰의 가혹행위가 극단 선택 압박’이라는 부제가 달린 서 기자의 기사가 톱으로 커다랗게 실렸다.
서 기자는 사회면을 펼쳐든 순간 너무나 기뻐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경찰서에 가기 전 신문사에 들러 방금 나온 따끈따끈한 조간을 봤을 때부터 맥박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경찰서에 운전하며 가면서도 조수석에 펼쳐 놓은 신문의 사회면을 수시로 보았다.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번졌다.
경찰서에서 형사계 유치장부터 교통계 수사계 정보계 등으로 루틴 취재를 할 때 경찰관들의 반응은 상당히 적대적이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경찰서에 출입하는 다른 신문사와 방송사의 기자들은 서 기자에게 경태 사건에 관해 묻기에 바빴다. 이른 아침부터 경태 사건을 놓쳤다고 데스크에게 야단을 맞았을 것이다. 대부분 서 기자보다 선배들이었는데 그래서 서 기자는 기분이 더 좋았다.
“그냥 운이 좋아서 얻어걸린 겁니다.”
서 기자는 최대한 겸손한 태도로 그들에게 경태 사건의 자초지종을 말해주었다. 물론 대부분 이미 신문에 기사화된 내용이었다. 승자의 여유를 만끽하면서 기자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조 부장으로부터 축하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서 기자는 그동안의 맘고생이 생각나서 눈물을 왈칵 쏟을 뻔했다.
점심시간이 지나기 전에 방송과 신문에서도 경태 사건을 다루기 시작했다. 서 기자는 오전에 경찰서 루틴 취재를 하면서 간단한 사건 사고 기사 몇 건을 작성해서 데스크에게 전송했다. 경태는 여전히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남 형사는 서 기자와 마주치면 눈을 부라리면서 험악한 인상을 써서 경태와 관련된 후속 상황을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형사계장이나 수사과장은 ‘진상을 파악해서 적절히 조처할 것’이라는 상투적인 대답을 해서 경태가 입원 중인 병원으로 가기로 마음먹고 기자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데 조 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경태 기사에 독자들의 관심이 폭발적이야. 인터넷 댓글이 벌써 수천 건이고 신문사로 직접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도 많아. 경태를 돕고 싶다는 문의가 많아서 성금 접수 계좌를 만들고 신문사에 창구도 설치했어. 그러니까 속보 신경 써서 잘 써.”
조 부장의 흥분한 목소리를 들으며 서 기자의 가슴도 뜨거워졌다. 기사를 통해서 경찰의 무리한 수사 방식에 경종을 울리고 경태 가족을 도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은 없다. 서 기자는 남은 커피를 원샷으로 비운 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며칠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동안 남 형사는 징계위에 넘겨져 감봉 처분을 받았고 경태 건을 경찰로부터 넘겨받은 검찰은 ‘선도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범죄행위는 인정되지만, 형사처벌이나 보호처분을 하지 않고 선도위원의 선도를 조건으로 기소하지 않는 것이다.
경태에 대한 동정 여론은 날이 갈수록 커져서 2주 만에 온오프라인을 합해서 2억 원 정도의 성금이 들어왔다. 기업체 한 곳에서는 경태가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학비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경태 모는 바쁘다고 해서 직접 만나지 못했지만, 전화 통화로 경태에 관해서 많은 말을 해주어서 그것을 바탕으로 기사를 썼다. 대부분 ‘경태가 너무 효자다’는 식의 상투적인 내용이었지만 좀 더 감동적으로 쓰라는 부장의 주문에 서 기자의 추측을 보태서 신파조의 기사를 썼고 독자들은 그런 기사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경태의 학교생활도 마찬가지였다. 30대의 담임 여선생은 ‘경태는 평범한 학생’이라며 말을 아꼈지만 서 기자는 사진 몇 컷과 함께 경태를 ‘불우한 환경에서도 꿋꿋한 학생’으로 그려냈다. 그렇게 해서 경태는 어느덧 미담의 주인공이 되었고, 서 기자는 그런 경태를 발굴해 낸 능력 있는 기자가 되었다.
