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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 머물리

한국문인협회 로고 오경미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0월 6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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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아웃. 사람이 떠나버린 방은 그곳에 머물던 사람을 닮았었다. 남겨진 방의 모습을 보며 나는 떠난 사람을 상상했다. 비어 있는 방, 그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한 권의 책을 펼치는 기분이 들게 했다. 게스트는 문을 닫고 떠나갔지만, 떠난 공간에 남겨둔 잔해들은 그 사람의 이름과
국적보다 더 선명하게 그에 대한 교양과 인격까지 증명하게 했다. 한국 그리고 서울의 외곽 지하철역 근처 민박집에서 제각각의 이유와 계획으로 머물다 떠난 사람들의 향기는 달랐다. 누군가는 침대 위에 감사함을 적어 놓았고 다른 누군가는 놀라움을 남기고 떠났다. 떠난 이들은 자
기만의 방식으로 언제나 흔적을 남겼다. 소복하게 쌓인 하얀 눈 위를 걸으면 발자국이 남는 것처럼 머물다 간 자리에도 자국이 남았다. 그 흔적을 지워 처음으로 되돌리는 작업이 내가 하는 일이다. 체크아웃은 나에게 시작을 의미했다. 나는 객실에 머물며 그곳에 남기고 떠난 사람의 흔적을 지웠고, 방문을 닫았다. 마치 다 읽은 책의 마지막 장을 덮듯이.

 

‘민박집 머물리’ 흔히 사람들은 에어비앤비 숙소라고 불렀다. 에어비앤비란, 사용자가 자신의 방이나 집 그리고 별장 등 사람이 지낼 수 있는 공간을 임대해 투숙객에게 제공하는 플랫폼을 말했다. 쉽게 말해 개인이 보유하거나 거주 중인 공간을 숙소로 제공해 이익을 얻는 숙박 사업이었다. 이곳에는 총 아홉 개의 방이 있었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아홉 개의 방은 마주하고 있었고 모든 시설은 청소 외에는 무인 원격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다. 예약 앱을 통하여 사람들은 예약했으며 호스트가 다시 관리 앱에 올리면 숙소 예약 일정에 맞추어 미리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정돈과 청소 계획 등이 이루어졌다. 이곳은 1960년대에 지어진 낡은 건물이었지만 바로 앞에는 경의중앙선, 1호선, 경춘선 3개 노선이 지나갔으며 서울 북동부를 잇는 20여 개 버스가 다니는 정류장과 맞닿아 철로와 버스가 연결되어 접근성이 좋은 곳이었다. 도로에서부터 건물 안까지는 자연스럽게 나선형 계단으로 이어지도록 설계가 되어 있어서 입시철이나 늦은 시간에도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 누구나가 쉽게 이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미 오래전부터 이곳은 숙박업으로 이용되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자 낡은 공간을 찾는 고객도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허름한 건물을 찾는 사람들도 허름했다. 건물도 세월을 이길 수가 없었다. 버려지던 아홉 개의 방이 있던 공간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건, 새 주인이었다. 비록 임대였지만 젊은 주인이 리모델링이라는 구조와 세대 유행에 맞는 아이디어를 통해 숙소 공간이 재탄생된 것으로 보였다.
유럽의 어느 성을 떠올리게 하는 민박집 안은 순백색과 코발트색 조합으로 내부를 통일시켰고, 외양은 비록 허름했지만, 내부는 올망졸망한 아주 예쁜 집이었다. 거기에 정갈함과 청결함 그리고 편안함까지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해외에서 외국인들이 에어비앤비를 통해 많이 찾는 한국 숙소였다. 처음 내가 이곳에서 시범 청소하던 날, 불안해서 무척 떨었던 기억이 있다. 할 수 있을까? 나의 청소가 남을 쾌적하게 하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그 이유는 나 역시도 숙소 예약 플랫폼을 통해 숙소를 이용한 후, 여행 숙소에 대해 불평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가 직접 손님을 맞게 되자 내게 던지는 의문이었다.
‘민박집 머물리’.
24시간 운영되는 방문자 숙소였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K문화의 붐을 타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이었다. 개방형 출입구인 1층에서부터 반원으로 3층까지는 둥글게 연결된 계단으로 전 세계 누구나 쉽게 출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투숙하려면 투명유리인 중문을 통과하여야만 했다. 중문은 연한 민트색 틀로 이곳을 방문한 여행객들에게 상큼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한국을 찾아오는 방문객 중에 이곳 ‘머물리’에 예약이 확정된 사람들에게만 허락되는 공간이었다. 비밀리에 핸드폰으로 전달된 네 자리 숫자를 누름으로써 ‘민박집 머물리’ 공간을 세계인은 공유할 수 있었다. 이 숙소의 모든 기본색은 백색이었다. 천장에서 벽으로 이어지는 바닥의 걸레받이 부분도 순백색이었다. 짙푸른 카펫이 복도 바닥에 깔려 있어 방 안으로 향하는 복도를 걸으면 마치 구름 위를 걷듯 부드럽고 폭신해 대접받는 기분까지 들게 했다. 두어 걸음 걸을 때마다 하얀 벽면에는 형이상학적인 그림이 걸려 있어서 보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감상은 제각각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걸어 놓아 편안함과 세련미까지 느껴졌다. 나는 청소하러 짙푸른 카펫이 깔린 복도를 하루에도 몇 번을 오가며 그림을 마주쳤고, 그때마다 생각했다.
