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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카 노인

한국문인협회 로고 이순헌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월 6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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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집주인이지,나는 어질러진 쓰레기나 정리하고 주차장에 널려진 담배꽁초를 줍는 청소부다.집 주변을 치우는 것이 내 몫이 되었다.한때는 다달이 칠만 원씩 주고 청소업체에 맡기기도 했다.그들은 한 달에 네 번,월요일만 와서 청소하니 결국 매일 드나들며 어차피 내 손이 가야 했다.그래서 내가 하기로 한 거다.계단은 별로 오르내리질 않아 어쩌다 치우면 되고 엘리베이터 안의 손때와 주차장 정도만 하면 되니까.제집 앞이 어질러졌어도 입주자들은 관심이 없다.그러나 항상 살피는 내 눈엔 너무나 잘 띈다.밖에 제멋대로 버린 종이박스도 가든가든히 해야 하고 음식물 쓰레기통의 오물도 깨끗이 닦아 놓는 나는 이 집 청소부다.성탄절 다음 날 나가다 보니 정문 출입구 밖의 스티로폼 박스에 빈 소주병 열댓 개가 담겨 있었다.젊은 사람들이 모여 모처럼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즐겼나 보다.내심 소란스럽지 않았던 지난 밤을 다행이라 여기며 박스 채 번쩍 들어 집 입구 전봇대 옆에 옮겨놨다.
슈퍼에 들러 집에 가는데 작은 체구의 초라한 노인이 폐지를 잔뜩 담은 리어카를 끌고 비칠비칠 지나간다.보기에도 안쓰러웠다.
“할아버지 소주병도 가져가세요!”
“네.”
“저쪽에 제가 소주병 내놨는데요,뒤에 오세요.”
난 그새 누가 가져갈까 봐 앞서서 부지런히 걸었다.노인은 비척비척 따라왔다.
“여기 있어요.근데 한 병에 얼마나 해요?”
궁금해서 묻는 내 말에 노인의 대답은 왠지 가슴 끝이 아렸다.
“칠십 원인데,파실 거예요?”
“아니에요.그냥 가져가세요.”
노인은 두 번이나 고맙다고 허리를 굽혔다.노인의 무표정에서 고달픈 삶이 보였다.소주 빈 병은 백 원쯤 될 것이다.그분은 빈병 값으로 내게 얼마를 주려고 했을까.
건강 프로에서 의사는 계단을 5층까지 걸어서 가는 것이 심혈관질환을 예방한다고 했다.만보 걷기와 같은 효과란다.미심쩍긴 하지만 나도 가끔 운동 삼아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5층까지 걷는다.올라오다 보니 301호 현관 앞에 빈 소주병 세 개가 또 있었다.노인에게 갖다 주고 싶어졌다.그러나 덜렁대고 쫓아가다 다칠까 봐 그만두었다.얼마 전에도 넘어진 적이 있어서다.
“없는 사람이 순수해서 그래.”
내 말을 전해 들은 노인,남편의 말이다.리어카 한가득 폐지를 가져가면 고물상에서 삼천 원 정도 받는단다.
초고령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노인 빈곤율이 1위라 했다.장수가 축복만은 아닌가 보다.정부에서는 여러 복지정책을 펼치는데 그 노인도 정부에서 주는 혜택을 받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병이나 종이박스를 정리하다 보면“칠십 원인데 파실 거예요?”하던 노인이 떠올랐다.그러다 길에서 그 노인을 또 만났다.왠지 반가웠다.삼 층에 빈 병 세 개가 그대로 있을 터였다.
“할아버지,병 세 개 또 있어요.천천히 오세요.”
난 부지런히 3층에서 병을 수거해 내려갔다.병 세 개와 흩어져 있던 종이박스를 정리해 리어카에 챙겨 얹고 마침 주머니에 있는 만 원을 드렸다.
“점심에 따뜻한 거 사 잡수세요.”
거절하는 걸 억지로 드렸다.지하철이나 길목 어디에서 간혹 마주치는 걸식자를 볼 때도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뺐다 하며 적은 돈이나마 꺼내는데도 용기가 필요했다.
노인은 힘겹게 리어카를 끌고 멀어지는데 나는 주차장에서 담배꽁초를 치우며 요즘 물가도 비싼데 점심값이라니,싶어 알량한 내 손이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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