경태 모는 신문사에 들어온 성금을 전달하는 날 처음 만났다. 성금 전달식은 신문사 강당에서 신문사 대표와 편집국 간부들, 경태가 다니는 중학교의 교장과 담임선생, 후원자 대표 몇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고 그것이 또 기사화돼서 지면을 크게 장식했다.
전달식이 끝난 후 경태는 학교로 돌아갔고 서 기자는 경태 모와 함께 신문사 근처 커피숍에 들렀다. 사실은 경태 모와 같이 온 경태 외삼촌이 서 기자에게 꼭 할 말이 있다면서 서 기자를 커피숍으로 이끌었다. 경태 모는 머리를 노랗게 물들였고 긴 손톱은 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어서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40대 초반의 외삼촌은 떡 벌어진 어깨에 스포츠형 머리를 하고 있어서 어쩐지 조폭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경태 모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말만 뻔지르르하게 하면 뭐해.”
경태 외삼촌이 경태 모를 타박한 후에 서 기자의 손을 잡았다. 
“서 기자님, 기사를 잘 써주셔서 성금도 많이 들어왔으니 섭섭지 않게 챙겨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서 기자는 마치 오물을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경태 기사를 쓰면서 느꼈던 보람과 자부심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서 기자는 단호하게 그들의 호의를 거부했다. 그나마 경태 모는 교양은 부족하지만 단순한 면이 있어서 그러려니 했는데 경태 외삼촌은 사례금이니 협조니 하는 말로 서 기자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서 기자는 서둘러 대화를 끝내고 커피숍을 도망치듯이 나왔다.
그날 이후 경태 외삼촌은 서 기자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서 만남을 요청했다. 처음 몇 번은 기삿거리를 제보하겠다고 해서 만났는데 대부분 사적인 이해관계가 얽힌 내용이어서 기사로서의 가치가 없었다. 전해주는 경태 이야기도 별로 새로운 것이 없어서 서 기자는 경태 외삼촌과의 만남을 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 무렵 경태 외삼촌이 경찰서 기자실로 서 기자를 찾아왔다. 서 기자는 어쩔 수 없이 경태 외삼촌과 점심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일식집에서의 불편한 식사 후에 헤어지기 직전 식당 앞에서 경태 외삼촌이 밀봉된 서류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엄청난 기삿거리입니다. 특종 중의 특종이 될 거라고 자신합니다. 조용한 곳에 가서 읽어보십시오. 제가 서 기자님을 최고로 유명한 기자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경태 외삼촌이 봉투를 건네주고 곧바로 택시를 타고 떠나버려서 서 기자는 선택의 여지 없이 봉투를 받게 되었다. 기자실로 돌아온 서 기자는 봉투에 든 프린트물을 꺼내다가 지폐 다발을 발견하고 기겁했다. 다른 기자들이 볼세라 얼른 봉투에 돈을 다시 넣고 밖으로 나갔다.
조용한 곳에서 다시 꺼내 보니 현금은 2백만 원이었고 제보는 대부분 개인적 이해가 걸려 있는 내용으로 기사화하기에 적절하지 않았다. 서 기자가 경태 외삼촌에게 전화해서 돈을 돌려주겠다고 하자 경태 외삼촌이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다면서 거절했다. 경태 외삼촌은 자기가 제보한 것들의 기사화를 요구하면서 서 기자와의 만남을 요리조리 피하다가 어느 날은 장문의 문자를 보내왔다.
‘효자 경태가 더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후원을 부탁하는 계좌를 경태 엄마 명의로 개설했습니다. 계좌번호를 신문에 실어주시면 더 많은 사례를 하겠습니다.’
문자의 마지막에 적힌 계좌번호를 보고 서 기자는 다시 한번 오물을 뒤집어쓴 느낌을 받았다. 경태 기사로 칭찬과 인정을 받을 만큼 받았으니, 이제는 하루빨리 경태 사건을 잊고 싶었다. 경태 외삼촌 때문이 아니라도 경태 사건 보도 이후로 경찰서 전체가 서 기자를 적대시해서 취재에 많은 곤란을 겪고 있어서 서 기자는 조금 지치고 피곤한 상태였다.

 

“전에도 몇 번 말씀드렸지만 다시 한번 부탁합니다. 이 돈을 경태 외삼촌에게 좀 전해주세요. 제가 가지고 있을 돈이 아닙니다.”