‘대체 뭘 그린 것일까?’
이곳에 와서 첫날과 둘째 날까지는 액자 속 그림 의미를 찾아내려 했지만,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은 객실 청소였지 그림 감상이 아니었기에 접어두기로 했다. 그렇게 내 일인 청소에 더 집중하게 되면서 일상의 의미나 해석 따위는 가볍게 지나쳤다. 어쩌면 의미를 찾다가 지치면 아무 생각 없이 편히 쉬다 가라, 고 주인이 어려운 그림 액자를 걸어두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인접한 대학교가 있어 ‘젊음의 거리’라 불릴 정도로 젊은 층이 북적거리는 오거리를 내려볼 수 있는 건물 3층엔 ‘민박집 머물리’가 있었다. 1960년도에 준공된 건물이라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시설도 없었다. 층간 이동을 할 수 있는 건 계단이었고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한국의 가정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복도 맨 끝에는 공유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 공간에는 세탁과 건조는 물론 간이 주방과 공유 카페가 비치되어 있었다. 여행객들이 편하게 머물다 갈 수 있도록 잡다한 비품까지도 세심하게 공용공간에 준비된 외국인 전용 민박집이었다. 그러다 보니 중문 사이로 내국인과 외국인이 구분되었고, 이곳에서 머무는 시간은 마치 외국의 어느 작은마을 뒷골목에서 내가 끼어들어 생활하는 그런 기분도 느끼게 해 주는 곳이었다.
퇴실 신호는 객실의 열린 문이었다. 책장을 펼치듯 그 열린 문 안으로 나는 청소도구를 들고 들어가 내부를 살폈다. 발을 방 안으로 내디디면서부터 떠난 자의 흔적 찾기가 시작되었다. 책의 첫 페이지를 읽을 때와 빈방에 첫발을 디딜 때, 같은 종류의 설렘과 서늘한 긴장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곳에 머무는 동안만큼은 철저히 일상의 의무를 잊은 채, 그 세계의 호흡에 나를 동기화하게 되었다. 그녀가 떨구고 간 바닥의 긴 머리카락은 침실 바닥을 거쳐 침대 위 베갯잇에도 한 올씩 발견되었다. 나는 찍찍이가 부착된 돌돌이를 꺼내어 머리카락에 대고 문질렀다. 이 방 안에 머물던 누군가의 잔해가 내가 밀어대는 돌돌이에 밀려 동그랗게 찍찍이에 달라붙었다. 방문 앞에서부터 시작된 시간의 잔해들은 욕실 변기에 덧끼워진 종이 커버와 샤워기 밑 하수구 망 위에도 발견되었다. 고양이 캐릭터가 그려진 종이 변기 커버에는 중국어 간체자가 적혀 있었다. 변기 커버의 흑색을 띤 갈색 머리카락은 길고 가늘었다. 다시 돌돌이로 밀었다. 힘없이 분리된 머리카락은 아직 끈적임이 남아 있는 찍찍이에 감겨들었다. 덧끼운 일회용 종이 덮개를 벗기며 물을 내리자 흰 도자기 변기 물구멍 사이로 변기 물이 소리를 내며 잔해들을 삼켜버렸다. 화장실 청소용 세제를 바닥에 뿌렸다. 향기를 품은 세제가 바닥에 거품이 되어 버려졌고, 수세미로 문지르자, 바닥에 머물던 잔해들이 향기 품은 세제에 섞이며 지워지기 시작했다. 샤워기를 틀어 바닥에 뿌렸다. 거품과 함께 몽글거리며 바닥에 나뒹굴던 여행자의 잔해가 욕실 배수구로 흘러 들어갔다.
배수구 망 사이로 아직도 시간의 잔해는 걸쳐 있었다. 배수구 망을 열어 걸터앉은 젖은 머리카락을 칫솔로 긁어내렸다. 칫솔모에 남겨졌던 여행자의 시간 흔적이 한 움큼 끌려왔다. 한 움큼 쥐어진 흔적을 마른 휴지에 쌌다. 이곳에서 머물던 시간 여행자의 모든 흔적을 휴지에 싸서 버렸다. 그 흔적을 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이 방에 머물던 이는 나르시시즘 성향의 긴 머리의 여자였고, 중국에서 왔으며 최소 3일 이상 이곳에서 지냈고….”
