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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 676호 한낮의 ‘꿈 바람’

전화를 끊은 영미는 설렘과 불안이 동시에 찾아왔다. 그가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거실을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효숙의 가게를 나와 집으로 돌아와서 그가 마신 긴 유리 커피잔을 씻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여보세요.”“집에 들어갔어요?”“……!”“데이트 좀 합시다. 데이트가 별것 있나요. 만나면 데이트지.”“수원 가신다면서요.”“수원은

  • 허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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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 676호 일본 할머니

불이야! 누군가 소리쳤다. 창밖은 시뻘겋게 타오르고 방 안을 점령한 매캐한 연기는 코와 목을 거쳐 숨통을 조여 온다. 코를 막고 캑캑거리며 발버둥을 치는데 눈이 떠졌다. 꿈이었지만 기분이 영 개운치 못하다.보일러 창고 문을 열고 작동 버튼을 누르니 기계 돌아가는 소리는 이상 없고 가스통 계기판 바늘이 붉은 구역에 갇혀 있다. 가스통을 교체하고 나서 길 건너

  • 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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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 676호 종소리를 찾아서

봉길리 그의 집에 온 지 5일째다. 며칠을 쉬고 싶어 그의 펜션으로 왔다. 인근에 대종천가 산자락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알록달록한 집들이 정겹다. 그의 집은 대종천이 바다로 이어지는 끝나는 부분에 있다. 여름철이면 붐비던 주변 캠핑장도 텅텅 비어 있고 바닷가도 사람들의 인적이 끊어진 지 오래다.그가 학교를 퇴직하고 집으로 들어오면서 대대로 살아온 헌 집을

  • 이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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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 676호 단군의 후예들

우리는 단군의 후손이다. 6천 년 전 단군 할아버지가 태백산 단목 아래에 신시(神市)를 열고 천부경(天符經)을 본령으로 하는 국조 단군 칙어 8개 조항을 내리고 홍익인간 이화세계 제세이화 인간 세계의 나라를 세웠다.조선 중기 정감록과 남사고 풍수지리학 예언가들 비결에 조선 땅에는 10군데의 피난처가 있다. 그곳은 무서운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사람이

  • 박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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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 676호 황혼에 불러보는 그 이름, 어머니

어머니! 당신이 이 세상에 소풍 왔다가 하늘나라 가신 지 60년여 세월이 흘렀습니다.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경칩이 지난 이곳은 날씨가 많이 풀렸습니다. 곧 봄이 오겠지요. 제 나이 어느덧 칠십을 넘었는데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당신이 그립습니다. 당신과 함께했던 8년간이라는 짧은 시간이 저에겐 영원처럼 느껴집니다. 오늘은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당신이 남기

  • 김두수(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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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 676호

동네에서 경북 문경을 오가는 고속철도가 생겼단다. 내 생활 터전이 대체로 수도권과 충청권이니 그 철도를 이용할 일이야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지만,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고속열차란 따로 지은 역과 반듯한 선로로만 다니는 것인 줄 알았더니 의외다. 더욱이 여기는 지하철역이 촘촘히 있고, 전철이 연락 부절하는 곳이니 더욱 그렇다. 언제 한 번 수안보

  • 유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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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 676호 두릅과 옻나무 순

봄나물을 먹었다. 지난겨울 몰아치는 칼바람과 혹독한 냉기에도 묵묵히 견디며 연약하게 보이지만 야무지고 단단한 꿈을 품고 나오는 새싹이다. 먹을 것이 넉넉하지 못했던 내가 어린 시절에 겨울 동안 기다리던 일용할 양식이었다.“나물 먹고 물 마시고 하늘을 이불 삼아 잔디에 누우니 사나이 가는 길이 두려울 것이 없다”고 했다. 지금은 봄나물을 먹을 것이 없어서 먹

  • 한옥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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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 676호 어머니의 발자국 등대

추자도 등대 앞에 선다. 상추자도 집들은 지붕마다 색색의 옷이 입혀졌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풍경이다. 나는 그것을 볼 때마다 섬에 가고 싶은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오곤 했다. 담 주변으로 멸치를 숙성시키는 커다란 통은 내 키를 넘는다. 집을 지키는 지킴이일까. 뚜껑 위에는 돌멩이를 밧줄로 칭칭 묶어 놓았다. 등대 앞에서 바라보는 섬의 유혹에 나도 묶인다.

  • 김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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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 676호 가시이불

오랜만에 여유로운 하루가 생겨 미술관에 갔다. 이른 시간이라 전시장의 분위기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조용히 밝혀진 조명 아래 전시된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의 모습이 여유로워 보인다.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다섯, 여섯, 그림 속의 영혼들이 소리 없는 울림으로 내게 다가선다.일백 개의 무덤에는 일백 가지의 사연이 있겠지만, 일백의 작품 속에는 수백

  • 이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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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 676호 팝 아카이브

『팝 아카이브』는 평소 즐겨 듣는 내 팝송 목록 모음집이다. 3년째 틈만 나면 어지러이 컴퓨터 자판과 씨름한 결과이기도 하다. 오늘까지 쓴 원고량이 원고지로 약 9,000매, 따져 보니 목표량의 반 정도는 채운 것 같다. 참고문헌 목록 또한 A4 용지 15매를 넘겼다. 하나의 원칙을 고수하며 일을 진행한다. 많은 자료를 검토하고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 부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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