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월 6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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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가 숫자를 적은 네모반듯한 여러 장의 종이를 들고 문 앞에 서 있다. 시댁 거실이다. 그때, 검은 래브라도 한 마리가 눈구멍만 뻐끔 뚫린 두건을 쓰고 시어머니에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개는 흘금 시어머니를 올려다 보더니 손에서 숫자 1을 빼앗아 물고 빠르게 달아났다. 그 뒤를 남은 숫자 2, 3, 4, 5, 6, 7, 8, 9, 0을 일제히 쫓아서 날랐다. 시어머니가“안 돼, 가지 마”소리쳤지만 이미 빈손 이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놀라 눈을 뜨니 그건 휴대전화 벨 소리였다. 몸이 땀으로 혼곤히 젖었다. 핸드폰 액정에 뜬 시간은 새벽 4시, “나다”귀에 익은 목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어머니? 무슨 일로? ”
“너희 시아버지가….”
순간, 잠이 확 달아나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왜요? 아버님께 무슨 일이라도? ”
“너희 시아버지가… 너희 시아버지가 글쎄 통장 비밀번호를 잘못 알려주는 바람에 세 번이나 틀렸어. 분명 내 생일을 비번으로 한다고 했는데 아니라는구나. 이제는 거동 불편한 저 환자가 은행까지 가서 다시 비번을 만들어야 한다는데 어떡하니? ”
또 통장 비밀번호 이야기였다.
“어머니, 걱정하지 말고 주무세요. 제가 가서 해결해 드릴게요.”
내일은 꼭 참석해야 하는 모임이 있어 은행은 다른 날 가자고 말하려는데, 전화가 딸각 끊겼다. 이런 일이 생길 줄 모르고 모임에 빠지는 사람에게 불참금을 더 높게 받아야 한다고 설레발친 것도 나였지만, 그보다 모임에 꼭 빠질 수 없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날이 밝으려면 서너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하는데 술에 취해 1시도 넘어 들어온 남편은 코까지 골며 아직도 초저녁잠이다. 누워 있어 봐야 다시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주섬주섬 옷을 입고 거실로 나왔다. 여름인데도 등이 서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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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는 퇴임 후 주택을 담보로 매달 일정 금액을 찾아 쓸 수 있는 주택모기지론을 신청했다. 대출을 받아 쓸 만큼 돈이 필요한 게 아닌데 무슨 생각에서인지 시어머니 만류에도 굳이 대출을 신청했다.
“우리 여행도 다니고 맛난 것 많이 먹고….”
본인이 버신 돈 다 쓰고 죽겠다는 걸 말릴 자식도 없었지만, 정부가 주택담보대출 정책을 펴는 것 또한 시아버지 뜻과 같은 맥락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고한 만큼 잘 쓰고 떠나라. 그러나 시어머닌 달랐다.
자식에게 반듯한 집이라도 한 채 남겨주고 죽어야지 웬 주택담보대출이에요? 생각이 다른 두 분은 자주 싸웠다. 그러나 시아버진 기어이 회사 다닐 때처럼 월급날을 정해 놓고는 빳빳한 신권으로 채운 돈 봉투를 매달 시어머니에게 건네줬다.
“자 월급.”
봉투를 건네는 시아버지 표정은 처음 월급봉투를 아내에게 주는 사람처럼 당당하고 호기로웠다.
“월급은 무슨, 제 살 잘라 먹는 대출금 가지고 생색을 왜 내요? 통장이나 줘요. 내가 알아서 하게.”
그러나 시아버지는 단호했다.
“안 돼.”
사실 시어머니는 중학교 교사로 일하다 퇴임했고 이미 두툼한 연금 통장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 돈만으로도 살림과 취미생활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굳이 집을 저당 잡힌 돈으로 월급이라며 생색을 내는 시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시어머니는 통장 들고 도망가지 않을 테니 내놓으라고 채근했고 시아버지는 쓸 만큼 가져다줄 테니 잔소리 좀 말라고 싸웠다.
결국, 시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나서야 시어머니는 그토록 원하던 통장을 손에 쥐게 됐다.
“비밀번호하고 도장은요? ”
그러나 쓰러진 후 인지능력이 떨어진 시아버지는 비밀번호는 물론 말도 어눌했고 다른 것도 기억이 오락가락했다. 뭐를 물어도 몰라, 몰라, 아이처럼 천진하게 웃었다. 시어머니가 혹시나 하고 시아버지 서재 부터 시작해 금고 등 온 집안을 다 뒤졌지만, 통장개설 당시 사용한 도장이나 비밀번호를 적은 메모는 찾지 못했다.
