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정말 화가 난 것일까.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세찬 소낙비가 쏟아지다가 눈부신 뙤약볕이 내려쬐다가. 봄인가 하면 겨울이고, 겨울인가 싶으면 또 어느새 봄이 성큼 다가와 있는 변덕스런 날씨에 우리네 심신 또한 흩날리는 꽃잎처럼 나른하고 무기력한 계절이다. 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설마 했던 친구도 한 편의 콩트 같은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니,
- 허봉조
지구가 정말 화가 난 것일까.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세찬 소낙비가 쏟아지다가 눈부신 뙤약볕이 내려쬐다가. 봄인가 하면 겨울이고, 겨울인가 싶으면 또 어느새 봄이 성큼 다가와 있는 변덕스런 날씨에 우리네 심신 또한 흩날리는 꽃잎처럼 나른하고 무기력한 계절이다. 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설마 했던 친구도 한 편의 콩트 같은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니,
장롱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옷을 다림질한다. 다리미로 살살 문지르니 주름이 펴지며 반듯한 제모습을 갖춘다. 와이셔츠와 양복바지는 봄바람을 쐬러 갈 기대로 부푼 듯 윤기가 흐른다. 내 마음속에 접혀 있던 주름마저 펴지는 기분이다. 남편은 정년퇴직 후 양복을 입을 기회가 잘 없었다. 수십 년 동안 입고 다녔던 정장 대신 편한 옷을 선호했다. 청바지와 티셔츠 점
집 앞마당 주목에 매미처럼 붙어 있는 빨간 우체통은 나의 서툰 솜씨로 만들어진 것인데 주로 지인들이 보내준 서적들과 납세 고지서, 청첩장 등을 수취하거나 가끔 작은 물품이 전해지기도 하는 우리 집 소통 걸작이 되었다. 오늘도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적잖은 우편물이 들어있었다. 한데 이번에는 낯선 봉투가 두 개나 눈에 띄었다. 경찰서장이 보낸 ‘과태료 부과 사
여행 간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저녁 비행기를 탔다. 새벽 4시쯤에 도착한 곳은 필리핀 팡라오 공항이다. 첫째딸 가족이 간다기에 이때 아니면 언제 가랴 싶어 따라 나선 여행이다. 여명에 실루엣으로 보이는 장대한 야자수와 얼굴을 스치는 더운 새벽 공기가 여기는 필리핀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숙소로 향하는 차 안에서 한국인 가이드가 알려준 것은 오토바이치기나 차치
대학 시절 만나 40여 년간 알고 지내는 친구는 나에게‘너는 생각이 없는 애’라고 자주 말한다. 생각 없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속으로 아니라 항변하지만 그 이야길 하도 많이 들어 정말 내가 그런 사람인가 생각하기도 한다. 하긴 힘든 일을 당하거나 풀지 못할 문제가 생기면 잠부터 잤으니 그런 말을 들을 법도 하다. 물론 처음부터 잠이 오는 건 아니다. 화도
봄볕이 완연하다. 겨우내 이상 기온으로 변덕을 부리더니 계절의 전령은 어김없이 봄소식을 전해왔다. 모처럼 뒷동산으로 봄맞이를 하러 올랐다. 꼬물꼬물 새싹들이 배꼽 인사를 하고 수줍은 진달래가 봄 처녀로 돌아왔다. 부슬부슬 봄비가 오는데도 둘레길 산책을 나서며 아직 내게 이런 감성이 남아 있어 다행이라며 혼자 피식 웃었다. 우리 부부는 젊어서부터 나이 들수록
사람이 꽃이라고 어느 시인은 노래했습니다. 그렇다면 꽃이 또한 사람이겠지요. 화려하고 탐스럽고 잘생긴 재배 꽃들은 잘나고 잘 생겼지만, 이 땅에 저절로 피고 지는 들꽃, 풀꽃들도 그와 못지않게 모두 소중하고도 귀한 생명입니다. 이 땅에 살다 간 조상 대대로의 영혼들이 세상에서 못다 한 한을 달래고자 들꽃으로 피고 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6월이 되면 개망초
나이 들면 미래보다 과거를 되새긴다고 한다. 문득 지난날 첫 직장을 다녔던 일이 생각난다. 나에게 군복무와 야학은 연관이 깊다. 나는 1966년 초복 중복 말복 시기에 훈련을 받았다. 더위와 싸운 일이라 기억이 생생하다. 3보 이상 구보, 아침저녁 심지어 야간에도 연병장을 수십 바퀴씩 달렸다. 군가를 얼마나 열심히 불렀는지 지금도 잠자리에 들면 나도 모르게
희곡은 모든 존재를 의인화한다. 게다가 사람 중심이다. 더 나아가 관계의 틀 안에 모두 귀속된다. 동물이 등장해도 나무가 서 있어도 별들이 나타나도 이야기 속에 들어 있는 모든 존재들은 사람처럼 이야기하고 서로의 관계라는 설정 안에 얽혀 있다. 특히 현재라는 강력한 시간으로 점철되어 있다. 반전이라는 무기는 희곡문학의 핵심요소이다. 귀납보다 연역적 사고방식
산발한 머리통 하나가 뚝 떨어졌다. 키를 넘는 옥수수 밭에서 익은 것들을 따던 내 심장도 그대로 철렁하다가 오그라들었다. 진짜 성인의 머리만 했다. 태어나 오십 년 넘게 살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괴물체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재차 가슴을 쓸어내리며 실눈을 뜨고 바닥을 살폈다. 내 발등을 스쳐 튕겨나간 물체는 잿빛이다 못해 거무튀튀한 곰팡이다. 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