나는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처럼, 긴급 사건 현장에 투입된 수사관처럼 방 안에 남겨진 물건들을 정리하며 이곳에 머물던 사람을, 이곳을 떠난 후에야 만났다. 떠난 이가 두고 간 것에는 그 사람이 남겨져 있다. 퇴실한 이에게는 한때 좋은 기억이 담긴 추억거리였을 수도 있었지만 막 입실한 나에게는 무조건 쓰레기가 되어 버려졌다. 청소라는 이름으로.
체크아웃이 4개 있는 날이라 수정이 투입되는 날이었다. 아직 출근하지 않은 수정을 기다리다 작업준비를 하며 1번-엠마 방문을 열었을 때였다. 드디어 못 볼 꼴을 보고야 만 것이다. 준비 없이 느닷없는 상황에 맞닥뜨리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열었던 방문을 다시 닫아버리는 것이었다. 빈방은 빈방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일단, 다른 방 먼저 작업을 마친 후에 수정과 함께 작업하자, 고 방향을 막 잡았을 때였다. 왜냐하면 이 방을 먼저 시작했다가는 기운이 빠져서 다른 방을 하기가 힘들 거라는 생각이 앞섰다. 신입인 수정이 투입되는 날이기도 했지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녀가 오기 전, 얼른 체크아웃된 다른 방을 청소해야 했다. 그래야 기분이 나쁘지 않게 수정과 공동 작업으로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방을 그녀보다 먼저 열어야만 했다. 복도 사이로 열린 문이 보였다. 체크아웃 신호였다. 7번 방이 열린 것이었다. 체크아웃된 방을 확인하려 빠른걸음으로 복도를 따라 7번 방으로 갈 때였다. 서둘러 나오느라 1번 방에 청소도구를 두고 나온 것을 그제야 알았다. 다시 돌아가 헐떡이며 1번 방문을 열었다. 수정 소리가 들렸다.
“어! 엠마 방 하실 거죠!”
언제 도착했는지 쩌렁쩌렁 큰 소리로 수정이 외쳤다. 엠마 방은 1번 방 이름이었다. 숫자로 방을 구분하는 나와 달리 수정은 항상 이름으로 방을 구분했다. 게다가 덩치만큼이나 목소리가 컸다. 아니, 목소리가 큰 만큼이나 덩치가 컸기에 나는 그녀의 덩치도, 쩌렁쩌렁 울려대는 소리도 싫었다. 그녀는 뚱뚱했고 육중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큰 목소리만큼이나 욕심이 많았고 기가 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목소리 기세가 더 하늘을 찌를 듯 들렸다.
얼른 청소함을 들고서 나온다는 것이, 1번 방문 앞에 청소함을 들고 서 있는 모양새가 되었다. 수정이 안 온 틈을 타서 먼저 7번 방으로 가려는데 이미 그녀가 7번 방에 들어서 있었다.
“그럼, 시작하세요, 엠마 방!”
수정은 선심 쓰듯이 내게 1번 방을 양보했고 그때 나는 단호하게 말하려다 말이 꼬여버린 걸 알았다.
“엠마 방은 같이해요.”
이렇게 말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말이 꼬였다.
“엠마 방은 같이 할까요?”
오늘 체크아웃된 방을 보고 놀란 탓인지 ‘-ㄹ까요?’라고 말끝을 끝낸 것이었다. 나는 다시 문장을 고쳐 말했다.
“오늘은 같이해야 해요!”
단호하게 말하려고 ‘같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고쳐 말했다. 
“오늘만은 같이 하면 어떨까요?”
그런데…. 나는 똑같은 실수를 하고 말았다. 두 문장은 모두 상대의 의견을 묻는 정도였지, 나의 단호함을 말해주지 못했고 내 입 밖으로 나온 말들은 내 성격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만든 나에게 화가 났다. 하지만 입안에서만 맴돌았을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머뭇거리자, 그녀가 내 말뜻을 이해했다며 말했다.
“알았어요! 7번 방 여기 내가 할 테니 1번 하세요.”
그녀가 쏙 7번 방 안으로 들어가 버리자, 복도를 가득 채웠던 그녀 목소리도 7번 방으로 들어갔다.

 

민박집 호스트는 함께 일할 수 있는 편한 사람을 뽑으라고 내게 말했고 수정은 내가 청소일 시작한 지 채 한 달이 안 되었을 때 내가 선택했던 아줌마였다. 면접 보던 날, 수정은 자신의 큰 손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보세요, 저는 손과 발이 보통 남자들보다 커요, 그래서인지 힘쓰는 것은 전부 할 수 있어요. 시켜 주시면 뭐든지요!”