“통장 만들 때, 비밀번호 내 생일로 한다고 했잖아요. 그럼 내 생일이 5월 17일이니까 0517이 맞아야죠. 안 그래요? ”
그러나 은행에선 그건 맞지 않는 비번이라고 했다. 시어머니가 시아버지 닦달하는 걸 보다 못한 남편이 버럭 화를 냈다.
“엄마, 그만해요. 환자 붙잡고 뭘 묻는 거야.”
여러 차례 아들로부터 면박까지 당한 시어머니는 작전을 바꾼 듯, 시아버지 생일부터 시작해 결혼기념일, 아파트 동 호수, 남편과 내 생일에 손자 생일까지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숫자를 다 적어 들고 은행을 들락거렸다. 그러나 그 확인도 통장 주인에게만 해줄 수 있다고 거절당한 후 시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더 커졌다.
“여사님, 비밀번호 잘못 눌러 세 번 이상 오류 나면 환자라도 은행까지 나와 다시 비밀번호 재설정을 해야 하니 함부로 누르지 마세요.”
“내가 남편한테 들은 말이 있어서 그래요.”
그러더니 지난밤 기어이 이 번호 저 번호를 눌렀고 세 번 이상 비밀번호 오류로 거동 불편한 시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우고 은행까지 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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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건너오라는 시어머니 호출을 거역할 수 없었다. 만약 내가 가지 않으면 시어머니는 일이 해결될 때까지 환자인 시아버지를 들볶을 게 뻔했다. 시아버지가 그런 불편을 겪게 할 수는 없었다. 시댁이 있는 분당으로 차를 몰면서 생각은 온통 모임에 가 있었다. 현관문을 밀고 들어서니 시아버지 환자복을 갈아입히느라 용을 쓰고 있는 간병인 뒷모습이 열린 방문 사이로 어른거렸다.
“웬일이니 이렇게 일찍? ”
식탁에서 밥을 먹던 시어머니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물었다.
“전화하셨잖아요. 은행 가자고.”
“내가 언제? ”
“어머니, 왜 그러세요? 무섭게! ”
내 어투가 너무 거칠었는지 시어머니가 멍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정말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 표정이었다. 한참을 내 얼굴만 바라보던 시어머니가 갑자기 무릎을 쳤다.
“아! 통장, 내가 너희 시아버지 때문에 못 산다. 못 살아.”
요즘 들어 시어머니가 자주 깜박깜박했다. 생전 하지 않던 시아버지 험담을 오래 묵은 먼지 털듯 입에 올리지를 않나, 무언가 말할 듯하다 생각이 나지 않는지 멍하니 내 얼굴을 쳐다보기도 했다. 손자를 부르려면 남편부터 시작해 시아버지, 나까지 부르고 나서야 겨우 손자 이름을 제대로 불렀다.
“아무리 환자라도 그렇지 자기 통장 비밀번호 하나 기억 못하고 엉뚱한 번호를 들이댈 게 뭐라니.”
“일부러 그러셨겠어요. 환자잖아요.”
“너는… 내가 무슨 말만 하면 꼭 시아버지 편을 들더라.”
시어머니는 화가 난 듯 갑자기 수박이 먹고 싶다고 하더니 휑하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벗어 놓은 환자복을 들고 세탁실로 가는 간병인에게 밤새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녀까지 뭔가 기분이 상한 듯 눈도 맞추지 않았다. 왜들 이래? 나는 시아버지 방으로 들어갔다. 시아버지도 입이 잔뜩 부어 있었다.
“어머니한테 혼나셨구나. 새벽부터 전화하셨던데.”
시아버지가 머리를 흔들었다. 피가 맑아야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며 술과 담배도 끊고 아침 운동에 갖가지 해독 주스까지 손수 만들어 드시던 분이 쓰러져 일 년 가까이 자리보전 중이다. 긴 병에 열녀 없다
고 누운 기간이 길어지자, 시어머니 짜증이 늘어만 간다. 처음부터 병원에서는 요양 기간이 길어질 것 같다며 시설 좋은 요양병원을 소개했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집 놔두고 남편을 어디로 보내냐고 병간호는 본인이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호통쳤다. 그런 분이 집에 온 지 사흘 만에 나는 비위가 약해 간호를 못 하겠다고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나는 고약한 냄새 때문에 저 양반 곁에도 못 가겠다. 네가 좀 해라.”
그렇다고 며느리에게 시아버지 대소변을 받아내라니. 서둘러 전문 간병인을 구해야만 했다. 그동안 시아버지가 시어머니에게 주던 돈의 두 배나 되는 수고비를 간병인에게 지급해야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시아버지 손을 한번 잡아 주고 방을 나왔다. 장바구니를 들고 집을 나서는데 시어머니가 방에서 나오더니 기어이 한 마딜 더 했다.
