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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그 길에 들다

한국문인협회 로고 남상연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0월 6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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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매일 생각의 키만큼 자라고 있습니다
계절의 등성이를 몇 번이나 걸었는지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마음 골짜기 숲으로 깊어져
땅속 깊이 단단히 뿌리내린 수고로움 위에
더운 잎은 허공을 만지작거리며 노는 날입니다
곧게 자라지 않아도 마음 골짜기만큼 숲은 깊어져 있고
매일 매일 새로운 생각으로 바람은 불어오고 있습니다

 

열매가 기지개를 켤 때면
새의 날갯짓이 내어주는 부드러운 언사
물안개 골짜기에 드리워져 청순한 하늘을 스케치하다
내달리는 바람 고원의 호수를 생각하지만 습습한 숲의 말
그대로 알아차리는 날이 있을까요. 부지런한 햇빛과 약속하지 않아도
그런 날은 하늘 쟁반에 담을 열매들을 위하여
가지들은 일제히 웅성거리며
계절 언저리로 나침판을 읽어 가고 있습니다

 

오랜 길 끝에 나무에 기대서면
뿌리를 믿음 위에 내리고 있는 중이라고 본체도 하지 않는
길 안의 길은 울퉁불퉁 낙엽지는 소리
우리 안의 나이테, 책장을 넘기며
작은 뿌리 작은 길 위 경문을 하도 읽어
못한 말들 토대 위에 쌓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그가 내어준 푸른 잎의 몸짓
사랑스럽고도 부드러운 언사인 줄을
아직 떫고 신맛은 험악한 세상사와 까다로운 날들을
삭히고 있는 중이랍니다. 아름다운 나무는 자랄수록
울창한 이야기만 하지 않는지 나이테가 커질수록 스스로 외로워 
깊어지는 산협 아늑한 구릉에서 천천히 걸어 나와
예쁜 산등성이 나무 아래 좀 더 큰 모습으로 서서 
보이지 않는 그 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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