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아들이 자기를 쏙 빼닮은 아들 노아를 낳았다. 핏줄이라는 말이 이토록 또렷하게 다가온 순간이 있었을까. 갓난아기의 얼굴에 스미는 눈매와 입가의 곡선에서, 시간을 건너온 아들의 어린 날을 만난다. 세월은 직선이 아니라, 이렇게 원을 그리며 우리 앞에 다시 서는 것인지도 모른다.작은애는 어릴 때부터 인사를 참 잘했다. 누가 가르쳐서라기보다 사람을 향해 저절
- 민완기
작은아들이 자기를 쏙 빼닮은 아들 노아를 낳았다. 핏줄이라는 말이 이토록 또렷하게 다가온 순간이 있었을까. 갓난아기의 얼굴에 스미는 눈매와 입가의 곡선에서, 시간을 건너온 아들의 어린 날을 만난다. 세월은 직선이 아니라, 이렇게 원을 그리며 우리 앞에 다시 서는 것인지도 모른다.작은애는 어릴 때부터 인사를 참 잘했다. 누가 가르쳐서라기보다 사람을 향해 저절
인생 노년기를 뜻있고 재미있게 보내려면 시간과 돈, 친구와 취미, 건강한 몸을 가져야 한다. 이 중 어느 하나도 그저 얻어지지 않는다. 나름대로 꾸준히 노력해야만 가질 수 있다.황혼기에 접어든 사람일수록 나머지 생애를 즐겁고 의미 있게 보내려면 건강은 필수적이며 적당히 머리도 쓰고 가벼운 운동이라도 할 수 있는 취미 한두 가지는 꼭 가져야 할 것이다. 그래
50년이나 흘렀다. 여물 냄새로 하루를 맞이하고 등이 익을 것 같아 잠을 설치던 밤이었다. 코뚜레를 한 황소는 고픈 배를 알리며 새벽을 깨웠다. 그곳에선 마치 기차가 콧김을 품어대듯 온 마당이 흐물흐물 흰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흙담이 길과 구분되지 않을 만큼 시야의 폭이 좁았다. 부모님은 방학을 맞이하면 큰집 나들이를 지금의 현장 체험처럼 보냈지만, 표
우리가 통상 수필이라고 일컫는 미셀러니는 일반적으로 글쓴이 개인의 신변을 솔직하고 진솔하게 적은 사념의 글이다. 이를테면 일기나 편지, 문장으로 된 시가나 산문, 논문집에 수록된 여러 글의 평가 등이 이 범주에 포함된다. 미셀러니가 이렇게 여러 영역에 걸쳐 있는 건 분명하지만, 생활의 패턴이나 생각의 범주가 한 사람이 살면서 특별한 변고를 겪지 않는 한 경
백두산을 향해 가는 비포장 도로! 그 길은 옛날 내 어렸을 적 다니던 신작로길 바로 그대로였습니다. 연길에서 버스를 타고 백두산을 향해 비포장 도로 위를 달리면서 지나가는 소 달구지와 그것을 모는 조선족을 눈여겨봅니다. 나는 나와 내 아버지가 달구지를 타고 바로 저 모습인 채로 이곳 연길 시골길을 오갔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간도로 떠나신 아버지를 찾아 나는
난생처음 직박구리의 작은 눈과 정면으로 부딪치며 눈싸움했다. 가슴이 열리고 숨통이 트이는 포근한 봄날, 화원에 꽃모종을 사러 나갔다. 꽃 몽우리가 조롱조롱 매달린 블루베리나무가 한눈에 들어왔다. 올해 따먹을 수 있겠다는 마음의 움직임이 자꾸만 일어났다. 수확의 풍요로움을 미리 생각하자, 마음은 기쁨으로 샘솟았다. 더군다나 블루베리는 세계 10대 식
잎사귀 하나가 가을을 알리고 서쪽 하늘로 저녁놀이 곱게 물들면 나는 가끔씩 눈물을 흘린다. 정서가 그렇듯 일출보다 일몰에 더 마음이 움직인다.해가 지면 3병동은 소란스러워진다. 알츠하이머 치매로 인한 섬망 증상으로 평소엔 조용한 환자가 해 저물녘이면 소리를 지르고 발작을 일으킨다. 옆 환우들의 항의와 불만으로 환자는 밤마다 격리되고 있다. 빈 병실에 홀로
나이 들면서 사회활동이 줄다 보니, 모임도 잦지 않고 지인들 만남 역시 뜸해졌다. 정 급한 일은 서로 전화를 주고받지만, 웬만한 일은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카카오톡을 통하여 알린다. 어쭙잖은 자화자찬이긴 하지만 스마트폰 덕에 내 딴엔 의사소통이 제법 스마트해진 셈이다.디지털 노마드를 지향하는 세상을 살면서도 나는 전자기기 앞에 서기만 하면 떨리고 주눅 들기
“아직도 글을 쓴다며?”젊어서 미국으로 이민 간 셋째 동생이 카톡 통화할 때 이따금 물어오는 말이다. 이 질문은 국내에서도 자주 듣는다. 그런데 문장으로 쓸 때는 같은 표기이지만 동생의 말과 국내에서 듣는 말은 그 어감이 다르게 느껴진다. 동생의 ‘아직도’에는 ‘도’자를 길게 빼서 노령의 누나가 그만큼 건강해서 좋다는 혈육으로서의 안도감이 들어 있다. 국내
그녀였다. 또래의 다른 소녀들에게 둘러싸여 구분이 쉽지 않았지만, 나는 단박에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화면을 되돌려 정지하자 그 확신이 더욱 굳어졌다. 색 보정을 다소 과하게 한 탓에 술 취한 사람처럼 안면 가득 홍조를 띠고 있었지만, 깊고 커다란 두 눈을 가릴 정도는 아니었다.호기심에 지난 세월의 영상을 몇 번 보고 난 뒤, 비슷한 유형의 것들이 유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