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0월 6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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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축축해진다. 손등으로 눈가를 한 번 훔친다.
좋아하는 작가의 가슴 아린 어릴 적 이야기를 읽으며, 어느새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긴 숨을 천천히 내쉰다. 아직 끝까지 다 읽지는 않았지만, 잠시 책을 덮어둔다.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간다. 처음부터 찬찬히 읽기 시작한다. 또 눈물이 나오고 만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제 눈물은 멈추었으나 목이 마르다. 정수기에서 찬물을 받아 들이켠다. 차가운 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마음도 조금씩 가라앉는다.
나는 매사에 애써 눈물을 참지 않는 편이다. 내게 눈물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마음의 매듭을 풀어 제자리로 돌려놓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눈물에 의지하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편해지곤 한다.
17년을 함께한 반려견이 떠났을 때, 보름 동안 울면서 지냈다. 마음껏 슬퍼하고 실컷 울라는 친구의 말에 힘을 얻어 더욱더 편히 눈물을 쏟아냈다. 15일이라는 시간이 나의 한계였을까. 보름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눈물이 나오지 않았고, 나는 서서히 평상심을 되찾았다. 울음으로 감정을 드러냈기에 감정이 억눌리지 않고 그대로 자연스럽게 해소된 듯했다. 슬픔을 오래 눌러두면 마음은 계속 긴장 상태에 머문다고 한다. 슬픔은 충분히 울어 내보내야 비로소 옅어지는 것 같다.
삼십대 후반 무렵이었지 싶다. 자다 깨었는데 미국에 계신 어머니가 생각났다.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한 죄송함 때문인지, 아니면 어느새 연로해진 어머니의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모르겠다. 그리움이 밀려들었다. 나도 모르게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놀란 남편은 대뜸 시어머니께 꾸중 들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번 터진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엄마 보고 싶어서….”
이 한마디 겨우 꺼내고는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긴 한숨만 내쉬었다.
슬플 때는 물론이고 기쁠 때, 아플 때, 뼈저리게 후회가 될 때도 나는 어김없이 눈물을 터뜨린다. 젊은 시절의 나는 특히 그랬다. 시집살이하며 난감한 상황을 마주하면 말보다 눈물이 먼저 나왔다. 마음속 깊이 차곡차곡 묻어둔 시린 이야기들이 눈물로 바뀌었기 때문일까.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침묵으로 버티곤 했으나, 실은 눈물이 내 하고픈 말을 대신했던 게 아니었을까. 마음을 단속하고 감정을 잘 다스렸다면 눈물도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었을 텐데.
가끔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감성이 흔들리는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그때마다 내 눈에는 어김없이 눈물방울이 맺힌다. 그런 내 모습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내 감성으론 당연하다는 생각에서, 무덤덤한 얼굴의 상대방에 이질감을 갖기도 한다. 물론 나의 지나친 편견이다.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쩌면 내 마음이 지나치게 약해서인지도 모른다. 눈물의 힘을 빌어 스스로를 회복하려는 내 나름의 방식일 수도 있다. 가물었던 땅이 단비를 맞고 생기를 얻듯, 메마른 마음도 눈물을 흘린 뒤에는 조금은 부드러워지고 가벼워지는 것 같다.
살아오면서 유일하게 눈물을 애써 참았던 날이 있다. 6년 전, 봄맞이 채비를 하던 4월 어느 일요일이었다. 병원에서 온 전화를 받고 정신없이 집을 나섰다. 희붐한 새벽에 한강다리를 건너는데, 강물의 풍경이 왜 그리도 낯설게 느껴졌는지. 초조함에 숨을 몰아쉬며 병원에 도착했지만, 어머니는 한발 앞서 떠나신 후였다. 심장이 조여오는 아픔 속에 오열하던 나는 의식이 점점 흐려졌다. 순간 온 힘을 다해 눈물을 삼키며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그대로 쓰러지면 가족들에게 또 다른 아픔을 안길 것 같아서….
그제야 눈물의 또 다른 의미를 알게 되었다. 눈물은 상처를 완전히 치료해 주지는 못하지만, 상처를 안고 다시 일어설 힘을 준다는 것을.
주말에 아들네가 왔다. 이 방 저 방 헤집고 다니던 손주 녀석이 발을 잘못 디뎌 넘어지고 말았다. 숨이 넘어갈 듯 한참을 울어대다가 겨우 울음을 그치고 다시 뛰놀았다. 손주 녀석처럼 마음껏 울고 다시 일어나는 것이 어쩌면 건강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눈물은 약함이 아니라 삶을 견뎌 나가는 방식일 수도 있는 것이다.
눈물은 때때로 자신의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솔직한 표현이다. 마음의 언어이자 마음이 살아 있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때로는 말보다, 침묵보다 더 깊은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눈물은 나를 조금 더 따뜻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는 힘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눈물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려 한다.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내 마음 한편에 사랑이 남아 있다는 뜻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