서 기자가 돈봉투를 경태 모 앞으로 밀었다. 경태 모가 화들짝 놀라며 돈봉투를 서 기자 앞쪽으로 되밀었다.
“안 돼요. 제가 받았다간 맞아 죽어요. 말씀드렸잖아요. 그 사람 성격이 너무 더러워서 제 맘대로 못한다고요.”
“동생이라면서 이런 것도 못 전해줍니까?”
“사실은,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동생이 아니고요. 동거하는 사람이에요. 말하자면 경태 새아빠랄까. 성금도 그 사람이 다 가져갔어요. 아이참, 내가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경태 찾는 게 더 중요하잖아요.”
기가 막힌 서 기자가 할 말을 잊고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사이 경태 모가 하소연하듯이 줄줄이 말을 쏟아냈다.
“적어도 성금은 경태를 위해서 쓰셔야죠.”
서 기자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경태를 찾아주세요. 경태가 이렇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서 기자님 기사 때문이잖아요. 책임져주셔야죠.”
“뭐라고요?”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는 생각에 서 기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뭐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죠. 서 기자님 은혜를 제가 왜 모르겠어요. 서 기자님 덕분에 우리 경태 감옥 가는 것도 면했는데, 감사해요. 너무 너무 감사해요. 아무튼 우리 경태 찾아주시면, 그 돈 그 사람에게 제가 책임지고 돌려줄게요. 성금도 제가 목숨 걸고 경태를 위해서만 쓰도록 할게요. 약속해요.”
서 기자는 경태 모와 정상적인 대화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돈봉투는 다시 주머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경태 모의 약속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인 부채감에서라도 경태를 찾아서 학교로 돌려보내고 싶었다. 그러면 경태 사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서 기자는 학교로 찾아가 경태의 담임선생을 만났다. 담임은 경태가 열흘 전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출하기 일주일 전부터 결석한 것이었는데 경태 모가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담임이 경태가 결석하는 동안 몇 번이나 경태 모에게 경태가 학교에 오지 않는다고 전화로 말했는데도 경태 모가 무관심으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경태 같은 효심이 깊은 아이가 무단결석에 가출까지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군요. 학교생활은 어땠나요?”
서 기자의 물음에 한참 동안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던 담임의 눈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두 사람이 마주 앉은 상담실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고 있었다. 서 기자는 차츰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담임의 말에 따르면 경태는 정말로 소매치기였다. 어머니가 월세를 걱정하는 것을 보고 남의 돈을 훔쳤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담임이 파악한 바로는 경태 어머니는 식당이 아니라 주점에서 일하고 있었다. 경태는 원래 동급생들을 괴롭히고 돈을 뺏는 등 질이 나쁜 학생이었다. 그런데 ‘효심의 절도’ 기사가 난 뒤에는 자기 딴에는 모범생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전부터 어울리던 나쁜 친구들이 그런 경태를 ‘사기꾼’이라고 놀리면서 따돌려 힘들어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동안 괴롭힘을 당했던 몇몇 학생들은 대놓고 경태를 무시하고 경멸해 경태는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외톨이가 되었다. 하루는 착한 척, 하루는 나쁜 척을 하면서 갈팡질팡하다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달 전에 자퇴한 달식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아마 그 친구하고 같이 있을 거예요. 달식이도 소매치기였는데 가출한 뒤 전화번호를 바꿔서 연락이 안 돼요.”
서 기자는 경태가 학교에 가지 않고 가출한 것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사회면 톱기사를 쓰려는 욕심으로 경태를 단지 기사의 재료로만 여긴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경태를 찾아서 학교로 돌려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오보가 확실한 ‘효심의 절도’ 기사에 대한 잘못을 조금이라도 만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 기자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남 형사에게 경태의 행방을 알아보기로 했다. 소매치기범들을 많이 검거한 남 형사는 작은 정보라도 있을 것 같았다. 서 기자를 만난 남 형사는 처음에는 인상을 쓰면서 대꾸조차 안 하다가 서 기자가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냐. 그리고 정의롭지 않은 방법으로는 어떤 정의도 제대로 세울 수 없어. 경태를 찾으면 이번에는 제대로 해봐. 기사 쓸 생각만 하지 말고.”