“덤벙대지 말고, 수박 달고 맛난 거로 잘 골라와라.”
친구 정희의 외아들 진수가 머리 깎고 출가했다는 소식을 들은 지 3개월이 지났다. 진수는 성당에서 복사 일을 해온 아이다. 자신이 든 수 술칼이 생명을 살리기보다 죽이는 칼이 될까 두렵다며 의대에 간 걸 후 회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실습할 때는 다들 그렇다더라.”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었다. 그런데 진수는 끝내 학교를 그만두고 출가했다.
정희가 차라리 신부가 되라고 말렸지만, 진수는 사미계를 받았다. 아들을 말리지 못해 맘고생이 큰 정희 부부는 출가를 도운 원주 스님을 찾아가 진수를 본래의 자리로 돌려보내라고 항의까지 했다.
“내 아들이 어떤 아들인데 스님을 만들어요? 그건 당신들이나 해요.”
이성을 잃은 정희가 상식 없는 여자처럼 울부짖자 원주 스님은 담담히 말했다고.
“인연이 아니면 돌아가겠지요.”
그러나 진수는 사미계를 받고 행자 생활을 시작했다. 갈색 행자복을 입고 멀어지던 아들 모습을 마음에서 내려놓을 수 없어서 정희는 오열 했다. 그러나 정희 부부도 큰 느낌을 얻은 듯 더 나이 들기 전에 아프리카 의료봉사팀에 합류하기로 했다고 했다. 그건 도피가 아니라 큰 서원을 세우고 떠난 아들을 위한 기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희야, 입는 옷만 다르지, 스님과 신부는 다를 게 없어. 진수는 자기 인연에 맞는 길 찾아 떠난 거야. 너만 마음 내려놓으면 돼.”
그러나 정희는 생각만큼 그게 쉽지 않다고 했다.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해.”
“결국, 너희 부부도 출가하는구나. 그렇다고 아프리카는 너무 멀다.”
나 역시 모든 걸 내려놓는 일이 말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모임에 나가 얼굴 보면서 잘 다녀오라는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고기를 사고 수박을 고르는 내내 머리가 욱신거렸다. 더운 날씨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희가 차지하고 앉은 마음이 이것저것 골라 담은 장바구니보다 무거웠다. 송골송골 콧등에 땀이 맺혔다. 바람도 없는 길을 터벅터벅 걸어 집 안으로 들어서니 소파에 앉아 있던 시어머니가 은행 가자고 약속 해놓고 어디서 뭐 하다 이제야 오냐고 짜증을 부렸다. 나는 멀거니 시어머니를 쳐다보다 들고 온 수박을 시어머니 눈앞에 대고 마구 흔들었다.
“수박 드시고 싶다면서요? ”
시어머니가 그런 나를 한심하다는 듯, 하얗게 눈을 흘기며 쳐다봤다.
결국, 은행은 시아버지가 미열이 있어서 가지 못했다. 시어머니도 새벽부터 일어나 잠을 설친 탓인지 점심을 먹자마자 곤한 잠에 떨어졌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정희에게 전화했다.
“가기전에꼭한번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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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이 서울서 분당으로 이사를 한 건 순전히 시아버지 생각이었다.
시아버지는 나가던 회계사 사무실을 퇴임하더니 굳이 공기도 나쁜 서울 한복판에서 살 이유가 없다며 경기도 외곽으로 나가 살길 원했다.
집 근처에 산이 있고 큰 병원과 맛있는 음식점이 있으면 좋겠다는 시아버지 뜻에 따라 남편이 산과 공원이 가깝고 종합병원도 있는 분당 서울대병원 근처에 지금 사는 집을 매입했다. 30평대 서울 집보다 평수가 넓은 3층 빌라였다. 들여놓고 싶은 운동 기구가 많다는 시아버지 뜻을 반영해서 그렇게 정했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서울 떠나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창문만 열면 시원한 강바람이 밀려 들어오던 청담동 한강 아파트 15층 2호,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사와 지금까지 살아온 거처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재건축하면 더 높고 넓은 평수를 받을 수 있는 데도 기어이 팔고 분당으로 가자는 시아버지와 다툼이 잦았다.
“당신 건강 생각해서 그러는 거지. 우리 나이엔 돈보다 건강이 최고라고.”