그날도 큰 소리로 말했다. 자신감을 가진 그녀가 맘에 들었다. 마침 계절이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시점이라 시기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겨울 히터들을 정리해야 할 때였고 그녀는 그 고민을 바로 해결해 버렸다. 큰 두 손을 이용해 히터를 들고 단숨에 다락방 위까지 올려놓고는 자신 손에 묻은 먼지를 가볍게 털기까지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마치 동화책에서 만난 제주 설문대 할망이 눈앞에 나타난 것처럼 놀라웠다. 같은 여자인 내가 보기에도 대단해 보였고 같이 일하면 주인 말처럼 내가 편할 것 같았다. 꼼꼼하고 차분한 사람도 마음에 들었지만, 힘자랑하는 수정을 나는 선뜻 주인에게 추천했고 그렇게 수정이 나의 파트너가 되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되어 가자, 수정에게서 품어져 나오던 힘은 사라졌고, 그녀는 시간에 쫓기듯 분주했다. 달라지지 않은 것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뿐이었다.
민박집 청소는 가정에서 가족을 돌보며 살림했던 사람에게 적합한 일이었다. 손이 빠르고 눈치와 재치가 있는 아줌마들에게는 강점이 있었다. 왜냐하면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이 일은 찾아온 이들에게 한국 정서를 알리기도 하였지만 정갈하고 깨끗하고 편안하게 머물다 떠날 수 있는 집을 제공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정갈함과 깨끗함에 대해 기준이 되는 것은 청소 상태, 그중에서도 머리카락이었다. 무엇보다 청소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완벽하게 해야 했다. 자칫 객실 안 침구류에서 한 올의 머리카락을 발견했다면 바로 후기가 올라와 가차 없이 형편없는 평점으로 평가하였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업소 이미지에 타격을 주게 되고 곧 매출과도 연결되었다. 이런 공간을 임대해 투숙객에게 제공하는 플랫폼 사업을 하는 이들에게 청소는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중요한 일이었다.
종종 수정은 배달 전문 피자점을 운영하는 사장이라며 임대료가 감당이 안 되어 임대료를 벌러 왔다며 우울해했고, 느닷없이 명품 가방까지 둘러메고 와서는 초등학교 2학년 딸 학부형 간담회가 있는 날이라며 갑자기 공지글에 남기고 말없이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내게는 40살이 되었다, 고 말하던 수정은 20대 민박집 주인에게는 50대 이혼녀가 되어 있더니 결국 측은지심을 불러일으켜 조카뻘인 민박집 주인을 제 편으로 만들고는 민박집에 아예 제 아이까지 데려왔다. 마치 수정이 주인인 것처럼.
갑자기 예쁜 아홉 개의 방이 생긴 아이는 기분이 좋았는지 이방 저방 과자를 들고 뛰어다녔고, 청소가 끝나 숨죽여 체크인을 기다리는 객실에서 아이를 놀게 해 결국 객실 순백색 이불에 갈색 초콜릿을 묻혀 놓고야 말았다.
처음엔 실수니까, 아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이해하였지만 점점 이런 일이 잦아질 때마다 초등 2학년인 제 아이에게 민박집이 떠나갈 정도로 수정이 먼저 호통을 쳐대자, 이 가족이 만든 상황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민박집 머물리, 이곳에 수정이 초등학생 딸과 출근한 지 두 달이 되어 가던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까지 엄마에게 덤비는 상황이 벌어졌다. DNA의 힘은 대단했다. 수정의 목울대를 초등 2학년인 딸이 그대로 닮았었다. 체크아웃이 된 빈방에서 싸워대는 모녀의 목청은 복도까지 울렁이게 했다. 외국인 여행객들에게 민망하기도 하여 나는 나, 수정은 수정. 그 이후 우린 서로 파트너였지만 각자 일했다. 그렇게 우린 서로 체크아웃을 확인 후, 각자 분산되어 일하고 헤어지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1번 방을 열어 본 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수정이 들어간 7번 방 청소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퇴실한 1번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문 입구에는 그동안 생활하며 생긴 객실용 쓰레기 비닐봉지들이 한가득 쓰레기를 머문 채 놓여 있었다. 욕실과 마주하는 벽에는 화장대로 사용하는 원목 원형 거울이 선반과 함께 놓여 있어서 여자들은 이곳에서 머리를 만지거나 화장하는 공간이었다. 방금까지 사용하다가 나간 듯 온열감이 느껴지는 드라이기가 전원 콘센트에 꽂혀 있었다. 1번 방에 두고 간 물건을 정리하며 머물던 이의 흔적을 지워갔다. 하나씩 하나씩.
수정이 들어간 7번 엔조방, 청소가 끝나길 기다리며.

