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월 6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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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등학생 때였다. 어느 여름날 아빠는 나에게 바람을 쐬어 준다며 4·19탑이 있는 수유리 아카데미 하우스로 차를 태워 갔다. 차를 입구에 세우고 근처에 짙은 초록의 나무들이 빽빽하게 있는 길을 둘러보고 있었다. 새소리는 청량하고 시원한 바람도 불어오는데 어디선가 새끼 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가까운 경비실에서 한 아저씨가 나왔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낳고 없어졌는데 혹시 기를 생각이 있으면 한 마리 데려가시려오?”
그 말을 듣고 나와 아빠는 가만히 서 있었다. 아저씨는 키울 마음이 전혀 없지는 않나 보다 싶었는지 경비실 안으로 들어가더니 상자 안에 새끼 고양이를 담아 데리고 나왔다. 아빠는 나를 보고 웃으며 “한 마리 골라 볼래?” 하였다. 아저씨가 꺼내놓은 새끼 고양이는 모두 세 마리였다. 두 마리는 검은 줄무늬의 검고 하얀 털의 고양이였고, 한 마리는 밝은 갈색의 고양이였다. 두 마리의 검은 줄무늬 고양이는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구별이 잘 안 갔는데, 갈색 고양이는 색이 옅어서 그런지 더 조그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도 못 뜬 새끼 고양이 세 마리는 서로 붙어서 체온을 나누며 한 덩어리처럼 몸을 기대고 있었다. 나는 갈색 고양이를 골랐고, 아빠는 아저씨에게 “이 녀석으로 데리고 갈게요” 하고 몇 마디 더 인사를 하였다.
자동차로 돌아와 뒷좌석에 앉아서 갈색 새끼 고양이를 손 위에 올려 놓았다. 얼마나 작은지 조심스레 펼친 손바닥 안에 넉넉히 들어갈 만큼 조그마했다. 집에 데리고 와서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까 생각했다. 동네 문방구에서 산 편지지에 ‘내 이름은 옹이’라고 쓰인 귀여운 고양이 그림이 생각났다. ‘야옹이’에서 따온 이름인 것 같았다. 재미있는 이름이라고 생각되었다. 아빠에게 이름을 옹이라고 지었다고 말하고, 그날부터 그렇게 옹이를 키우게 되었다.
아빠는 전부터 동물을 좋아하고 잘 돌보았다. 옹이는 아빠의 보살핌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우리 집은 이층집의 위층에 살았는데, 옹이는 그 2층에 딸린 노천 베란다에서 놀곤 했다. 베란다에는 철로 된 캐비닛이 있었다. 옹이는 그 위에 사뿐히 올라가 엎드려 햇볕을 쬐기도 하고, 꽃과 풀이 나 있는 좁고 긴 작은 꽃밭을 살금살금 지나다니기도 했다. 날벌레를 잡으려고 허공에 앞발을 내젓기도 하는 옹이를 보곤 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느라 옹이와 놀 시간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아빠가 고양이는 비린 것을 좋아한다고 하며 집에 있는 마른 오징어 다리를 큰 가위로 작은 조각을 내어 옹이에게 주었다. 옹이는 그것을 씹느라 고개를 옆으로 갸웃하듯 숙이고, 허겁지겁하며 쉭, 쉭 소리를 내어가며 맛있게 먹었고, 아빠는 옹이가 잘 먹는 것을 보고 좋아서 실컷 먹을 만큼 잘라 주었다.
저녁에 일이 났다. 마른 오징어일 때는 작은 조각이었던 오징어가 옹이 뱃속에 들어가서 수분이 들어가 크기가 불어난 것이다. 옹이의 뱃속에서 퉁퉁 불은 오징어는 옹이의 배를 빵빵하게 부풀게 했고, 결국 옹이는 그 오징어들을 거실 소파 위에 잔뜩 토해 놓았다. 다행히 옹이는 크게 아프지 않았고, 아빠가 토한 것을 치우며 마무리되었다.
그 일이 있고 엄마는 옹이를 다른 집에 키울 사람이 있으면 데려가게 하자고 하였다. 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아빠는 알아보겠다고 하였다. 아빠의 친구 중에 우체국장인 분이 있었는데, 우체국 옆에 자택이 같이 있었던 것 같다. 집에 자녀들이 있으니 잘 되었다고 옹이를 키우겠다고 했다.
아빠는 옹이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나도 차 타는 데까지 따라 나갔다. 버스 정류장에서 아빠가 옹이를 놓쳤다. 옹이는 알루미늄 새시로 만든 버스 토큰 가게 밑 틈 사이로 들어가 버렸다. 낯선 바깥이 무서워서였을까? 왠지 나는 옹이가 자신이 다른 집에 가게 된 것을 알고 숨은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아빠는 그런 옹이를 간신히 틈새에서 꺼내어 친구 집에 데려갔다.
어느 날 옹이를 데려간 아빠 친구가 전화하였는데, 옹이가 그 집 지하실에 들어가서 통 나오지를 않는다고 했다. 지하실에 여러 가지 짐이 많아서 옹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배가 고플 것 같아 참치 통조림을 따서 물과 함께 둔다고 했다. 참치는 먹어서 캔은 비는데 옹이를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거의 한 달째 그렇게 애타게 보내다가 영 안 되겠는지 아빠에게 전화한 것이다.
“네가 좀 와봐라. 옹이가 통 나오질 않는다. 가족들이 아직 옹이 얼굴도 못 봤어. 우리가 아무리 불러도 안 나와. 빈 참치통만 나오는 걸 보니 아직 지하실에 있는데 이 일을 어쩌냐…”
아빠는 그 말을 듣고 친구 집으로 갔다. 옹이가 숨었다는 지하실 문 앞에서 “옹이야~ 옹이야” 하고 불렀다고 한다. 아빠를 못 본 지 한 달이나 지났기 때문에 목소리를 잊지는 않았을까 하여 반신반의하며 옹이를 불렀는데, 옹이가 갑자기 야옹, 야옹야옹 하고 크게 울며 지하실 구석에서 달려 나와 아빠의 품으로 뛰어올라 안겼다고 한다. 아빠는 그런 옹이를 보고 어찌나 마음이 짠한지 옹이를 안고 친구에게 말했다.
“키우라고 보냈는데 너에게는 미안하다만 옹이는 내가 다시 데려가야겠다.”
아빠 친구는 아빠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팔을 뻗어 가슴께를 꽉 붙잡고 있는 옹이를 쳐다보고는 “그래, 그래도 한 달을 기다렸는데 아쉽지만 네가 데려가는 게 맞는 것 같다” 하고 아직도 불안한 듯 쳐다보는 옹이에게 “옹이야, 아빠가 너에게 무척이나 잘해줬나 보구나. 집에 가서 잘 지내라” 하고 작별 인사를 했다.
아빠는 옹이를 수건에 싸서 옹이의 몸을 감싸고 집으로 왔다. 한 달 동안 지하실에 숨어 있었던 옹이는 얼굴도 꾀죄죄하고 털도 깨끗하지 못했다. 아빠는 옹이를 욕실에 데려가서 씻겼다. 목욕을 마치고 털을 말려주니 한결 산뜻해 보였다.
“옹이야, 집에 와서 좋으냐?”
옹이를 쓰다듬으며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빠의 웃는 얼굴에 옹이는 야옹 하고 아빠를 쳐다보며 꼬리를 살짝 움직였다. 석양이 지는 붉은 하늘에 베란다 쪽 유리문 앞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아 있는 아빠와 옹이의 뒷모습이 행복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