새로 이사 한 빌라는 산으로 올라가는 둘레길과 연결되어 있어 시아버지는 아침 일찍 일어나 산행을 시작했다. 병원이 가까우니 내가 석달에 한 번씩 모시고 다니던 정기검진도 둘이 다녀왔다. 가끔 집 주변 풍광을 찍은 사진이 가족 카톡방에 올라오기도 했다. 그걸 보며 시어머니가 나름 잘 적응해 가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너번 같이 하던 산행을 시어머니는 그만뒀다. 걷는 것보다 거실에 앉아 경치를 보는 게 더 좋다며 아들이 좋은 집을 구해줘 호강한다고 했지만, 그 말속엔 이사를 막아주지 못한 원망이 섞여 있는 듯했다. 전국 미세먼지 상황을 보면 분당이 서울보다 월등하게 공기가 좋은 건 아닌데도 시어머니는 서울 한복판에 사는 너희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 말은 너희라도 우리 곁으로 이사 오면 좋겠다는 무언의 암시처럼 들렸다. 그러나 나는 모른척했다. 시어머니 대하기가 불편한 건 아니지만 굳이 남편 회사와 먼 시댁 곁으로 이사까지 갈 생각이 없었다.
시어머니는 청담동이 지금처럼 개발되기 전부터 집 근처에 있는 음악다방 <브람스>에서 클래식 음악 듣는 걸 즐겼다. <브람스>는 간격이 촘촘한 나무계단을 대여섯 칸 올라가면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한강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한 다방이었다. 거친 나무 바닥은 군데군데 칠이 벗겨졌고 강이 보이는 창가로 놓여 있는 탁자와 의자도 손때묻은 옛날 그대로지만 모든 게 정겨웠다. 음악을 전공한 여주인이 젊어서부터 모아온 엘피판이 한쪽 벽면을 다 차지하고 있는 그곳은 시어머니 인생 삼십 년 세월의 추억이 녹아 있는 곳이기도 했다. 시어머니를 따라 내가 처음 그곳에 들렸을 때, 강남 한복판에 이런 옛날식 다방이 하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곳은 브람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시어머니는 남편과 함께하는 골프 모임이나 산행에는 참석하기를 싫어했지만, 기쁜 일이 있는 날도, 우울한 날도, 그곳을 찾아갔다. K중학교 정수희 수학 선생님, 아들 공부 때문에 정년까지 다 채우지 못하고 퇴직했지만, 삼십년 가까이 교단에 선, 수학 공식만큼이나 정확하고 꼼꼼한 삶을 사신분의 유일한 취미가 음악 감상이라는 게 내겐 조금 낯설었다. 그분의 절친이자 <브람스> 주인이기도 했던 클라라 리는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했고 독일 유학까지 다녀온 재원이다. 그녀가 어떤 이유로 음악다방을 열었건, 그 당시, 그건 세간의 이슈였다. 사람들은 그녀가 들려주는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며 비엔나커피를 마셨고 한강을 바라보며 인생 이야기를 나눴다. 격동의 세월을 살아내야 했던 정치 이야기보다 아들의 교육 이야기보다 노래가 주는 선율에 취해 그곳에 가면 행복하다고 시어머니는 말했다.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을 듣는 게 우울함을 벗어날 수 있는 해독제였지.”
그 당시 <브람스>에 몰려드는 사람들은 여유롭게 음악을 즐길 줄 아는 나름 상류층이라 자부하는 이들이었다. 교육에 몸담은 일이나 결혼생활이 꼭 보람으로 채워진 삶은 아니었다고 말한 시어머니 삶의 치유제, 그게 음악인 셈이었다.
“나는 저 친구와 음악이 있어 행복해. 너도 가끔 들려라. 시간 될 때.”
마주 보고 있어도 어느 땐 각각의 외로움을 느끼는 게 부부 아닌가.
그 골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음악뿐이라는 말을 들으며 나도 등 보이며 잠든 남편을 보거나 공부에 지친 아들의 침묵을 대할 때면 시어머니가 말한 외로움이란 단어가 떠오르곤 했다. 그런 날은 나도 그곳에 들렸고 가끔은 시어머니와 동행 할 때도 있었다. 그곳에서 시어머니는 집을 재건축하면 더 멋진 집을 받게 될 거고 그 집에서 살다 너희에게 물려주고 눈감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어느 날 텔레비전 화면에 클라라 리가 나왔다. 차양이 넓은 검은 모자를 눌러 쓴 그녀는 기자에게 비리 종교 집단 총수의 아내라는 말은 맞지만, 자신은 이미 오래전에 이혼했고 그 종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순간, 시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 뒤로도 돈과 땅을 많이 소유하고 있다는 클라라리가 세금 포탈의 이유로 쫓기고 있다는 뉴스가 몇 번 더 나오더니 지방의 어느 소도시 별장에서 시
신으로 발견됐다는 뉴스가 방영됐다. 죽은 지 2주쯤 지나서였다. 그 후로 <브람스>는 문을 닫았다. 그 후 7호선 전철이 뚫리며 건물도 헐렸다. 시어머니가 청담동에 뿌리내리고 삼십 년을 살며 가장 위안을 받았던 <브람스>와의 인연도 그렇게 끝이 났다.
