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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1취미 갖기

한국문인협회 로고 최평균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월 6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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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일부터는 올해 추석 명절 연휴가 시작된다. 지난 일요일에 기제사일이라 서울 아내의 집에 머물다 오늘 아침 새벽 4시에 차를 달려 내 둥지인 청양군의 부엉골로 내려왔다. 아내는 비가 내리는 날씨에 밤운전이 위험하다고 걱정을 한 바가지 쏟아놓는다. 하긴 오랜만에 우중 야간운전이라 조금은 조심이 되었지만, 다행히도 서울을 벗어나니 어디가 비가 왔냐는 듯 말끔한 서해안고속도로가 오히려 추억을 더듬으며 쾌적하게 운전할 수 있었다. 내가 이런 새벽에 운전을 자주 하던 것은 주된 취미가 붕어낚시였기에 종종 새벽 운전을 했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비가 내리기도 하고 안개가 자욱이 끼어 시야가 10여 미터밖에 확보가 안 되는 길도 달려봤다. 특히나 겨울에 얼음낚시를 갈라치면 도로는 빙판에 겨울 어둠은 검은 담요를 덮을 듯이 사위를 꽁꽁 싸매고 있었다. 철원의 민통선 가까이 자리한 저수지를 목표로 갈 때는 서울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빙판길에 두 눈을 크게 뜨고 조심조심 친구들과 달리곤 했었는데, 이제 그런 운전을 한지도 어언 십여 년이 지났으니 이런 비 오는 날 새벽의 운전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내가 직장생활을 하던 1980년대 초에는 그룹 차원에서 '1인 1취미 갖기'를 장려하였다. 그 시절에는 너도나도 먹고 살기 힘든 시대라 그냥 일하고 먹고 자고 하는 무의미한 생을 사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그래서 일하는 일상 중간중간에 여백 같은 스트레스 해소의 목적으로 각 회사가 금전적 지원을 하며 취미생활을 장려했었다. 하지만 그 시절 취미라야 등산과 낚시가 거의 전부였었다. 테니스는 테니스장 사용료와 비싼 라켓을 확보해야 하는 돈이 많이 드는 고급 취미활동이었다. 볼링도 잘 몰랐고 골프는 내 머리에서는 단어조차 없었고 국내 여행도 자주 못 가던 시대에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다. 그런 이유로 우리 회사의 사원들은 그런 고급 스포츠는 언감생심이오, 그냥 저렴한 경비로 갈 수 있는 산악회나 낚시회에 가입하고 즐길 뿐이었다. 그래서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관광버스를 타고 낚시나 등산을 가곤 했었다. 회원들도 약간의 회비를 납부해야 하는데, 항상 미납은 없었다. 그 이유는 매 월급에서 제하고 지급하고 공제한 회비는 자동으로 산악회나 낚시회의 계좌로 입금이 되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는 돈 버는 것이 취미라고 하는데, 취미는 사전적으로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서 즐겨 하는 일'이다. 즉, 돈벌이로 하는 일은 취미가 아니고 생업이 되는 것이다. 취미생활에는 오히려 경비 지출이 뒤따른다. 요즈음 취미생활은 무척 다양하다. 필드에 나가 골프를 즐기거나 조기축구를 즐기기도 하지만, 스포츠 관람이나 모바일 게임처럼 혼자서 하는 취미생활도 있다. 나에게 글쓰기도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기에 어떤 의미로는 하나의 취미다. 무척 다양한 취미생활은 연인끼리 혹은 부부가 같은 취미생활을 한다면 더욱 사랑이 배가 되고 대화의 시간도 길어져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해줄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혼자서 방 안에 박혀서 은둔형으로 게임에 빠지거나 불법 인터넷 도박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것은 진정한 취미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제1의 취미는 역시 낚시다. 결혼 전에도 주말마다 거의 낚시를 다녔지만, 결혼 후에는 아내를 데리고 낚시하러 다녔고, 두 아들은 어려서부터 여름에는 물론 겨울에도 빙어 낚시를 데리고 다녔다. 결혼한 지 한 3년 후쯤 지나서 그런 내 취미로 처가에 큰 걱정을 끼쳐드렸다. 처남의 아들 돌잔치 이틀 전에 어린 아들을 데리고 셋이 함께 남원의 처가로 갔었다. 여자 가족들만 먼저 와서 잔치 음식을 장만하려 바빴지만, 나는 준비해 내려온 낚시 장비를 챙겨서 시내버스를 타고 인근의 저수지로 낚시를 갔다. 그런데, 낚시터에 도착하자마자 찌뿌듯하던 하늘이 장대비를 뿌려댄다. 거기에 바람도 세차게 불어 여건이 최악이었다. 하지만 돌아갈 버스의 시간도 한참 멀었지만, 기차를 타고 고생고생해서 남원까지 챙겨온 장비로 낚시도 못하고 서울로 돌아간다면 헛고생은 물론이고 무척이나 아쉬웠다. 그래서 옷이 젖는 것도 감수하고 파라솔을 낮게 펼쳐서 비를 다소나마 피하며 끈질기게 낚시했다. 그 악천후 속에서도 손바닥만 한 붕어를 십여 수 잡고 오후 4시쯤 장비를 걷어 버스를 타고 처가로 돌아왔다. 그런데 들어선 처가의 공기가 심상치 않았다. 온종일 장대비가 내리는데, 혼자 낚시를 간 최 서방은 연락도 없고 돌아오지도 않아서 걱정이 컸던 모양이다. 내가 간 낚시터도 모르고 그 당시에는 핸드폰도 없으니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아마도 나로 인해서 처가 식구들은 무척 닦달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나를 어려워하시던 장인은 최대한 화를 참으며 비를 쫄딱 맞고 들어선 나에게 쏘아붙이셨다.
“최 서방! 취미생활을 바꾸게. 장기나 바둑으로….”
나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장기나 바둑도 내 취미 중의 하나인데' 하고 속으로 항변하였었다. 취미생활은 삶의 여정에서 쉼표나 혹은 행간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주 생활전선에서 잠시 벗어나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여정에서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양념 한 꼬집 같은 것이다. 우리는 적당한 취미생활로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건조무미한 일상을 윤택하게 만들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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