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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챙이

한국문인협회 로고 이명순(서울)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1월 6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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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게 펼쳐진 녹색 잔디 위에 천천히 선을 긋는다. 어떤 선은 짧고, 어떤 선은 길게 이어지며 수없이 많은 선이 잔디 위를 스쳐 간다. 그 선들은 단순한 표시 같지만, 그 위에는 잠시 멈추어 서는 마음과 다음을 준비하는 숨결이 함께 얹힌다. 잠시 시선을 낮추고 공을 바라본다. 힘을 빼고 조심스럽게 스틱으로 공을 치는 순간, 공이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하게 퍼진다. 그 소리는 나에게 작은 기쁨을 남긴다. 초록과 하양, 빨강, 그리고 맑은 소리가 어우러진 이 순간이 조용히 마음에 내려앉는다. 나는 인조잔디 위를 누비는 공을 보면 따뜻한 봄날, 모를 심기 전에 물이 가득한 논에 무리 지어 헤엄치던 올챙이들이 생각난다.
작년에 게이트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구장 옆의 좁은 공간에서 게이트에 매달아 놓은 공을 맞히는 연습만 했다. 반복되는 연습은 금세 지루해졌다. 나는 언제쯤 넓은 구장에서 게임을 할 수 있을까, 그날을 애타게 기다렸다. 가끔 사람이 없을 때 넓은 구장에서 연습하기도 했지만, 경기하러 여러 사람이 모이면 늘 자리를 내주고 다시 작은 공간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러다 드디어 게임에 참가하게 되었다. 실력이 없는 나는 주장이 보내라는 곳으로 공을 보내지 못했다. 공은 터무니없이 짧거나 길었고, 꼭 맞혀야 할 순간에도 공을 맞히지 못했다. 게이트를 통과하려고 하면 공은 게이트를 어김없이 비켜 갔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경기에 섰고, 동시에 내 부족함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주말이면 모두 모여 리그전을 한다. 제비뽑기로 팀을 정하는데, 다섯 명의 선수 구성원이 매번 달라진다. 그것이 게임의 묘미다. 오늘은 어느 팀이 될지, 누구와 같은 팀이 될지 은근히 마음이 쓰인다. 사람들은 잘하는 사람이 자기 팀에 많이 오기를 바라고, 실력이 부족한 사람이 끼면 달가워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내든 숨기든 속마음은 비슷하다. 두 번째 게임에 참가했을 때, 나와 한 팀이 된 사람이 나를 보더니“미쳐버리겠네”라고 말했다. 사람을 앞에 두고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의 사람됨이 문제라고 스스로 달래보았지만, 상처는 고스란히 내 몫으로 남았다. 나보다 일찍 시작한 그 사람도 못 하던 때가 있었을 텐데 올챙이 적 생각을 못 하는 것 같았다.
게이트볼은 팀 경기라 다섯 명이 모두 잘해야 한다. 우리 팀에 실력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내가 잘하지 못해도 1등을 하고, 어떤 때는 실력이 중간쯤 되는 사람들이 모이면 꼴찌를 하기도 한다. 경기가 시작되면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져서 경기가 과열된다. 내가 공을 어중간하게 놓으면 상대편이 그 공을 맞히고 스파크를 해서 우리 편의 다른 공까지 밖으로 내보낸다. 공 하나를 잘못 놓으면, 상대편이 공을 맞힐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우리 편에게는 큰 손해를 끼친다. 그럴 때면 몹시 부끄럽고 미안해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공이 구장 밖으로 나가면 다음 차례가 왔을 때, 구장 안으로 들여놓을 수 있을 뿐, 공격을 할 수 없다.
경기할 때,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내가 공을 보내지 못했다고 스틱으로 땅을 치며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는 운동하고 싶은 의욕이 한순간에 꺾인다. 잘하는 사람들도 처음부터 잘한 건 아닐 터인데 서운한 마음이 들어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후 며칠은 아예 구장에 나가지 않았다. 괜히 이 운동을 시작했나, 그만둘까,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오갔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결국 모든 일은 내 실력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내가 실력을 쌓아야 하지 않을까. 공을 잘못 보냈을 때 듣기 싫은 말을 하거나 좋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굳이 미워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에 시작한 운동이니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연습하기로 마음먹고 다시 구장에 나갔다.
나를 격려해 주며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분도 있었다. 그런 분 덕분에 힘을 내고 다시 이어갈 수 있었다. 그분들의 말을 기억해 두었다가 하나씩 연습했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구장에 들렀다. 다른 일을 끝내고 늦더라도 꼭 들러 연습을 했다. 다른 분들이 집으로 갈 시각에 나는 운동을 시작했다. 영하의 추위에도 게이트 통과하기와 공 맞히기를 반복했다. 손발이 시리면 장갑을 두 겹 끼고 두툼한 신발을 신었다. 목표물인 공을 겨냥한 뒤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집중해 공을 쳤다. 혼자 연습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나보다 늦게 시작하는 사람이 온다면 먼저 따뜻한 말을 건네야겠다고. 공을 잘 치지 못했을 때, 격려해 주어야겠다고.
어제는 다섯 명이 친선경기를 했다. 세 명은 나보다 잘하고, 한 명은 나보다 늦게 시작한 사람이었다. 한 사람이 깍두기를 자청해서, 네 명이 가위바위보로 편을 나누었다. 가장 실력이 약한 사람과 내가 한 편이 되었다. 우리 팀은 씩씩하게 경기를 시작했다. 내가 보내 달라고 한 곳보다 공이 짧게 왔을 때, 나는 괜찮다고 말해 주었다. 결과에 대해 화를 내거나 기분을 상하게 하면 그 사람은 주눅이 들 뿐, 경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초보자인 내가 다른 초보자를 잘했다고 칭찬하며 경기를 이끌었더니, 우리 팀은 상대 팀을 당당히 이겼다. 격려의 힘 덕분이었다.
개구리의 일생에 비유하자면 지금의 나는 아직 아가미로 숨을 쉬는 올챙이다. 요즘에서야 살짝 뒷다리가 나오고 있다. 앞다리가 나오고 긴 꼬리가 줄어들어 개구리가 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짧은 거리에 있는 공도 맞히지 못하던 내가 이제는 가끔 멀리 있는 공을 맞히기도 한다. 그럴 때면 큰일이라도 해낸 것처럼 혼자서 뿌듯해한다. 시간이 더 흘러 내가 개구리가 되었을 때는, 개구리 티를 덜 내고 올챙이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 주어야겠다. 나는 꿈을 꾼다. 푸른 잔디 위에 수없이 빨간 선과 하얀 선을 그으며 공이 내는 청량한 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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