그 뒤로 시어머니가 다른 음악다방을 찾아간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없었다. 더더욱 분당으로 이사하고는 시어머니에게 그런 취미가 있었다는 것조차 잊었다. 그런데 간병인 말로는 요즘 들어 시어머니가 자주 집을 나갔다가 오후 서너 시쯤 돌아온다고 했다. 전과 달리 유난히 색이 화려한 옷을 입기도 하고 어울리지 않게 립스틱 색깔도 짙어졌다며 음식에 대한 탐욕도 생겼다고 했다.
“꼭 큰 가방을 들고 나가세요. 갑자기 저러시는 게 혹시…? ”
나는 얼른 손을 저었다.
“원래 예쁜 걸 좋아하세요.”
그러나 불안했다. 시어머니는 평소 남편 욕을 하거나 불필요한 수다를 떠는 것, 여자들이 아이쇼핑을 한다며 하릴없이 돌아다니는 것도 싫어했다. 그건 교양 없고 천박한 여자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흥분하곤 했었다. 그런 분이 요즘 들어 시아버지에 대한 험담의 수위가 높아졌다.
간병인 말처럼 화장이 짙어지기도 했다. 어느 날은 불쑥 전화를 걸어 엉뚱한 질문을 하기도 했다.
“너는 올해 나이가 몇이냐? ”
그때마다 나는 여러 가지 상상을 불러오는 불안감에 고개를 갸웃하곤 했다. 백세시대라지만 일흔여섯 나이는 청춘이라고 말할 순 없었다.
그렇다고 이상한 이름의 병을 끌어다 댈 만큼의 나이도 아니었다. 기억의 오류는 오십을 넘어다보는 나에게 더 자주 있는 일이었다. 뜬금없이 남편에게 전화해 엉뚱한 걸 물었다가 욕을 먹은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시어머니의 변화가 예사롭지 않아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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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시어머니가 간병인을 바꾸라고 전화했다. 벌써 네 번째다. 처음 간병인은 냉장고에 든 음식을 몰래 훔쳐먹는다고 성화를 부려 바꿀 수밖에 없었다. 이해심 많고 좋은 분이었다. 두 번째 간병인은 돈을 훔쳐 갔다고 난리를 쳐서 바꿨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시어머니는 현금을 많이 갖고 있기도 했지만, 돈 계산이 정확한 분이라 쓴 돈에서 잔돈 몇 푼이 틀려도 다 맞춰질 때까지 옆에 있는 사람까지 힘들게 했다. 그 고통을 당하는 건 가끔은 남편이나 나일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시아버지였다. 시어머니에게 숫자는 완벽히 제값을 해야 하는 인격체였다. 다른 친구들 집에서도 종종 돈이 없어지는 일이 있다고 들었기에 시어머니 말을 믿어줬다. 그다음은 너무 털털하다고 짜증을 부려 내보내야 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다르다.
“저년이 너희 시아버지 얼굴을 쓰다듬어 주고 밥도 먹여주고 소곤소곤 둘이서만 정답게 얘기하고, 밤에는 이상한 짓도 해. 저년이 나는 유령 취급을 한다니까.”
시어머니 말 속엔 독한 분노가 흥건했다.
“저년 빨리 내보내라.”
왜 간병인에게 저토록 신경을 쓰는 걸까? 나이보다 얼굴이 예뻐서?
간병인도 할머니가 무서워 더 여기서 일 못하겠다고 사람을 구하라고 했다. 어느 날 밤에는 자다 이상한 기척에 눈을 뜨니 시어머니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더라고, “귀신인 줄 알았어요”하며 계속 있으면 할머니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다고 몸서리를 쳤다.
“아버님 댁에 홈캠 하나 설치해야겠어요. 자꾸 이상한 소릴 하셔요.”
내 이야기를 들은 남편이 시어머니가 외출한 시간에 홈캠을 거실 에어컨 위에 설치했다. 다음 날 새벽에 시어머니가 또 전화했다.
“에미야, 그년이 또 너희 시아버지 방에 들어갔다.”
시어머니는 금방 숨이 넘어갈 듯 다급했다. 시어머니 말에 따르면 시아버지가 젊은 여자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와 안방을 차지하고 자신을 작은 방으로 내쫓았다는 거였다. 통장 비밀번호 틀리게 말한 것도 돈을 그년에게 주려고 일부러 그런 것 같다고.
