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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 674호 새벽형 인간

차가움이 얼굴을 어루만진다어둠속에 가로등도추운 듯 움츠린 빛이다찬 공기 가르는 대화역 행 67번 버스피곤을 싣고 덜컹대며 아침형 인간은 달린다미지근한 바람의난방기 소리도 이제는 정겨웁다버스의 전조등이여명을 가르며 불투명한 오늘을 안내한다이시간버스 안은 익숙한 얼굴들로 하나 둘 채워진다삶이 시작되는 이들의 시간 속에하루의 인생 그림을 상상해 본다오늘은 어떤

  • 문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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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 674호 아내와 나

젊음의 함성이 들불처럼 번지던 1979년그해 늦은 가을 우리는 평생의 동반자가 되었다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대통령의 국가장을 치른 지 꼭 일주일 뒤였다 혼돈의 시대에도 세월은 쉼없이 흘렀고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니 짧은 햇살이 비켜 가는 겨울 뜨락에 긴 그림자 둘이마주 보고 서 있었다키오스크에 주민증을 얹으니 지하철 승차권이 나왔다무궁화 열

  • 정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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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2025.4 674호 나비와 꿀벌

나는불 속에서벗어날 수도 없고불을 막을 수도 없다천형 속 뛰어드는 불나방언어는꿀을 찾는 나비이곳일까 저곳일까이리저리 계속 찾아도영원한 꿀은 어디에나 있니언어는꿀을 찾는 꿀벌구도자일까 도사일까이리저리 계속 끌려다니네 일광으로 짠 병실의 소나타시인은꽃을 찾는 나비이곳일까 저곳일까이곳저곳 찾아다니지만노마디적 꽃만 있는 거니시인은꽃을 지키는 꿀벌성직자일까

  • 이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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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 674호 눈물

고인과는 생전에 일면식도 없는 장지에서눈물을 흘립니다한 무리 기러기 떼가 석양을 물고 날아갑니다검은 옷을 입은 신도들이‘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마지막 이별의 노래를 부릅니다이별의 노래가 무덤에 묻힙니다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이유 모를 슬픔의 물결이 가슴을 파고듭니다이승에서 저승의 길은 가보지 못한 가깝고도 먼 길언젠가 가야 할 외로운 길늘 우리

  • 박완규(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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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 674호 3시 반 차를 기다리며

신새벽에서 멀리 왔다정오의 고개를 넘어나른해지는 오후 3시대합실에 모인 사람들은각자 가야 할 곳으로 표를 끊고버스를 기다린다11번 게이트, 문 앞에 걸터앉아생각한다해질녘까지아직 세 시간이 남아 있고버스 타고 그곳에 도착하면강둑 따라 피어 있는 코스모스 꽃길과 너른 들판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해넘이 풍경을 볼 수 있으리버스 시동이 걸린다가슴

  • 김종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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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025.4 674호 나에게 봄은 희망이었어

빛바랜 가을과 겨울 사이결구(結球)하지 못해 버려진몇 개의 떡잎과 속살을파르르 떨며하루치 무사함으로 버티는 나를사람들은 봄동이라 불렀지서둘러 남쪽으로 떠난 빛바랜 가을성긴 눈발을 흩날리며 찾아온얼어버린 노지(露地)삭풍은 시든 떡잎을 허적이고삶이 허무하다며 흐느끼는머리 잘린 뿌리들을 바라보며버려진 나의 운명이슬픈 것만은 아니라 생각했었지내 삶 절반인 겨울눈

  • 김정윤(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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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 674호 한 마리 작은 새가 되어

호수에 꽃 한 송이 떨어지니여울지는 소리는 산을 넘는구나고뇌의 백건과 흑건의 선율은은하수 물결에 아롱진 별이라작은 새 한 마리 고요히 날개를 내저어이슬 사이로 바스러지는 음표의 물결끊어질 듯 이어지고 흩어져 다시 모여강건하고 경건한 낯선 아득함들숨과 날숨의 열 손가락 충만함은바다에 홀로 떠 있는 일엽편주라땀 방울 사이 사이로 켜를 이루어백건 흑건에 흐르는

  • 최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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