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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74호 커피를 본다

어느 강변의 작은 카페에서커피를 마시고 있습니다조금은 달고 조금은 쓴 커피가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네 인생과도 닮았습니다 강물을 몰고 온 바람이작은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있고딱히 갈 곳 없는 새 한 마리멍하니 졸고 있습니다 나는 구석에 앉아 커피가 식어 가는 줄도 모르고 커피에 멍 때리고 있습니다강변의 풍경은 자는 듯 조용한데멀리

  • 민병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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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74호 설거지를 하다가

하얀 사기그릇에 붙어떨어지지 않으려고 악을 쓰는밥풀떼기 몇 알, 그걸 못 봐언제부터 배부른 놈이 되었는지눈에 뵈는 게 없다 점심 도시락을 못 싸수도꼭지에 매달려 배를 채웠던그날, 얼마나 지났다고까맣게 잊어버린 그 시절 자메이카 아이들의 퀭한 눈빛이양심을 툭 치고 지나간다 하루 살고 나면 내일이 두려웠던 그때 삯바느질로 하

  • 김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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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74호 세월이 머물다 간 자리에

굽이굽이 맺힌 바위의 주름은시간이 스치며 남긴 고단한 흔적이라어느 하나 같은 얼굴 없으니억겁의 바람이 새겨 놓은 지문이 아니겠는가 어제 보았던 저 벼랑의 눈빛과오늘 마주한 저 봉우리의 숨결이 다르니산은 흐르는 물처럼제 몸을 깎아 매순간 다시 태어나네 다시 올 세월은 또 무엇을 깎아내고무엇을 새로이 빚어 놓을까모진 풍파에 닳아 없어진대도그

  • 고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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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74호 갓난 달팽이 ——유리갑(匣) 안에 살며

축축한 이슬 깨문 채앳된 너를 보았을 때부추 이파리 뒤쪽에 납작 붙어두 마리 힘없이 죽은 듯하더니만져보자 더듬이 빼고 꿈틀거렸지 다시 두 눈 붙은 긴 안테나로쭉 뻗고 느릿느릿먹잇감 찾듯 두리번대며한 걸음 한 걸음씩 걷고 있었지 연한 등껍데기 버거운 짐 싣고빨판 같은 발바닥으로 악착같이 붙여 먹잇감 배춧잎 맛보고작은 살림집 마련하니

  • 박진호(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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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74호 삶이 익어 가는 시간

숨가쁘게 달려온 길, 나는 바람에 실린 낙엽처럼 잠시 멈춘다. 황혼의 꽃은 마음의 가장자리에서 소리 없이 피었다 지고, 지나간 기억들은 안개가 되어 내 그림자의 굴곡을 덮는다. 인생은 흐르는 물, 붙잡으면 모래처럼 새고 놓아주면 손등에 햇살이 남는다. 지나온 날이 앞날보다 무거워도 마음속엔 아직 파종하지 않은 자리 하나, 봄을 기

  • 박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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