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셋은 하늘로 치솟고 싶어 하는 한 묶음의 풍선 같았다. 그들은 조금 전부터 취중에 오가는 말이 들뜨기 시작하더니, 오늘 퇴원한 서씨 아저씨가 두 손을 펴 머리를 빠르게 쓰다듬으면서 손뼉을 치기 시작하자, 70대 중반의 애칭이 ‘큰형님’은 바로 손뼉 속도에 맞는 흘러간 노래를 뽑았다.“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신입 환자 강씨는 멀뚱하게 앉
- 김현삼
환자 셋은 하늘로 치솟고 싶어 하는 한 묶음의 풍선 같았다. 그들은 조금 전부터 취중에 오가는 말이 들뜨기 시작하더니, 오늘 퇴원한 서씨 아저씨가 두 손을 펴 머리를 빠르게 쓰다듬으면서 손뼉을 치기 시작하자, 70대 중반의 애칭이 ‘큰형님’은 바로 손뼉 속도에 맞는 흘러간 노래를 뽑았다.“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신입 환자 강씨는 멀뚱하게 앉
“아이고, 오늘도 안 피네!”“꽃잎이 조금 더 벌어졌나요?”“아니, 그대론데.”아내 성주가 몹시 실망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조금도 변화가 없나요?”건우가 물었다.“어제 그대론데…. 야, 너 이름 바꿔야겠다.”“뭐라고 바꿔?”“약백합이라고 이름을 바꿀 거야.”“약백합? 약초는 아닌데….”“약초 말고, 꽃은 안 피고 사람 약만 올리는 백합.”&n
가끔 집 가까이 있는 병영성에 간다. 울산 경상좌도 병영성은 울산광역시 중구에 축조된 조선시대 병마절도사 영성이다. 1415년(조선 태종 15) 경주에서 현재의 병영성으로 경상좌도 병마절제사 영이 이설되었다고 한다. 1417년(태종 17)에 석축 성으로 축조된 후 1426년(세종 8) 경상 우병영 성과 일시 합치되었고, 1437년(세종 19) 다시 좌도 병
51:49 단지 숫자 쌍일 뿐이다. 100이라는 완전한 수를 반으로 나눈 50을 기준으로, 하나는 1을 더 가졌고 하나는 1을 덜 가졌다. 수학적으로는 미미한 차이지만, 인간사에서는 세상을 나누는 경계가 되기도 한다. 1이라는 작은 차이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좌절이 된다.노조 일을 하며 이런 조합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결정을 앞둔 순간
백일홍 세 번 피면 나락은 익는다는데*그 꽃이 피기도 전 조세 통지 먼저 닿아 배들평 넓은 벌판에 먹구름이 일었다지 감세를 간청하는 갈라진 손바닥엔오랏줄 굵은 올이 살을 파고 피가 터져 갑오년 말목장터에 노대바람 거셌다지 쇠백로 긴 부리로 허기진 놀 휘휘 젓는, 만석보 허물어야 제 길 찾아드는 물길 동진
야구장 관람석으로 날아온파울 볼 주워 보니겉가죽에 기워 놓은백여덟 매듭실밥이 도드라져 보인다 약간은 닳아버린 봉제선(縫製線)이지만 한 땀 한 땀 꿰맨속 깊은 다짐장인(匠人)의 손끝에선 명품이었다가 투수의 빈주먹을 먹여 살리고이제 내 마음 안으로 들어왔는데… 어릴 때장난치다 상처 난 곳에 꿰맨 실밥 아문 자리가&n
1. 연혁한국문인협회 울산시지회는 1966년 3월 16일 창립총회를 열어 김어수 초대 지부장을 선출하고, 이외 12명(부지부장 이상숙, 간사 최종두)이 참여한 가운데 발족했다. 이듬해 10월 한국문인협회로부터 울산문협지부가 정식으로 인준을 받았다.1968년 9월 25일 『울산문학』 창간호 편집 완료한 뒤, 1969년 4월 29일 『울산문학』 창간호가 발간됐
1977년 『현대문학』 등단, 좁은 문이었다. 쉽게 열릴 문이 아니었다. 그러나 열지 않으면 안 되는 숙명적인 문이었다. 그 문을 열어준 분들을 생각하면 인연의 깊이를, 기쁨의 농도를, 무한 감사의 설렘을 곱씹지 않을 수 없다. 나의 등단 이야기가 문학인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기를 소망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등단의 역정(歷程)을 되새겨본
1.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TV의 볼륨을 낮춘 채 소파에 깊숙이 묻혀 『눈물과 보석과 별의 시인 김현승』을 읽고 있었어. TV에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2주째 공습하는 과정에서 희생자는 5백 명이 넘고 10만 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발표하고 있군. 무한대해에서 키를 잃고 격랑에 휩쓸리는 쪽배 같던 30년 전의 우리나라 상황을 지
“나의 작품 어디까지 왔나” “나는 무엇을 쓰고 있나”라는 질문과 마주하면, 나는 깊은 사유의 늪에 빠진다. 그 심저에는 데카르트의 명제가 엎드려 있다.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그러나 나의 방식은 조금 다르다. 나는 사유에 머무르지 않고, 사유를 글로 내려 기록으로 남기려는 습관으로 살아왔다. 그래서 오늘의 표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