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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 68호 장맛비, 어머니

7월 장맛비가 오신다그리움에 눈물이 세차게 내린다잊혀질까 생각하면 서운한 듯아쉬움 속에 마음을 슬쩍 쓸어낸다아버지와 함께한 오랜 시절 덕수궁 나들이 즐거움아스라한 모습이 되어 거침없는 빗소리 따라 멀리 가셨다7월 장맛비, 피난시절 부산 자식의 탄생을 들려주시곤자식과 돌담길 웃음, 커피향에 못다 한 이야기를 고이 접었다빛바랜 아쉬움만 빗소리 요란한데장마빗,

  • 최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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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 68호 보길도를 품다

고산 윤선도「오우가」를벗삼아떠나는 땅끝마을유람선 뱃머리에 다가오는 보길도윤슬을 바라보는 갈매기도금빛날개 펄럭이며 춤추는 다도해보길도 사람들이 반겨주는 두 손이바닷소리처럼 낭랑하고 힘차다고산*의 유배지가 별천지였구나몽돌해변 보름달은 바닷물을 얼싸안고 쏟아질 듯 반짝이는 큰 별 작은 별들나도 몽돌이 되었다가 보름달이 되었다가 흐르는 바람 안고

  • 신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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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 68호 나는 알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아내는 할 일 있다며 신바람이다온종일 바깥 세상을 돌다가 오면누울 곳 있어 행복하다며 활짝 웃는다내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땀내나고 빛 바랜 작업복이 멋지다며 웃음으로 반겨준다갈 길을 찾아 멀리 날아간 자식들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며 뿌듯해 하고 하늘 아래 없는 꽃을 본 듯손녀들을 보면 숨이 넘어가는데난 아프기만 하

  • 박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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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 68호 그 남자는 북한산성에서 내렸다

3호선 남부터미널역, 한 남자가 검은 민소매 셔츠 차림으로 시화(詩 畵) 패널을 들고 승차하였다. ‘생각의 새싹 편지’, ‘참다운 생각은 내게서 나온다.’승객들은 핸드폰에 몰입하려고 노력하거나 일부는 외면하려고 하였지만 낯선 장면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돈을 요구하지도 않았으며 침묵으로만 가운데 통로로 한 걸음씩 옮기는 것이

  • 신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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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 68호 말은 말을 탄다

입에 잔뜩 고인 침에서 거품이 일어나혀를 감아친다갈라진 입술 사이로 들어선 휘파람에풍선처럼 불러 오른 양 볼툭 건드리자마자 튀어나오는 말방향 없이 수다질이다며칠 전부터 달려온 헛바람이 꽉 찼나 보다 삼키기보다는 뱉어내는 침에 불어나고 들이키기보다는 내쉬는 숨에 부풀어또르르 구르다가 터지는 말을 탄다말이 말을 채고말꼬리가 말꼬리를 물고말갈기

  • 증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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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 68호 꿈과 새

어느 숲에서 날개 죽지를 접었을까, 지난 밤 작은 새이른 새벽 뜰 앞 나뭇가지에서 지저귄다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창밖에노랑지빠귀 작은 혓바닥이 어둠을 조금씩 걷어낸다꿈을 좇다가 깨어버린 꿈잠 모서리에 새들의 노래가 악보를 끼워둔다.(가만히 아침을 열어요)한 생애는 갈매기 날갯짓을 따라 갔었지조나단의 갈매기, 높이 나는 꿈은반 생애는 낮게 나는 날갯짓을 따라

  • 경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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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 68호 모래의광장에서본푸른장미

푸른 모자이크 유적의 문턱안과 밖의 경계에서 생각한다표지석도 철망도 없는이곳은 시간의 능선내 유랑의 칠부능선쯤이지 싶다마법에 걸린 행성의 시간은늘자고깨도오늘,기억 속의 어제는 착각일까지워진 시간일까고속열차를 놓쳤다면 내일에나 닿았을 레기스탄광장  그늘에 들어서숨을 고르며카파를 쓴 소년들이 꾸란을 염송하며거닐었을 회랑을 떠올린다내일 당도해야

  • 김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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