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상견례를 마치고

한국문인협회 로고 장지섭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0월 692호

조회수41

좋아요0

상견례 날을 받아놓고 아내와 나는 참 많은 고민을 했었다. 결혼식 장소를 우리가 살고 있는 안양에서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사돈댁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상견례만큼은 무조건 사돈이 계신 청주에서 진행하겠다고 오래전부터 못 박아 둔 터였기에 아이들이 날짜를 정하고 장소를 예약해 통보하기 전까지는 그리 실감이 나지 않았었는데, 막상 모든 일정이 구체화되자 다양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상견례는 어떻게 하는 거지? 거기서 무슨 말을 하지? 옷은 어떻게 입지? 사돈댁에서 우리 아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까? 등 딸을 둔 부모로서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들로 인해 우리는 온갖 상상을 하며 상견례를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 주변에서 모든 과정을 앞서 거친 선배들에게 묻고 또 물었었다. 물론 아내도 누구는 이랬다더라, 또 누구는 요랬다더라, 상견례 날이 다가올수록 우리에게 먼저 경험한 이들의 온갖 정보들이 수집되고 있었다.
물론, 딸아이를 통해 사돈댁에 관한 정보도 차곡차곡 전해지고 있었다. 시어머니께서는 키도 크시고 성품이 훌륭하셔서 가끔 인사 드리러 시댁에 머물 때면 주방에는 얼씬도 못하게 하시며 아침 식사까지 직접 차려주신다고 했으며, 시아버님께서는 술을 너무 좋아하시는데 아들만 둘을 두고 있어선지 소고기도 사주시고 자신을 딸처럼 그렇게 이뻐하신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곤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참 다행이다, 우리 아이가 좋은 분들을 만났구나 하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사돈댁을 한 번도 뵙지 못했던 터라, 상견례에 대한 막연한 상상만 이어질 뿐이었다. 아내는 딸과 함께 상견례에서 입을 옷을 준비하러 다녔고, 나도 마땅한 옷이 없었기에 아내의 권유로 정장 한 벌을 새로 마련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큰아이였다. 잦은 야근과 바쁜 회사 일로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 결국 상견례를 하루 앞둘 때까지 옷을 준비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결국 당일 아침 큰아이는 옷장을 뒤져 그나마 무난해 보이는 남색 재킷을 꺼내 들었다. 면접 때 입었다던 옷이었다. 아내가 한 번 훑어보더니 “그냥 그걸로 입으렴”이라고 짧게 말했다. 더 이상의 논의는 없었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다소 아쉬움이 남는 옷차림으로 청주를 향해 출발했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차 안은 묘하게 조용했다. 딸아이는 뒷좌석에서 수시로 거울을 들여다보았고, 큰아이는 창밖만 응시했으며, 아내는 핸드백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넣었다를 반복했다. 나는 운전대를 잡은 채 속으로 혼자 리허설을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무개 아버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인사말을 수차례 반복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육십 평생을 살아오며 이토록 긴장해 본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적지 않은 부담감이 느껴졌다.
예약된 한정식집은 청주 시내의 한적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주차를 마친 뒤 직원의 안내를 받아 룸에 들어서니 사돈댁 가족들이 이미 도착해 기다리고 계셨다. 딸아이의 귀띔대로 시어머니 되시는 분은 정말 키가 크고 단아한 인상이었으며, 시아버님 되시는 분은 선한 인상에 미소를 띠고 계셨다. 다소 서먹한 분위기 속에서 준비했던 첫인사를 나누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리허설한 말이 그래도 제때 나와 주었다.
자리에 앉아 식사가 시작되자 대화는 점차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시아버님께서 먼저 술 한 잔을 권하셨다. “술 좋아하십니까?” 하는 물음에 나는 “좋아하는 편입니다”라고 솔직하게 답했다. 그 한마디가 얼음을 깨뜨렸는지 시아버님의 얼굴에는 반가움이 서렸고, 딸아이가 그토록 자랑하던 그 넉넉한 미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 같은 상견례 자리를 위해 사돈어른이 오랜 시간 담궈 놓은 산삼주가 개봉되어 몇 잔 건네졌고, 기분 좋게 취기가 오르며 우리들의 대화는 아이들의 근황에서 시작하여 일상적인 이야기와 지나온 삶의 여정으로까지 폭넓게 이어졌다.
시어머니께서는 우리 딸아이가 처음 인사 왔을 때 이야기를 꺼내셨다. 음식을 가리는 것 없이 맛있게 먹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때부터 이 아이는 우리 며느리다 싶었다고 하셨다. 그 말에 아내가 웃으며 “저희가 잘못 가르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재치 있게 답하자, 좌중에는 화기애애한 웃음꽃이 피었다. 나는 그 웃음 속에서 비로소 긴장이 조금씩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식탁을 사이에 두고 두 집안은 서로를 알아가고 있었다. 초면의 어색함은 대화가 이어질수록 점차 옅어졌고, 아이들이 몰래 준비한 깜짝 이벤트인 양가 선물 증정식을 통해 상견례 분위기는 한층 화기애애해졌으며, 이어진 사돈어른과의 이런저런 소소한 대화를 통해 삶의 궤적은 어디나 크게 다르지 않음을 실감했다. 고된 노동과 자식에 대한 염려, 그리고 흘러가는 세월 속에 어느덧 자녀들의 상견례 자리에 마주 앉게 된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리를 마무리하고 주차장으로 걸어 나오면서 아내가 조용히 내 팔을 잡았다.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그 손의 온기만으로도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알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참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왔고, 온갖 일들을 함께 겪으며 버텨 온 그 시간들이 오늘 같은 날을 맞이하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문득 깨달았다.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우니 차 한잔 하고 가자는 사돈어른의 제안에 양가 가족들은 근처 커피숍을 찾아 상견례에서 못다 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헤어졌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잡아준 호텔에서 편안한 하룻밤을 보냈다.
귀갓길, 차 안 분위기는 올 때와 사뭇 달랐다. 아이들은 선약으로 인해 따로 움직였고 우리 부부는 청주에 왔으니 청남대는 꼭 보고 가라는 사돈어른의 권유에 따라 청남대를 여유 있게 둘러본 뒤 귀로에 올랐다. 피곤했는지 조수석에 앉은 아내는 눈을 감고 있었으나 잠든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운전대를 잡고 어두워지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상견례란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의 양가 가족이 공식적으로 처음 만나 인사하고 혼인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자리이다. 그동안 수많은 상상과 걱정을 했던 것에 비해 정작 그 시간은 너무 짧았고, 놀랍도록 평범하게 지나갔다. 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 큰 산을 하나 넘었다는 안도감 그리고 무언가 양가 사이를 이어줄 단단한 주춧돌이 하나 놓였다는 것과 두 집안이 비로소 같은 방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느낌만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청주에서 안양까지, 우리는 그렇게 한 가족이 되어 가고 있었다.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