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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 682호 싸리꽃의 회상

옛 시골집엔 긴 싸릿대로 엮은 사립문짝 열고 들어가면마당 한쪽엔 싸리 빗자루 졸고 있고받쳐 놓은 지게의 싸릿가지 바지게엔 땔감용 싸리 서너 단 들어있었다 지붕에 펼쳐 놓은 싸리 채반 위에서 빨간 고추는 마르고뜨락의 싸리 광주리엔 갓 따온 옥수수가 들어 있었으며부엌 바닥에 있는 싸리 소쿠리에는 저녁 땟거리 감자가 굴렀다 마루 천장에 매달아

  • 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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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 682호 잊혀지는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핸드드립 커피 한잔 내립니다이렇게 바람 부는 날에는파나마 게이샤가 좋습니다야생화 피어나는 언덕을 오르면카리브해 에메랄드 바다가 펼쳐지고 비밀의 화원을 만날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습니다갈 길 잃은 작은 소년처럼창백한 얼굴이 되어빛이 들지 않는 마음속 작은 방사랑은 혼자 쪼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가끔은 잊혀지는 사람으로 살

  • 이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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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 682호 잔상(殘像)

보십시오. 저 빈집들을 확인 사살하려는 포크레인을, 무장 해제당한 침묵들이 비가 오기 전 피난하는 개미 떼의 행렬로 변하는 걸, 퇴락한 골목길 밤을 밝혔을 전주에 붙은 알전구가 한때 무수히 적멸했을 부나방 그림자를 데리고 세상 끝 바닥에 떨어져 깨어지는 소리를 포크레인의 배경으로 서서 나뭇잎 하나 피었다 지는 시간만으로 허공을 높이 기어 오른 건너편 아파트

  • 최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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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 682호 무서리 내릴 즈음이 오면

기세등등천년만년 살아갈 듯한인생길 육십갑자 한 바퀴 돌고 나면고장 난 벽시계처럼시간이 멈추기 전에리모델링이 필요한가 보다 인생은 늘배배 꼬아서 만든엿가락처럼달콤함이야 있겠지만구멍 숭숭 뚫린지난날을 되돌아 회상하면뼛속 깊이 한기가 몰아친다 고장 난 레코드판에뒤엉켜 늘어진 테이프의노랫가락처럼웅성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때로는너울

  • 이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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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 682호 홀로 아리랑

우리가 언제 함께였던가올 때도 울며 홀로 왔고살면서 울음 삼키며 홀로 해결하였고가면서 말 못하고 눈물지으며 홀로 갈 텐데 그 누구에게 마음 열 수 있을까홀로 가는 길단단한 마음만이 친구라그 길에 다칠 일은 없어마음만 단단히 먹으면마음이 문이 된다누군가 알아주는 사람 있으면그를 따라가면 되고그때마다 맡은 배역 통과하면다음 길로 가는 길 이어져울음 삼

  • 김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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