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별 쓸모도 없는

한국문인협회 로고 이희순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월 671호

조회수49

좋아요0

바다낚시는 방파제나 선착장, 갯바위, 바지, 선상에서 이루어지는데 출조(出釣)를 못하는 핑계, 고기 못 잡는 핑계가 많기도 하다.
밑걸림이 심하다. 바닥이 모래톱이라서 안 되고 갯벌이라서 안 된다. 파도가 일렁인다. 바람 때문에 낚시하기 힘들다. 물때가 맞지 않다. 조류가 약하다. 아니, 조류가 너무 세다. 수심이 얕다. 날씨가 흐리다. 너무 춥다. 어휴, 덥다. 물이 왜 이리 탁하냐. 낮이라서 안 되고 밤이라서 안 된다. 여기는 포인트가 아니다. 낚시채비가 눈 밖에 났다. 주위가 산만하다. 소음이 심하다. 미끼가 상했다. 망상어에 졸복에, 잡어가 들끓는다. 게다가 철 따라 낚시 금지 어종은 뭐가 그리 복잡한지.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면 대체 언제 하는데?
밑걸림, 짜증난다. 입질이 없어 지루해 죽겠다. 초릿대만 응시하고 있었더니 눈이 아프다. 생리현상은 어김이 없는데, 근처에 화장실도 없구나. 내가 찾은 방책은 수변공원이었다. 수변공원은 육지에 접하여 바다에 만든 공원이다. 화장실 가까워. 수돗물 마음껏 쓸 수 있고 편의점도 멀지 않고 주차장도 드넓어. 계단과 벤치가 곳곳이라 굳이 의자 챙기지 않아도 돼. 철제 난간이 빙 둘려있어 안전한 데다 난간은 낚싯대 거치대로도 그만이지. 주변 풍광은 그야말로 예술이라 산책 코스로도 일품이다. 낚시하다 보면 이런저런 쓰레기가 제법 많이 나오는데, 곳곳에 쓰레기통도 있지. 바로 그거였어.
늘그막도 나름이지, 칠순에 낚시만한 레저가 어디 있어. 개울이나 웅덩이의 민물낚시는 좀 그렇고 바다낚시는 분위기부터가 시원하잖아. 근데 비용이 만만치 않더라. 세상에, 참갯지렁이 값만 해도 비싸. 담뱃갑 크기의 작은 종이 상자에 지렁이 여남은 마리 들었는데, 소고기 가격은 감히 명함도 내밀지 못하지.
아무튼 20여 년 동안 핑곗거리로 마련해 두었던 나의 낚시 불가지론이 무색해졌다. 옆자리 P형의 초릿대가 요동을 치더니 4짜(40cm급) 도다리가 올라온 것이다. P형은 간밤에 용왕님께 풍어를 빌었는가 보다. 어부나 낚시꾼이 손바닥에 불이 나도록 빈다고 용왕님이 자기 백성을 내어 줄 리 없을 터인즉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노릇이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성격인지라 즉시 용궁 민원실에 톡을 보냈다.
민원실은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어렵사리 늙다리 가자미에게 청을 넣었다. 가자미는 용궁의 비밀을 알려주며 한 시진 후에 내게 대물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용왕은 종종 용궁의 중범들을 조사들이 벼르고 있는 방파제나 갯바위 쪽으로 추방한다고 한다.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죄수들의 숨을 거두어버릴 수 있는 계책이었다. 과연 한 시진이 지나자, 초릿대가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힘겨루기 끝에 3짜 감성돔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녀석은 허공에서 낚시를 뱉어 내곤 물속으로 사라졌다. 용왕의 시도는 내 손에서 실패로 끝났다. 중범이 탈주하고 말았으니 용궁에는 다시금 비상이 걸릴 것이다. 용왕이 자신의 충직한 신료나 선량한 백성을 어부나 낚시꾼에게 내어 줄 리 없는 터인지라 누구라도 내 상상을 나무라선 안 된다.
겨울철에는 건들바람만 불어도 꽤 쌀쌀하다. 수면이 거칠어지고 초릿대도 흔들거려 어신인지 헷갈린다.
나는 서툰 목수가 연장 나무란다는 속담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목수 일을 잘하려면 실력도 실력이지만 우선 연장이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바다낚시에 입문하고 보니 초급자용 낚싯대와 릴로는 눈에 차는 성과를 올리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옆자리 조사의 명품 장비에 눈길이 꽂히던 차에, 꽤 좋은 스피닝 릴과 낚싯대를 염가에 내놓은 조사에게 단숨에 달려갔다. 밤낚시를 다녀왔다는 그는 한사코 낚싯대를 펼쳐 낭창거리는 대의 탄력을 자랑하더니 대에 장착된 스피닝 릴이 얼마나 부드럽게 회전하는지 시범하며 재삼 뛰어난 가성비를 강조했다. 은빛이 반짝이는 낚싯대를 고이 접으며 나는 그에게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바다낚시에는 주로 찌낚싯대와 원투(遠投)대, 선상대, 루어대가 사용된다. 찌낚싯대는 1호 530cm대가 기본인데 가볍고 탄력성이 뛰어나다. 꽃밭에 벌이 모여들 듯, 밑밥을 뿌린 곳으로 고기들이 몰려온다. 나는 오늘도 새벽을 도와 단골 낚시점으로 달려가 크릴새우와 곡류를 섞어 분쇄한 밑밥을 두둑이 챙기고 참갯지렁이(일명 혼무시)와 청갯지렁이(일명 청개비)를 주문한다. 얼음덩이는 아이스박스에 밀어 넣고 낚시점에서 무료 제공하는 작은 생수병을 집어 든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출조해도 몇 가지 간식거리까지 준비하다 보면 어느새 지갑이 가벼워진다.
알아두어도 별 쓸모 없는 상식들. 바람 불고 흐리고 춥고 밑걸림도 많고 때가 맞지 않고… 말도 많고 핑계도 많은 그게 바로 인생이지. 우린 그런 세월을 헤쳐 여기까지 왔지 않았겠어. 내일은 날씨가 꽤 좋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매운 계절의 시련도 없이 벚꽃과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겠나. 저 작은 호미도 도가니 속에서 몸부림을 치고 헤아릴 수 없는 망치질을 견뎌냈을 터이다. 바람 자고 포근한 날만 기다려서야 언제 물고기 구경을 할 수 있겠나. 어부는 특보가 내리지 않는 한, 거친 물결과 혹한을 무릅쓰며 바다로 나간다. 그러나 나는 별 쓸모도 없는 상식을 긁어모아 놓고 하릴없이 낚싯대만 만지작거리곤 했다.
용왕님, 모월 모일에 출조할 터이니 물때에 맞춰 사흘은 굶긴 반역의 무리를 그곳으로 추방해 주소서. 그들이 온갖 주의를 기울여 미늘을 피하려 해도 북양에서 공수해 온 싱싱한 크릴새우 밑밥 냄새를 떨쳐 버릴 수는 없습니다. 드디어 고소한 참갯지렁이 미끼의 유혹에 도리없이 걸려들게 될 것입니다.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