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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 674호 선착장의 밤바다

출렁거리는 고향 밤바다줄지어 정박한 오징어배의 불빛들이바다의 은하수처럼 반짝이고생의 소용돌이 속에크고 작은 푸른 포말을 건너면뚜벅 꾸벅 지나온 인생길 같다모래알은 깊은 호흡으로 빛을 발하며 해무 사이로 여명이 눈을 뜨며오리 한 쌍 아직도 사랑을 나누고 있다나는 아직도 뱃멀미에 익숙지 않는데 크고 작은 배들이뚜∼우∼ 출항하는 뱃고동 소리가&

  • 조정혜(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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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 674호 연필 스케치

연필로 드로잉을 한다새가 새싹이 움찔한다 피어난다강약이 있는 선속도감이 있는 직선과 곡선명암을 넣어주면 공간도 생긴다화폭에서 향긋한 냄새가 풍긴다명암을 더 넣으면 내일도 그릴 수 있을까화폭 안에서내 손에 빙의된 마음들이걷잡을 수 없이 날아다닌다화폭 밖에서연필스케치 강사가 말한다연필은 한때 사나운 매의 부리였습니다상상력 같은 거 고민하지 말고 살살

  • 이희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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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 674호 서산동 할매집

등을 타서 소금에 절여져빨랫줄에 꼬박 삼사일 반건조 민어찜은 언제나 맛있었다벽에 내건 양은솥에서 할아버지가 절구에 찍은 마늘과 할머니의 손질된 민어가 쪄지느라매운 마늘 눈물을 흘릴 때쯤이면말없는 할아버지는 상을 놓고 행주질을 하고사람 수대로 수저 몇벌을 놓고 한마디를 툭 던진다술잔은 몇 개하고 웃는 얼굴이 순하다할머니는 미리 다듬어 놓은 식재료들멸치, 데친

  • 이정숙(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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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 674호 사랑해

하루에도 몇 번씩 흘러나오는 말짧지만 포근한 이불 같은 말상처를 감싸주고 어떤 잘못도 덮어주는 위로의 언어그 말이 입술에서 자주 빠져나오고 귓가에 맴돕니다허한 공기를 채워주고 차가운 발을 따뜻하게 합니다아기 같은 연한 줄기에 미소를 띠게 하는 마술 같은 언어는 빼곡하게 채워진 공허함을 단번에 빼내곤 해요당신은 말로 하지 않지만 온몸으로 날 잡고 있

  • 김정옥(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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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 674호 웃음소리

햇살 쏟아지는 창가 자리하하 호호 모두가 웃고 있는 강의실희미하게 따라 웃다가 멈춰버린내 입가의 낯선 근육들표정 없는 얼굴어디서부터 잊고 살았을까뻣뻣한 마음 한켠에서억지웃음 짓고 있는 입가웃음 있는 삶모두가 자지러지게 웃고 있는 공간에내면의 속앓이 위로 새어 나오는 그림자메마른 입가에 햇살 얹어 놓고 웃음소리 내어준다. 

  • 이명희(동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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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 674호 나비의 행방을 묻다

구름 위를 걸어요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길추락의 두려움이 삭제된 문장 속에서 나는 가벼운 발걸음을 옮깁니다손뼉의 파장에도 움찔할까요?낯선 상상력이 살짝살짝발 뒷꿈치를 들어그 끝에서 날개를 펼칠 준비를 합니다바닥에서 치솟는 상승 가능한 꿈 그 꿈을 좇으며 나는혼잣말로 중얼거려요고치로 둘둘 말린 과거형이내 안에서 새로운 나비로 태어납니다변태의

  • 송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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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 674호 지하철은 계절이 없다

나란히 무릎을 나눈 채잠시 잠깐 명상의 숨을 고르고소리를 삼키며 여러 생각 쉬어가는 쉼터핑크빛 지정석디라인 예비엄마 빈자리 앞에선할매 굽은 다리마저 양심 지킴석이다약속된 시간과지정된 번호매긴 구역에서만남의 장소로 인기가 최고지냉온칸 오가며노약자 장애자를보호하고 배려하는 속이 깊은 벗환승선 따라 선택의 길로지하로 지상으로 오르내리고 직선 곡선 다양한

  • 황송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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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 674호 폐쇄병동을 나오던 날

멀리 보이는 하늘은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따뜻하다분노의 화살이수선화 꽃망울같이 되던 날좁았던 속내는 푸른 하늘의 솜털 구름이었다차창 안으로 달려오는 부드러운 빛대지 위로 지나는 살짝 쓰다듬이일천도 넘는 연둣빛 되어우듬지 위로마음의 강으로어제의 아픔 가시 위로 새로움을 노래한다진달래꽃 붉은 고개 아래농부의 손에서 버림받은 경운기 육신은 허물어 산화되어가

  • 김동관(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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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 674호

파도가 칠 때마다 섬은 납작 엎드렸다태풍이 불 때 소중한 자식들을 품고미끄러운 바닷속 바위를 꽉 잡았다그녀의 품엔 꽃과 나무와 나비와 새들이 숨어 있었다 햇살이 비칠 때 그녀는그들을 숲과 바닷가와 오솔길에서 놀게 했다 폭우가 칠 때면 행여 꽃봉오리 다칠까나비 날개 젖을까 밤을 새웠다어느 날 육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다그들은 섬의 머리채에 튼

  • 강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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