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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 68호 어머니

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아가서 5장 8절)어머니의 눈은늘 한곳만을 보신다세상의 모든 빛을 합치면흰빛이라고 생각하시는 듯세상으로 뻗어있는 길마다 저녁 무렵이면 떠오르는저마다의 상처를 노을처럼 어루만지는 손길과안아주시는 깊은 한숨.그래도 어머니는 울지 않는

  • 손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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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 68호 무학산 슬하에서

무학산에서 보는 금호강은 하양 청천 사이장대한 비단물결 이룬다1월은 요람에 누워 있다2월은 소소리바람 불고 눈이 내려 마음 소소명명(昭昭明明) 하얘진다 3월은 춘수 선생이“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했다 봄이 다가오고 있는데 눈이 내린다는 아이러니칼한 정경을 배경으로 한 사나이 마음의 동요를 그리고 있다4월은 게으른 여자가 하품을 하고 가난한 사람

  • 도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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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 68호 추수의 결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봄에 씨를 뿌리고 땀흘려 가꿔 온 모든 곡식에 대한 열매를 거둔다. 농부들은 이 알찬 열매를 추수하기 위한 바쁜 일정을 보낸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익은 곡식의 추수를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 추수의 시기가 다가오면 누구나가 설레는 마음이다. 추수의 결실에 대한 결과의 기대에 부풀 수 밖에 없고, 기쁨과 보람을 주기 때문이다.

  • 최규창시인·한국문인협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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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 668호 어두운 밤 부처님 손가락

‘6·25전쟁’이라고도 하는 한국전쟁이 휴전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어. 그때,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어.학교 뒷동네에 분이네 집이 있었는데, 마당에 살구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어. 살구나무는 봄이 되면 꽃이 활짝 피어 눈이 부 실 정도였어. 벌들도 모여들어 종일 잉잉거렸고….나는 늘 가던 길로 가지 않고 되도록 분이네 집 앞으로 돌아가곤 하였어.“얘

  • 심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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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 668호 오징어가 불쌍해

드넓은 바다 한가운데서채낚기 어선으로 오징어를 잡는 프로그램을 본 후 우리 가족은 바다 여행을 떠났다.바닷가 횟집 수족관에서 바닷고기를 구경하다가둥글고 붉은 몸뚱이로 헤엄치는 오징어가 가득한 수족관에서“오징어가 살아 있을 땐 이렇게 몸이 둥글단다. 헤엄치며 노는 것을 잘봐,깊은 바다에서 저렇게 살아.” 엄마의 설

  • 김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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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 668호 돌고 돌아도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는 문학

여름밤에 하늘을 보면 은하수가 훤히 나타나는 청정지역에서 나는 태어나고 자랐다. 책 읽기를 좋아해서 작은 학교의 도서관에 있는 책은 모조리 읽었으며 언제부터인가 나는 동네의 스토리텔러가 되었다. 우리 할머니의 친구분들로 구성된 그룹에서 나는 요즘의 아이돌처럼 사랑을 받았고 보답하듯이 도서관의 책들을 부지런히 날라다 읽어드렸으며 도시의 자녀들에게 편지도 대신

  • 진영희동화작가·청소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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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 668호 퇴계와 고봉의 편지

따뜻한 언약인 듯 태양은 날마다 환하게 떠오른다. 미래는 알 수 없어도 인간은 저마다 삶을 향유하고 인간사 희로애락은 여전히 이어진다. 오래전에 살다간 사람도 인생에 대해 궁구하고 피치 못할 현실에 괴로워하다가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천명이라며 순응했을 것이다. 고전을 읽는 것은 앞서 산사람들의 사상과 지혜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내 삶의 길을 닦는 일

  • 남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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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 668호 도끼와 바늘

두 여자의 음성이 겹쳤다. 높고 날카로운 걸 보니 또 윤희의 딸이 온 모양이다. 모자라는 것 없이 잘 사는 사람들 인데 마치 도끼를 든 엄마와 바늘을 든 딸이 서로 이기려고 필사의 힘을 실어 겨루는 듯하다. 친모녀의 소통도 미인도 감상과 흡사하다. 청자의 얼굴에는 고소가 번진다. 한 때는 우리 모녀도 저랬다. 으르렁거리는 어미와 왈왈거리는 새끼. 칠십이 넘

  • 박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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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 668호 잔소리

등장인물_ 정소영(33세, 딸)|모성자(59세, 엄마)무대_ 원룸 형태의 공간. 좌측은 침대와 1인용 쇼파가 있는 개인공간이고 우 측은 부엌과 식탁이 놓인 공용공간이다. 부엌 뒤쪽 출입구를 통해 세 면실 및 다른 공간으로 연결된 통로가 있지만 무대에서 보이지는 않는다.칠흙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집 안. 키폰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리고 검은 정장을 입은 소

  • 김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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