 

오전 10시 25분, 서울의 북동부 대학가가 몰려 있는 역으로 나는 출근했다. 이곳은 1호선과 경의중앙선이 지나고 있어서 1호선을 타면 서울의 종로나 광화문까지 쉽게 갈 수가 있어서 공연을 보러 온 외국인 여행객들이 많았다. 서울 번화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숙박비로 서울 중심에서의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공연뿐만 아니라 동대문과 명동에서 쇼핑도 편안하게 할 수 있었고 경의중앙선을 타면 강남과 김포, 인천공항까지도 번거롭지 않게 이동할 수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건 대학가 밀집된 곳이라 젊은 취향에 맞춰 먹고, 놀고, 마실 것이 다양했다. 굳이 먼 길을 물어물어 찾아가지 않아도 역 근처에서 한국인의 문화에 쉽고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게다가 서울의 동쪽과 북쪽을 연결하는 큰 도로가 인접해 있어서 20여 노선의 버스들이 길에서 길로 이어져 대중교통으로 마음만 먹으며 대한민국의 어디든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하철역까지는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았다. 나의 유일한 이동 수단은 항상 걷기였다. 도로를 걷고 지하철 역사 계단을 올라 역 안으로 들어선 나는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하지도 않았다. 언제나 에스컬레이터를 타서 지하철역 1번 출구로 올라갔고 맞은편 계단으로 내려가 2번 출구로 나왔다. 2번 출구를 나오면 역과 동네를 오가는 두 개 노선의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었고 여느 역처럼 역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인도를 따라 늘어선 가판대에는 다양한 길거리 상품들이 진열되고 있었고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판매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윙. 윙...윙...윙...윙...윙...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1번 역 출구가 가까워지자, 출구에서 들어온 바람은 계단을 타고 들어와 내 뺨에 닿았다. 출구를 내려가는 계단 귀퉁이에는 길게 역사 계단까지 늘어선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천천히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며 계단을 내려왔다. 길게 이어진 줄은 마을버스 정류장 앞에서야 사라졌다. 어쩌면 줄서기는 여기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나는 마을버스 정류장을 뒤로하며 보도 건너편에 있는 붉은 벽돌 건물로 향했다. 붉은 벽돌 건물은 지하철 역사 바로 앞 오거리에 있었다. 교통이 좋아서 눈에 잘 보이는 건물이라 병원에서 음식점과 주점 그리고 화장품 가게까지 큰 상가가 있는 곳이었다. 건물 옆으로는 골목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그 골목으로 이어지는 상가 1층에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좁은 입구가 나 있다. 입구 위에는 이국적인 글씨체가 새겨진 어닝 간판이 있었다. 입구를 따라 들어가면 나선형 계단이 나오고 그 계단을 오르면 내가 일하는 3층으로 이어졌다. 내 걸음이 멈춘 곳, 휘갈기듯 쓴 필기체라 언뜻 보기에만 이국적일 뿐, 한글이었다. 이곳이 나의 일터인 ‘민박집 머물리’였다.
윙. 윙...윙...윙...윙...윙...
다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핸드폰은 제 몸을 떨어대더니 내 늘어진 뱃살까지 마사지하듯 흔들어댔다. 핸드폰을 꺼내어 잠금화면을 열자, 경련을 일으키던 핸드폰도 조용해졌고, 화면에는 오늘 지시 사항을 알리는 문자가 적혀있었다. 원격으로 운영되는 에어비앤비 시스템에서 주인 눈은 CCTV였고 입은 SNS 문자였다. 그런 이유로 항상 작업을 할 때마다 핸드폰은 켜둬야 했다. 종종 급하게 변경하거나 여행자들이 여러 상황에 맞게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7번 방 체크아웃!
핸드폰에는 7번 방부터 들어갈 수 있다, 청소해도 된다, 는 일종의 지시 업무가 적혀 있었다. 7번 방 이름은 엔조, 이곳에서는 숫자가 아닌 ‘엔조’로 불렀다. 7번 방, 엔조에는 호주에서 온 모녀가 머물고 있었다.
-가방을 올려줄 분 계실까요? 호주인인데 여자 두 분이라 계단만 올려주시고 수고비 만 원 받으시면 됩니다. 동네 아무나 부탁드려요.
다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다음 문자를 받고 나서였다. 
“지금 숙소에 도착했대요.”
갑자기 받은 문자는 서로 꼬리를 이어주고 받았다.
“도착했다고요? 당장 어디서 사람을 구해요.”
“맡아서 하는 알바 학생이 있는데 오다가 사고가 났대요.”
“잠시만요.”
주인은 운영하는 숙소와 한 시간이 훨씬 넘는 곳에서 살고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숙소와 10분 이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었다. 처음 지원서를 냈을 때 주인은 내게 딱 한 가지만 물었다.
“숙소와 몇 분 거리에 사시죠?”
그때 알았다. 경험도 없는 데다가 경력단절녀인 내가 합격한 것은 단 하나. 가깝다는 이유라는 걸. 나 역시 이곳에 지원한 이유가 집과 가깝다는 이유였으니까. 우린 서로 조건이 정확히 맞았다.
당황해서인지 긴박해서인지, 지금 당장 짐을 들어 달라고 부탁할 만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장맛비까지 내리는 상황이라 더더욱 망설여졌다.
