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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난민의 각오

한국문인협회 로고 유기섭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월 6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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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반대편에서 온 그의 얼굴엔 비장함과 새로운 결의에 찬 희망의 빛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아프리카 내륙 국가의 어느 부족 왕족 신분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어서 빨리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심정을 이야기한다. 하루하루 불안한 처지에 놓여 있지만, 희망의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다는 다부진 마음에 어느새 그를 향해 응원의 박수를 보내게 되었다.
누구든 자기의 조국 땅에 있을 때는 느끼지 못하지만, 나라를 떠나 외국에 나오면 모든 것이 낯설고 적응하기 힘들어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비로소 내 나라의 편안함과 고마움을 평소에는 깨닫지 못하고 살아왔음을 알게 된다.
아프리카에서는 국가 간 전쟁뿐만 아니라 부족 간에도 분쟁이 끊이지 않으며, 종종 내전으로까지 비화되기도 한다. 안정된 나라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국에 대한 애절한 감정이 그의 얼굴에 흐르고 있다. 특히 외국에 나가 있거나 오랜 기간 외국에 머물다 고국 땅을 밟는 순간 찾아오는 감정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라고들 한다. 태어나고 자란 고국에서 살지 못하고 이 나라 저 나라 떠돌아다녀야 하는 난민의 처지라면, 보통 사람들은 그가 느끼는 아쉬움과 절박함, 그리고 아픔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몇 해 전 코카서스 지방을 여행하며 느꼈던 안타까운 감정이 떠올랐다. 황량한 벌판에 줄지어 있는 난민촌이 눈에 들어왔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 전쟁으로 발생한 난민들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임시 천막시설에서 기약 없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민족 간 반목과 다툼도 있지만, 국가 간 이해관계에 따라 민족이 분열하고 부족 간 내전 상태로 치닫는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한 국가가 국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불행한 사태에 휘말려 많은 이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몇 년 전 어렵게 한국에 와서 난민으로 생활하며 머지않아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그는, 조국으로 돌아가 대통령이 되어 부족 간 화합과 국민의 안정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보였다. 그의 결연한 의지에서 진심이 전해졌다. 그 꿈이 언제 이루어질지는 장담하기 어렵지만.
지금도 미얀마에서는 로힝야족이 당국의 차별과 탄압에 못 이겨 국외로 탈출하며, 이웃 나라 방글라데시로 피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한순간에 보금자리를 잃은 난민들은 생존과 존엄조차 지키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다. 많은 신도들이 대형 불상을 돌며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그때, 미얀마를 방문한 교황이 정부 지도자의 안내를 받으며 불교 신자들의 환영을 받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방문이 어려운 현안들을 해결하는 계기가 되어 로힝야족이 처한 어려움도 조속히 해결되기를 기대하며 지켜보았던 기억이 난다.
한국전쟁 시기에도 수많은 난민이 발생했고, 전쟁이 끝난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가족과 형제자매가 만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산가족이 우리 주변에 많다. 난민의 처지가 반세기 넘도록 지속되고 있으니, 이는 민족적인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생전에 오랜 꿈을 이루기를 바라며, 정치 지도자들의 결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함을 느낀다.
수백 년 동안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를 받아온 아프리카는 독립 이후에도 내분과 부족 간 세력 다툼으로 하나 되지 못하고, 정쟁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그와 같은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고 정적 제거의 표적이 된다고 한다. 그의 고국은 오랫동안 외세의 식민지로 자원을 수탈당하고 지배를 받았던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라를 선진화하고 난민의 처지를 해소할 수 있도록 힘을 길러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그의 다짐이 믿음직스럽다.
한 나라의 운명은 지도자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 개개인도 한마음이 되어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고 헌신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풍부한 부존자원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주체는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기후가 맞지 않고 토양이 빈약하다고 탓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렇게 된다면 국가적으로 아무리 좋은 기회가 와도 허송세월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의 꿈이 이루어질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의 빛이 보였다. 의지할 곳 없는 난민들의 불안한 미래가 언제 희망의 장으로 바뀔지 막연하지만, 미약한 힘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은 심정이다. 하루빨리 그들이 그리던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빌 뿐이다.
그가 돌아갈 때까지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가며 미래를 대비해 힘을 기르고, 조국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을 차근차근 실천해 나가겠다는 다짐을 들으며, 국가에 대한 사랑을 새삼 느낀다는 그의 고백이 인상 깊었다. 외세의 입김에 좌우되던 조국의 운명을 개척해 어엿한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그의 결의와 각오가 믿음직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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