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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 76호 참새와 아이들

초등학교 시절인 1950년대 초, 고향에는 개구리며 메뚜기, 여치, 방아깨비가 지천이었고 산에는 꿩이며 산토끼며 다람쥐, 산새 등이 날고, 기며 뛰어다녔다. 삼천리 금수강산이 다 그랬을 것이다. 아이들은 이런 산과 들에서 천둥벌거숭이처럼 쏘다니며 구김살 없이 자랐다. 들에는 들쥐도 흔해서 쥐를 잡아먹고 사는 뱀이며 족제비가 집 근처까지 드나들고 가끔 먼동이

  • 정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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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 76호 맑은 숨결을 위하여

감자밭과 옥수수밭이 이어지는 들녘 사이로 무언가 눈에 들어왔다. 바람에 흔들리며 반갑게 맞아 주는 연초였다. 5월 중순 손녀 둘을 데리고 옥천으로 주말 나들이를 나갔다. 논에는 벌써 어린 벼가 파릇파릇 숨결을 내밀며 작은 희망을 속삭인다.옥천은 금강이 아이처럼 뛰놀 듯 돌고 도는 푸른 들판의 고장이다. 봄이면 강가에 연둣빛이 번지고 햇살 머금은 물결은 은빛

  • 이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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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 76호 세월의 맛

무르익는다. 과일이나 곡식이 제대로 여물어갈 때 쓰는 말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과일은 익을수록 맛이 더해진다. 초록빛이 도는 토마토를 따서 며칠 두면 빨간빛으로 익는다. 딱딱한 감도 오래 두면 말랑말랑한 홍시가 된다. 이렇듯 수확한 후에 숙성이 되는 과일이 있다.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단맛이 높아진다. 바나나, 귤, 자두, 사과 등이 후숙 과

  • 박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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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 76호 마르다의 변

그분이 오신다는 소식이 온 마을에 날아다닌다. 자기 집으로 모시려는 마르다가 매우 분주하다. 먼저 사립문을 활짝 열어 놓고 스스로 닫히지 않도록 묵직한 돌멩이로 괸다. 사방에 널려 있는 농기구들을 정리한 후, 마당을 대빗자루로 쓱쓱 쓸었다. 마루에는 말라비틀어진 걸레와 바삐 벗어던진 양말짝들, 더하여 밭에서 돌아와 머리에서 벗겨진 수건 나부랭이들이 제멋대로

  • 김정자(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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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 76호 색안경

아직은 바람 끝이 매서운 계절이지만, 남녘으로부터 꽃소식이 들려온다. 봄이 저만큼에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모양이다. 어느덧 얼굴에 와 닿는 햇살의 감촉도 제법 포근해졌다. 허공을 가로지르며 쏟아지는 햇빛이 눈부셔 검은 선글라스로 차단해 본다. 강렬한 태양빛이 단지 얇고 검은 유리 조각 하나에 가로막혀 힘을 잃는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신기하다.세상을 바라보

  • 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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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 76호 노년의 풍경

모처럼 대형마트에 들렀더니 살 것이 많다. 계산을 마친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넣는데, 플라스틱병에 담긴 잡곡 1개를 넣을 수가 없다. 장바구니 카트는 끌고 잡곡이 담긴 플라스틱병은 한 손으로 안고 마트를 나왔다.한적한 거리를 지나고 있는데 휴대전화 벨이 울린다. 가로수 옆에 카트를 세우고 잡곡 병도 그 옆에 놓고 전화를 받았다. 전화에 빠져 있다가 뭔가 이상

  • 정선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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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 76호 한 권의 책 값지다

1973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때 어느 지인으로부터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아주 허름하고 만지면 부서질 듯한 책이었다. 책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마의태자 제4집’.문학계 대선배인 춘원 이광수 선생께서 1923년에 펴낸 책이었다. 신라 제56대 경순왕의 왕자로 태어나 천고여정을 꿈꾸던 신라가 망하고 급기야 고려 태조 왕건에게 국권을 빼앗기는 참

  • 장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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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 76호 사람의 가치

전화기 신호음이 멈추자 돌연 수화기에서 들려온 소리.“내가 췌장암 말기라 카네.”분명 송 형의 목소리다. 고유의 높은 언성으로 당혹스러우면서도 크게 절박함은 없는 투다. 뭐라고? 나의 뇌는 정리를 요했다. 그가 오래전부터 허리디스크에 문제가 있어서 근래까지 수술과 치료로 고생한 일은 알고 있었지만, 난데없이 췌장암, 그것도 말기라고.침묵, 내가 겨우 수술

  • 왕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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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 76호 한 사람의 숲

그해 여름은 좀처럼 끝날 줄 몰랐다. 입추가 지났지만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사람도 계절도 지쳐 가던 어느 날, 친구가 말없이 휴양림을 예약하고 숲으로 초대했다.숲속을 거닐며 마음껏 날숨 좀 쉬어 보라며 조건 하나를 덧붙였다. 이번엔 무조건 하루 언니가 될 예정이니 철없는 동생 역할에 빠져 보라며 웃었다.서울에서 가까운 부근이라고 했지만 휴양림은 쉽게 모습

  • 노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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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 76호 동행, 삶의 끝자락에서

얼마 전 관객 수 1600만 명을 돌파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관람했다. 영화 스크린에서는 2년 전 한국문인협회에서 주최한 ‘문학인 한마당 심포지엄’ 행사로 다녀왔었던 청령포와 영월 장릉의 현장들이 방영되고 있었다.그때에는 미처 몰랐던 쓸쓸한 유배지와 슬픈 역사를 영화로 다시 한 번 마주 보니 그 비극적 현장들이 잠자던 내 감성을 두드려 흘

  • 고송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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