“지금 숙소 앞에서 비 맞고 계신다네요.”
어쩌면 주인은 이런 위급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나를 채용했을 것이다. 머릿속은 점점 하얘지고 물에 개어 놓은 석고처럼 굳어지기 시작했다. 적재적소에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는 욕심도 가슴속으로 들어찰 때였다.
“어떻게 안 되겠어요?”
주인이 보낸 문자를 보자, 갑자기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대학가인데 설마, 지나가는 남자가 없겠어? 학생 아무에게나 부탁하자!’
주인이 보낸 다급한 문자를 보고 난, 우산을 들고 빗속을 달려 신속하게 숙소 앞에 도착했고 노란머리 호주인을 찾았다. 하지만 노란머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떠오른 건 호주인이라고 모두 금발이라는 내 착각이었다. 이번엔 머리색을 수정해 키가 크고 코가 높이 치솟은 서양인을 찾았지만, 그 역시도 없었다. 더 기가 막힌 건 폭우가 쏟아지는 거리는 한산했고 오가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골목으로 향하는 숙소 앞 좁은 입구에 비가림 목적으로 설치한 어닝 간판 아래에 80대와 50대로 보이는 동양 여자 두 명이 서 있었다. 편하게 동네 어귀에서 마주칠 법한 한국인 모습이었다.
‘호주인은 아닌데?’
외모로 국적을 확인할 수 없어 살며시 다가가 이어질 다음 영어 대화 문장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음…, 익스 큐즈 미, 휄어 아유 프롬?”
“이제 오셨군요! 한참 동안 기다렸어요. 이 짐 올려주세요!”
두 모녀가 기다림에 지친 듯 짐가방을 가리키며 말했고, 나는 예상이 빗나간 것이 허망하여 재확인하려 물었다, 편안하게 한국어로.
“호주에서 오셨나요?”
그녀는 지금껏 호스트가 고민했던 7번 방, 엔조를 예약한 호주인이었다. 노모는 다리가 아파 계단을 오를 수가 없다며 신경질적으로 투덜거렸고, 중년의 딸은 보름 동안 이곳에서 머물 것이라 말했다. 딸은 나와 함께 짐이 담긴 여행 가방을 들고는 낑낑대며 어닝 간판 아래의 나선형 계단을 올랐다. 객실로 가는 내부 모든 것들은 바닥만 빼고 모두 흰색이었고 중간중간 포인트로 민트색 소도구들이 진열되어 있어서 깔끔하고 시원한 느낌이었지만 무거운 짐 때문이었는지 그날은 덥고 진열된 장식마저도 답답했다. 마지막 계단을 오를 때였다. 나는 힘을 주었던 팔을 바꾸며 잠시 멈춰 고개를 들었다. 노모의 바짓가랑이 사이가 짙은 검정으로 선명하게 보이며 축축한 느낌이 나에게 전해졌다.
깔끔한 민트색 유리문이 공간을 가로막았다. 진행 속도가 멈추자, 다리가 아팠던 노모의 인내력은 문 앞에서 한계를 드러내고야 말았다. 엘리베이터를 운운하며, 또 에스컬레이터를 운운하며 중년의 딸에게 화를 내뿜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입에서 불을 뿜어대는 용을 떠올리게도 했다. 하지만 나는 노모의 바짓가랑이 축축함이 더 찜찜하게 느껴졌다. 얼른 스마트 키를 눌러 민박집 정문을 열었다. 복도를 따라 두 모녀가 묵을 객실까지 걸었다. 나는 80대 노모를 부축했고, 중년의 그녀는 짐 가방을 끌었다. 드디어 두 모녀가 묵을 방에 도착했을 때, 노모는 83세였고 그녀는 나와 나이가 같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번 방문은 한국을 그리워하는 노모를 위한 모국 방문이라고 했다. 단정 지어서 말은 안 했지만 어쩌면 노모에겐 마지막 여행일 수도 있을 것, 이라며 내 귀에만 들리게 속삭였다. 함께 들었던 캐리어를 바닥에 내려놓아 끄는 바람에 그녀 소리가 바퀴 소리에 가려져 뚜렷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2027*, 네 자리 숫자와 기호의 조합. 주인이 보내준 비밀번호를 누르고 호주인들은 객실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들이 다녀간 방은 남자들이 사용한 방보다 더러웠다. 처음 청소할 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미쳤네’였다. 너무 더러워 방을 보며 ‘미쳤네’와 ‘미쳤군’ 외에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갈수록 예민 반응을 일으키던 나를 발견했을 때, 머물던 사람의 특징을 분류하게 되었다. 긴 머리카락의 그녀들은 같은 제품의 일회용 변기 커버를 사용했고. 염색과 속눈썹을 자르고 뷰러를 이용해 눈 화장을 했으며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해 긴 머리를 건조했다. 이런 특징의 여자들이 다녀간 방은 대부분 그들은 장기 투숙했으며 방 안은 항상 더러웠다.
