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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74호 평형수를 생각하다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 위, 배가 흔들린다.저녁을 먹다 말고 TV 화면 속에 눈길이 머문다. 속수무책 요동치는 배를 보고 있노라니 문득 ‘평형수’가 떠오른다. 배의 균형과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바닥짐, 평형수. 물건을 실으면 그만큼 덜어 내고 내릴 땐 다시 채워 무게중심을 잡는다. 거친 파도를 만나 역경에 처할수록 평형수의 역할은 지대하다.나의 평형수, 그것

  • 조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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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2026.3 74호 꿈꾸는 쇠똥구리, 신전에서

“신들 곁에 온 여러분, 하늘의 영주인 위대한 신 호루스의 신전에서 예배를 올리는 여러분, 그분은 하늘을 여행하시지만, 이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신다. 그분은 만사가 공정할 때 여러분에게 만족하신다.함부로 비의에 입문하지 말라. 불순한 상태로 신전에 들어서지 말라. 이 성소에서 거짓을 말하지 말라. 재물을 탐하지 말라. 정확하지 않은 말을 하지 말라.

  • 류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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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026.3 74호 고모와 삼 남매

나에게 파릇파릇 돋아나는 생명의 기운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가슴속 깊이 간직한 그리움이다. 산수(傘壽)를 코앞에 두고 가슴속에 오래 묻어 두었던 고모, 큰아버지, 선친, 삼 남매에 대한 그리움 한 줄기 꺼내 본다. “언제나 철들래?”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고모는 그렇게 말했다. 말썽꾸러기 조카 때문에 마음 상한 남동생의 근심 어린 표정을 보고,

  • 허철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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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2026.3 74호 봉정사 아침

일 년 만에 다시 찾은 봉정사 아침은 숲으로 우거져 여전히 싱그럽다. 바윗골을 타고 맑게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명옥대를 오르니 퇴계 선생 시가 생각난다. ‘낙수대’가 밋밋하다며 ‘명옥대(鳴玉臺)’로 명명했다는데 과연 물소리가 명징하다. 사방에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초록 서정시를 쓰는 짙은 여름이다.퇴계 선생이 숙부인 송재 이우의 주선으로 이수령

  • 강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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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2026.3 74호 고려장(高麗葬)

현대를 백세 시대라고 한다. 실제로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아흔을 넘어 백세를 바라보는 어르신들이 적지 않다. 연세가 그렇게 많다면 어딘가 건강이 안 좋을 만도 한데, 건강은 또 건강대로 좋아서 일상생활을 아무 불편 없이 해내고 있는 분들도 많이 있음을 본다.내가 아는 지인의 어머니는 올해(2022년) 아흔다섯인데도 혼자서 밥하고 빨래도 하면서 건강한 나날을

  • 조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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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2026.3 74호 충절의 식물 제라늄

“잎이 시들었다고 뽑아내지 말라.”이는, 집에 다니러 왔다가, 화려한 제라늄 꽃을 보고 욕심을 부리며 화분을 가져간 딸아이에게 한 말이다. 꽃이 지고 누렇게 변한 잎이 떨어지면, 앙상한 줄기만 남은 제라늄의 모습은 죽은 나뭇가지처럼 볼품이 없다. 죽어 가는 줄 알고 그냥 뽑아버리는 이들이 많아서 전화로 뽑아내지 말라고 알려 준 것이다. 붉게 핀 화려한 제라

  • 이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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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026.3 74호 봄이 오는 길목에서

입춘이 멀지 않았는데 혹독한 엄동설한이 물러가지 않고 버티고 있다. 우수 경칩에 이르면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와 반달곰이 굴에서 뛰쳐나와 제 세상 만난 듯이 껑충껑충 뛰어놀게 될 것이다. 겨우내 땅속에 묻혀 있던 각종 씨앗들은 서둘러 싹이 트고 뿌리가 내린다. 그 연약한 몸체로 흙과 돌 틈을 헤집고 땅 위로 솟아오르게 될 것이다. 지난가을에 단풍 되어 떨어져

  • 정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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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2026.3 74호 노고단의 신비

휴식 중인 지리산 심원계곡에서 노고단까지 식물 분포를 조사하기 위하여, 탐구 대원들은 관광버스 일곱 대에 탔다. 아침 7시에 버스는 교육청 마당에서 힘찬 출발을 했다.조사단은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교사와 대학교수, 교육청 장학관 등이다. 그곳 식물을 조사하고 채집하여 표본을 제작하고 식물의 분포와 생태를 조사하고 변동을 알아보기 위함이다. 나는 내년에 퇴

  • 이재영(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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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026.3 74호 엔드핀(endpin)

엔드핀은 늘 바닥 가까이 숨어 있으면서도 첼로의 모든 무게를 받아 낸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철 끝 하나가 악기의 울림을 지탱한다는 사실이 문득 새롭게 다가온다.나는 오늘도 공원길로 천천히 걸어 나간다. 산책 친구가 함께할 때도 있지만, 혼자일 때가 더 잦다. 혼자일 때는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소리책이나 음악을 들으며 걷는다. 한 시간 반쯤 이어지는

  • 이지원(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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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026.3 74호 병오년의 서원

십 년 전쯤 새해 인사차 은사님 댁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제자들에게 새해 아침에 있었던 농담조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 해가 선생님 연세가 80세 되던 해였으니까 이 제자의 올해 나이와 같다. 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사모님께 큰 소리로 “여보! 내 눈 떠도 되나?” 하니, “눈 떠도 돼요!” 하는 대답을 듣고 일어났다는 우스갯소리였다. 그때 항간에는 여

  • 김형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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