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말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이십대 후반이 된 나는 몹시 초조해졌다. 스물여덟 이전에는 꼭 신춘문예에 당선하겠다는 나의 결심은 어쩌면 이룰 수 없는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안 돼!’ 하면서 의기소침해 있는 나를 다그쳤다. 그러던 어느 날, 아는 사람이 『현대시학』에서 시 1회 추천을 받은 것을 보았
- 전병호아동문학가
1970년대 말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이십대 후반이 된 나는 몹시 초조해졌다. 스물여덟 이전에는 꼭 신춘문예에 당선하겠다는 나의 결심은 어쩌면 이룰 수 없는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안 돼!’ 하면서 의기소침해 있는 나를 다그쳤다. 그러던 어느 날, 아는 사람이 『현대시학』에서 시 1회 추천을 받은 것을 보았
오늘은 우리 동네 5일 장날입니다. 학교가 파하자마자 나는 동생 슬기와 함께 장터로 가보았지요. 채소와 생선들이 넘쳐나고, 고양이, 토끼, 강아지, 병아리 같은 작은 동물들이 철망 안에서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우리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끄는 것은 단연 고양이입니다.“형, 얘 좀 봐. 털빛이 너무 곱다, 그렇지?”“나는 그 옆에 있는 노랑이
낮은 짧아졌고 밤은 길어졌습니다. 차려입은 여인보다 화려했던 장미는 염천(炎天)의 뜨거운 태양 아래 온몸으로 받아냈던 피의 향기를 갈 바람에 실어 어디로 보내는지 알 수가 없는 계절입니다.찬란했던 여름의 노을이 황홀지경 벅찬 가슴 물들였다면 석양이 구름을 만나 붉음을 토해 내는 가을의 노을은 머뭇거리며 계절이 두고 가는 흔적 앞에서 들숨과 날숨이 사라진 먹
가을은 그리움이다. 코끝에 스치는 나뭇잎 익는 냄새, 그 향이 서서히 다가와 내게 머문다. 개천변의 벚꽃잎도, 도로변의 은행잎도, 우리 집 목련 잎도 빨강, 노랑, 커피색으로 알록달록 익어 간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 때문인지 아직 대지의 숨결은 무겁지만, 곧 가을 냄새가 공기를 바꿔 줄 거라는 기대에 마음이 가볍다. 귀뚜라미 울음이 시끄럽게 들리는 것을
매일 아침 운동을 하는 뒷산 등산로에서 토끼를 만난 건 6년 전. 어느 따뜻한 봄날 새끼 토끼 두 마리가 나타나 뭍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1∼2년이 지나도 식구가 불어나지 않아 의아해했다. 혹시 같은 종(種)끼리만 살고 있나 했는데, 어느 날 새끼 6마리를 데리고 나타나 식구가 8마리로 늘어났다. 동네와 가까워
새벽을 가르는 뿌연 박명이 이름 모를 섬의 자태를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반짝이는 불빛 사이로 바다에 오른 배가 보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세히 보지 않으면 움직임을 알아챌 수 없도록 나아가고 있지만, 방향만은 제대로 알고 있다는 자부심 섞인 흐름이다.그 앞 낮은 건물 사이로 일찍 깨어나온 새 한 마리가 공중에 획을 그으며 날아간다. 힘찬 하루를 살아
빛이 닫혔다고 어두운 것이 아니었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대전 여성 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대체 학습으로 개설한 ‘나도 작가다’라는 과정을 몇 년간 이끌면서 시각장애인들이 온몸으로 쓴 글을 편집하고 퇴고해 『어둠도 빛이더라』라는 책을 세상에 내보였다.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글쓰기를 지도한다는 것이 처음엔 버거웠지만, 점점 글쓰기의 중요성을 깨닫게
새벽 1시 30분쯤, 어머니가 이 세상 소풍을 마치고 새로운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 남겨진 세상과 정을 떼기 위해서였을까? 음식을 먹는 즐거움이나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의 즐거움도 마다하고 조용히 누워 있다가 삶을 마감한 것이다. 어머니는 새로운 세상으로 소풍을 떠나며 자식들에게는 풍목지비(風木之悲)를 남겼다. 어머니는 조용히 떠나셨다지만 자식들에게
새벽녘엔 어수선한 꿈을 꾸다 깨어났다. 날마다 극심한 사회의 갈등으로 혼란하고 불안했던 마음 때문이지 싶다. 가만히 누워 마음을 안정시킨 후 주방으로 나가서 미지근한 물을 한 컵 천천히 마신다. 밤사이 경직된 근육을 몇 가지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풀어준 후 아침 기도를 드리고 나면 또 하루가 펼쳐진다. 은은하게 여명이 밝아오는 아침 거실을 둘러봐도 아직도 집
화천 오음리 근방 병풍산 자락으로 전원주택을 짓고 춘천서 이곳으로 이사 온 지 벌써 12년이 된다. 도시는 모든 소리가 공해의 소리로 잠을 깬다. 그러나 이곳은 자연의 소리와 신록으로 물든 초록빛에서 잠들었던 주변의 꽃들의 화사한 미소를 보며 새벽을 맞는다. 사방에서 들리는 이름도 모르는 산새 소리도 좋지만 멀리서 크게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와 함께 창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