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온통너네의 화지(畵紙)드냐이 큰 캔버스푸름 위에 농염칠 바람에 밀린 감성불평도 들춰내고온갖 형상 꾸미고서 내 상상 홀리구나 고개를 다시 드니 그 그림 지우고서 넌지시 하는 말 버릴 것은 버리라네.*음력 9월 가을 구름.
- 박구수
하늘이 온통너네의 화지(畵紙)드냐이 큰 캔버스푸름 위에 농염칠 바람에 밀린 감성불평도 들춰내고온갖 형상 꾸미고서 내 상상 홀리구나 고개를 다시 드니 그 그림 지우고서 넌지시 하는 말 버릴 것은 버리라네.*음력 9월 가을 구름.
먼발치 어딘들…속마음 꿰뚫어기쁘고 즐거울 때 함께 웃고슬프고 서러울 때 같이 울으리 외로울 땐 말 없는 벗 되어쓸쓸함 나누고그리움 사무칠 땐사랑의 꿈 실어 바람에 나부끼리 문득문득 아련한 추억가슴 저리면 다독여 침잠하리 고뇌의 탄식 깊어지면무언의 눈빛으로 삭이리 밝은 빛 허리춤에 어스름… 별빛 고요한 영혼의 안식
덕풍천 징검다리 아래 피라미 떼아침햇살 먹어 은물결로 흐른다 유년 시절 서울 마포구 골목집에 살 때긴 언덕길을 지나면 검은색 기와집들이 다닥다닥나무도 꽃잔디도 없었다염리동 집 그날의 기억은 무채색이다 원예를 사랑하는 남편 덕분에집 안에 군자란 템파레 호접난이 웃고고무나무 관음죽 벤자민 이파리 윤기가 돈다 복스런 꽃들이 눈인사를 한
산전수전 역전의 용사훈장을 가슴에 단 노인들쭈그리고 앉아 햇볕 쬐고 있다 비바람 눈보라 맞으며팔다리 뒤틀리고 만신창이 몸여기저기 숨 몰아쉬는 소리겨울이 깊어 간다 주소 잃어버린 방랑자들한데 모아 시름을 눕힌 합숙소 언제 빈손으로 떠날지 모르는 길 낡아서 서러운 세월 부자나 가난뱅이나잘난이와 못난이도울타리에 갇힌
그 남자는 단 한 번도철갑 외투를 벗어 던진 적이 없다 희고 반짝이는 보석 무늬만고집하고 있는 그를 꼭안고 있는 그 남자 속도 겉도 변할 줄 모르는멋없는 그 여자 게다가 짜기까지 한쌀쌀맞고 매력 없는하지만 꼭 필요할 때 언제나어김없이 나타나는 그 여자 여기저기서 오라는 데가많고 많은 인기 좋은 여자 흰 행주치마
바람도 쉬어 가는 금강 언덕에비단실로 지은 하얀 집에서강물과 노는 구름과 달려보고춤추는 물결따라 걸어보고은빛 반짝이는 모래에 안겨보고 앞산에 해 뜨면 빛나는 잔칫상 받고 뒷산에 해 지면 황금빛 꽃침대 누워 신처럼 말없이 물처럼 흘러가야지 아침은 하루 한 번 봄은 일 년 한 번사는 것은 딱 한 번 죽는 것
아무것도 들지 않은, 빨간 맨손이항상 내 앞길에 돌을 놓았다그 돌에 넘어질 때마다,나는 잡히지 않는 분풀이의 존재로 삼았다 돌은 진즉에 돌아가라는 말이었다는 것을요즘에 와서 알게 되었지만상처가 흉터와 손을 잡고 찾아오면앞길에 놓인 돌을 뒤로 옮겨 놓기를 반복했지만 빈손의 주인은 자꾸 돌을 굴려서 온다어떤 돌은 앞길이 캄캄한 모습을 하고또
카톡에 부고장 떴다어제는 뽀빠이 가더니오늘은 친구 부고(訃告) 소식이다 자고나면 이별 소식발끝까지 찾아드는가슴 저릿한 통보 더위 수그러들면제주도 흑돼지구이 먹으러 가자던 친구먼 길 떠났다는 기별 왔다 가까운 사람들저녁 종 소리처럼하나 둘 사라져 가는데 기다리는 소식은 언제나 오려나 수빈이는 시집갈 때가 지났는데&
기다림 없어도 그때는 또 돌아왔다마당에 매캐한 쑥향이 맴돌고하늘에는 별들이 강을 이루고반딧불이 가끔씩 장단을 맞추면 아버지의 징용 이야기는 마당을 가득 채웠다 오키나와 남양 전쟁의 그림이 붉게 그려졌다 별들도 유난히 빛났고 쪽달빛도 내려오는 날이면 아버지의 여름은 무진장 타오르고 있었다그런 날이면 꿈속에서 길을 가다 뚝
새 떼들이 날아오른다가을 기운을 박차고낡은 숲이 출렁이며 흔들린다바람도 덩달아 우르르 날아오른다 청량한 아침빗줄기처럼나뭇잎들이 쏟아지고 난 뒤서늘한 기운은 마을을 품듯 스며든다 국화가 피어난 밤가을비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켜켜이 쌓였던설레는 그리움에 기대어 서 있다 멀리 떠났던 추억들이 다시 내 안으로 찾아들어 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