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2026.3 685호 허수아비 구둣방

구 엠비시 맞은편햇살이 비스듬히 스며드는 좁고 기다란 골목그 안에 허수아비 구둣방이 있다문턱을 넘으면 가죽 냄새가 묵은 먼지처럼 쌓여 있고 철제 선반마다 제각기 다른 인생을 지닌 신발들이 웅크리고 앉아 있다 터진 실밥은 지난 시간을 꿰맨 주름 같고닳은 굽은 고단했던 하루의 흔적이다팔자로 걷던 발 오리처럼 뒤뚱거리던 발그 모두가 이

  • 김성미
북마크
24
2026.3 685호 보름날

보름날 아침이 밝아오면엿장수 가위 소리에 침 흘리며사이다병 소주병 엿 바꾸어 먹었지그것도 없으면 멀쩡한 고무신까지몰래 갖다 주고 엿으로 바꾸었지 사내아이들은 엿을 툭 반으로 잘라누구의 구멍이 더 크나 내기를 했고,엿치기에 진 아이들은 구슬을 빼앗겼지 보름달이 뜨면아이들은 산으로 몰려가짚단에 불을 붙이며하늘을 향해 복을 빌었지그런 뒤 자치기

  • 강애나
북마크
27
2026.3 685호 한밤중

갈증은 한밤중을 깨운다텅 빈 거실과 조금 전부터내 체온이 식어 간 침대 한때 밤하늘을 식탁 삼아며칠을 뜬눈으로 보낸 적이 있다어제보다 조금 더 많은 별을 열어 보며 달걀이 부화되는 방식을프라이팬이 대신 생각하는 동안병아리가 되지 못한 약속들이껍질 안에서 금이 간다 책이 읽히지 않는 밤이면귀뚜라미들을 보일러실로 추방하던 시절&nbs

  • 김영미(심전)
북마크
25
2026.3 685호 국물 한 그릇

텅 빈 들녘을 본받아내 마음도 앙상해지는 저녁뚝배기에서 끓어오르는 된장국 냄새가 허기를 흔들어 깨웁니다후루룩,뜨거운 국물 한 모금이식도를 타고 내려가면비로소 몸속 깊은 곳에서“살아 있다”는 더운 숨이 터져 나옵니다 겨울은 웅크림이 아니라깊어지는 시간입니다처마 밑 시래기처럼찬바람 속에 물기를 비워내고언젠가 당신의 식탁 위가장 구수한 기도로

  • 조성국(부천)
북마크
29
2026.3 685호 삼각연애

낙동강변으로 덜컹거리는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자지러지는 매화 가지, 꽃잎은 혼비백산이다한 무리는 기찻길로, 또 한 무리는 강물 위로 하르르하르르 날리고 세세연년 우리는 원동 매화 꽃그늘 아래 설레는 눈빛으로 마주앉아 동동주 한 사발에 천첩만첩 꽃잎 띄우며저마다 향기로운 봄날에 까무룩 취했다 낙동강변으로 덜컹거리는 기차가 지나갈 때마

  • 장하빈
북마크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