지금 나는 문을 열자마자 ‘미쳤네’와 ‘미쳤군’밖에는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바닥에 널려 있는 제각각 재질과 크기의 비닐봉지들은 시체처럼 나뒹굴고 있었고 그중 검정 비닐에는 일회용 배달 음식 용기가 들어 있었다. 하얀 플라스틱 용기 안에는 빨간 국물에 담긴 조각난 어묵과 손가락 두께의 떡이 온몸이 붉게 떡볶이 고추장에 물들어 나뒹굴고 있었다. 화장대 거울 아래에는 눈썹을 올리는 미용 도구인 뷰러가 양다리를 벌려 널브러져 있었다. 자르다가 남았는지, 붙이다가 남았는지, 조각난 검정 속눈썹은 마치 몸통 잘린 지네처럼 잘려져 나와서 투명 속눈썹 테이프와 나란히 거울에 붙어 있었다.
객실 안 탁자 위에는 먹다 만 김밥 두어 줄과 이미 떡이 불어터진 채, 담긴 일회용 떡볶이 배달 그릇이 뚜껑이 열린 채 있었다. 바닥에는 떡볶이 국물에 김밥을 찍어 먹다가 떨어졌을 거라 예상되는 고추장 국물에 더럽혀진 김밥 몇 개도 숙소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마치 범행 현장처럼 옆구리 터진 김밥은 고추장 붉게 물든 말라비틀어진 채, 음식물 쓰레기로 숙소 바닥에서 발견되었다. 기가 막힌 건 떡볶이 국물에서 탈주하다가 현장에서 압사당해 납작하게 눌린 흰 쌀밥이었다. 흰 쌀밥은 김밥에서부터 삐져나와 흩어진 김밥 속 재료와 바닥에 말라붙어 있었다. 참혹한 현장을 보며 어디서부터 수습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너는 이렇게 살았구나. 쯧쯧….”
단기 숙박이든, 장기 숙박이든 누군가 머물던 흔적 속에서 그 사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흔적을 지우면 다시 체크인했고 다른 누군가가 그곳에 머물렀다, 체크아웃할 때까지.
만남과 이별, 머묾과 떠남. 둘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빈방은 그 사람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삶의 밀도를 아주 솔직하게 고자질해 주었다. 어쩌면 여행이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인간은 가장 본연의 ‘정리되지 않은 습관’을 공간에 흘리고 떠나가게 했다. 머물다 떠난 방은 떠난 이의 내면과 삶의 자세도 읽게 했다.
게스트 입실 시간은 오후 3시, 퇴실 시간은 오전 11시였다. 내 업무 시간도 주로 오전 11시에서 오후 4시 사이였다. 간혹 늦은 퇴실이나 이른 입실을 하겠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었지만, 늘 같은 시간에 객실 순서나 청소 속도를 조절했다.
아직 얼굴도 본 적 없는 민박집 주인은 20대였고 아침마다 SNS에 그날 해야 할 일들을 적어서 공유했다. 그 일들이란, 게스트 입실 일정이나 원하는 것 등 그날 상황에 따라 달라졌기에 핸드폰 알람 소리에 귀 기울여 작업했고 문자 알람에 하던 일을 멈추고 핸드폰을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업무를 시작했던 첫 주 동안은 눈치를 채지 못해 일을 마친 후에야 문자 확인했었다.
“핸드폰 들고 청소하라니?”
나에겐 번거롭고 불편했었다.

 

“출근했습니다!”
11시 전후, 핸드폰 액정 화면에 적어 발신했다. 단체 SNS에 올리는 문자가 청소 시작이 되었고 그 시각부터 시급이 적용되었다. 하루 일을 마치면 그날 작업한 영상을 다시 SNS에 올렸다. 작업종료를 알리는 문자와 함께.
“퇴근합니다!”
‘출근’과 ‘퇴근’ 사이. 그 공간은 시간당으로 환산되었다. 바삭한 크래커 가루처럼 시간과 시간 사이 부서지는 자투리 시간도 0.25 단위로 합산되어 계산되었다. 내 하루에 만남과 이별 그 사이에 있는 공간 값이었다. 무인으로 운영되는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나는 언제나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미세먼지 청소포로 정전기를 이용해 바닥을 닦을 때마다 일어나는 먼지 때문에, 때론 순백색의 침대와 이불잇을 교체할 때마다 풀썩거리는 먼지를 차단할 목적이었다. 어쩌면 세상을 차단하고 나를 보호하고 싶었던 이유였기도 했다. 다행히 주인이 업무 지시를 항상 핸드폰 속 알림으로 진행되어 나는 입을 열지 않아도 되었고, 썼던 마스크를 벗지 않아도 되었다. ‘민박집 머물리’ 이곳에 머무는 시간은 나 혼자만을 위한 공간과 시간이었다. 동굴 속의 시간. 퐁… 퐁… 퐁… 퐁….
