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늦는 거야."혼잣소리를 중얼거리며 또 한 번 편의점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가을과 겨울이 교차하는 바람만이 쌩하고 안으로 치고 들어온다. 새벽 6시 30분. 아직 교대시간은 10분이나 남아 있었지만 마음은 안절부절이다. 거의 한 달 만에야 다시 시작한 아르바이트. 어제 저녁, 처음 출근을 하느라 대충 입고 나온 가을 점퍼로 파고드는 찬 기
- 서웅교
"왜 이렇게 늦는 거야."혼잣소리를 중얼거리며 또 한 번 편의점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가을과 겨울이 교차하는 바람만이 쌩하고 안으로 치고 들어온다. 새벽 6시 30분. 아직 교대시간은 10분이나 남아 있었지만 마음은 안절부절이다. 거의 한 달 만에야 다시 시작한 아르바이트. 어제 저녁, 처음 출근을 하느라 대충 입고 나온 가을 점퍼로 파고드는 찬 기
"당장 차 세워."엄마가 운전석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깜짝 놀란 지선이 핸들을 꽉 움켜쥐고 소리를 질렀다."엄마,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여긴 고속도로라고.""고속도로고 뭐고 필요 없으니까 당장 차 세워. 난 집에 갈 거야."평소에는 어눌해서 알아듣기 힘들던 엄마의 발음이 이럴 때는 정확하다."대체 어쩌라고 이러는 건데? 조용히 운전 좀 하자고.""
"오랜만에 뵈니 더 젊어지셨어요. 두 분 다."영숙 씨가 코리아노 석 잔을 탁자 위에다 내려놓으면서 수인사를 건넨다."헛말인 줄 알면서도 듣기 좋은 건 젊다는 말이죠. 그만치 젊음이 소중하고 보배롭다는 얘기 아니겠어요?""아쉽고 안타까워도 이미 가버린 청춘. 이제 와서 안타까워한들 무슨 소용 있겠어요?"영숙 씨의 인사에 상수가 화답하고, 이어서 내가 추임새
소녀는 세월의 깊이만큼 태초의 고독을 온몸에 드리우고 있었다.나는 그 모습을 언제나 타는 가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내 젊음을 아프게 무너뜨린 유년의 겨울처럼 그 해의 겨울은 내내 가슴을 앓아야 했다.내가 그 소녀를 처음 본 날은 11월의 마지막 남은 달력이 함박눈 때문에 고독의 매듭을 풀고 있을 때였다.용인의 전셋집을 비워두고 수원의 전셋집으로 이사를 가는
동그란 손거울이 바다에 빠져산호언덕에 엇비스듬히 기대어 있네요. 먹어도 먹어도 늘 배고픈 아구제 몸집보다 더 큰 입 벌려 삼키려다가깜짝 놀라서 도망을 쳤어요. 숨어서 지켜보던 아기 꽃게,살금살금 거울 앞에 다가가 보곤 하는 혼잣말.-우리 중에도 힘센 친구가 있는 줄 몰랐네.
육십령 고갯길을 으르대던 악명 좇아앵무새 성대 꺾어 휘파람만 불게 하며질서는 저만의 권능 혼란을 부추기는 자 뱀눈으로 보는 세상 종말 이전의 종말거꾸로 매달리는 낭패는 없겠으니온화한 웃음 머금고 죽지 않는 신인 듯 오늘 아침 조간에서 활자체로 얼어 죽어서러워하련마는 스스로 묻히는 무덤소나무 가지를 감던 칡넝쿨이 끊겨 있다
아침 자셨습니껴. 쑥기니2)라도 요기(療飢)했소모진 추위 견딘 보리 들판이 초록 들 때소쿠리 넘치게 캐 담은 쑥보다 더 빈 쌀독 보리가 갓 익을 때 밭골 뛰는 아이 눈빛깜부기 먼저 따려 간식거리 챙취다먹을 것 아무것도 없는 춘궁기 빈농 애들 풋보리 바심3) 낱알 이웃끼리 나눠 먹기보리타작 준비할 즘 장마 지면 보리 썩어또 장리(長利)4)
가만히 곁에 가서나무에 기대서면 가지 끝을 오르는물소리 들리는 듯 머잖아새잎 피우려나무 가슴 뛴다네
흐릿한 창 너머로 가로등은 참 밝다새로 난 길바닥은 불빛으로 반짝이고찬바람 소리도 없이 겨울 강을 건너간다. 짊어진 어둠의 길 갈수록 무거운데왔던 길 낯설어서 꿈결도 어수선한하늘의 먹장구름은 하얀 세상 만든다. 아무도 알 수 없는 내일은 다시 오고매서운 바람 끝이 살갗을 후비는데여의도 겨울 공화국 언제쯤 봄은 올까.
하늘 째는 나팔 소리 놀란 손이 잠재운 날탈 벗으며 하는 말 그 속내 알 것 같아산으로 배가 오른 날 절해고도(絶海孤島) 삼만리 믿는다 못 믿는다, 오른 거여 거꾸로야!소망의 꿈 뭉갠 손에 기다리는 자유 민주하늘이 열두 번 바뀌어도 민주의 꽃 피워야! 무슨 꿈을 꿨는지 때 놓칠까 서둘러깊게 한 번 생각하라, 때가 사람 따라야!검은 털 감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