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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 690호 할매의 고향집 친구들

시골 고향집 양지바른 뒤뜰에 장독대가 있다. 키 큰 놈 작은 놈, 뚱뚱한 놈 마르고 길쭉한 놈, 생김새도 제각각의 장독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어느 놈은 금방 들어왔는지 반질반질 때깔이 곱고, 어느 놈은 산전수전 다 겪고 세파에 시달렸는지 상처투성이다.한낮 따스한 햇살을 찾아 막 부엌에서 나온 등 굽은 할매가 오늘도 집 안의 유일한 말동무가 있는 장독대로

  • 정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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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 690호 곰탕 이야기

친구가 수술하고 입원을 했다. 무슨 큰 수술을 하는 것도 아니고, 편안하게 발바닥 티눈 제거하러 간다고 대수롭지 않게 병원으로 갔다. 8월 말에 수술은 잘 되었다고 했다. 그냥 보호자가 없으니 입원을 하라고 했더니, 의사 선생님도 티눈으로 무슨 입원을 하느냐고 그냥 집으로 가라고 했단다. 이틀에 한 번씩 드레싱을 하러 병원에 가도 별 차도도 없고 더 아프기

  • 김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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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 690호 쇠소깍 산책길에서

쇠소깍을 걷는다. 매인 몸이 아니었는데도 모처럼 해방감을 느낀다. 새로운 환경은 새로운 활력을 충전시켜 주나 보다. 서귀포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부터 숙소에서 10분 거리인 쇠소깍을 걸었다. 계곡에 만들어 놓은 산책로를 걸으면 숲의 시원한 공기가 온몸 마사지를 해주는 것 같다. 단거리라도 한바탕 달리고 싶은 가쁜한 마음이다.비교적 잎이 크고 둥근 아열대성

  • 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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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 690호 내 삶의 점안식(點眼式)

“얘야, 오늘 자고 가면 안 되냐?”“최 서방은?”“그렇지….”어머니는 인사하고 나오는 내 등 뒤에 대고 큰 소리로 말씀하신다. 그러고는 또 예의 그 소리를 선율에 맞춰 목청껏 부르신다.“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야어야….”“엄마, 왜 그래. 듣기 싫구먼.”나는 신발을 신다 말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어머니의 개작한 상엿소리를 들으며 대문을 나섰다.

  • 서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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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 690호 고라니가 지나간 자리

봄은 늘 소리 없이 왔다.4월 중순, 창밖의 앞산은 어느 날 갑자기 연둣빛 옷을 입고 있었다. 겨우내 마른 가지들만 흔들리던 산이 어린 잎을 달고 서 있는 모습을 보니, 계절은 사람의 마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연둣빛이 이틀 만에 짙은 초록으로 변해 있었다는 것이다. 자연은 늘 그렇게 쉼 없이 자기 시간을 살아간다.

  • 이정자(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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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 690호 깃옷 입은 저 늙은이 무엇 하는 선비인고

이순(耳順)에 이르러 평온하던 가정에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 나의 삶을 흔들어 놓았다. 반세기 동안 갖은 역경을 딛고 쌓아 놓은, 나의 삶이 일시에 무너지는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해야 좋을지 기로에 서서 내 삶을 돌아보며 소리 없이 울었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심하다, 부모님의 숨결이 살아 있는 산수 좋은 곳에 조용

  • 송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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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 690호 그날, 아리랑은 눈물이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불러보았을 노래, 아리랑,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입에 붙고, 어느 순간 저절로 흘러나오는 노래다.‘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이 짧은 가사 속에는 한 민족의 정서와 한, 그리고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아리랑을 들을 때마다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가슴

  • 문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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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 690호 식혜

“엄마, 어디 가?”“아니, 왜?”“식혜 하길래 어디 가는 줄 알고.”“아니, 네 오빠가 잘 먹는 것 같아 해 놓으려고.”평상시 내가 식혜를 잘 만드는 편이다. 엄밀히 말하면 어딜 갈 때나 누굴 만날 때 만든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딸아이가 그렇게 말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건지 모른다.내가 처음 식혜를 만들 때만 해도 명절에만 하였다. 작은 한 봉지도

  • 신순례(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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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 690호 양귀비꽃

양귀비꽃이다. 팻말을 들여다보니 개양귀비로 불리는 관상용이라고 적혀 있다. 농염한 여인의 속눈썹처럼 꽃술이 유난히 길고 아름답다. 서너 장의 붉은 꽃잎은 고운 결의 시폰 천같이 하늘거린다. 그냥 꽃이 아닌 무한한 신비를 담고 있는 요정 같은 자태다. 이름 모를 병이 나에게 처음 나타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새벽 4시쯤에 눈알이 빠지듯 쑤시

  • 오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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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 690호 묘모 삼천(猫母三遷)

우리 집 마당에는 길냥이가 두 마리 살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길냥이는 아니다. 언제부턴가 마당을 드나들던 어미고양이가 임신하여 새끼 네 마리를 우리 집에서 낳았다. 새끼들이 어느 정도 자라자, 어미는 떠났고 한 마리는 차에 치여 죽고, 또 한 마리는 제 발로 집을 나갔다. 결국 두 마리만 남아 지금껏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얼룩무늬가 있어 얼룩이, 온몸이

  • 차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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