석회암 동굴처럼 ‘머물리 동굴’은 나에게 완벽한 고립의 방을 내어주었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입구에서 차단되었다. 석회암 동굴의 내부는 어떤 인공적인 차음재로도 흉내 낼 수 없는 완벽한 침묵의 질감을 품고 있었다. 수만 년의 가라앉은 공기가 피부에 닿는 순간, 바깥세상의 지루한 대화들과 숨 가쁜 속도감은 단숨에 휘발되었다. 그 적막을 깨는 것은 규칙적인 수면의 울림뿐이었다.
퐁… 퐁… 퐁… 퐁….
수십 미터 높이의 종유석 끝, 중력을 견디지 못한 물방울이 아래로 떨어져 내릴 때마다 어둠 속에서 아주 매끄러운 주파수가 발생했다. 그 소리는 고독했지만, 그렇다고 쓸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불필요한 생각의 부스러기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정화의 신호에 가까웠다.
거대한 바위의 품속에서 내 호흡의 소리가 이토록 선명하게 들렸던 적이 있었나. 어둠은 시야를 가리는 대신, 내면의 감각을 예민하게 깨워주었다. 사방을 둘러싼 차가운 암벽은 외부의 어떤 위협으로부터도 나를 완벽하게 보호해 주는 가장 안전한 벽이 되었다. 이곳에서 맞이하는 시간은 무의미했고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두껍게 쌓여갈 뿐이었다. 떨어지는 물소리에 신경을 맡긴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온전한 고독이 주는 안락함이, 마치 잘 지어진 현대적인 성소(聖所)처럼 나의 정신을 고요하게 차오르게 했다. 비로소, 완벽하게 편안해졌다.

 

“문자 안 보셨죠? 호주 어르신이 사라졌대요.”
주인에게서 핸드폰 알람 문자를 확인하라는 독촉 전화가 왔다. 그러다 보니 작업 중에 알람에 귀를 기울여 일해야 하는 걸 잊었다. 가끔 핸드폰 둔 곳을 몰라 당황할 때가 있었고 핸드폰을 찾느라 정작 해야 할 청소를 못 해 난감한 적도 있었다. 고민하다가 내 허리에 핸드폰 복대를 두르게 되었다. 복대를 두르고 동굴 탐험을 시작했다. 80대 호주인을 찾아서.
머물리, 아홉 개의 방을 지나쳐 복도 끝을 향해 걸었다. 내 걸음이 멈춘 곳은 다용도실이었다. 이곳은 일하는 스태프들이 드나들며 창고 겸 다용도실로 사용하는 공간이었다. 총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 이곳은 접시와 그릇이 놓인 싱크대가 놓여 있고 개수대 옆 선반에는 원두를 갈아 내리는 커피기계가 설치되어 있다. 첫 번째 공간인 이곳은 주방 겸 카페 느낌이 들었다. 문을 열면 세탁기 위에 건조대가 놓여 있어서 스태프들이나 투숙객들의 세탁물들을 처리할 수 있는 세탁 공간이었다. 이 세탁 공간 가장 깊숙한 곳에는 청소도구를 비롯한 휴지나 세제 따위의 생활 비품 잡동사니들이 언제나 누구든 필요할 때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선반에 정리된 비품실이었다. 샤워커튼을 달아 놓음으로 공간이 분리되는 효과를 주었으며 출근과 동시에 작업복으로 갈아입는 공간이기도 한 곳이었다. 생뚱맞게 웅크린 80대와 커피를 내리는 50대 호주인을 이 공간에서 자주 마주쳤다. 누군가는 검은 커피를 내리고 다른 누군가는 검은 바짓가랑이 찝찝함을 지웠을 공간이었다. 나는 체크아웃을 앞둔 80대 그녀에게 건조기 속의 뽀송뽀송한 바지를 꺼내어 내밀었다.
동굴 벽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도 흔적을 남겼다. 탄산칼슘의 침전물이 아주 미세하게 쌓여 수천 년 후 거대한 종유석과 석순을 이루듯, 잠시 머무는 에어비앤비 방에도 게스트가 남긴 흔적들이 침전된다. 싱크대에 남겨진 로컬 포도주병 라벨, 침대 머리맡에 흩어진 영수증 파편들, 그리고 무질서하게 던져진 쓰레기 더미. 그것은 동굴의 종유석처럼 그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며 만들어낸 내면의 질서와 교양을 고발하는 투명한 흔적이었다. 동굴이 지구의 시간을 기록하듯, ‘민박집 머물리’는 단 몇 박의 시간 동안 한 인간의 인격과 삶의 자세를 압축하여 기록했고 나는 모든 시간의 흔적을 지웠다. 체크인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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