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 밥솥 덮개가 사라졌죠그 순간, 나는 없었고요 북쪽 부엌오후의 햇살이 레이스로 내려앉아요 솥의 덮개처럼 얹히는 시간 그 순간, 나는 있었고요있다가 사라지는 나는 커튼 부엌 창 옆에서빛이 들이치면 눈을 조금 감고 어둠이 깊어지면 조용히 열리는 말을 아는 천감정을 덮고 있어도뒷모습을 가장 오래 기억해요
- 주혜린
레이스 밥솥 덮개가 사라졌죠그 순간, 나는 없었고요 북쪽 부엌오후의 햇살이 레이스로 내려앉아요 솥의 덮개처럼 얹히는 시간 그 순간, 나는 있었고요있다가 사라지는 나는 커튼 부엌 창 옆에서빛이 들이치면 눈을 조금 감고 어둠이 깊어지면 조용히 열리는 말을 아는 천감정을 덮고 있어도뒷모습을 가장 오래 기억해요
을사년 어버이날에 KBS 1TV <한국인의 밥상>부모로 산다는 것은, 세상 가장 애틋한 한 끼프로그램에 93세 송봉순 어머님과팔남매 자녀들이 방영되었다 마이산에서 재배하는 표고버섯으로팔남매를 다 가르치고학교 문턱도 넘어본 적 없지만66세 늦깍이로 한글을 배워 74권의 일기장을 남기셨다 마령 시골집에서 최수종 배우와 함께표고버섯을
어린 시절은 기억의 저편에서가물가물 아지랑이로 피어나고기억의 끝자락에 서 있는 젊음은하늘 높아 봐야 땅 넓어 봐야못 오르리 못 닿으리 없다 하네 나이테 늘어가고 투박해질수록불어오는 바람결에도 철렁하고점점 더 작아져만 가는 자신이어쩌면 한껏 부풀려져 왔던 삶이본연의 모습으로 회귀함이련가 신기루 좇아 흘러 보낸 세월나이가 들어야 철든다 하더니
마른 붓 끝에어떤 색부터 찍어자신도 모를 나를그려볼거나 세상이란 백지 위에두려운 마음 꾹꾹 눌러밑그림도 없이색칠하다가점점 알아볼 수 없는그림이 되고 있었다 눈도 코도 입도 없는 얼굴사지는 류마치스에 걸려뒤틀리어 등나무 넝쿨 되었고 영혼도 없어서 날인도 찍을 수 없는 그림으로 남아 덩그러니벽에 걸려 있다초점 잃은 시선이&n
햇살에 물든 이여낙조의 황홀을 품은 이여어두운 밤 달빛을 머금은 이여밤낮을 붉은빛으로 숲을 밝히는 여인이라 바라고 품은 뜻이 깊고 넓어스스로 붉게 물들어 산새를 춤추게 하니가을을 밝히는 만물의 일부이라 비록,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 해도 해를 품은 꽃으로 피어나리.
눈물이 났어요마음이 힘겨워도 어찌할 수 없을 때허리가 너무 아파서 꼼짝 못하고 누워 있어야만 할 때 내 인생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사랑하는 사람과 이해보다 오해를 합리화해야 할 때 고흐의 묘비 앞에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을 때 그때 눈물이 났어요사실 그때보다 더 많은 때에 눈물이 났지요 눈물이 흘렀어요황동규 님의
곤히 잠든 아내를 바라보며쪽달같이 늙어 가는 얼굴에서또 다른 나를 보네 야윈 손등에 불거진 굵고 파란 심줄 손가락 마디마디는 옹이로 굳고채귀처럼 박힌 고랑 주름살이곤고했던 삶을 말하네 얼마나 힘겨웠을까버리고 훌쩍 떠나고 싶어도끈끈한 정 버리지 못하고하얀 밤 베갯잇만 적셨다지 나는 당신의 상처로 살아왔지만당신은 나의 든든한
허공에 가느다란 목숨줄 매달어 놓고묵은 명태맹키로 말라 가는 아부지쩌그 우주 별동네로 이사 가시는 중이다 저승 가는 길, 어디쯤에서 이쁜 꽃을 보셨는지 가끔은 눈꼬리에 실웃음을 보일 때도 있었는디인자는 그마저도 확인헐 수 없다 혼자 가는 길이 얼매나 고단허고 힘드셨기에주막마다 목도 축일 겸 쉬어 가는 것이야 당연허것지만
담장 위에새끼 고양이는여자의 코트를 닮아서 이름이 밍크 “밍크야, 안녕!”인사하는데도 째려본다볼 때마다째려보는 것 같은 조 눈빛 그집여자가 내다본다“안녕하세요!”인사하면 보초를 서는 것 같은 조 순한 눈빛
좁은 골목길에 차량 두 대가얼굴을 마주하고 대치 중들어오던 중형차가 슬금슬금 뒷걸음질친다 바닥의 표시를 못 본 것일까 여의도의 방망이를 닮았을까지나던 구경꾼의 참견으로 통과되고아침 해가 화살표를 따라 간다 아버지 “어허” 하시던 호통 소리 한마디에 통과되던 소통법은저녁이 꺾이면서 무기력해졌다 주장은 늘 앞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