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어느 봄날 토요일 오후, 창 너머로 보이는 먼 산은 연두색에서 녹색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나는 책을 읽다가 나른한 식곤증으로 깜박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요란한 전화벨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일본에서 걸려온 국제전화였다. 모두 개인 폰을 사용하기 때문에 유선전화가 필요 없게 되자, 아내는 몇 달 전부터 없애 버리자고 했지만 내가 정신이 깜박깜박하여
- 조평래
오월 어느 봄날 토요일 오후, 창 너머로 보이는 먼 산은 연두색에서 녹색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나는 책을 읽다가 나른한 식곤증으로 깜박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요란한 전화벨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일본에서 걸려온 국제전화였다. 모두 개인 폰을 사용하기 때문에 유선전화가 필요 없게 되자, 아내는 몇 달 전부터 없애 버리자고 했지만 내가 정신이 깜박깜박하여
욕(慾)을 들일 수 없는문 안으로거칠게 뭉친 세월이 들어온다 누덕누덕 기운 잿빛 승복겁의 바깥에서 계절을 꿰맨다 인연의 간격은 처음 만날 때 정해지고 하루는 한 뼘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억겁으로 벗어나기도 한다 가깝다는 것은 멀어지기 위해정좌하는 일 머리는 휑한데 가슴이 아픈 걸 보니 웅크리고 있
한 번도 울어보지 않은 나무가비로소 울음을 배운 날그 갈비뼈 사이로 말 없는 울림이 번졌다 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몸 밖에서 겨우겨우 배운 음성 현은 약손가락보다 먼저 떨렸고 활은 칼날처럼 나를 그었다가슴을 활짝 열었지만거기서 튀어나온 건 사랑이 아니라 가늘고 날카로운 울림의 기억 현 하나하나가잊고 싶었던 시간을
[지역특집]경상남도지회 1.경상남도문인협회 태동마산문학사에 의하면 한국전쟁 이후 주류를 이루었던 마산의 문인으로는 김춘수, 김수돈, 정진업, 김태홍, 이원섭, 김상옥, 이영도, 김세익, 김남조, 이석, 문덕수 등을 꼽을 수 있다. 6·25 전쟁 중 임시수도 부산에서 열린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문총) 총회에서 마산지부로 정식 승인을 받은 후 7월에 문
탱자나무 울타리가 유난히 돋보였다. 그해 5월이던가 하얀 탱자꽃이 분분하던 울타리 저쪽에서 작은 가위를 드신 아버지는 턱을 살짝 올리신 채, 이제 조금 열매다워지고 있는 포도송이를 고르고 계셨다. 아마도 더 실한 열매의 성장을 돕기 위한 가지치기 작업이 아니었나 싶다.유난히 마당이 넓은 포도밭 그 집은, 맑은 샘물을 길어 올릴 수 있는 깊은 우물이 두 개나
어리석은 것이 현명한 삶인가 결국 드러나는 것은 희망이 없을 뿐 곧 바보처럼 사는 것이 용감한 것 아닌가 드러나게 보이는 그것은 더 나아갈 길이 없는 것 무슨 속수무책으로 자신을 던지는 것일까 그 누구도 모른다 자신을 세상의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 심연 깊은 곳에선 홀로 용트림 앓고 있는 것일까 벌겋게 끓는 용광로를 밖으로 흐르지 않게 가슴에 안고 가는 것
꽃샘바람 불기를기원하는 오월의 밤나의 詩이 어두운 밤때묻은 옷자락을 만져보게 하라 조용히 가을이 오는 밤아낌없이자신을 불태우는 나뭇잎 소리 내일 아침이 있기에샘물처럼 그리움이 솟게 하라 사랑의 눈은어두운 밤을 불태운다 밤에 詩를 쓰는 건당신의 마음에 수를 놓는 불꽃 비바람 진눈깨비 몰아쳐살빛마저 희게 바래어도&n
없는 시력의도끼눈을 뜨고“너 자신을 알라”라고 한 소크라테스를 사랑할 동안은 슬프지 않았다고독하지 않았다그립지도 않았다 어둔 다락방에서습기 뿐인 이슬에 젖어눈뜨지 않은 태양을 사랑하며 침묵보다 더 깊은정적 속으로 빨려 들어가 무거운 그림자 하나건져 내고 있을 동안은 행복했다
바다에 가는 날은 기대를 버린다 바다에 가는 날은 욕심도 버린다 바다에 가는 날은 원망도 버린다 바다에 가는 날은 멀리 보이는 그 섬하나도 지워 버린다
그리운 눈빛다시는 만날 수 없어도그 이야기는세월 속 꽃이 되어능금처럼 익어 간 영상 기존 도덕이 공해로무너져 내리는 도시에깊어 가는 밤도 잊어버리고잔잔하게 부르던 그 노랫소리이제는 들을 수 없어도순박한 뒷모습이 무지개처럼 떠오른다 낙엽 냄새 짙은 밤그 모습다시는 찾을 수 없어도그 이야기는내 가슴에 석류꽃으로 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