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0월 6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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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록 잎이 푸릇푸릇 남학생 턱수염처럼 거뭇해지기 시작하면 러브버그가 기승을 부린다. 암수는 교미한 형태로 허공을 떠다닌다. 나뭇가지에도, 자동차 유리에도, 사람의 어깨에도 거리낌 없이 내려앉는다. 생은 짧고 번식은 급하기에 자연의 하나처럼 그들은 망설임이 없다.
내 옷 앞섶에도 한 쌍이 내려앉았다. 손끝으로 툭툭 털어내면서도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사랑의 욕망이 강한 것일까. 그 질문은 곧 인간에게로 향했다.
곤충은 본능을 따르기에 죄도 변명도 없다. 인간은 욕망 위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씌우고, 책임도 잊은 채 자유를 갈구한다. 상처를 남긴 사람도 행복을 말하고, 떠나는 사람도 사랑을 말한다. 자신을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위장하는 것이 욕망이다.
동네에도 러브버그 같은 연인이 있었다. 날개 대신 굽은 어깨와 흰머리, 깊은 주름으로 골목을 오가는 노인이었다. 세월은 그의 머리를 희게 만들었지만 마음속 욕망까지 늙게 하지는 못한 모양이다. 수명을 다해 가는 소나무에 마지막 솔방울이 유난히 많이 달리는 것처럼, 생의 끝자락에서 욕망은 더욱 선명하게 몸부림친다.
그 모습을 애타게 바라보는 사람은 그의 아내다. 허리 수술을 앞둔 몸으로 창밖을 바라본다. 남편을 붙잡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미 떠난 마음이 어디를 향하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하는 몸으로 그녀는 창가에 오래 서 있었다. 창밖으로 나가는 남편의 등을 바라보는 일이 어느새 하루의 습관이 되었다. 붙잡아도 돌아오지 않을 마음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도 사람은 마지막 희망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혹시 오늘만은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손을 잡아 줄까 하는 작은 기대와 기다림은 희망이 아니라 확인이 되어 갔다. 매번 아내의 눈을 피해 그는 다른 곳으로 향했고, 그녀의 가슴에는 또 한 번 버려졌다는 가슴 쓰린 침묵만 내려앉았다. 육신의 통증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함께 늙어 가기로 약속한 사람이 마음부터 집을 떠났다는 사실이었다. 가정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거짓말과 외면이 벽돌 하나씩을 빼내듯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었다. 사람은 육체보다 마음이 먼저 버려질 때 더 크게 늙는다. 피폐해진 아내는 분노보다 허무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신이시여! 저들의 광기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제게 가정을 지킬 힘을 주소서.”
젊은 날에는 함께 늙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다. 함께 잘 늙어 간다는 것은 서로의 마지막 품위를 지켜주는 일이라는 것을 늙어서야 깨닫는다.
그들을 보며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를 떠올렸다. 그는 인간 안에는 천사와 악마가 함께 산다고 했다. 젊은 날에는 그 말이 문학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수록 그것은 소설이 아니라 사람의 실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 안의 악마는 거창한 범죄로 나타나지 않는다. 아주 사소한 변명, 들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나 하나쯤이야’하는 자기 연민, 그 작은 틈으로 바람처럼 드나든다. 어느 날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자기 자신을 잃는다.
거울 속 자신의 눈을 오래 바라보지 못하는 순간부터 부끄러움은 시작된다. 부끄러움은 인간에게만 허락된 가장 아름다운 감정인지도 모른다. 자연은 죄를 짓지 않기 때문에 러브버그는 부끄러움을 모른다. 인간은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전등 아래 불나방이 된다. 인간의 욕망은 곤충보다 슬프다.
황혼의 하늘을 가득 메운 러브버그 떼를 바라보다 깨달았다. 세상에서 가장 흉한 것은 욕망이 아니라 욕망이 양심을 설득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인간은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내려놓는다.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품위를 잃는 순간을 더 두려워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늙음은 자연의 순리지만, 부끄러움을 버리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인간이 지닌 욕망은 본능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욕망을 따르는 힘이 아니라 욕망 앞에서도 멈출 줄 아는 양심이다. 사랑은 뜨거운 감정보다 책임으로 오래 남고, 가정은 애정보다 신뢰로 지켜진다. 한 사람의 욕망은 순간의 쾌락으로 끝날지 모르지만, 그 욕망이 무너뜨린 가정은 평생의 상처가 된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울리면서까지 쫓아야 할 욕망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인간의 품위는 욕망을 이루는 능력이 아니라 욕망을 절제하는 용기에서 완성된다.
뜨거운 여름, 내 눈에 가장 흉했던 것은 러브버그가 아니라 부끄러움을 버린 인간의 뒷모습이었다. 사람은 늙어서 남루해지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잃는 순간 추해진다. 인간답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 앞에서도 끝까지 지켜야 할 양심과 품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