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하루는창고에서 시작되었다 씨 뿌리는 날비 소식에서둘러 상추 모종을 심었다고무호스로 물을 뿌렸다물보라를 치며모세혈관처럼 뻗어간다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몸 안에서 쇳소리가 났다 점점오래된 열쇠처럼 휘어졌다 창고 안에자물쇠들이 녹슬고 있다
- 정성범
아버지의 하루는창고에서 시작되었다 씨 뿌리는 날비 소식에서둘러 상추 모종을 심었다고무호스로 물을 뿌렸다물보라를 치며모세혈관처럼 뻗어간다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몸 안에서 쇳소리가 났다 점점오래된 열쇠처럼 휘어졌다 창고 안에자물쇠들이 녹슬고 있다
아파트 환풍기 앞 개망초 하나 오늘도 신나게 춤추고 있다 환풍기 바람에 온몸을 맡긴 채 두 팔 세 팔 벌려 춤추고 있다 오매 어미는 어쩌다 날 이런 데 떨구어 놓았을꼬 까짓거 흔들리는 내 한 생이라면 신나게 춤추리라 흔들리며 흔들리며 춤추는 사이 보얗게 얼굴 내민 꽃 한 송이&
숨은 손길 따라황홀한 모습으로 가슴 여는 땅 위에보랏빛 그리움으로 찾아오고 있다 상수리나무 우듬지에 비비새가 날아오고 멀고 먼 나라 여명의 길을 걸어모두는 다시 돌아오고 있다 힘쓰고 애쓰며 때를 기다리어순한 지혜의 문이 열리고청록색 소식을 낭랑하게 전해오면 잊히고 지워진 이름이라도찾아가 마음 전할 곳 없을까같이 웃는 마음
소록도는 소록 소록잠드는 섬 아니다안면도는 언제나 불면의 밤을세운다 고깃배 기다리는 아낙네들의 저녁 낮은 물결 위를 날으는바닷새들의 예감등대는 거친 물결에 지치고노을은 방파제를 끌고바다 속으로 걸어간다 섬들은 먼 수평선 쪽으로 돌아앉아 오랜 기다림의 허상(虛像)을가슴으로 접는다 안면도는 언제나 불면의 밤
손자는 열다섯아이스하키 선수다 태어난 후로손, 발톱은 지금도내가 깎아 주는데 아, 언제부터인가그 손톱 깎지 못하네 아니 깎을 새가 없었어 불안, 공포, 외로움을 모두 손톱으로먹어치운 아이 내 손끝은 아리고 가슴이 쓰리다 행여나 자랐을까발톱 깎을 때마다들추어 보면 아직도 깎을 수
씨를 뿌린다 소만 절기에어머니가 손수 해주시던 수수팥떡이 생각나그 어린 시절이 아스라이도 그리워망종 하지 추분 대서 중복 말복 처서 추분이 지난다 차츰 밀어올리는 꽃 대궁얼룩덜룩한 그 붉은 무늬 위횃불이여밭두렁을 따라 줄지어 섰는그 핏빛 불이여땀의 소망이여파괴승의 너털웃음 같은 얼굴이여 맥고모자 씌운 허수아비거기 입힌 등산복이 남루해질 무
묵묵부답으로 살아서자리 안색을 살피다가기둥 기댄 창가에 옮겼더니생명의 적응력이 짙어진 잎사귀 햇살과 틈바람 든 곳으로다소곳이 꽃대 기울여시간의 중력으로열한 개 꽃봉오리 피워낸 군자란 은둔이 아니라 침묵이 아니라 살아내고자 견딘 징표로서 핀 꽃의 개화는내 마음 깊숙이 위로로 수송되어 봄 낮엔봄꽃으로 화사하고봄 밤엔
시간의 흐름 따라 고요히 흐른다 이곳이 어딘지 어디인지 몰라도존재의 인연마다 생명을 적셔주고 이 땅의 낮은 곳 더 낮은 곳을 향하여 순리의 발길 옮겨 내딛는 걸음이라 겸손의 사랑으로 고요히 흐르는다 시간의 흐름 따라 아닌 듯 흐른다 이곳이 어딘지 어디인지 몰라도인연의 영혼마다 숨결을 더해주고 이
오늘도 밤늦도록 걸어도 닿지 않은푸른 그리움 속에 펼쳐진 그날의 나라 밤낮없이 놀았던 영산강의 바람은이제는 가까이 다가와 흰머리칼을 흔들며 나그네를 맞듯이 썰렁하게 맞이하고강둑에 활짝 피어난 유년의 꽃들은 도심(都心)에 그을린 발걸음을맑은 강물에 씻고 헹구는 시간 속에서 영산강 바람의 손을 꼬옥 잡고푸른 그리움 속에 펼쳐
내가 뭘 하든지넌 너무 까칠해 튼튼한 장난감도 네 거달콤한 버터떡도 네 거눈부신 예쁜 옷도 네 거 심지어엄빠의사랑도 안 되겠어난 너에게꿀밤 줄래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꿀밤 너도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줘 맛없어 보이고못생긴 밤티 모습이라도먹어보면 알게 될 거야 네가 아무 생각 없는 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