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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 691호 길 위의 벗에게

넘어져 온몸이 굴러도어두운 흙길을 기어서라도 가다 보면언젠가 그대 숲에 닿을 것이네그때쯤 얼어 터진 상처도 많이 아물 것이고그 자리마다 보이지 않게 똬리를 튼 옹이는도끼날을 견딜 만큼 더 단단해질 것이네그대의 용기와 신념의 발목이 무릎이여름 대관령 언덕에 설 것이네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꿈의 세계가 아니라죽은 생명이 다시 일어서는 그런 세상이 아니라이슬 찬

  • 박상석(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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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 691호 백건 위에 쌓이는 봄

인기척마저 사조 속으로 침잠하는 출구의 끝 땅거미는 지상의 유일한 건반이었던실루엣을 기어이 지워낸다 누군가의 아득한 등부전(背部)마저 삼켜버린 어둠 속에서 찬란했던 어제의 봄날은 궂은 한기로 화하여낮은 저음으로 가라앉는다 동결의 온도로 밀어낸 저 꽃잎들의 유배지,차마 열리지 못한 채 수줍게 붉어진 봉오리 안에서 

  • 최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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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 691호 유관순의 번호

내 이름은 유관순이다왜 나를 숫자에 불과한1933이라고 부르느냐내가 무슨 연도라도 된단 말이냐 꽃도 새도 나무도 이름이 있고산맥도 강물도 이름으로 열렸는데내 부모가 지어준 사랑의 이름을사람 취급하지 않으려고하찮은 숫자로 바꿔 부르고는밟고 때리고 고문하는 왜인들아 이 나라에 바칠 목숨이하나라서 하나뿐이어서 안타깝다내게 목숨이 몇 개씩 주어졌

  • 윤만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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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26.9 691호 데본기*의 지느러미들

모든 진화의 서사는 바다다 수평선이 신기루를 산란할 때날치는 왜 수평선 너머로 날아갔을까지느러미는 어떻게 날개로 날았을까 아가미와 폐를 넘나들며망둥어는 어떻게 뻘을 달리기 시작했을까지느러미는 왜 지평선으로 가고 싶었을까 인류가 미지의 푸른별에 도전하듯틱타알릭**은 축축한 그림자를 끌고 뻘을 지나 뭍으로 위대한 첫발을 내디뎠다&nb

  • 임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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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 691호 바람 한 점 없는 날

멀찌감치 물러나 올려다본 하늘이마치 정지된 화면 속 광고처럼파랗게 질려 있는오늘,이런 날 하루쯤은바람 한 점 없어도 좋다 언제부터인가나무는 미동도 없이 홀로 서서색이 주는 황금빛 커튼 뒤에 숨어떠나보낼 잎들을 하나하나 부르며뿌리의 전설을 노래처럼 들려주고밤이 되면 순백(純白)의 별들이총총거리며 우리에게 내리면 좋겠다 그런 날덩달아 넋놓고

  • 유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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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 691호 바람이 머무는 강

능수버들이이리 흔들 저리 흔들바람과 함께 놀고물 속에 투명하게 비친하늘과 버드나무 물 속에 갇혀 있는수양버들길게 늘어뜨린 가지마다낭창낭창 춤추게 하는바람이 모여 사는 강 머무를 수 없는 운명차라리 깊이 잠기어안락한 평화와 함께하늘과 구름 일렁이고, 화창한 날 밖이 그리울 땐버들피리 부르는 소년새들도 초대해 노래하고큰 바람 작은 바

  • 유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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