홈캠으로 보니 한밤중에 일어난 시어머니가 집 안을 배회하고 다녔다. 잠든 시아버지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간병인을 바라보고 서 있기도 했다.
더는 미룰 수 없어 예약 날짜를 잡고, 남편과 시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 워낙 예민한 분이라 본능적으로 이상징후를 감지했는지, 시어머니가 의사 앞에서 몸을 사렸다. 의사가 시어머니에게 말했다.
“제가 지금 말한 단어를 잠시 후 다시 물을 테니 기억했다가 대답하세요.”
의사는 천천히 세 개의 단어를 말했다. 하늘, 바람, 소리. 의사는 단어를 연속 세 번 말했고 시어머니가 그걸 따라 했다. 그리고 병원 이름과 집, 현관 비밀번호, 주민등록 번호도 물었다. 시어머니는 거침없이 대 답했다. 그러나 현관 번호나 통장 번호, 시아버지 생일은 엉뚱한 숫자였다. 의사가 말했던 단어 중 소리를 소라라고 우겼다. 시어머니는 의사를 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선생님, 나 S대 나온 K중학교 수학 선생이었어요. 파이값을 묻든가 함수의 그래프에 관해서 묻는 건 몰라도 이런 하찮은 것들을 왜 물어요? ”
의사가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의사는 할머니라는 호칭 대신 정 선생님이라고 정정해서 불러줬다.
“학생들이 정 선생님 참 좋아했을 것 같아요. 인기 대단하셨죠? ”
시어머니는 조금 과장되게 어깨를 추켜올리며 자신에 대한 자랑을 늘어놨다. 예전과 달라진 모습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자신이 S대 나온 K중학교 수학 선생이었다는 것을 내세우는 거였다. 의사는 나
와 남편을 불러놓고 우려했던 말을 들려줬다.
“어머님이 앓는 알츠하이머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질환입니다. 즉 알츠하이머는 기억 상실의 또 다른 유형인 거죠. 깜박깜박하는 인지 기능 장애로 시작해 운동 장애를 동반하게 됩니다. 밖에 나갔다가 길을 잃을 수도 있어요. 처방약 복용 빠트리지 마세요. 가능하면 대화 많이 나누고 어머니 자존심을 지켜주십시오.”
의사는 시어머니처럼 자존심이 센 분일수록 자신의 병을 알게 되면 좌절감이 크다며 당분간 비밀로 하라고 했다. 설마설마하며 병원을 늦게 모시고 온 것이 후회됐다.
“일찍 왔다고 특별히 달라질 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의사에게 약 처방전을 받아 든 남편 손이 가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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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란한 마음만큼이나 날씨가 흐렸다. 간간이 부는 바람이 환자가 외출하기엔 쌀쌀했다. 그러나 아침부터 오늘은 꼭 통장 비밀번호를 새로 바꾸고 싶다는 시어머니를 말릴 수 없었다. 미리 은행으로 전화를 걸어 놓고, 차로 이동했다. 시아버지 휠체어를 밀고 은행 안으로 들어서니 직원과 지점장이 달려나왔다.
“죄송해요. 저희도 어쩔 수 없어서….”
새로 만든 비밀번호는 0815, 이 땅에 독립을 가져온 가장 잊을 수 없는 날로 정하고 싶다고 시어머니가 말했다. 하고 많은 숫자 중에 왜 하필 그 번호냐고 묻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숫자니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다고 했다.
“그렇게 하세요. 혹시 생각 안 나면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대한 독립 만세를 크게 부르세요. 그러면 잊었다가도 금방 생각나겠네요.”
나는 통장 첫 페이지에 비밀번호를 작은 글씨로 적었다.
“여기 비밀번호 적어 놨으니까 돈 찾고 싶을 때 이거 보고 누르세요.”
“내가 애니? 그리고 번호는 네 시아버지가 틀렸지 내가 틀렸어? 못된 것.”
샐쭉 눈 흘기는 시어머니가 차라리 애처럼 귀여웠다. 은행 문을 나서는데 직원이 다가오더니 귓속말했다.
“혹시… 두 분 다 기억이 안 좋으세요? 그러면 몇 번은 더 와야 할 거예요.”
