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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8 678호 꽃을 바라보며

꽃들이 질 때까지 살아 있어라꽃들이 둥지를 틀고 부지런히 새끼를 키울 때까지살아 길을 가거라꽃을 보며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은아직 꽃들이 나를 그리워한다는 것이다사나운 발길에 차이고 나뒹굴 때에도단 한번 뜨겁게 안아주지 못한 것은무겁게 짓누르던 짐의 무게 때문이다이제 눈물의 짐 다 내려놓는다너는 이제 나를 떠나 봄이 되어라꽃들이 질 때까지 살아 길을 걸어

  • 신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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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8 678호 봄을 다듬다

산골 마당 퍼진 햇살 아래소쿠리 가득 따온 나물을 펼쳐 놓는다 아기손같이 보들한 오가피 다섯 잎손에 가시가 박히는 줄도 모르고 살살 떼어낸다어떤 것은 가시에 찔려도 모를 만큼 소중한 것이 있다 둥근 머위대는 툭툭 꺾어 담는다딸 때도 수월하더니 끝까지 풍성하다호박잎처럼 동그라니 쌈으로 먹는다사는 날들도 이렇게 둥글었으면 낮게 엎드려

  • 양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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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8 678호 올레길 마라도

올레길이 설렌다.이미 저만치 달려가 있다고래를 닮았다는 마라도까만 절벽에 풍경이 묻어 있다 걸으면 생의 힘을 얻는 길한 편의 시가 보인다는 길바다가 유난히도 검 녹색이다.하얀 포말이 까만 모래 위를 애무하곤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는 듯물속으로 숨어들고절벽을 때리며심술부리는 파도를 누가 말려 마라도는물속으로 이어진 어마어마한 협곡이 있어&nb

  • 양은순(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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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8 678호 멸치

높이 날아오르다가 활처럼 휘어진 푸른 등허리 뛰어오르는 순간 사라졌을 것이다화석이 되어 웅크린 채 실종된 잠멸치가 눈을 하얗게 뜨고 밤으로 걸어 들어왔다 앙상하게 마른 놈 통통하게 찐 놈 활처럼 휘어진 놈아가미는 잠자리 날개처럼 버쩍 말라붙어 있고 은빛 모래처럼 번쩍이는 옆구리는 물속보다 더 빛났다뭔가를 말하려고 입이 움직였으나 말소리가 들리지 않

  • 배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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