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10월 6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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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희비로 얼룩진 이생에서
바둑판에 돌을 놓듯 신중하고 교묘하게
머리를 짜내고 마음을 다잡아
남보다 크고 많은 집을 지으려
허허실실 주춧돌을 놓는다
한수한수선택의순간마다
냉정하고 단호하게 착점을 거듭하며
무표정 속에 상대의 응수를 읽어내려
끈질긴 인내로 일관해야 하는
독심술의 미학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시간에 얽매인 이 판 위에선
양보는 미덕이 아니라 교만이며
상생도 이기기 위한 수단이라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막판 초읽기에 몰려도
살고 죽는 묘수와 패착은
상대의 응수에 달렸을 뿐
판을뒤집을수있는신의한수도
실패를 되물릴 수 있는 생도 없다
판이 끝나면 승자도 패자도
가지고갈수있는집은없다
열심히 지은 집을 허물고 돌을 거두어
쌓은 재물을 나누어 보시(報施)함에 넣듯
돌을 넣고 뚜껑을 닫으며 툭툭 털고 일어나
“한 판 잘 놀다 갑니다” 하고 예를 갖추면
그야말로 멋진 생이 아니겠는가!
바둑돌의 뚜껑은 내가 닫을 수 있어도
관뚜껑은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