거리에는 사람이 많았다. 활짝 웃는 사람들, 잔뜩 찡그린 얼굴들, 저 사람 중에도 기억을 잃은 사람이 있을까? 정희는 잊고 싶은 기억 때문에 불행하다고 했다. 잊어야 하는 고통과 잊으면 안 되는 고통, 어느 고
통의 아픔이 더 클까? 나는 운전대를 잡은 채 뒤를 돌아봤다. 잠이 든 시아버지 머리를 간병인이 한 손으로 바쳐주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은 시어머니는 입을 꼭 다물고 앞만 본다. 무얼 보고 계신 걸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빨간불이 들어온 신호등 앞에서 차가 멈춰 섰다. 번호판 숫자가 08로 시작되는 택시가 앞에 서 있었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자, 택시가 움직였다. 나도 천천히 택시를 따라 달렸다. 택시는 시댁 아파트가 보
이는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더니 이내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다. 옆자리에 앉은 시어머니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0815, 0610, 0917, 0517…. 시어머니가 갑자기 두 팔을 활짝 머리 위로 올리더니 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물었다.
“대한 독립 만세! 그다음에 뭐라고? ”
*
시아버지 건강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미약하지만 기억도 돌아오고 어눌하던 말도 서서히 풀려간다. 시어머니가 거짓말처럼 정신이 맑은 날은 두 분이 거실에 앉아 옛이야기를 정겹게 나누기도 한다. 두 분
이 다 예전으로 돌아가긴 힘들겠지만, 시어머니만 지금 상태를 유지해 준다면 집안에서의 생활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남편이 두 분에게 산에 다니던 기억을 찾아주고 싶다며 휠체어에 시아버지를 태우고 집을 나섰다. 시어머니도 간병인 부축을 받으며 남편 뒤를 따라나섰다. 창문을 열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난 마음이 쓸쓸했다. 남편이 시어머니 귀에 대고 무슨 말인가를 속삭인다. 활짝 웃는 시어머니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오늘은 기억이 맑음이다. 이렇게 기억이 온전한 날은 딴 사람처럼 말하기도 한다.
“분당에는 좋은 음악다방이 없니? ”
“있어요. 어머니, 제가 찾아볼까요? ”
“그래라. 너랑 같이 가보자. 예전에 우리 좋았잖니? ”
그런 날은 정신이 맑아야 시아버지 간병을 끝까지 해줄 텐데 걱정이라고도 했다. 어느 날은 혹시 자신에게 이상이 오면 며느리인 네가 내 후견인으로 등록해 줄 수 있겠냐고 묻기도 했다.
“어머니 당연한걸 가지고. 어머니 곁에는 항상 제가 있을 테니 걱정 하지 마세요.”
남편이 미는 시아버지 휠체어가 언덕으로 오르는 것을 보며 나는 청소를 시작했다. 그들 뒤로 쏟아져 내리는 오후의 햇살이 눈부시게 빛났다. 먼지를 털고 걸레질하고, 퀴퀴한 노인 냄새도 몰아낸다. 침대 옆 탁자 위에 2개의 통장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연금 통장, 아파트 담보대출 통장, 나는 담보 대출통장을 열어 첫 장을 넘겼다. 그동안 시아버지가 찾은 돈의 목록이 질서정연하게 찍혀 있었다. 하루도 날짜 틀리지 않게 찾아 시어머니에게 건네준 마음의 흔적들이다. 돈을 찾으며 지었을 시아버지 행복한 얼굴이 보였다. 찾아 쓰는 돈만큼 가치가 줄어드는 집, 팔다리가 잘리듯, 방과 부엌이 그리고 욕실이 점점 줄어드는 대출 제도, 두 분이 가실 때쯤 되면 이 집은 은행 소유가 돼 있을 거라고 남편이 말했다.
“다 쓰고 가시면 좋지.”
방 한쪽에는 시아버지가 사용하던 금고가 놓여 있다. 그러나 숫자를 잃어버린 시어머니는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해 금고 사용을 하지 못 한 지 오래됐다. 가지고만 있지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어디 금고뿐인가. 어느 날부터 시어머니 방에 있는 물건들은 영혼 없는 밀랍 인형처럼 색이 바래간다.
내가 처음으로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를 뵙던 날, 오래 떨어져 있다 돌아온 딸을 안 듯, 시어머니는 나를 꼭 안고 가족이 되어 주어 고맙다고 했었다. 통장 위로 뚝뚝 눈물이 떨어졌다. 나는 통장을 탁자 서랍에 넣어두고 침대 위에 깐 요를 걷고 매트도 걷었다. 퀴퀴한 냄새가 올라왔다. 먼지도 소복하다. 마지막 매트를 들다 나는 악하고 소릴 질렀다. 오만원 권과 먹다 만 과자, 빵 조각들이 매트 밑에 어지럽게 깔려 있었다.
나는 모든 걸 들어내고 돈은 차곡차곡 정리해 제자리에 놓고 매트를 다시 깔았다. 그때, 시어머니가 남편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섰다. 방문을 닫고 거실로 나와 그들을 맞이했다. 방에서 나오는 나를 본 시어머니가 얼른 방으로 들어가더니 통장을 찾았다.
