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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생 호원이(두 번째 이야기)

한국문인협회 로고 이영순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월 6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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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생 호원이는 국민학교 때 나와 같은 반으로 짝꿍을 했던 친구이다.
귀향을 하고 친구들과 소통을 위하여 정기적으로 등산을 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회원은 늘 늘었다 줄었다 한다.
등산하는 날이다. 오랫동안 소식을 모르고 지냈던 친구도 같이 산길을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 몇십 년의 세월이 어제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살아온 이야기와 어릴 적 이야기 몇 토막이면 어느새 정상에 올라와 있다.
진천 보현산으로 산행 일정을 잡았다. 등산을 하고 비구니 스님의 사찰인 아름다운 보탑사에 들리기로 했다. 이번 산행에는 동창생 호원이도 함께 왔다.
홀로 살고 있는 동창생 호원이를 친구들은 잘 챙겨주고 있다. 오늘처럼 동창생들과 특별한 모임이 있으면 꼭 함께 동행을 한다. 그 옛날 코흘리개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에 나를 당황하게 하였던 친구이다.
승용차로 이동해서 보현산 들머리에 도착했다. 배낭을 메고 스틱을 양손에 잡고 산길을 걷는다. 앞서서 뛰듯이 걷는 호원이는 마음이 들떠 있는 듯하다. 헐렁한 옷차림에 모자도 쓰지 않고 배낭도 없다. 겅중겅중 잘 걷는 모습을 보니 허리와 다리에는 이상이 없나보다. 건강해 보여서 그냥 좋다.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같이 동행하면 좋으련만 앞장서서 홀로 저만치 걷는다.
겨울철에는 산불 감시원으로 봄가을에는 자연 지킴이로 활동을 했다고 한다. 산에 대해 호원이는 아는 것이 많다. 자랑하고 싶은가 보다. 마음은 아직도 순수한 아이의 마음인지 나무, 나물, 버섯 이름을 한마디씩 불쑥 나에게 말하고는 도망가듯 또 앞장서서 휘적휘적 걷는다. 친구들이 한마디씩 추임새를 넣는다. 아무렴 산 지킴이로 산 세월이 얼마이던가. 우리 친구 호원이는 산에 있는 것은 모르는 게 없다고 자신감을 돋워 준다. 저만큼 숲속으로 가더니 버섯을 따온다. 어떻게 요리하면 맛이 있고 어떤 것은 먹는 버섯이 아니라고 조심하라고 큰소리로 일러준다. 호원이는 소풍을 온 어린 시절 그 모습이다.
각자가 싸온 도시락을 먹으면서 우린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닌 그냥 아이들이 된다. 어린 시절, 엄마가 싸주었던 도시락 반찬 이름을 나열하며 하하 호호 어느 사이 도시락 비워진다. 밥도둑이 왔다 간 것처럼…. 인기 좋은 반찬은 텃밭에서 가꾼 오이 풋고추 상추랑 장아찌 밑반찬이다.
능선을 몇 개 넘었다. 잠시 쉬어 간식을 먹는 중에도 호원이는 우리와 어울리지 못한다. 안타깝다. 살갑게 함께 대화하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우리와 같이 어울리는 대화가 조화롭지 않다. 우리 나이쯤 되면 아이들 결혼 이야기 손주 이야기가 많은데 호원이는 부모님도 다 돌아가시고 홀로 살아서 그런가 보다.
호원이가 앞장서서 뛰어가니 우리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호원이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고향에서 함께 지낸 친구들은 호원이 걱정을 많이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호원이의 순수함을 이용하는 나쁜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작은 땅이지만 농사를 짓고, 일용직으로 일을 하여도 늘 빚에 허덕이고 있단다.
홀로 지내는 호원이의 마음을 흔들어 여자를 소개시켜준다면서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친구들은 살면서 이런저런 걱정이 늘어나는데 호원이는 마누라가 없어 잔소리 듣지 않고, 자식이 없으니 혼사 걱정이 없을 것 같다면서 농담을 한다.
순정파이기도 한 호원이는 마음에 드는 여인이 있으면 하루 종일 그 여인을 바라보다가 온다고 한다. 웃어넘기기에는 너무나 애틋하고 낭만이 있는 슬픈 이야기이다. 이룰 수 없는 연정이기에 더 안타깝다.
어느덧 보탑사에 도착했다. 사찰 앞 350여 년 된 느티나무에 경의를 표하고 비구니 스님들이 가꾼 아름다운 정원과 보탑사를 둘러보고 굽이굽이 돌아 산길을 내려왔다. 산행 마무리는 친구들과 맛있는 저녁식을 하였다. 오늘은 호원이가 있어 더 즐겁고 특별한 날인 것 같다.
고향 마을에 가면 호원이는 어디서든 눈에 띈다. 항상 연두색 형광빛이 나는 조끼를 입고 다닌다. 이웃 아재의 밭에 앉아 도와주거나 친구의 배나무 과수원 길목에 서성이기도 하고 포도밭 가지치기를 도와주기도 한다.
술기운이 돌면 이젠 호원이도 나에게 스스럼없이 농담을 하고 눈도 마주친다. 쌀쌀하고 땅벌처럼 쏘아대던 국민학교 시절 소녀는 세월 뒤로 숨었고, 수줍던 소년은 세월 앞에 조금은 대범하고 뻔뻔한 사람이 되었다. 호원이와 나는 그냥 이웃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된 것이다.
함께하는 가족이 없고 온기 없는 집에서 지내는 그가 하루하루 별일 없이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동창생들이 함께하는 제주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졸업 60주년을 기념하는 여행이다. 이 세상을 떠난 친구들도 여럿이 된다. 무심하게 흐른 세월이 많은 변화를 가져오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친구들과 꼭 호원이와 함께 가야 한다는 의견을 모았다. 멋진 곳에서 친구들과 사진을 찍어 앨범을 제작하는 계획도 세웠다. 어린 시절 옆자리에 앉아 나에게 미움 받았던 호원이를 옆에 앉히고 다정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어야겠다. 동창생 호원이가 있어 우리는 따뜻한 사람들이 된다.
호원이의 모습을 고향마을의 풍경처럼 오래도록 어디에서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논두렁을 걷고 있는, 밭 가운데서 일을 하는, 산길 모퉁이에서, 과수나무 아래서 웃고 있는, 돌담길을 서성이는 호원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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