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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 679호 꼭두 빈 성산일출봉

제주도! 설렌다. 첫 만남인 양 나를 반겨준다. 사르륵 사르륵 안개비가 내 얼굴을 감싸 안는다. 축축한 공기에 젖어서야 우산을 받쳐 들고 나무 계단을 오른다. 오후 4시, 내려오는 사람은 있는데 오르는 사람은 없다. 빼곡한 비자나무와 작살나무 숲. 삐죽한 화살촉을 내민 화살나무 숲을 구불구불 오른다.성산일출봉, 해발 180미터 안내판이 나타난다. 드디어 성

  • 안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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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 679호 묵언 수행(默言修行)

6월로 접어들자 산천초목이 온통 녹색으로 수놓으니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여행은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도 좋지만 예정에 없이 갑자기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해서 순천 송광사의 템플스테이를 바로 예약했다. 그곳을 선택한 것은 법정 스님이 생전에 거주하셨던 불일암을 찾아 스님의 향수를 다시금 되새겨 보고 싶었다.수필집 『보석을 찾는 마음』에 수

  • 이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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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 679호 들꽃 시상식

무섭게 쏟아지는 폭우를 헤치며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은 다행히 소강 상태였다. 버스에서 내리며 조마조마했던 마음도 내려놓는다.내 깐에는 지방에서 1박 2일 동안 열렸던 시상식 행사에 쫓아다니는 게 힘에 버거웠던 모양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여행 가방도 풀지 못한 채 누워 버렸다. 수상자만 열댓 명이 넘는 시상식에서 사회를 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등단

  • 서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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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 679호 퍼즐 한 조각

미니버스는 가락시장역 3번 출구 쪽으로 머리를 튼다. 버스는 미끄러지듯 서서히 인도 쪽으로 바짝 붙여 정차한다. 문이 활짝 열렸다. 청소년인지 성인인지 분간할 수 없는 연령층의 남녀 십여 명이 주르르 내린다. “선영아, 안녕.”나는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소리를 질렀다. 들은 척만 척, 본 척만 척 빠른 걸음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철역 안으로

  • 임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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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 679호 천년 수풀 길

사부작사부작 찰흙을 가지고 놀았다. 끈적끈적하면서 질척질척한 감촉이 좋았다.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지는 착한 흙이었다. 여섯 살 어느 해 방 안에만 있는 나에게 어머니는 찰흙이란 것을 주셨다. 찰흙은 어머니의 수제비 반죽 같았다. 밀가루를 반죽하는 어머니 옆에서 손가락으로 반죽을 꾹꾹 눌러 보는 것처럼 찰흙도 눌러지는 게 좋았다. 질척이지만 매끄러운

  • 이현숙(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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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 679호 『이방인』을 읽는 여인

제주에서 한 달 보내기로 작정했던 것은 취업 때문이었다.정말 별 볼 일 없었다. 군대를 다녀와 복학을 하려 했지만 복학할 등록금이 없었다. 몰락한 집안 형편에 도피적으로 군대를 갔지만 복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마저도 집안은 풀리지 않았다. 게다가 내 머리로나 체력으로나 나는 복학해 보았자 결코 공부로는 승부할 그릇이 못 되었다. 그래 취직이나 하자. 그러나

  • 차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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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 679호 비둘기를 보내며

말없이 떠나버렸다말 못 하는 새라지만냄새도 참고눈치도 보며 지켜본 시간이허무하다 알을 깨고 나와서날 수 있을 때까지한 달의 시침은느리게 돌아갔지만 어느 날 눈에 들어온실외기 뒤의 좁은 둥지에서솜털도 덜 자란붉은 모습이 안쓰러웠다 어미를 닮아 가는털빛을 만들었지만떠나려는 날갯짓은보지도 못했는데 밤새도록 내리던 비가거짓처럼

  • 김봉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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