“내 통장 누가 가져갔어? ”
나는 얼른 달려가 서랍에서 통장을 꺼내 시어머니 손에 쥐여줬다.
“나쁜 년, 왜 거기다 감췄어? ”
시어머니가 채가듯 통장을 빼앗았다. 나는 얼른 방을 나왔다. 도둑년이란 소리가 볼륨을 낮춘 라디오 소음처럼 웅얼웅얼 새어 나왔다.
*
어제는 돈을 찾아다 시어머니에게 드렸다.
“여보, 여기 월급 있소.”
내가 시아버지처럼 말하며 봉투를 내밀었다.
“월급은 무슨, 비밀번호나 제대로 알려주지.”
시어머니가 돈 봉투를 빼앗든 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또 딸각 문을 잠갔다. 잠시 후, 문을 열고 나온 시어머니가 돈 액수가 너무 적다고 짜증을 부렸다.
“너희 시아버지는 많이 줬는데 너는 왜 이렇게 조금 줘. 더 내놔.”
나는 정말 어머니 속마음이 궁금해서 물었다.
“어머니, 돈 드리면 다 뭐 하세요? 그리고 돈 어디에다 두세요? ”
“왜? 나 없을 때 훔쳐 가려고? ”
벌레가 시어머니 뇌를 갉아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그락사그락, 그 소리는 시계의 초침 소리처럼 커졌다 작아졌다 멈추지를 않는다.
시어머니는 30년 동안 학생들에게 숫자를 가르쳤다.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 그런데 이제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고 우리가 사는 집을 찾아오지도 못한다. 머리에 검은 보를 뒤집어씌운 것처럼, 기억과
숫자가 사라져가는 것을 감당할 수 없어 두렵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가만가만 자신 얼굴을 만져보기도 한다고. 그건 아름다운 노년을 꿈꿔 온 자신의 삶이 아니라고 울먹인다.
“죽는 날까지 아름답고 맑은 정신으로 살고 싶었어.”
그러다 정신이 다시 흐려지면 거실 중앙에 서서 방황한다.
“여러분, 파이값은 정확도가 높아서 다양한 수학적 계산에 매우 유용합니다. 그러니….”
세상은 공허하다. 누구도 문을 열고 들어와 사라진 숫자를 다시 안겨 줄 수 없는 세상에 서 있는 시어머니, 가방 속에는 학생들이 풀던 문제집이 가득 들어 있다. 어머니 이게 뭐예요? 물으면 짙은 검음이 탈색된 눈동자를 굴려 멀거니 나를 본다.
시어머니가 시아버지에게로 다가갔다.
“당신 통장 비밀번호 0517 맞죠? 자기가 내 생일로 한다 했잖아요.”
또 비밀번호 얘기다. 시어머니 기억에서 0815라는 숫자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 숫자 0517, 시어머니가 이 땅에 태어난 날이기도 하지만 그날은 <브람스>에서 나와 미래를 약속했던 날이기도했다.
“혹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가지고 있는 연금 통장은 네 남편 주지 말고 네가 가져가거라. 비밀번호는 내 생일 0517이야.”
시아버지가 슬픈 눈으로 시어머닐 쳐다봤다. 그리고 시어머니 손을 슬그머니 잡아끌더니 손바닥에 숫자를 적었다. 시어머니가 천천히, 시아버지가 쓰는 숫자를 따라 읽었다.
“0. 6. 1… 이건 무슨 날이야? ”
시어머니가 멍한 시선으로 시아버질 쳐다봤다. 시아버지가 시어머니 지갑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내 거기 적혀 있는 시어머니 생일을 천천히 읽었다.
“공육일육. 이게나라가인정한당신진짜생일이잖아.”
*
휴대전화 벨 소리에 잠이 깼다. 새벽 4시, 이 시간에 전화를 걸어 올 사람은 시어머니뿐이다. 화장실에 다녀오던 남편이 전화를 받았다.
“왜 엄마. 뭐요? ”
남편이 슬그머니 휴대전화를 내려놨다.
“왜요? ”
“비밀번호를 잘못 눌렀대. 세 번이나.”
남편이 짜증을 부렸다. 은행 가는 일 정도야 뭐. 내 말에 남편이 등을 보이며 돌아누워 버린다. 은행 직원이 말했었다.
“앞으로도 몇 번은 더 오셔야 할 겁니다.”
나는 시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그 통장도 비밀번호 0517로 바꿔드릴게요.”
나는 그제야 방법을 찾은 아둔한 내 머리를 두 번 콩콩 쥐어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