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0월 6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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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여는 풍경이 달라졌다. 예전 같으면 알람 소리에 몸을 일으키거나 억지로 잠을 몰아내며 욕실로 향했을 시간이다. 요즘 들어 나의 아침은 조금 더 게을러진 습관 하나가 자리 잡았다. 창밖은 아직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머물고 있다. 머리가 맑은 공기로 채워지려면 잠자리에 들기 전 맞춰둔 기상 시계의 초침이 몇 바퀴를 더 돌아야 한다. 그 틈새의 시간, 머리맡의 핸드폰을 연다.
아침에 침대에서 유튜브 영상을 보는 일은 여태껏 없던 버릇이다. 자신이 짜놓은 시간표에 맞추어 하루를 규칙적으로 살지는 못하고 있지만, 줄곧 읽던 책 속 한 줄의 문장으로 시작하곤 했었다. 이런 루틴이 제멋대로 편한 쪽으로 변하고 있다. 나이 들면서 변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요즘이다.
영상은 주로 건강에 관련된 것들이다.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이나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건강식 등이다. 건강이 우선이라면서 건강검진은 받지 않으면서 ‘나는 건강하다’는 건방진 긍정으로 버티며 산다. 며칠 전 ‘칠 남매’ 톡방에 언니 글이 떴다. 건강검진에서 대장에 용종이 발견돼 수술 날짜를 받아놨는데, 내게 건강검진을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건강검진 안 하쿠다. 지금 건강하니까 앞으로 이십 년은 욕심일 테고, 십오 년은 그럭저럭 살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배짱∧∧. 언니는 유방암 이력이 있으니 건강관리 잘 하십서’라고 답글을 썼는데, 언니의 웃음 이모티콘이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어이없다는 뜻인지, 긍정한다는 뜻인지 모호하지만, 나름 동의한다는 뜻으로 읽었다.
노인내과 교수가 차분한 목소리로 건강과 노년의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 언젠가 친구에게 나의 아침 풍경을 얘기했더니, 대뜸 “그 시간에 차라리 운동장을 한 바퀴 더 도는 게 진정한 건강법 아니겠니?”라며 못마땅한 듯이 한 방 날렸다. 나는 그저 허허 웃으며 “그러게” 떨떠름하게 대답했지만, 여전히 어제와 다름없다.
오늘 아침, 영상에선 생소한 단어 하나가 흘러나왔다. 내 몸의 염증과 노폐물을 싹 씻어내 줄 비법이라며 소개된 이름, 바로 ‘올레아토(Oleato)’였다. 커피에 올리브오일 한 스푼을 섞어 마시는 것. 단순하기 그지없는 이 레시피가 호기심에 불을 붙였다. 젊어서 호기심이 발동하면 곧장 실행에 옮겨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가 아직도 남아 있어서인지 바로 실행에 옮긴다.
아침마다 물 한 잔 마신 후에 커피를 마셔왔던 터라 늘 하던 대로 원두를 갈아 내리는데 평소보다 조금 더 진하게 내렸다. 고소하고 쌉싸름한 커피 향이 번지며 후각을 자극한다. 따뜻하게 데워진 잔에 커피를 담고, 올리브오일 한 스푼을 떨어뜨렸다.
예상한 대로 기름은 결코 물과 섞이지 않았다. 아무리 휘저어도 기름은 커피 위에서 저들끼리 뭉치며 섬처럼 둥둥 떠다녔다. 섞으려 할수록 기름은 더 완강하게 제 형태를 유지했다. ‘이걸 정말 마실 수 있을까’ 의구심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혀끝에 커피를 적시는 순간, 예상치 못한 반전이 찾아왔다. “오!” 입 안에 닿는 첫 느낌은 올리브유의 매끄러움이었으나, 이내 진한 커피의 풍미가 따라와 연인처럼 그 뒤를 감싸 안았다. 기름진 맛은 커피의 산미와 만나 오히려 고소함으로 승화되었고, 커피의 거친 끝맛은 오일의 부드러움과 섞여 매끄럽게 목을 타고 넘어갔다.
마실수록 느껴지는 이 깊은 맛은 ‘조화’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물과 기름, 우리는 흔히 결코 섞일 수 없는 사이를 비유할 때 이 두 단어를 쓴다. 성격이 너무 다르거나, 도저히 타협점을 찾을 수 없는 관계를 두고 ‘물과 기름 같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오늘 아침, 내 찻잔 속에서 만난 물과 기름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파트너였다.
생각해 보면 우리네 인연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너와 나, 우리라는 이름으로 엮인 수많은 관계 속에서 우리는 ‘다름’을 ‘틀림’으로 오해하며 살아가면서도 그걸 모른다. 아니,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겉도는 것 같아 마음 졸이고, 서로 섞이지 못해 안달복달하던 시간들. 그러나 사실은 그 다름이야말로 서로를 더 강렬하게 끌어당기는 자석이었음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오일은 커피의 쓴맛을 보듬고, 커피는 오일의 느끼함을 잡아주듯이 각자의 성질을 간직한 채 그저 나란히 존재하며 흐르는 것, 그것이 진정한 공존의 미학이 아닌가.
천천히 그 맛을 음미하며 바흐를 듣는다. 조화로운 시간이다. 게을러서 아침 운동은 건너뛰지만, 건강에 좋다는 건 찾아서 행하려 하는 이 태도도 어찌 보면 모순이다. 건강에 무심한 척하면서도 거기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내일 아침에도 나는 아마 산책을 가는 대신 이 자리에 앉아 바흐와 함께 올레아토를 마실 것이다. 겉도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서로를 가장 깊게 끌어당기는 너와 나처럼, 그렇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법을 다시 일깨우며 쌉싸름하면서도 매끄러운 이 이중주가 내 노년의 아침을 활짝 열어 제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