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2026.3 685호 무관심의 죄

겨울이라 거실에 들여놓은 화분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특히 우담바라만큼 꽃을 보기가 어렵다는 녹보수가 세 번씩이나 단아한 꽃을 피웠고, 이어서 게발선인장이 붉고 현란한 꽃을 지속적으로 피우고 있다. 동백도 오래전부터 꽃망울이 일곱 송이가 맺혀 개화를 기다리고 있고, 제라늄도 초록잎 사이에 꽃대가 길게 올라와 있다. 7년 만의 입춘 강추위로 몸과 마음은

  • 서태양
북마크
34
2026.3 685호 사랑의 선물 명품김장!

기후 변화 무상함을 알려주는 바람이 쌀쌀한 초겨울이 시작하는 날 나서 본 김장 봉사, 누구에게나 김장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많다.도시생활에서의 어릴 적 우리 집 김장은 기본이 100포기, 아래채 아주머니들이 함께해 주시던 멋모르고 지났던 김장, 엄마의 보쌈에 “맛나다”를 되뇌며 받아먹던 보쌈김치 맛. 어른 되어 결혼 후 시어머니의 손맛에 시중들어 만들었던 김

  • 권정숙(난향)
북마크
26
2026.3 685호 피아노 소리

어느 날 아내가 키보드를 샀다. 결혼하고 단칸방에 살 때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칠 수 있는 가벼운 것이라 혼자 손으로 들고 왔다. “이게 뭐예요?” 하자, 노래 수업 때 필요해서 재미있게 진행하려고 구입했단다.포장된 박스를 벗겨내자 나란히 배열된 희고 검은 건반이 눈에 확 띄었다. 동그란 건전지 몇 개를 끼우고 전원 버튼을 누르니 파란불이 켜졌다. 아내

  • 최창우
북마크
33
2026.3 685호 봄이 오는 길목에서

늦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온 산과 들에 하얀 눈이 솜이불처럼 덮여 있다. 깊은 잠자리에서 깨어나지 못한 나뭇가지들. 싸늘하게 몸을 스치는 바람이 싫어 몸을 움츠리지만 앙상한 나뭇가지에 둥지를 트는 까치 소리가 정답게 봄을 알리고 있다. 힘없이 녹아내리는 깊은 산골짜기 얼음 조각들이 토해내는 물소리가 가느다란 실고랑 소리를 내며 겨울을 녹인다.차가운 겨울의 끝

  • 이형민
북마크
30
2026.3 685호 땀에 절은 사탕

“내일이 어머니 기일이라 산소에 다녀오려고요.”동생의 전화다. 어머니는 23년 전,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나는 먼저 내 손을 보게 된다. 내 왼손 세 손가락은 세 마디가 없다. 여섯 살 때 소꿉놀이를 하다 작두에 잘렸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다쳤던 아픔보다 무서웠던 기억이 앞선다. 같이 놀던 나보다 두세 살 많은 동네 언니는 사고가 나자

  • 김영숙(성지)
북마크
31
2026.3 685호 부드러울 유(柔)

혹시… 내일 시간이 되느냐는 문학 선배님 전화를 받았다.통화 중에 얼른 일정을 살펴보니 비어 있다. 일정은 없는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망설이던 선배님이 내일이 며느리 49재인데 절에 같이 가 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순간 혼란이 온다. 나에게 선배님 며느리면 먼 인연이다. 웃을 일도 아니고 슬픈 일에 참석해 달라니…. 그 순간은 그렇게 생각했다.선배님은

  • 김산옥
북마크
29
2026.3 685호 잠의 빈자리에서

구안와사가 찾아온 뒤로 나는 매일 한의원에 들러 침을 맞는다. 진료실 문을 열면 한의사는 어김없이 ‘이-, 오-, 아-’를 해 보라고 시킨다. 침이 더디 듣는 날이면 그는 조용히 묻는다.“어제, 몇 시간 주무셨어요?”그 한마디가 뜻밖에도 오래 남았다. 밤 열 시에 누워도 새벽 세 시 반이면 눈이 뜨이고, 깨고 난 뒤에도 삼십 분은 더 누워 억지로 여섯 시간

  • 신노우
북마크
23
2026.3 685호 밝고 선명한 노란색

가을은 참으로 축복받은 계절이다. 은행나무 산책길이 운치 있고 노랑에 취하게 한다. 이제 가을은 부채 모양의 낙엽이 하늘 하늘대며 조금 힘없이 가지가 축 늘어져 가볍게 잇따라 흔들리고 있다. 그 예쁜 노란색이 사람을 홀린다. 길바닥에 수북이 쌓여 발의 촉감이 여간 기분 좋은 게 아니다.안양시 비산동 미륭아파트 옆길에 위치한 오십여 년 된 삼십여 그루의 은행

  • 이영숙(안양)
북마크
32
2026.3 685호 담사리새

배꽃이 환하게 피는 잎새달. 이적지 찬 기운이 남아 있어 이불을 꺼댕기는 새벽녘, 매화산1) 숲속에서 담사리새2)의 목 쉰 소리가 들린다. 애타게 소쩍 소쩍, 얄부리하이 저며 우는 소리를 들던 울 할매, 명치끝이 알싸해져 담뱃대를 찾으신다. 담사리새는 제 울음을 초가집 조선종이를 바른 문틈으로 슬몃슬몃 밀어 넣고는 앞산 솔수펑이에서 또 운다.울 할매, 나를

  • 손정란
북마크
84
2026.3 685호 관전석에서 삶의 무대로

나는 관전을 좋아한다. 관전은 내가 흘리지 않은 땀의 결실을 대신 맛보게 해준다. TV 화면 속에서 누군가의 노력이 환호로 바뀌는 순간, 내 삶의 결핍을 잠시 접어 두고 그들의 성취에 기대어 숨을 고른다. 어쩌면 관전은 욕망의 가장 안전한 형태인지도 모른다. 실패하지 않아도 되고, 상처 입지 않아도 되며, 박수만 치면 되기 때문이다.나는 예체능에 재능이 없

  • 서주린
북마크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