남 형사가 영등포역 일대에서 활동하는 소매치기 조직의 두목격인 사람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서 기자가 두목에게 전화를 걸어 경태 이야기를 꺼내며 만나자고 하자 처음에는 경태가 누군지 모른다고 잡아떼다가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고 남 형사가 만나보라고 했다고 하자 욕설을 내뱉으며 영등포역 근처에서 만나자고 했다. 영등포역 뒷골목의 인력회사 사무실에서 두목을 만났다.
“남 형사에게 찍혀서 좋을 게 없어서 탁 까놓고 말할게요. 경태 우리 가 데리고 있는데 그냥은 못 보내요. 그동안 먹이고 재운 숙식비에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보냅니다.”
40대 초반의 두목이 교활한 눈빛을 번득이며 만나자마자 거래 조건을 제시했다.
“그쪽이 보낸다고 경태가 옵니까?”
서 기자의 질문에 두목이 낄낄거리며 대답했다.
“경태는 내가 죽으라면 죽어요. 그 정도로 꽉 잡고 있으니까 이런 말을 하는 거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서 기자가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서 기자는 주머니에서 2백만 원이 든 돈봉투를 꺼내 두목에게 주었다. 서 기자도 예측하지 못한 돌발행동이었다. 두목이 돈을 세어보곤 만족한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립쇼. 경태를 데리고 올 테니까.”
밖으로 나간 두목이 몇 분 후 경태를 데리고 돌아왔다. 경태는 약간 겁을 먹은 표정이었다. 두목이 경태를 서 기자 쪽으로 밀면서 말했다.
“내일부터 다시 학교에 가라고 명령했으니까 안 가면 나한테 연락하쇼.”
서 기자는 ‘당신이 뭔데 경태에게 명령하느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물고 참았다. 두목이 경태에게 다짐을 받듯이 말했다.
“알았지?”
경태가 경직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넵, 알았습니다.”
서 기자는 그 자리에 더 있고 싶지 않았다. 경태도 그냥 두고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서 기자가 사무실 밖으로 도망치듯 나오는데 경태가 뒤따라 나왔다. 서 기자는 경태를 떨쳐버리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서 기자는 경태를 조수석에 태우고 운전을 하면서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지 방향을 잃었다. 거리에는 저녁 어스름이 깔리고 있었고 갈 곳을 정한 행인과 차들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지만 서 기자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학교도 집도 어느 곳도 경태에게 안전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배고파요.”
경태의 말에 서 기자는 안도감을 느꼈다. 어쨌든 갈 곳이 생긴 것이다. 경태가 편의점을 원해서 근처에 보이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서 기자와 경태는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면발이 익기를 기다렸다.
“왜 거짓말을 했어?”
서 기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좋아하셨잖아요.”
경태가 서 기자를 빤히 쳐다보면서 대답했다.
“뭐라고?”
서 기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제가 말을 할 때마다 눈빛을 빛내면서 더 새로운 내용,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다른 이야기는 없느냐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제가 억지로 지어내서 말하면 진짜인지 아닌지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좋아만 하셨잖아요.”
서 기자는 경태의 말에 전기에 감전된 듯 온몸이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숨이 컥 막히면서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때 휴대폰의 수신음이 울렸다. 경태 모의 전화였다. 경태를 찾았다고 말하자 영상통화를 하고 싶다고 해서 영상통화 모드로 전환했다.
경태 모는 화면에 경태의 모습이 보이자 아이구 내 새끼 경태야 하면서 울먹였다. 다친 데는 없니? 밥은 제때 먹었니? 울음 섞인 경태 모의 목소리가 휴대폰을 통해 쏟아졌다. 경태도 훌쩍이기 시작했다. 엄마, 미안해. 보고 싶어. 기자 아저씨가 컵라면 사줘서 지금 먹고 있어. 눈물을 흘리며 영상통화를 하는 경태와 경태 모의 모습을 화면 밖에서 지켜보면서 서 기자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자신의 딱한 처지를 실감했다. 컵라면의 면발이 퉁퉁 부은 채 형체를 잃어 가면서 서 기자를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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