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엠비시 맞은편햇살이 비스듬히 스며드는 좁고 기다란 골목그 안에 허수아비 구둣방이 있다문턱을 넘으면 가죽 냄새가 묵은 먼지처럼 쌓여 있고 철제 선반마다 제각기 다른 인생을 지닌 신발들이 웅크리고 앉아 있다 터진 실밥은 지난 시간을 꿰맨 주름 같고닳은 굽은 고단했던 하루의 흔적이다팔자로 걷던 발 오리처럼 뒤뚱거리던 발그 모두가 이
- 김성미
구 엠비시 맞은편햇살이 비스듬히 스며드는 좁고 기다란 골목그 안에 허수아비 구둣방이 있다문턱을 넘으면 가죽 냄새가 묵은 먼지처럼 쌓여 있고 철제 선반마다 제각기 다른 인생을 지닌 신발들이 웅크리고 앉아 있다 터진 실밥은 지난 시간을 꿰맨 주름 같고닳은 굽은 고단했던 하루의 흔적이다팔자로 걷던 발 오리처럼 뒤뚱거리던 발그 모두가 이
바닷바람을 맞으며해송숲을 가로질러바다를 향해 서 있다 깎여진 모래언덕을 내려다보며 쉼 없는 파도에겐이유도 묻지 않았다 찬바람 때문에 파래진 하늘은 낮달이 걸려물끄러미 바다를 들여다보고 있다 바다를 동경함은끝없이 기다려주기 때문이라 내 안에 갇힌나를 만나고 싶을 때 바다로 간다
밤의 가장 먼 높이에서한 점 은빛이 어둔 거리를 조용히 덮고 흔들리던 바람과 마음은그 빛 아래서 잠시 결을 고른다 겨울은 차갑게 다가오지만그 속엔 오래 숨겨둔 체온이 맥처럼 스며 있고 멈춤은 얼음이 아니라봄을 품은 흰 씨앗의 은밀한 숨이다 고독이 스며들 때마다우리 마음은 본능처럼 따뜻한 쪽으로 기울고 얼음 아래
보름날 아침이 밝아오면엿장수 가위 소리에 침 흘리며사이다병 소주병 엿 바꾸어 먹었지그것도 없으면 멀쩡한 고무신까지몰래 갖다 주고 엿으로 바꾸었지 사내아이들은 엿을 툭 반으로 잘라누구의 구멍이 더 크나 내기를 했고,엿치기에 진 아이들은 구슬을 빼앗겼지 보름달이 뜨면아이들은 산으로 몰려가짚단에 불을 붙이며하늘을 향해 복을 빌었지그런 뒤 자치기
갈증은 한밤중을 깨운다텅 빈 거실과 조금 전부터내 체온이 식어 간 침대 한때 밤하늘을 식탁 삼아며칠을 뜬눈으로 보낸 적이 있다어제보다 조금 더 많은 별을 열어 보며 달걀이 부화되는 방식을프라이팬이 대신 생각하는 동안병아리가 되지 못한 약속들이껍질 안에서 금이 간다 책이 읽히지 않는 밤이면귀뚜라미들을 보일러실로 추방하던 시절&nbs
건기와 우기는 멀고도 가깝다 보이지 않는 승리를 벼리던 습기들 빛조차 스며들지 않는 침묵 속에 숨어 촉촉이 젖겠다며 기회를 노려 제습기를 켜자 낡은 관절 기침하듯 떨고투명하고 싸늘한 바람공중으로 부드럽게 부딪치며 날아올라 기습적으로 시간의 경계 없이 뒤엉킨다 골인 지점은 넓고 넓은 우주젖은 몸은
텅 빈 들녘을 본받아내 마음도 앙상해지는 저녁뚝배기에서 끓어오르는 된장국 냄새가 허기를 흔들어 깨웁니다후루룩,뜨거운 국물 한 모금이식도를 타고 내려가면비로소 몸속 깊은 곳에서“살아 있다”는 더운 숨이 터져 나옵니다 겨울은 웅크림이 아니라깊어지는 시간입니다처마 밑 시래기처럼찬바람 속에 물기를 비워내고언젠가 당신의 식탁 위가장 구수한 기도로
낙동강변으로 덜컹거리는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자지러지는 매화 가지, 꽃잎은 혼비백산이다한 무리는 기찻길로, 또 한 무리는 강물 위로 하르르하르르 날리고 세세연년 우리는 원동 매화 꽃그늘 아래 설레는 눈빛으로 마주앉아 동동주 한 사발에 천첩만첩 꽃잎 띄우며저마다 향기로운 봄날에 까무룩 취했다 낙동강변으로 덜컹거리는 기차가 지나갈 때마
진정한 시란그리스도의 말처럼 쉽고그리스도의 말처럼 깊어야 한다진정한 시란그리스도의 생애처럼 짧고그리스도의 부활처럼 눈부셔야 한다 진정한 시란골고다 언덕 위의 강도(强盜)같이완전한 결어(結語)를쓸수있어야한다 진정한 시란그 강도를 손잡고 갈 사랑이 있어야 한다
수위를 낮춘 강변에먼저 돋는 잎맥 속의인자한 이른 봄미리 깨어 있는 새들 한 소절의 노래로 햇볕 돋는 귓가에 먼저 놓이는그대의 전언처럼 공손한데 아직도 꽃 얼음 아래 여울물 소리물사위 푸른 피안에서이 하루의 증언도 풍경으로 아릿한데아직도 머나먼 약속도 보이지 않는 산촌 그대와 나는 자꾸만 봄 설레는 저 새들처럼 서로의 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