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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 70호 어느 바리스타에게

"왜 이렇게 늦는 거야."혼잣소리를 중얼거리며 또 한 번 편의점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가을과 겨울이 교차하는 바람만이 쌩하고 안으로 치고 들어온다. 새벽 6시 30분. 아직 교대시간은 10분이나 남아 있었지만 마음은 안절부절이다. 거의 한 달 만에야 다시 시작한 아르바이트. 어제 저녁, 처음 출근을 하느라 대충 입고 나온 가을 점퍼로 파고드는 찬 기

  • 서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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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 70호 엄마의 시간

"당장 차 세워."엄마가 운전석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깜짝 놀란 지선이 핸들을 꽉 움켜쥐고 소리를 질렀다."엄마,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여긴 고속도로라고.""고속도로고 뭐고 필요 없으니까 당장 차 세워. 난 집에 갈 거야."평소에는 어눌해서 알아듣기 힘들던 엄마의 발음이 이럴 때는 정확하다."대체 어쩌라고 이러는 건데? 조용히 운전 좀 하자고.""

  • 김택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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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 70호 걸어서 지옥까지 - 그림자 춤·14

"오랜만에 뵈니 더 젊어지셨어요. 두 분 다."영숙 씨가 코리아노 석 잔을 탁자 위에다 내려놓으면서 수인사를 건넨다."헛말인 줄 알면서도 듣기 좋은 건 젊다는 말이죠. 그만치 젊음이 소중하고 보배롭다는 얘기 아니겠어요?""아쉽고 안타까워도 이미 가버린 청춘. 이제 와서 안타까워한들 무슨 소용 있겠어요?"영숙 씨의 인사에 상수가 화답하고, 이어서 내가 추임새

  • 윤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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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2025.3 70호 창(窓) 안의 소녀

소녀는 세월의 깊이만큼 태초의 고독을 온몸에 드리우고 있었다.나는 그 모습을 언제나 타는 가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내 젊음을 아프게 무너뜨린 유년의 겨울처럼 그 해의 겨울은 내내 가슴을 앓아야 했다.내가 그 소녀를 처음 본 날은 11월의 마지막 남은 달력이 함박눈 때문에 고독의 매듭을 풀고 있을 때였다.용인의 전셋집을 비워두고 수원의 전셋집으로 이사를 가는

  • 양승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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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 70호 종말 이전의 종말

육십령 고갯길을 으르대던 악명 좇아앵무새 성대 꺾어 휘파람만 불게 하며질서는 저만의 권능 혼란을 부추기는 자 뱀눈으로 보는 세상 종말 이전의 종말거꾸로 매달리는 낭패는 없겠으니온화한 웃음 머금고 죽지 않는 신인 듯 오늘 아침 조간에서 활자체로 얼어 죽어서러워하련마는 스스로 묻히는 무덤소나무 가지를 감던 칡넝쿨이 끊겨 있다

  • 서석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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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 70호 진담객담(眞談客談)

하늘 째는 나팔 소리 놀란 손이 잠재운 날탈 벗으며 하는 말 그 속내 알 것 같아산으로 배가 오른 날 절해고도(絶海孤島) 삼만리 믿는다 못 믿는다, 오른 거여 거꾸로야!소망의 꿈 뭉갠 손에 기다리는 자유 민주하늘이 열두 번 바뀌어도 민주의 꽃 피워야! 무슨 꿈을 꿨는지 때 놓칠까 서둘러깊게 한 번 생각하라, 때가 사람 따라야!검은 털 감춘

  • 조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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